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훌륭한 이치와 오묘한 뜻으로 눈과 마음을 깨우다”
서양의 천주교와 동양의 유학이 만나 탄생한 인생 수양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서학 열풍을 일으킨 《칠극》을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번역과 해설로 만난다. 교만·질투·탐욕·분노·식탐·음란·나태의 인간을 둘러싼 7가지 병든 마음과, 이를 치유하는 겸손·사랑·관용·인내·절제·정결·근면의 7가지 처방. 아리스토텔레스·소크라테스·세네카·아우구스티노·프란치스코 등 서양 성인들의 잠언부터 《성경》 《이솝 우화》, 유가 경전과 중국 고전까지.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일화와 예시로 풀어내 천주교 신앙이 동양 사회에 스며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책.
목차
옮긴이의 말
《칠극》 자서_ 판토하
1장 교만을 누름
〈복오〉 소서
1. 교만을 이기는 일의 어려움
2. 육신의 행복으로 교만해짐을 경계함
3. 마음의 덕을 뽐냄을 경계함
4. 다름을 좋아함을 경계함
5. 이름을 좋아함을 경계함
6. 선행으로 속여 명예 낚음을 경계함
7. 칭찬 듣기를 경계함
8. 귀함을 좋아함을 경계함
9. 겸손의 덕을 논함
10. 자신을 알아 겸손을 지킴
2장 질투를 가라앉힘
〈평투〉 소서
1. 남의 악을 헤아려 따짐을 경계함
2. 헐뜯는 말을 경계함
3. 헐뜯는 말 듣기를 경계함
4. 남을 아끼고 사랑함
3장 탐욕에서 벗어남
〈해탐〉 소서
1. 베풂의 덕을 논함
4장 성냄을 가라앉힘
〈식분〉 소서
1. 원수를 사랑함
2. 인내의 덕으로 환난에 대적함
3. 박해로 덕을 보탬
5장 식탐을 막음
〈색도〉 소서
1. 절제의 덕을 논함
6장 음란함을 막음
〈방음〉 소서
1. 정결의 덕
2. 결혼에 대한 바른 논의
7장 나태함을 채찍질함
〈책태〉 소서
1. 근면의 덕을 논함
서문과 발문
《칠극》 서문_ 양정균
《칠극》 서문_ 정이위
《칠극》 인_ 웅명우
《칠극편》 서문_ 진량채
《서성칠편》 서문_ 팽단오
《칠극》 서문_ 조우변
《칠극진훈》 재판 서문_ 사베리오
《칠극진훈》 서문
《칠극》 후발_ 왕여순
《서성칠편》 발문_ 번정우
해제 _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 일곱 가지 승리의 길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판토하 (지은이), 정민 (옮긴이)
출판사리뷰
“서양의 천주교와 동양의 유학이 만나 탄생한 인생 수양서”
사도세자가 읽고 이익과 정약용을 서학으로 이끈 《칠극》,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 교수의 번역과 해설로 만나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서학(西學) 열풍을 불러일으킨 책이 있다. 조선 후기 명나라를 통해 조선에 전래되어 수많은 학자들을 감응케 하고 천주교에 귀의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칠극(七克)》이다. ‘칠극’은 7가지 죄종(罪宗)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뜻이다.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인간의 7가지 마음과 이를 극복하는 7자지 덕행(德行)을 담은 책이다.
저자 판토하(Diego de Pantoja)는 스페인 선교사이다. 동방 선교의 꿈을 안고 1601년 명나라에 들어온 그는 천주교 박해로 추방되기 전까지 19년간 중국에 머물면서 전교 활동에 헌신하는데 《칠극》(1614년)의 집필은 그 활동의 일환이었다. 정민 교수가 이 책을 접한 것은 우연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천주교 관련 문헌을 들여다보다가, 뜻밖에 이 책이 조선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혔고 그 영향과 파급력이 상당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칠극》의 원문을 구해 살펴보며 더욱 놀랐던 것은 다산이 제자들에게 준 가르침에서 이 책의 구절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후 잠언풍으로 이어지며 마음을 사로잡는 가르침에 매료된 정민 교수가 《논어》의 7배나 되는 방대한 작업을 시작한 계기였다.
《칠극》은 7가지 갈래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7가지 마음의 병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7가지 해법을 이야기한다. ‘교만’에 맞서는 ‘겸손’, ‘질투’를 이기는 ‘사랑’, ‘탐욕’을 없애는 ‘관용’, ‘분노’를 가라앉히는 ‘인내’, ‘식탐’을 누르는 ‘절제’, ‘음란’의 불길을 식히는 ‘정결’, ‘나태’를 깨우는 ‘근면’이 그것이다. 마치 증세에 따라 처방약을 내놓듯이, 단계별로 죄종의 성질과 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다양한 일화와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일화와 예시로 풀어내
천주교 신앙이 동양 사회에 스며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책
이 책이 동양 사회의 서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었던 데에는 특유의 서술 방식에 있다. 판토하는 《성경》의 내용과 개념들을 유가적 술어를 빌려 서술했다. 신유학의 사단칠정론 같은 윤리학의 기본 범주와 연결함으로써, 천주교의 수양 및 윤리서가 동양의 유교적 지식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접속되는 통로를 만든 것이다.
판토하는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베르나르도 등 서양 중세 성인들을 비롯해, 세네카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잠언과 일화, 나아가 《이솝 우화》와 중국 고전까지 두루 인용함으로써 친밀도를 높였다. 교리 전파라기보다는 일종의 ‘서양인 수양서’ 같은 느낌을 준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매 단락의 이야기가 주는 흥미와 화법에 빠져드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천주교 신앙의 얼개가 내재화되어 갔다. 또한 기존의 《논어》, 《맹자》 등이 어록을 순서 없이 나열한 데 비해, 《칠극》은 7가지 죄종과 이를 극복하는 단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편집의 탁월성과 신선함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강력한 흡인력으로 간행 직후부터 중국 사대부들의 극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판토하를 ‘위대한 한학가(漢學家)’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칠극》은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처음 조선에 이 책이 들어왔을 때 대학자 성호 이익은 “유가의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가르침과 다를 게 없고, 수양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를 높이 평가했다. 남인 학맥의 큰 스승이던 이익의 이 같은 인가가 있자 그의 후학들이 뒤를 따랐고, 이후 《칠극》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천주학과 접속하는 유력한 통로 역할을 했다. 18세기 후반, 조선에 천주학이 들어온 바탕에는 그 이전에 들어와 꾸준히 읽혀온 이 책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다.
《칠극》을 통해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조선 최초의 인물은 이익의 제자였던 홍유한(洪儒漢)이다. 그는 평생 ‘칠극’을 실천했고 이를 추종했던 남인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산 정약용에게도 《칠극》은 생애 전반을 함께한 책이었다. 그는 〈선중씨묘지명(先仲氏墓誌銘)〉에서 《칠극》 등의 서학서를 빌려 탐독했다고 고백했는데, 실제로 〈취몽재기(醉夢齋記)〉, 〈두 아들에게 써준 가계〔示二子家誡〕〉 등 많은 글에서 《칠극》의 내용이 보인다. 사도세자는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 서문에서 자신이 읽고 답답한 마음을 풀었던 93종의 서책 목록을 나열했는데 놀랍게도 《칠극》이 포함되어 있다. 천주교와 무관한 연암 박지원이나 조선 후기 다른 문장가의 글에서도 《칠극》에서 끌어온 비유나 표현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 책이 신앙 차원을 떠나 일종의 수양서나 지혜문학의 일종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식탐, 음란, 나태의 시대에 다시 《칠극》을 묻는다
인간의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7가지 성찰
《칠극》이 이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데에는 무엇보다 책 속의 가르침이 주는 보편적 공감력 때문이다. “훌륭한 이치와 오묘한 뜻이 마음을 깨어나게 하고 눈을 열어준다”(양정균, 명나라 학자), “책 속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뼈를 찌르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음에 콕콕 박혀 통렬하고 절실하다”(영렴지, 근대 지식인),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읽어보면 정신을 놀래고 신묘한 맛이 무궁하다”(방호, 역사학자) 등 학자들의 찬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책의 내용은 현대인이 일반적인 수양서로 읽더라도 큰 일깨움을 준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은 왜 고통스럽고, 어떻게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바른 삶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욕망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해치는가?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등 우리가 갖는 수많은 물음에 궁극적 해답을 제시해줄, 충분히 설득력 있고 여전히 유효한 보배로운 내용들이 책 전체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의 불화는 깊어지고, 사람 간 단절의 벽은 점점 높아만 간다. 물질의 삶이 나아지는데 정신의 풍경은 점점 더 황폐해졌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바른 삶의 길을 찾기 위한 깊은 성찰이다. 책의 각 항목에 따라 자신의 삶을 투영해 읽으면, 몽롱하던 정신이 화들짝 돌아오고, 방향을 놓쳐 비틀대던 발끝에 힘이 생긴다. 여기에 우리 옛 신앙 선조들의 신심을 겹쳐 읽으면, 더 이상 이 책은 낡고 해묵은 가르침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