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동아시아 삼국의 건축을 섬세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을 다시 톺아본 미학 에세이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을 동아시아의 범주 안에서 가능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특히 우리 건축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중국 건축과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보고, 또한 우리와 비슷한 전개 과정을 밟아온 일본 건축과 비교해보면서 한국 건축의 핵심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목차
머리글
프롤로그 · 상호 교류를 통해 이루어낸 동아시아 건축의 성취
1. 나무로 짓는 집의 이점
왜 돌이나 벽돌이 아니고 나무였나?
기둥과 보로 집 짓기
단층과 중층
높이에 대한 도전
조선시대 목구조 기술의 쇠퇴
소나무에 편중된 조선 후기 건축
톺아보기 1 · 동아시아의 특이한 건물들
2.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 지붕
3차원 곡선의 지붕은 어디서 왔을까?
한중일의 기와
무거운 짐을 진 지붕
송·원 이후 중국 건축의 지붕 변화
12세기 이후 일본에서 지붕의 변모
고식을 간직한 조선시대의 지붕 구조
처마 곡선의 득과 실
지붕의 장식
톺아보기 2 · 용마루가 없는 집, 무량각
3. 천변만화하는 목조건축의 백미, 공포와 화반
공포와 화반, 문화 교류의 징표
중국에서 공포의 출발
봉정사 극락전의 공포와 화반
공포가 전해주는 13, 14세기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양상
조선시대의 공포-포 식과 익공 식
화반에 나타난 조선 장인의 낙천성
톺아보기 3 · 원조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중국의 공포
4. 고인돌에서 천상의 세계까지, 석조물
화강석의 문화
고대 석조 무덤의 상징성
석탑의 나라
돌로 재현한 목조의 세부-불국사 석축
천상의 세계를 구현한 영암사 석축
빛과 그림자의 물결-종묘 정전 월대
왕릉 정자각의 석조물
톺아보기 4 · 중국, 일본에 남아 있는 석탑
5. 구들과 확산과 좌식 생활, 난방시설
구들의 탄생
일본에 건너간 구들의 운명
전면온돌로 발전
온돌과 좌식 생활
좌선과 방바닥 구조
온돌과 마루의 위대한 결합
상류층에서 하층민까지
톺아보기 5 · 여러 가지 난방 방식
6. 바람이 불어오는 문, 창호
고대 동아시아 판문과 살창
중국에서 여닫이 창호의 발달
일본에서 미닫이 창호의 보급
부석사 무량수전의 들어열개 창
대청의 출입문-세살청판분합
톺아보기 6 · 창호지 이야기
7. 휘황찬란한 아름다움, 채색과 조각의 세계
중국 건축의 채색과 장식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채색과 조각 장식
폭발적인 장식의 유행-모모야마 스타일
고려·조선시대 건축의 채색
조선시대 건축의 조각 장식
톺아보기 7 · 동아시아인들이 사랑한 용 장식
8. 엄정성과 역동성 사이, 공간 배치와 누각
중국 건축의 배치 원리
지세를 중시한 9세기 이후 한반도와 일본의 건축
선종 사원의 중국식 배치 원리
조선시대 산지 사찰의 외부 공간
건축 배치의 정점-누각
톺아보기 8 · 주택에서 보는 외부 공간의 이모저모
에필로그 누각에 올라 바람을 느끼고 싶다
미주
참고문헌
저자
김동욱
출판사리뷰
동아시아의 독특한 건축유산에 대한 탐미적인 상상,
한중일의 건축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의 속살을 톺아보다
왜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부드러운 3차원의 지붕 곡선이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한옥의 자연스러운 처마 곡선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한중일의 난방시설인 온돌과 캉과 고다츠는 어디가 어떻게 다를까? 공포?包의 원조인 중국 건축물이 보여주는 천변만화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후시미성과 오사카성 등 일본 건축은 언제부터 극단적인 화려함을 뽐내게 되었을까? 마루에서 유식游息하던 선비와 고래 위를 거닐던 승려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동아시아 삼국의 건축을 섬세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을 다시 톺아본 미학 에세이!
동아시아의 독특한 건축유산에 대한 탐미적인 상상,
한중일의 건축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의 속살을 톺아보다
여기에 세 건축물이 있다. 하나는 중국 상해 예원豫園의 정자, 또 하나는 일본 이즈모시의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 마지막은 한국 서울의 문묘 대성전. 이 세 건축물은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다. 중국 예원의 정자가 꾸밈이 강하고 날아오를 듯 지붕이 휘어져 있다면 일본 이즈모타이샤의 지붕은 약간 밋밋한 곡선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한국 문묘의 대성전은 기둥을 일직선상에 나란히 세우지 않고 가운데 쪽을 안쪽으로 살짝 휘어지게 만들면서 건물 전체가 곡선을 이룬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을 동아시아의 범주 안에서 가능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특히 우리 건축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중국 건축과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보고, 또한 우리와 비슷한 전개 과정을 밟아온 일본 건축과 비교해보면서 한국 건축의 핵심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부드러운 처마 곡선이 가져다준 득과 실
동아시아의 목조건물은 지붕이 건물에 비해 크고 하나같이 곡선을 이루고 있다. 동아시아 건축에서 지붕은 특별한 존재였다. 유럽의 건물이 벽체의 파사드, 즉 외관에 디자인의 초점을 맞춘 것과 대조된다. 이런 지붕 형식은 유럽이나 인도에도 존재하지만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달랐다. 곡선도 단순히 처마만 곡선을 이룬 것이 아니다. 건립 시기가 오랜 건물의 경우에 지붕 곡선은, 처마는 물론 용마루, 내림마루 등 지붕의 윤곽을 이루는 모든 선들이 곡선으로 되어 있고 심지어는 넓은 지붕면 자체가 완만한 곡면을 그린다.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처마의 곡선은 양 끝이 위로만 치켜 올라간 것이 아니고 앞뒤로도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가운데 부분이 안쪽으로 휘어지고 양 끝은 바깥쪽으로 휘어진다. 처마가 양 끝에서 위로 올라간 것을 앙곡이라고 하고 바깥쪽으로 휘어진 것을 안허리곡이라고 부른다. 앙곡과 안허리곡 탓에 지붕은 그야말로 3차원의 곡선을 이룬다.
한국의 경우에는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했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이런 집들은 비좁은 대지에 집을 최대한 압축시켜 방을 여럿 만들고 구조도 전통적인 방식을 흉내 내면서 간략하게 처리해 지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집에서 특별히 눈에 띄게 돋보이도록 한 부분이 지붕 처마이다. 처마는 집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거기다 함석 차양까지 덧달아서 한층 휘어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했다.
북촌마을 한옥의 지붕 처마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일반인들에게 한국 건축의 처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세상일은 역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수고가 따랐다. 집 지을 때의 수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데도 지속적인 손길을 필요로 했다. 제일 큰 문제는 건축이란 것이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점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건축이 처마 곡선을 유지하느라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의 처마 곡선을 단지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포 식과 주심포 식과 익공 식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우리 문화유산을 다룬 책들에는 주심포 식이나 다포 식 같은 용어들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독자들 중에는 이 용어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주심포 식과 다포 식을 구분하는 기준은 ‘공포’다. 공포란 밖으로 길게 내민 처마를 지탱할 목적으로 기둥 위에 짜여지는 작은 재목들의 총칭이다. 공포는 단일 부재가 아니고 ‘주두’라는 기둥 위에 놓이는 넓적한 받침재와, 앞과 옆 방향으로 팔처럼 뻗은 ‘첨차’라는 부재들과, 이들을 연결해주는 ‘소로’라는 작은 연결재로 이루어진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이라는 받침재가 놓인다.
동아시아 건축에서 공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자못 크다. 특히 목조건축은 속성상 기둥이나 창문, 지붕 같은 부분에서 다른 건물과 구분되는 독창성이나 차이점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이렇게 볼 때 공포는 기술자들이 자신의 창의력이나 재주를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각 시대에 따라 표현 방식에 차이가 생기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도 공포다.
한국 건축의 개설서들에서는 고려 말부터 주심포 식과 다포 식이 있었고, 여기에 16세기 이후에 익공 식이 추가되는 것으로 주로 기술한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혼란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주심포 식과 익공 식은 둘 다 기둥 위에만 공포가 짜여지는 점에서는 동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건물은 이것을 주심포 식으로 분류해야 할지 익공 식으로 해야 할지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한 건물을 두고 이를 주심포 식이라고 설명하는 책도 있고 익공 식이라고 적은 책도 나와서 혼란을 일으킨다.
이 책에서 저자 김동욱 교수는 시간 개념을 도입하여 ‘보간포작補間包作(기둥 사이에 놓이는 간포)’을 갖춘 다포 식은 고려 말부터 조선 말까지 줄곧 존재해온 형식으로 보고, 기둥 위에만 공포가 짜여지는 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약 200년 동안 주심포 식으로 존재하다가 16세기 이후로는 익공 식으로 대체된 것으로 구획 정리를 한다. 나아가 건축 형식의 분류를 공포만을 대상으로 해서 구분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건물의 전체 짜임 방식에서 새로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 제기를 던진다.
동아시아인들이 사랑한 용 장식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은 수천 년간의 문화 교류를 통해 건축에서 다양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다. 동아시아 건축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공통적 요소는 ‘용’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6,000년 전 유적인 산서성의 반파半坡 유적에서 용의 형상이 새겨진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후로 용은 중국의 제반 기물이나 건축에 등장했다. 중국 건축학자 러우칭시樓慶西에 의하면 자금성 태화전 한 건물에 묘사된 용이 무려 1만 2,654곳이라고 한다. 중국 건축에서 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도 용 장식으로는 중국에 버금간다. 용의 발톱은 보통 넷이나 다섯을 그리는데, 넷 발톱은 제후, 다섯 발톱은 천자를 나타낸다. 그런데 경복궁 근정전 천장에 매달린 용의 발톱은 7개나 된다. 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겨 찾던 작은 절들에서도 용 장식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불전 중앙 기둥 상부에 있는 ‘안초공’이라는 돌출한 부재는 바깥은 용 머리로 조각되고 내부는 꼬리로 다듬어지며, 충량이라는 대들보에 걸쳐지는 측면 들보는 전체를 용 몸통으로 채색하고, 들보에 걸쳐지는 충량 끝도 용 머리로 새긴다. 해남 대흥사 천불전이나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을 비롯해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사찰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본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비해 용 장식이 많지는 않지만 볼만한 용 그림들이 적지 않다. 압권은 교토 선종 사원 법당의 천장 그림이다. 묘신지妙心寺 법당은 직경 12미터가 넘는 천장 전체에 구름 사이 용이 채색화로 그려져 있다. 쇼코쿠지相國寺 법당의 운룡도도 유명하다. 이곳의 용 그림은 넓은 건물 천장 전체를 하나의 화폭으로 삼고 커다란 용이 눈을 부릅뜬 모습인데, 실내에 들어온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용의 눈동자가 계속 따라다니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구들은 왜 사라졌을까?
한중일 건축에서 나타나는 차이점 중 흥미로운 것은 난방시설이다. 우리의 난방시설이 구들이라면 중국은 캉, 일본은 고다츠다. 일본 오츠시립박물관에는 4미터 가량의 외줄고래(난방시설의 일종) 유적이 재현돼 있는데, 한반도에서 3~6세기에 흔히 보이는 구들과 동일한 모습이다. 오츠는 7세기 중엽 임신년에 일어난 반란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임신壬申의 난이라고 하는 672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텐치 천황이 죽고 한반도 이주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이곳을 근거지로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는 황태자에 대해서 아스카를 근거지로 삼은 구세력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난은 반란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황태자의 패배로 끝나고 일본의 정치 중심은 다시 아스카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이 사건 이후 오츠 지역에 뿌리내린 한반도 이주 세력은 정치적 힘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활발히 조성되던 구들 시설도 자취를 감추었다.
일본에서 구들이 사라지게 된 데는 습기가 많고 상대적으로 따스한 기후 조건 탓도 있다. 구들은 실내의 습기 제거에 도움이 되지만 불을 넣지 않는 여름철에는 구들 내부에 습기가 차서 벌레가 끓거나 구들 벽이 쉽게 무너지는 결함을 안고 있다. 더군다나 오츠 지역은 비와코라는 큰 호수를 끼고 있어서 다른 곳보다 습기가 많은데다가 겨울철 기온도 한반도처럼 한랭하지 않다. 결국 이러한 기후 조건과 정치적인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여 한반도 이주민에 의해 만들어지던 구들이 사라진 것이다.
엄격한 중국 공간, 자연스러운 한국 공간, 실내에 집중된 일본 공간
중국에서 나타나는 건축 공간 개념을 간단히 요약하면 ‘중축대칭中軸對稱 방정엄정적方正嚴正的 군체조합群體組合’이라 할 수 있다. ‘중축대칭’이란 중심축선상에 대칭으로 건물이 배열되는 것을 말하고, 전체적으로는 모든 건물들이 네모반듯한 틀 안에 엄격하고 바른 모습으로 여러 군체들이 조합을 이룬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건축물은 북경의 자금성이다. 과연 자금성은 중요한 전각들이 중심축선상에 일렬로 배열되고 나머지 무수한 전각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네모반듯한 질서 안에 수렴되어 군체群體가 조합을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반면에 한반도에서는 일찍부터 산에 의지해서 생활하는 습성이 보편화되었다. 4, 5세기경 불교 전파 초기에는 절이 도성 주변에만 지어졌지만 7, 8세기경이 되면 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산의 지리 조건에 맞는 집 짓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갔다. 여기서는 굳이 중심축상에 건물을 배치할 필요도 없었고 또 그렇게 하기도 어려웠다. 자연히 건물 배치는 지세에 의존해서 불규칙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달라져갔다. 9세기는 이런 변화가 뚜렷이 정착된 시기이다. 부석사를 비롯해서 해인사, 화엄사, 통도사 같은 이름난 절들이 대개 이 과정에서 산의 지형 조건에 맞춘 건물 배치를 갖추어나갔다.
일본의 밀교 사원은 이름난 산악에 의지해서 수행처를 형성해왔으며 따라서 산지의 지형에 따른 건물 배치가 나타났다. 교토 북쪽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曆寺나 나라 남쪽의 고야산高野山 등이 대표적인 수행처였다. 이들 사원은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 소실을 거듭하는 바람에 본래의 모습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지형 여건에 맞춘 건물 배치를 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일본의 경우는 불전 내부를 내진과 외진으로 구성하고 때로는 내내진으로 세분하는 등 불전 자체의 실내 분할을 통한 다양한 기능 수용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반면 건물 상호간의 배치 관계와 같은 외부 공간 구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향을 보인다.
누각에 올라 바람을 느끼고 싶다
자연과의 조화에 배려를 아끼지 않은 우리 장인들의 노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축은 누각 건물이다. 화왕산 깊은 골짜기에 있는 창녕의 관룡사는 지금도 찾아가기가 수월치 않지만 일단 이 절에 가서 원음각이라는 누각에 오르면 절을 찾느라 애쓴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하다. 눈앞에는 씩씩한 기상을 지닌 경상도의 산들이 펼쳐지고 어디선가 부는 시원한 바람은 솔향기까지 담아서 공해에 찌든 폐부를 맑게 청소해준다. 동아시아 어디를 가도 이런 건축의 감흥은 맛보기 어렵다.
20세기에 들어와 서양의 근대적 합리주의가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건축에서도 전체적인 틀보다는 규격화되고 정확하게 계산된 세부가 중시되고 합리성이 존중되었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가면서 이런 근대주의적 이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세부를 인정하고 이를 전체가 포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주변 환경을 고려하고 이웃한 사물들과 조화를 이룬 건축에 주목하는 움직임 또한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 한국 건축이 지닌 가치가 새삼 주목되는 여건 속에서 자못 기대가 커진다. 독자제현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