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간의 궁극적 열망에 관한 가장 창조적인 대화
명료한 앎과 순수한 모름을 넘나드는 초지성적 통찰
명상가 한바다와 종교학자 성해영의 대담집. 역사?정치?사회?문화?종교를 아우르는 통찰과 실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참된 인간성 회복에 대해 면밀하고 지극하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무엇보다 종교와 명상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그것은 특정 종교의 신념 체계나 수행법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삶을 회복하는 지혜라고 말한다. 그들의 논의는 우리가 생생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분열과 결핍과 고립의 경험을 반복하는 원인을 거쳐, ‘진정한 만남’으로 귀결된다. 삶이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혹은 새로운 뭔가를 끊임없이 만나는 과정이므로, 만남의 경험이 온전할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남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는 경험이고, 그때 우리는 ‘나’라고 하는 한정된 정체성으로부터 빠져나와 기쁨과 경이를 맛봄으로써 본연의 생명력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차
여는 글: 성해영
서론: 의식의 혁명─마음의 가능성에 눈뜨다
1. 지혜: 삶의 본질을 회복하는 살아 있는 언어
2. 명상: 모름에 관한 가장 혁명적인 탐구
3. 실체: 지금 여기를 소외시키는 관념들
4. 만남: 나와 너라는 의식 너머
5. 물음: 오직 나만이 답할 수 있다
6. 물신: 자본주의는 인류의 사춘기
7. 스승: 가슴의 스승, 지혜의 스승
8. 종교: 죽은 언어로 쌓은 성벽
9. 경험: 삶의 부름에 응답하라
10. 일체: 고대 종교의 힐링 파워
11. 관계: 진정한 만남 속에 깨달음이 있다
12. 신명: 한국인의 영성
13. 미래: 새로운 시대의 종교성
14. 행복: 지금 여기에 깨어 있기
닫는 글: 한바다
저자
한바다
출판사리뷰
“일체의 대상과 온전히 만날 때
우리의 가슴은 기쁨과 경이로 요동칠 것입니다”
인간의 궁극적 열망에 관한 가장 창조적인 대화
명료한 앎과 순수한 모름을 넘나드는 초지성적 통찰
‘나’라는 의식의 경계가 사라지고 세상 만물과 하나가 된 듯한 무한 합일의 경험 이후, 한 사람은 명상가가, 한 사람은 학자가 되었다. 각자의 여정에서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던 두 여행자는 인간의 가장 깊은 열망에 대해 서로에게 묻고 자신의 발견들을 나누고자 만났다.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4차 산업혁명의 물결로 나라 전체가 혼란과 긴장의 정점에 놓인 시점이었다. 우리는 다시금 참된 인간성과 삶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두 탐구자는 지금이야말로 종교와 명상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일이 예측불허인 변화무쌍한 현실을 뒤로하고 기도와 수행으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는 것일까? 그들의 논의에 의하면, 삶과 유리된 교리와 믿음은 ‘죽은 언어로 쌓은 성벽’일 뿐이다. 종교와 명상의 본래 목적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삶을 회복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생생한 삶이란 어떤 것이며, 이를 회복하는 지혜란 무엇일까? 명상가 한바다와 종교학자 성해영은 역사?정치?사회?문화?종교를 아우르는 통찰과 실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면밀하고 지극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지금이야말로 ‘나’의 정체성과 삶의 참된 의미를 물어야 할 때
두 저자가 강조하는 종교와 명상의 지혜란 특정 종교의 신념 체계나 수행법과는 구별된다. 그들의 탐구에 따르면, 궁극적 존재에 대한 경이감의 추구가 종교를, ‘나’를 알고자 하는 열망이 명상을 탄생시켰다. 즉 인간은 그 이전부터 근원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고, 이것이 종교성 혹은 영성(spirituality)이다. 근원적 차원에서는 ‘나’를 비롯한 세상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 많은 종교 전통에서 이미 통찰한 바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과학과 합리주의가 지배하면서 ‘나’는 다만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되는 개별적 존재가 되었고,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축소되었다. 또 자본주의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는 성취했으나, 사람들은 분열된 마음과 외로움으로 신음하며 삶을 공허하고 벗어나고 싶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두 저자는 이제 인류의 문명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한다. 실제로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탐구하여 그 의미를 구현하려는 시대가 펼쳐졌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그 여정에는 필연적으로 종교와 명상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석화된 관념 대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들과 관계 맺기
삶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려면 말 그대로 생생하게 실재하는 것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실재하지 않는 것들과 관계를 맺으면 자학과 소외와 결핍을 경험할 뿐이다. 두 저자는 그 원인을 세밀하게 탐색하고, 그러한 메커니즘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법을 제시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란 한마디로 화석화된 관념이다. 사회적 경험이나 지식, 그리고 개인적?집단적 트라우마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관념들은 자신과 세상을 해석하는 틀이 된다. 그것이 굳어지면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만나지 못하며, 한정된 틀 너머로 존재하는 본연의 가능성들도 보이지 않는다. 대담에서는 대표적으로 돈, 이상적인 나, 상대방에 대한 규정, 종교의 교리 등을 다룬다.
자본주의란 본래 인간이 풍요를 경험하고자 선택한 시스템이고, 돈은 그 경험을 위한 매개로서 실상은 다만 종잇조각일 뿐 풍요 그 자체는 아니다. ‘이상적인 나’ 역시 사회적 관념이 응집된 이미지일 뿐 현재의 나에게서 비롯된 가능성이 아니다. 또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과 앎에 기초한 판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종교의 교리란 애초에 그 종교를 탄생시킨 존재가 발견한 진리와는 무관하다. 이처럼 실체가 없는 관념이 목적이 되면 끝내 ‘진짜 그것’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학과 결핍만이 경험될 뿐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지혜가 깨어나도록 돕는 것이 명상과 종교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근원과의 연결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하고,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종교와 명상의 본래 목적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만남 속에 참된 기쁨과 경이가 존재한다
두 저자는 결국 ‘진정한 만남’이 이번 대담의 키워드이자 현대 인류의 가장 시급한 요청이라고 말한다. 삶이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혹은 새로운 뭔가를 끊임없이 만나는 과정이며, 따라서 만남의 경험이 온전할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전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초연결성의 시대’에 접어든 것 또한 진정한 만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한다고, 저자들은 통찰한다. 조건적으로는 온갖 만남이 가능해졌으나 화석화된 관념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이전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실제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분열과 소외와 결핍의 경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남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는 경험이다. 그때 우리는 ‘나’라고 하는 한정된 정체성으로부터 빠져나와 기쁨과 경이를 맛볼 수 있으며, 본연의 생명력이 살아날 수 있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러한 만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 곧 종교성 혹은 영성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동학이나 무속과 같은 민족종교부터 2002년 월드컵과 촛불집회 등 한국 특유의 역사적 경험들을 영성 발현의 과정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영성이란 특정 종교를 향한 믿음이 아니라 ‘나’가 전체와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는 자질임을 재차 밝힌다. 이는 필연적으로 삶의 경험을 통해 확인될 수 있으며, 저자들의 대화가 시종일관 ‘삶’으로 환원되는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