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5배속으로 보면 생각하는 힘도 1.5배 강해질까?
읽기, 쓰기, 그다음은 ‘만지기’다!
말과 글을 만지는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의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고 콘텐츠를 만드는 언어 감각 훈련법
보고 듣고 읽을 것이 넘쳐난다. 빨리감기와 건너뛰기, 요약본이 없으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되도록 빨리,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1.5배속’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1.5배 빨리 보면 생각하는 힘도 1.5배 강해질까?
『언어사춘기』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등을 통해 언어와 창의성의 관계에 주목해온 김경집 교수의 신작 『어른의 말글 감각』은 언어의 속도를 조절해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고 콘텐츠를 이끌어내는 ‘언어 만지기’를 소개한다.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의 낱말뿐 아니라 시 한 편, 지도 속 지명 하나, 속담 한 줄, 심지어 웹툰 한 컷까지. 만지고 흔들고 맡고 맛보다 보면, 판을 뒤집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콘텐츠로 나아갈 수 있다.
목차
프롤로그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말과 글의 힘
1장 건조한 기호와 촉촉한 글자
생각을 생각하라|간결하면 우월하다는 착각|문자와 글의 짧은 역사|상의 시대, 글자의 운명|언어의 이해력과 상상력|글의 촉감|세계를 해독하는 유일한 방법
2장 입의 말 vs 글의 말
시를 소리 내 읽으면|글의 힘|4C와 콘텐츠|짧으면 위험하다|시간이 유령이 되는 순간|좋은 첫인상의 비밀|200개의 흰 눈|이중구조라는 틈|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3장 만지고, 흔들고, 맡고, 맛보기
고층건물을 짓는 법|낱말 만지기는 힘이 세다|‘꿩 대신 닭’의 역사|공간을 만져본다는 것|낱말 만지기의 인식론|초보가 만지기 좋은 명사|동사의 쥐는 힘|형용사라는 축복|시인의 부사|멈추지 않으면 만질 수 없다|낯섦의 효능
4장 생각의 속도, 그리고 콘텐츠로
생각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세계를 드러내는 언어|‘경제성’이 말하지 않는 것|속도가 소통이다|웹툰의 힘|멈추고, 바꿔보기|글은 그림으로, 그림은 글로|책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에 관하여|판을 짜는 능력|글을 쓰면 생기는 일|호모 픽투스와 실천의 글쓰기|글이 부서진 곳에는 콘텐츠도 없다|언어의 두 얼굴
에필로그 챗GPT 시대, 인간의 선택
감사의 말
저자
김경집 (지은이)
출판사리뷰
언어는 짧을수록 좋다?
‘빨리감기’와 ‘건너뛰기’는 효율적이다?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아주는 ‘촉촉한 글자’의 비밀
이 책은 특히 글말(문어)에 주목한다. 빠르고 즉각적인 입말(구어)에 비해 어휘가 풍부하며, 수용자가 멈추고 곱씹고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느리지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을 지녔고, 영상보다 더 효율적으로 요약도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뻗어갈 원천이 된다. “글이 부서진 곳에는 콘텐츠도 없다”(262쪽). 글말만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입말은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말과 글을 둘러싼 이중구조들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언어 세계를 넓혀왔다. 한쪽으로 기울기보다는 겹겹의 언어를 결합해야 콘텐츠의 폭발력을 높일 수 있다. 말과 글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법,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힘은 말과 글을 돌아보는 순간에 나온다. “흔한 언어에 보석이 박혀 있다. 언어를 만지면 보석이 된다”(6쪽).
‘선크림’과 ‘시나브로’부터 ‘꿩 대신 닭’, 그리고 웹툰까지
만지고, 흔들고, 맡고, 맛보면 새로움이 나온다!
언어 만지기는 단순히 그 뜻을 머릿속에 입력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과 감성, 감각을 총동원해 입체적으로 알고 느끼고 반응하는” 일이다(121쪽). 그 방법으로 일단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으로 나누어 만져보라고 제안한다. 명사부터 예를 들어 ‘선크림’이라는 낱말을 만지다 보면 자외선이 왜 피부에 유해한지, 용기에 표기된 숫자는 어떻게 설정되었는지, 오존층 파괴와 선크림 사용의 증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만지게 된다. ‘동사’ 만지기는 문장 전체의 쥐는 힘을 느끼게 한다. ‘분비하다’는 ‘배설하다’와 ‘내뿜다’와 비슷하지만 대체될 수는 없다. 이 단어를 통해서만 “문장 전체를 관통하는 음습하고 우울한 진실을 끈적하게” 보여줄 수 있어서다. 이런 식으로 낱말을 만지는 습관은 섬세한 사유를 강화해 콘텐츠 생산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꼭 단어나 문장만 만질 필요는 없다. 지도를 만지면 공간을 만질 수 있다. 어렸을 때 지리부도를 가지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호바트’라는 지명을 만지면 가보지 않았어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웹툰에도 멈춰진 컷과 컷 사이, 심지어 한 컷 안의 빈 공간에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따라서 웹툰 만지기로 “움직이는 영상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놀라운 상상력의 영토를 경험할 수 있다”. “꿩 대신 닭”처럼 흔히 사용하는 말도 ‘만지기’를 거치면 역사와 음식 등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체험하게 된다(128쪽). ‘만지기’를 위해 언어 소비의 속도를 조절하는 여유와 ‘생각을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기꺼이 고독할 수 있는 마음”도 언어 만지기의 핵심 비법이다(123쪽). 언어를 만지는 일은 결국 말과 글뿐 아니라 삶까지 만지고 돌아보는 일이다.
챗GPT가 질문하고, 인간이 ‘만져서’ 답하라!
인공지능 시대에 빛을 발하는 언어 만지기의 힘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10주년 기념 특별판 서문에서 인공지능이 쓴 서문에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한 바 있다(276쪽). 김경집 교수가 보기엔 조금 더 희망에 가깝다. 인공지능이 자료를 찾고 확인하는 과정을 줄여주면, 인간은 언어를 만질 시간과 집중력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서다. 이는 교육 과정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 리포트의 표절을 적발하기보다는 차라리 ‘세련된 표절’을 유도하면 된다(284쪽). 이때 선생님은 학생들 자신이 제출한 ‘표절 글’을 여러 번 읽고 만져보았는지 대면 질의로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지금과 같은 일방적 강의 방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의 장점과 언어 만지기를 결합시키면 수동적 교육의 단점을 개선해나갈 수 있다.
인간이 묻고 기계가 답한다는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기계가 묻고 인간이 답하면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언어 조합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앞으로 언어 만지기의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될 것이다(279쪽). 흰 눈을 구분하는 말이 200개나 되는 이누이트 사람들이 흰 눈을 하나로만 생각할 수 없듯(99쪽), 우리는 언어의 영토만큼 생각하고 세상을 본다. ‘빨리감기’로 듣고 ‘건너뛰기’로 보는 시대에도 판을 뒤집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힘은 여전히 말과 글을, 그래서 삶을 돌아보는 순간에 나오는 이유다. 우리는 언어를 붙잡아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