책소개
“견디기 힘들겠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잘나가던 소믈리에에서 하루아침에 노숙인이 된 저자가
파리 거리에서 보낸 세 번의 겨울 그리고 감동적인 실화
CNN이 주목한 ‘트위터 하는 노숙인’ 크리스티앙 파쥬의 화제작. 유명 레스토랑의 소믈리에에서 별안간 노숙인이 된 저자가 파리 거리에서 세 번의 겨울을 보내며 트위터에 연재한 글과, 그 삶을 엮은 자전적 에세이다.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특유의 유머와 풍자로 거리 빈민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책은,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신문인 「르 몽드」 등 다수 언론 매체에 소개되며 호평을 받았다.
저자인 크리스티앙 파쥬는 폭력과 질병이 도사리는 거리에서 혹독한 하루를 살아냈다. 좀도둑, 술주정뱅이, 가출한 아이들, 선교회의 요리사, 착한 사마리아인, 하룻밤을 재워주겠다는 뉴스 앵커,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삶이란 무엇인지 되묻고 주저앉은 무릎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2015년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파리 테러의 한복판에서, 피에르 신부가 창립한 엠마우스 노숙인 쉼터에서, 가족에게 누가 될까 봐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노숙인을 보며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는 그런 저자가 대도시 거리에서 겪은 ‘밑바닥 생활기’다. 삶과 죽음, 선과 악, 고통과 번민에 관한 글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총 5개의 장으로 나뉜 페이지에는 시기별, 주제별, 인물별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스며 있다. 가난의 비참과 경멸의 시선을 견디며 써 내려간 글들은 어쩌면 당신이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혐오가 극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서사다. “악행을 일삼으면 삶이 지옥이 되고, 선행을 베풀면 반드시 돌아온다”고 저자는 말하며 독자들에게 묻는다. 대도시에 사는 우리가 외면하는 삶은 무엇인가. 우리는 착하게 살 필요가 있는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목차
서문
1. 나를 맞이한 곳은 지옥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
다른 세상에 산다는 것
선교회와 트위터와 토끼뜀
비둘기와 쥐와 기욤
고백
프랑수아와 정원사와 위대한 질
매달 7일
라피크와 나심
좀도둑
범죄의 표적과 배낭
2. 흔들리는 것은 의자가 아니라 인생
시칠리아 청년과 쉬르쿠프
사망자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것
뜻밖의 연락
테러
여자와 함께한 시간
사라
끼니
잠자리
은신처 찾기
3. 아름다운 별을 보며 잠드는 것
세 얼간이의 여행
악취
아들과 꿈
죽음의 형태
로만과 드라공 스쿼트
늙은 노숙인들
스코틀랜드 노숙인
무료 급식과 레스토랑
와인과 맥주
개의 의미
4. 차가운 밤이 오기 전에
노노와 걀락
노노의 감옥살이
대화
한파주의보
알도와 마르틴
세 남자
소망 사항
호텔에서 보낸 하루
책과 계급
릴리안
5. 내 삶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배낭 없이 보내는 하루
추락의 이유
블랙리스트
잘못된 기사와 라디오의 자식
노숙인의 여름
인생은 놀라움
다양성
종교
아르튀스
꿈꾸던 집
옮긴이의 말
저자
크리스티앙 파쥬
출판사리뷰
정호승, 남궁인, 목수정이 먼저 읽은 책
CNN이 주목한 트위터 하는 노숙인
크리스티앙 파쥬의 첫 산문집
‘트위터 하는 노숙인’ 크리스티앙 파쥬의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는 2015년부터 3년 반 동안 저자가 파리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쓴 실화를 엮은 책이다. 글쓰기가 사치처럼 여겨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트위터에 노숙의 일상을 올리며 원고를 축적해온 독특한 결과물이다. 특히 파리 시청 직원이 노숙인을 내쫓기 위해 물뿌리개 호스로 물을 뿌린 것에 화가 나서 트위터에 올린 글은 화제가 되었고, 이를 본 파리 시장에게 직접 사과를 받기도 했다. 3만 팔로어가 찾고 있는 그의 트위터 @Pagechris75는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 크리스티앙 파쥬는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군 제대 후 스무 살부터 파리에서 살면서 노숙인과 불법 체류자들을 위해 투쟁했고, 엠마우스를 설립한 피에르 신부의 지원을 받아서 유엔 해비타트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20대 중반에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투사로서의 삶을 접고 유명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로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자의 삶은 풍요롭고 평탄했다.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았고, 아들이 있었으며,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결혼 생활이 깨지고 직장을 잃은 후 살던 집에서 쫓겨나면서, 크리스티앙 파쥬는 거리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러고 그는 거리에서 세 번의 겨울을 보냈다. 먹고 자고 씻는 일은, 이제 평범한 일이 아닌 힘겨운 일이었다. 마약의 유혹을 뿌리쳐야 했고, 알코올 중독자들과 뒤엉켜 지내야 했고, 2015년 파리 테러의 한복판에서 시람들의 비명을 들으며 갈 곳이 없는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집을 가진 사람과 연애도 했으며, 정말로 있을까 싶은 ‘착한 사마리아인’도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이 책은 절망과 희망이 뒤엉킨 대도시 거리에서 한 사람이 살아낸 ‘밑바닥 생활기’다. 3년 반 동안의 노숙 생활 끝에 저자는 냉장고가 딸린 작은 집을 구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밤마다 위협받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거리에서 저자가 겪은 삶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었고, 무해하게 살고자 애쓰는 삶이었고,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삶이었다. 그리고 궁극에는 사람에게 기대어 사는 삶이었다. 오늘내일을 모르는 삶을 살아낸 그는 독자에게 묻는다. 대도시에 사는 우리가 외면하는 삶은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견디기 힘들겠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목숨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관하여
이 책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고통’이다. 크리스티앙 파쥬는 막연히 예상했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던, 노숙인의 일상과 속마음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동전을 건네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 행인들의 단호함, 잠자는 등을 걷어차는 경찰들의 비정함을 면밀히 보여주고,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하기 않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며 “아이들에게 실패한 내 인생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건강검진을 위해 의사를 만나는 것이 또 다른 고통이 될 줄은 노숙인이 되기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일반인도 그렇겠지만, 노숙인들은 특히 병원을 싫어한다. 가장 힘든 것은 의사의 소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보낸 세월이 종합적으로 평가되는 동안 받아야 하는 의사의 냉담한 시선과 취조는 견디기 힘들다. 타인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도 듣고 싶지 않다. (…) 노숙인들이 병원과 작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치심 때문이다. 건강한 신체에 깨끗한 가운을 걸친 의사 앞에서 노숙인 신분으로 더러운 옷가지를 벗다 보면 굴욕감이 느껴진다. 관리를 소홀히 한 몸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런 이유로 노숙인 대부분은 의사와 마주하기를 꺼려한다. _126~127쪽
정신적 고통뿐만이 아니다. 길바닥에서 겪어야 하는 육체적 고통은 더욱 가혹하다. 저자는 추위에 발이 얼어붙는 쓰라림을 견디며, 거리에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발가락 끝까지 따뜻한 피를 내려보내기 위해” 토끼뜀을 반복했고, 몸에 붙은 빈대를 없애기 위해 병원을 찾아 헤맸다. 낮에는 20~30킬로그램 되는 배낭을 메고 다녀야했고, 밤이면 자갈을 깔고 자면서 좀도둑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했다. 그 와중에도 한 달에 60만 원가량 나오는 정부 보조금의 일부를 떼어 저축까지 했다. 밥벌이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가 개의 귀를 담요로 덮어주는 장면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품위까지 잃고 싶지는 않아”
청결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관하여
거리의 삶을 대변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냄새’다. 냄새는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형편을 말해준다. 노숙하는 기간이 오래될수록 ‘노숙 냄새’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매일 양말을 갈아 신을 수 없고, 치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노숙인에게 섬유유연제의 향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때 와인의 향을 음미하던 저자가 지린내를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분이 되었다는 점은, 빈부격차의 상징적 코드로 ‘냄새’를 보여주었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 한다.
노숙인에게 자기 관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신체가 영혼을 보호하는 유일한 무기임을 알지만, 몸이 몸 같지 않으면 자괴감이 든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관리를 소홀히 하고, 몸을 방치해 썩힌다. (…) 길바닥 생활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첫 번째 징후는 냄새다. 악취는 인간을 고립시키는 최고의 요인이다. 나도 가급적이면 향기로울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입 냄새는 양치질로도 없애기 힘들다. _127~128쪽
그렇다고 모든 노숙인이 더러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 거라는 생각은 오해다. 퀴퀴한 냄새는 타인의 눈총을 받기에, 의외로 많은 노숙인들이 청결을 유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저자는 선교회에서 샤워를 하기 위해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고,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흰색 옷을 멀리하며, 배낭에 깨끗한 내의를 가지고 다녔다. 노숙인에게 청결은 그들에게도 존재하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독만큼 이겨내기 힘든 도전은 없다”
외롭게 죽어가는 삶에 관하여
노숙인이 누구보다 자주 마주치게 되는 풍경은 ‘죽음’이다. 공원 나무에 목을 매단 청년, 치매에 걸린 노인, 단도에 찔려 숨을 거둔 남자, 추위에 떠돌다가 동사한 여자 등, 저자는 길거리에 밥 먹듯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어제는 파리 한복판에서 노숙인 한 명이 화상을 입었다. (…)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잠든 사이에 침낭 위에 휘발유를 부었다. 그리고 불길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내버려둔 채, 화염에 싸인 주인을 보고 겁에 질려 울부짖는 노숙인의 개를 끌고 갔다. 다행히 그는 불길에서 구조되었다. 하지만 심한 화상을 입고 생명이 위독하다. 아마 병원을 걸어 나오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데도 인간 이하인 범죄자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다. 피해자의 개도 물론 찾지 못했다. _61쪽
‘거리의 사망자 단체(Collectif Les Morts de la Rue)’의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에서는 매일 한두 명 이상의 노숙인이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들 중 일부는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원하며, 사체 감식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그들이 조용히 사라질 권리는 없다. 신원 불명자의 경우, 죽으면 부검을 거쳐 사망 원인이 밝혀지고 보고서에 기록이 남게 된다.
알고 지내던 노숙인 형제의 이름을 ‘거리의 사망자 단체’의 보고서에서 발견했을 때, 크리스티앙 파쥬는 울기보다 술을 마시며 이렇게 애도했다. “노숙인들은 거리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과 작별하는 사람은 우리만이 아니다.” 그는 슬픔과 분노를 앞세우기보다 절제된 시선으로 거리의 죽음을 담아내며 저릿한 울림을 준다.
“노숙인도 사람이다”
노숙인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이 책은 리얼리즘 소설 같으면서도 온 몸으로 쓴 르포르타주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저자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는 우리가 왜곡하여 알고 있었던 노숙인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에 인생을 포기한 노숙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역과 강의를 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노숙인도 있다는 것. 그들에게도 나름의 규칙과 배려가 있다는 것.
거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하던 그도 결국 사람에게 위로받는다. 저자는 노숙인이 되고나서 한때 절친했던 친구의 무시를 당했지만,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거리의 형제를 만났다. 그의 곁에는 하룻밤을 재워주겠다는 뉴스 앵커도 있었고, 거리에서 먹고 사는 법을 알려준 길바닥 세계의 큰 어른도 있었고, 퉁명스럽지만 꼬박꼬박 따스한 밥을 나눠주는 선교회의 요리사도 있었다.
20대에 노숙인을 위해 투쟁했던 저자가 40대에 갑자기 노숙인이 되어, 고난과 불평등을 고스란히 겪게 되는 과정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그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성장 우선주의와 경제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가항력적인 재해로, 잘못된 선택으로, 한 순간의 실수로, 우리는 따뜻한 샤워와 깨끗한 수건과 한 끼의 식사가 당연하지 않은 거리의 부랑자로 내몰릴 수 있다.
노숙인이 머물 자리를 없애기 위해 벤치 위에 가로대를 설치하고, 쇠꼬챙이가 달린 철책을 치며, 노숙인을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는 풍경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노숙인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포기는 우리가 사는 나라가 그만큼 노후했음을 의미한다”는 저자의 일침은 오래 마음에 머문다.
노숙인의 삶은 우리와 무관한 삶이 아닌 우리가 보듬고 보살펴야 하는 삶임이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노숙인의 삶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투명 인간 취급을 하기도 했던 거리의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가난한 삶이겠지만 아름다운 별을 보며 잠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되, 거리의 삶 안에도 어둠만 있는 것은 아니며 빛도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기록이 소중하고 반가운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