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꿈속에서 살다가 꿈속에서 사라진 꿈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선사하는 위트와 아이러니, 블랙유머와 패러디!
‘브라우티건 도서관’의 모티프가 된 도발적인 로맨스소설
커트 보네거트, 무라카미 하루키, 다니카와 슌타로, 오가와 요코, 장석주, 최승자, 김애란 등 많은 작가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워터 멜론 슈가에서』『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에 이어, 그의 네 번째 소설 『임신중절 _어떤 역사 로맨스』를 한국 독자에게 처음 선보인다.
책으로 출간되지 못한 모든 원고와 문서를 기증받아 보관하는 캘리포니아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남자와 그 도서관을 찾아온 절세미녀의 연애극을 담은 이 작품은, 조금 서툰 커플의 엉뚱한 연애 이야기로 읽어도 흥미롭고, 소위 총천연색 ‘루저’들의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로 읽어도 유쾌하고, 작가가 내내 천착한 상실, 죽음, 폐허 등의 키워드로 읽어도 의미 있을 것이다. 특히,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리는 도서관 정신을 기려 훗날 ‘브라우티건 도서관’이 세워지기도 했다. 브라우티건 도서관은 현재 워싱턴 주 밴쿠버에 위치해 있고, 실제로 출판되지 않은 미국의 저작물들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
목차
제1권 버펄로 소녀들아, 오늘 밤에 나오지 않을래? 10
제2권 바이다 40
제3권 지하 저장소에 전화 걸기 72
제4권 티후아나 127
제5권 세 번의 임신중절수술 174
제6권 영웅 200
해설 브라우티건 도서관의 뜻을 기리며 232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
출판사리뷰
미국 문학사 최고의 천재 혹은 최고의 이노베이터 리처드 브라우티건
조금 서툰 남녀의 순수하고 엉뚱한 연애 이야기
이야기는 조금 특별한 도서관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출판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저술이든 보관해주는 공간으로, 누구든 직접 방문해서 저술에 대한 간단한 변을 밝힌 다음, 원하는 서고에 꽂을 수 있다. 남녀 두 주인공은 이 ‘낭만적인’ 도서관에서 처음 만나 이내 사랑에 빠진다. 남자 주인공 ‘나’는 이곳 도서관 관리를 맡고 있는 사서이다. 도서관에서 먹고 자면서 벌써 몇 해째 바깥출입도 없이 지내는 다소 폐쇄적인 인물이지만,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스물네 시간 두 팔 벌려 환대하는 성실한 사서이기도 하다.
여자 주인공 ‘바이다’는 어느 밤에 원고 뭉치를 안고 찾아온 도서관 손님으로, 세 남자가 지나가면 그중 한 명은 사랑에 빠지다 못해 평생을 함께하자고 프러포즈를 해오는 통에, ‘37-17-36’이라는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거추장스러워하며 삶을 저주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만난 지 오래지 않아 서로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음을 알아차리고 뜨거운 연인이 되어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이다는 임신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 서툰 연인은 상의 끝에, ‘지금은 부모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위해 멕시코로 향한다.
절제된 언어, 감각적인 문장, 잔뜩 날선 풍자!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는 걸작 장편 『임신중절 _어떤 역사적 로맨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임신중절 _어떤 역사 로맨스』의 서사는 일견 엉뚱한 듯 보이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이 늘 그렇듯 작가 특유의 목가적 주제에 대한 탐색과 다채로운 은유,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겨 있다. 주인공 ‘나’는 도서관의 ‘서른다섯 번째나 서른여섯 번째 담당자’인데, 이는 미국의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브라우티건이 작품을 쓴 당시 미국은 존슨 대통령 시절이었고, 22대와 24대 대통령을 두 번 역임한 클리블랜드로 인해 존슨은 서른다섯 번째 인물이자 제36대 대통령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서관은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빗댄 장소로도 읽힌다. 그밖에도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상징들의 이면적 의미를 찾으며 읽으면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옮긴이 서울대학교 김성곤 교수는 다음과 같이 귀띔한다.
“『임신중절 _어떤 역사 로맨스』를 읽는 한 가지 방법은, 브라우티건이 끊임없이 추구하고 탐색했던 ‘잃어버린 목가적 꿈과, 기계문명 속 메마른 현실에서 좌절하는 현대인의 이야기’로 읽는 것이다. 과연 모든 좌절한 작가들과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을 받아주는 도서관은 현실세계와는 다른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곳이며, 그곳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역시 현실에 오염되지 않은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어느 날 원고를 들고 도서관을 찾아온 아름다운 바이다 역시 낭만적인 여인이다. (…중략…) 사랑의 결실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못하고, 중도에 제거되고 죽게 되는 ‘임신중절’은 곧 각박한 현실과 비정한 기계에 의해 밀려나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꿈의 상실을 의미한다.”
또한 ‘임신중절’이라는 도발적인 소재와 그에 꼭 맞는 직설적 제목에 주목하며 읽어도 흥미로울 것이다. 비트제너레이션의 소위 생태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임신중절’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아이러니일 것이고, ‘바이다(Vida: 스페인어로 ‘생명’ ‘삶’을 의미)’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중절을 시술하는 것 역시 브라우티건 특유의 블랙유머를 담은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폴란드의 검은 월요일, 검은 시위대의 물결이 재현되고 있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는 더더욱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작품을 집필하던 1960년대 당시 캘리포니아는 임신중절이 불법이었다. 하지만 1970년 출간을 즈음하여 캘리포니아 주 역시 임신중절이 합법화됨에 따라 중절을 위해 멕시코로 떠나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역사 속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An Historical Romance’라는 부제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제목으로 낚시책인 듯 분야를 혼동시킨 전적이 있는 작가가 이번에는 ‘임신중절’로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문득, 이번 책은 서점에서 의학 분야로 분류되지 않을까 하고 잠깐이라도 상상했다면, 그리고 부제에서, 철자를 일부러 틀리게 쓰는 브라우티건의 작은 위트를 발견하고 미소를 머금었다면, 이미 당신은 브라우티건의 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