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300만 베스트셀러 실록사가 박영규 신작!
글과 칼로 써내려간 조선의 문명과 외교 전략을 담은 생존 투쟁사
역사 대중화를 이끈 실록사가 박영규가 완성한 조선 전쟁사의 모든 것! 위태로운 동아시아 삼국 관계부터 조선의 대외 정책과 외교 전략, 나날이 발전한 전쟁 전략과 전술, 장수와 병력 운용, 총과 대포와 폭탄을 활용한 조중일 삼국의 무기 체계에 이르기까지, 500년 조선사를 정치ㆍ외교ㆍ군사ㆍ기술의 측면에서 다각도로 분석한 역작. 조선이 남긴 오래된 미래가 지금, 여기, 우리 앞에 펼쳐진다!
목차
서문 조선의 문명과 지혜가 집약된 찬란한 역사
1부 조선의 왜구 토벌
- 세 차례에 걸친 대마도 정벌
1. 고려 말 왜구 토벌 전쟁
동북아의 골칫덩어리 왜구 l 전란에 휩싸인 중국 대륙 l 고려의 존립을 위협하다 l 박위의 대마도 정벌
2. 1차 대마도 정벌
조선 개국 후 다시 설치는 왜구 l 김사형의 대마도 정벌
3. 2차 대마도 정벌과 왜구의 소멸
태종의 결심 l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l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는 태종 l 명의 의심을 불식한 조선 l 대마도의 귀속과 왜구의 소멸
4. 왜구 토벌 전쟁에 쓰인 배와 함포
왜구 토벌에 동원한 군선 l 왜구가 무서워한 함포 공격
2부 조선의 여진 토벌
- 세 차례에 걸친 만주 정벌
1. 여진의 성장
여진은 누구인가? l 대발해국 l 금 태조 아골타의 조상 신라계 고려인 l 금의 몰락과 원의 지배
2. 조선의 여진 정벌 전쟁
여진과 조선의 충돌 l 최윤덕의 파저강 정벌 l 김종서의 6진 개척 l 유화책으로 일관한 문종 l 화친 관계를 유지한 세조 l 강순의 건주위 정벌 l 건주위 정벌의 영웅 어유소 l 다시 정벌에 나서는 명과 조선 l 윤필상의 건주위 정벌
3부 삼포왜란과 두 차례의 왜변
- 왜구가 조선을 흔들다
1. 전쟁을 방불케 한 삼포왜란
삼포왜란은 왜 일어났는가? l 왜란 발발 l 왜군 대장 종성친의 엄포 l 왜군 격퇴에 총력을 기울인 중종 l 삼포왜란 전개 과정 l 흉흉한 민심, 도망치는 관리 l 마침내 왜군을 격퇴한 조선군 l 사관의 냉정한 평가
2. 다시 시작된 왜구의 발호
다시 문호를 개방한 임신약조 l 사량진왜변의 전말 l 을묘왜변을 일으킨 왜구 l 가까스로 격퇴에 성공한 조선군
4부 일본의 조선 침략
- 임진왜란
1. 도요토미 히데요시
귀족의 시대에서 무사의 시대로 l 군웅할거의 전국시대 l 일본 열도 통일 l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배경 l 정벌에 나서는 일본군
2. 노골적인 침략 야욕
조선에 통신사를 요구하는 히데요시 l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평가 l 오만한 국서에 분개한 김성일 l 파다하게 퍼진 소문 l 전쟁 대비에 분주한 조선 l 조선이 놓친 것 l 제승방략 체제의 한계
3. 쑥대밭이 된 조선 땅
속절없이 적의 수중에 떨어진 경상좌도 l 탄금대 전투와 신립의 죽음 l 궁궐을 버리고 몽진 길에 오른 선조 l 선조의 몽진은 비굴한 행동이었을까? l 한성 함락과 임진강 전투 l 일본군의 호령에 뭉그러진 삼남 군대 l 평양성에 무혈 입성한 고니시 부대 l 요동으로 가려는 선조와 반대하는 대신들
4. 군관민의 처절한 전투
일본군의 사기를 꺾어버린 옥포해전과 사천해전 l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한산도대첩 l 원균과 이순신의 갈등 l 공포의 대상이 된 홍의장군 곽재우 l 곽재우와 김수의 갈등 l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정인홍과 김면 l 의병들의 맹활약 l 진주대첩 승리와 김시민의 죽음
5. 조명연합군의 반격
첫 싸움에서 패배한 명나라 구원병 l 한성으로 퇴각하는 일본군 l 벽제관 전투에서 패하고 달아난 이여송 l 행주대첩과 한성 수복 l 2차 진주성 전투의 혈전
6. 정유재란과 이순신의 전사
다시 시작된 전쟁 l 백의종군 신세가 된 이순신 l 칠천량의 참패, 다시 일어서는 이순신 l 전라도와 충청도를 휩쓴 일본군 l 조선 수군을 다시 일어서게 한 명량해전 l 노량 앞바다의 울음소리 그리고 영웅의 죽음 l 전쟁이 남긴 것
7. 조선을 구한 무기들
최신식 개인 화기, 조총 l 해전의 가장 강력한 무기, 판옥선 l 돌격전함 거북선 l 명이 내세운 무기, 불랑기포 l 조선을 승전으로 이끈 화포들 l 로켓 병기 신기전 l 시한폭탄형 유탄, 비격진천뢰
5부 여진의 조선 침략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1. 강국으로 성장한 여진
누르하치의 여진 통일 l 이중 전략을 구사하는 광해군 l 후금의 군대에 대패한 조명연합군 l 강홍립을 옹호하는 광해군 l 폐기되는 중립 노선
2.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인조 l 가차 없이 짓밟히는 조선 l 후금과 조선의 맹약 l 충신과 간신, 원숭환과 모문룡
3. 병자호란과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군신 관계를 요구하는 후금 l 정벌에 나선 홍타이지 l 연이은 패전 소식 l 사죄의 글을 보내는 인조 l 항복을 모색하는 조선 l 삼전도에서 행해진 삼배구고두례
6부 서양의 조선 침략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1. 프랑스의 침략 전쟁, 병인양요
천주교 등장과 조선 사회의 반응 l 자생적 천주교도 탄생과 신해박해 l 잇따르는 천주교도 학살 l 조선 정벌을 선언한 프랑스 공사관 l 프랑스군의 1차 원정 l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 l 강화되는 쇄국정책 l 웃음거리가 된 프랑스
2. 미국의 침략 전쟁, 신미양요
무작정 침입한 제너럴셔먼호 l 황주목사 정대식의 보고서 l 평양 만경대 앞에 정박한 셔먼호 l 셔먼호 선원과 평양 관민의 충돌 l 불타는 셔먼호 l 진상 조사를 위해 무력을 동원한 미국 l 교섭을 요구하는 미국 공사 l 결사 항전한 조선군
저자
박영규
출판사리뷰
“대륙 vs 해양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조선이 500년간 문명을 유지한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300만 베스트셀러 실록사가 박영규 신작!
글과 칼로 써내려간 조선의 문명과 외교 전략을 담은 생존 투쟁사
위태로운 동아시아 삼국의 정세 속에서 1392년 조선은 건국됐다. 그 후 500년간 대내외적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나갔다. 뛰어난 통찰로 영토 확장에 성공하기도 하고, 패배가 명백해 보이는 전쟁에서도 빼어난 전술로 승리를 쟁취했으며, 왕이 망명 직전의 상황에서도 끈질긴 투쟁으로 결국에는 주권을 회복했다. 《조선전쟁실록》은 이러한 모진 세파에도 국가의 명운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낸 조선과 조선인의 생존 투쟁사이다. 때로는 글로 때로는 칼로 이루어낸 조선의 문명과 외교적 전략을 한 권으로 압축한 역작이다.
책에는 300만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를 집필한 실록사가 박영규의 조선사에 관한 탁월한 식견과 통찰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저자는 조선의 길을 바꾸고 명운을 가른 여섯 개의 전쟁을 우리가 지금 읽어야 하는 역사로 되살린다. 위태로운 동아시아 삼국 관계부터 조선의 대외 정책과 외교 전략, 나날이 발전한 전쟁 전략과 전술, 장수와 병력 운용, 총과 대포와 폭탄을 활용한 조중일 삼국의 무기 체계에 이르기까지, 정치ㆍ외교ㆍ군사ㆍ기술의 측면에서 조선사를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조선이 500년이라는 유례없는 기간 동안 전란과 평화를 거치며 국가의 명운을 유지한 국내 정책과 외교 전략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15세기 초 신생국 조선이 각기 세 차례에 걸쳐 대마도와 만주 정벌에 나선 이유, 조선이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전략과 전술, 선조가 의주까지 달아나지 않았다면 조선이 겪었을 미래 그리고 인조가 실리외교 정책을 버리고 패배가 명백한 병자호란을 자초한 원인, 19세기 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조선이 거둔 승리의 참된 의미까지 조선사의 틈에 숨은 흥미진진한 물음에 대한 대답과 함께 전쟁의 배경과 원인, 경과, 국내외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담고 있다.
실록사가 박영규가 찾은 조선 전쟁사의 핵심적인 교훈
조선은 어떻게 힘을 얻고 평화를 만들었을까?
저자는 “선조는 어떻게 백성을 버려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갈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에 “선조가 달아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라고 되물은 다음 이렇게 단언한다. 만약 선조가 한성을 버리고 달아나지 않았다면,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100년의 전란으로 단련된 16만 대군에 포위되어 일찌감치 패배했을 것이고 한반도는 중국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 500년 일찍 일본의 지배 아래 놓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주권이 왕 한 사람에게 있는 왕정 국가에서 왕이 적의 포로가 되고 영토가 모두 점령당하는 순간, 국가는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저자가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찾은 전쟁의 원칙은 이것이다. “전쟁을 앞두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당연히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 나보다 훨씬 강한 상대가 머리를 숙이고 상국으로 섬길 것을 요구한다면 머리를 숙이는 것이 옳고, 영토를 빼앗고 백성을 차지하려고 한다면 죽기살기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싸움을 할 것인지도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 싸움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5~6쪽)
국가가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임진왜란 종전 38년 뒤에 일어난 병자호란(1636~1637년)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인조를 비판하는 대목은, 단 한 사람의 주권자로서 국가의 적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머리 숙이고 조공하면 되었을 일에 명분만 앞세워 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 왕족과 백성이 무작정 타국으로 끌려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반면 선조는 원망과 비난을 감수하고 도주를 택했고 자존심을 버리고 명에 도움을 요청해 전쟁에 승리했다.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 작전
: 위험천만한 개입이 성공을 거두다
조선의 남쪽에 일본이 있고 북쪽에 여진이 있었다. 여기에 동아시아의 제국 명이 조선에 관여했다. 이 구도는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흡사하다. 명의 자리에 세계 유일의 제국 미국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오늘날 독자들은 위태로운 삼국 관계 속에서 조선이 항상 침략에 시달리며 방어에 전념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음 단어를 듣는 순간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 작전을 떠올릴 것이다. 바로 세종의 ‘6진 개척’이다.
6진 개척은 조선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영토 개척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공을 가능케 한 전략과 전술에서 더욱 빛이 난다. 6진 개척은 조선이 벌인 세 차례의 여진 토벌 중 첫 번째 토벌과 관계 있다. 1432년(세종 14년) 여진 기병 400여 명이 조선 영토를 약탈하자 세종은 1433년 무장 최윤덕에게 1만 4,962명의 대군을 이끌고 토벌(파저강 정벌)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여진인 170명의 목을 베고 236명을 포로로 잡아 토벌대 규모에 비해 비교적 작은 성과를 거두고 토벌을 마무리했다. 여기까지는 뒤이은 토벌들과 다른 점이 없다.
차이점은 바로 여진의 국내 정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세종의 혜안이다. 그해 말 여진 부족 두 곳 사이에 조선과 무관한 소규모 분쟁이 일어났다. 이때 조선 역사에서 이례적으로 조선이 대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433년 12월 세종은 김종서를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하고 북방 개척을 지시했다. 김종서는 1445년 한양으로 돌아올 때까지 무려 12년 동안 북방에 머물렀으며,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기복(忌服)을 명받고 계속 머물러야 했다. 세종은 국제 정세를 통찰하고 조선에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유능하고 충직한 신하에게 과감하게 일을 맡길 줄 아는 지도자였다. 토벌에 유례없는 영토 개척까지 이어지자 여진 부족들은 조선을 몹시 두려워했다.
조선 수군 연전연승의 비밀, 판옥선
: 이순신은 절대 판옥선의 이점을 놓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일본군에 연승한 배경에는 조선의 주력 전선 판옥선이 있었다. 판옥선은 일본군의 것과 비교해 기술적으로 훨씬 우수한 함선이었다. 조선 초기까지 조선의 배는 전선과 조운선 겸용으로 쓰인 맹선(猛船)이 주종이었다. 단층 구조의 맹선에서 노를 젓는 격군과 병사는 같은 층에 승선했는데 그 결과 병사들이 선상 백병전에서 제대로 싸울 수 없었고, 백병전에 능한 일본군이 선상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을 장치도 없었다.
삼포왜란(1510년), 사량진왜변(1544년), 을묘왜변(1555년) 때 맹선의 문제점을 깨닫고 조선이 새로 제작한 배가 바로 판옥선이다. 판옥선의 가장 큰 특징은 2층 구조에 있었다. 1층에 격군을 배치해 노를 젓게 하고 2층 선상에 병사를 배치한 결과, 격군의 수를 늘려 속도를 높이고 격군을 전투에서 보호할 수 있었으며 병사가 싸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배가 높고 규모가 커서 함포 발사 시 반동 흡수력이 뛰어났고 적이 선상으로 넘어오는 것도 방지했다.
실제 전투에서 판옥선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자 일본군은 가급적 해전을 피하고 뭍으로 유인해 육상전을 벌이거나 수군이 정박 중일 때 기습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순신은 절대 뭍으로 따라 올라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지 않았으며 적과 가까운 곳에 정박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단 한 번도 패전하지 않은 이순신의 철칙이었다. 이처럼 《조선전쟁실록》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연승할 수 있었던 승전 요인과 기술적 배경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파헤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