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처음으로 털어놓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들
아버지의 시간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단 하나의 서사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_무라카미 하루키
그간 일본 문학 특유의 사소설풍 서사와는 다소 거리를 두어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적인 테마 즉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간 회상으로 시작하는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개인의 역사를 되짚는 논픽션이다. 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존재론적 근간을 성찰하고 작가로서의 문학적 근간을 직시한다. 작가는 시종 아무리 잊고 싶은 역사라도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버지의 역사를 논픽션이라는 이야기의 형태로 용기내어 전한다. 글 쓰는 사람의 책무로서.
번역을 맡은 김난주가 “곳곳에서 작가의 머뭇거림이 느껴졌습니다. 쉼표도 많았고, 접속사 ‘아무튼’이 몇 번이고 등장했죠”라고 작업 소감을 밝혔듯, 무수한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길지 않은 책으로 완성되었지만 이야기의 중량감과 여운은 결코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문예춘추](2019년 6월호)에 처음 공개되어 그해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기사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했고, 수정·가필을 거쳐 삽화와 함께 단행본으로 출간, 아마존 재팬, 기노쿠니야, 오리콘 등 각종 도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묘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13컷의 삽화는 타이완 출신 신예 아티스트 가오 옌의 작품이다.
목차
고양이를 버리다 9
작가 후기 96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사리뷰
★출간 즉시 아마존 재팬, 오리콘, 기노쿠니야 베스트 1위★
★〈문예춘추〉 선정 2019 ‘문예춘추독자상’ 수상작★
세월에 잊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세월에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 있다
1917년 교토 어느 절집의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야만적인 전쟁의 나날을 견딘 후 효고 현 니시노미야 시에서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 생활을 하다 2008년 고인이 된 무라카미 지아키. 작가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아버지 지아키는 소년 하루키에게 끔찍한 전장의 기억을 공유한다. 그중 중국군 포로를 군도로 척살해버린 무도한 기억의 조각은 현재까지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그 일은 대학살이 일어났던 악명 높은 난징전에 아버지가 참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발전했지만 작가는 어쩐지 아버지에게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채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고부터는 절연에 가까운 부자 관계가 된 탓에 작가는 끝내 그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사별하고 만다. 그러던 칠십대의 어느 날, 작가는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아버지의 삶의 풍경들을 글로 써 정리해보자고 결심한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출발했다. 독자가 직접 뽑아 그해 최고의 글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하는 등 열렬한 박수를 받는 한편, 일부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작가로서, 역사 속 개인으로서 ‘1949년생 무라카미 하루키’
그 시원과 궤적을 좇는 유일무의한 글쓰기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읽으면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첫머리에 등장하여 일 년 가까이 행방불명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고양이 와타야 노보루는 물론, 산 사람 가죽 벗기기 등 소설 속 잔인한 풍경들이 작가의 삶의 조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중국행 슬로보트》라는 작품의 출발점도 《후와후와》의 보드라운 회상이나 《기사단장 죽이기》 속 난징전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일 것이다.
[작가 인터뷰에서]
Q1- 충격적인 에세이였습니다, 아무래도 70세를 맞아 써야겠다고 생각하셨을까요.
무라카미- 지금 써서 남기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가족에 대해서는 그다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써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썼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하나의 책무로서.
Q2- 그것은 아버지가 세 번이나 소집된 전쟁, 특히 일본에 의한 중국 침략에 관한 일이어서일까요.
무라카미- 그것이 꽤 컸을 겁니다. 그런 일은 없던 것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으니 일어난 일은 써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수정주의가 만연하고 있는데 큰일이지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아무래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만 (2008년에) 돌아가시고 시간을 조금 둔 뒤 쓴 것입니다.
Q3- 학살이 일어난 난징 공략전에 아버지가 참전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좀처럼 기록을 뒤적여보지도 못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결국 난징전에는 아버지가 참전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셨죠.
무라카미- 그런 내용도 있어서 좀처럼 손을 데지 못했습니다만, 이제는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조사해보니 아버지의 부대는 우한 부근까지 진군했더군요. (코로나 뉴스에서) 우한(영상)을 봤을 때도 떠올랐습니다.
Q4- 중국은 초기 작품부터 여러 형태로 다뤄졌습니다. 중대한 문제인 만큼 계속 등장하는 것이겠지요.
무라카미- 그렇습니다. 확실히 하나의 테마랄까,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Q5- 아버지의 부대가 포로인 중국 병사를 처형한 일 등 직접 들은 이야기가 컸을까요?
무라카미- 아무래도 어린 시절이었으니 충격이랄까, 지울 수 없죠.
Q6- 과거 오랜 시간 ‘절연’ 관계였다는 부자에 대한 묘사에서 독자들이 많이 놀랐습니다.
무라카미- 그 문장은 쓰기 꽤 힘들었습니다. 나에 대한 사실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니까요. 어떻게 써야 할까 스탠스를 정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요.
_출간 기념 인터뷰에서┃마이니치 신문(2019.7.11)
[짧은 옮긴이의 말]
“옛일을 잊고 싶은 거겠지. 잠재적으로 그런 거겠지.”_ 《중국행 슬로보트》에서
잊고 싶은 옛일이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끝끝내 붙들고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평생의 짐으로, 무거운 어깨와 함께.
작가 자신은 한 번은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가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얘기부터 쓰기 시작했더니 의외로 술술 나왔다고 하지만, 도입부의 쉼표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일말의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튼’이라는 접속사가 몇 번이나 등장하는 점에서도.
‘전쟁’이 한 인간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도 소설적으로 다루어졌지만,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개인의 영역에서 다뤄진다.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모진 역사에 새겨진 무수한 ‘조각’의 기록으로.
_ 김난주(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