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윤은 기업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가치인가? 생산과정의 요소인 동시에 존엄한 존재인 노동하는 인간의 역설을 어떻게 경영의 가치로 재창조할 것인가.
시장은 공감 능력이 살아 있는 사회적 존재들이 벌이는 축제의 장, 기업은 시장이라는 생태계 안에 자기 자리가 있는 생명체, 인간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이를 해결할 궁극의 답이다. 살리는 경영, 지속 가능한 시장 생태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경영 이론가이자 현장 경영자인 저자가 전하는 깨어 있는 CEO를 위한 위기돌파의 비전.
목차
들어가며
1. 시장
시장의 사람들
가난과 부의 연구
고전경제학의 탄생
중농주의(자연주의)와 중상주의
보이지 않는 손
시장 거래에 앞선 도덕감정
수요와 공급 곡선
기계론적 이성주의
유기론적 생태주의
진화의 새로운 관점-경쟁과 협조
다양성의 이유
공유지의 비극
시장과 정부의 이분법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
사회적 자본의 공유 조건
공유경제와 지속가능성
시장 이해의 전통과 전망
2. 기업
기업의 이윤 극대화 신화
기업은 생명체라는 비유
생명을 위한 자양분
기업의 존재 이유
이윤의 역설
한국의 기업 재벌
대안적 지배구조
월가를 점령하라
희망의 기업들
각성의 시대
깨어 있는 자본주의
사랑받는 기업
기업의 사회적 책임
리더와 리더십
3. 인간
배움의 기쁨
인간에 대한 이해
한국적 낭만주의
나와의 첫 대면
낙방
석방
이상주의자의 금과옥조
인간 현상
노동하는 인간
자원인가? 원천인가?
기능적 불평등성의 원리
존재론적 평등성의 원리
삶과 노동
혼돈과 모순의 시대
상보성의 원리
노동하는 인간의 모순과 역설
인간 존중 경영
대.한.민.국.
나오며
참고문헌
저자에 대하여
저자
이병남
출판사리뷰
1.
이윤, 기업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가치인가?
살리는 경영, 지속 가능한 시장 생태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경영 이론가이자 현장 경영자인 저자가 전하는 깨어 있는 CEO를 위한 위기돌파의 비전.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잡지 [리즌(Reason)]은 2005년 10월, 미국 경제학의 중심인 시카고학파의 수장이자 노벨상 수상자(1976년),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존 매키(John Mackey)의 토론을 게재했다. 두 사람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존재 이유에 대해서 극명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고, 이들의 논쟁은 전 세계 주요 대학에서 자본주의 경제이론의 두 입장을 비교하는 논술 텍스트로도 유명해졌다. 존 매키는 1978년, 텍사스 오스틴의 작은 식료품점에서 출발, 이제는 미국 최대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점이 된 ‘홀푸드마켓’ 창업자. 이 회사는 1998년 이후 [포춘]지가 선정한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에 계속 선정되었고,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실시한 기업 명성 조사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문 1위로 선정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도 매년 10% 이상의 매출신장을 기록하며 유통업계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도 새로운 기업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자유방임주의 신봉자 프리드먼의 주장에 대해 존 매키는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기업도 이익이 나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 먹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듯 기업도 이익만 내려고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고객 만족과 직원 행복을 무시하거나 지역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윤 극대화’는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지켜줄 수 없다는 점을 존 매키는 상세히 증명했다. 작은 식료품 가게에서 출발해 30년 넘도록 성장하며 참신한 성공신화를 이루어낸 기업가로서 자신의 현장 경험을 토대로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세계적 저명인사가 된 매키는 인터뷰나 자신의 블로그에 “자본주의는 사회의 필요악이며, 해체가 아닌 개선의 대상”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기업철학과 사회?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163~166쪽 내용)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어렵고 절박한 생존 조건을 감내하며 사업을 하는 이유가 어떤 기업에게는 ‘이윤 극대화’일 수 있다. 이 같은 선택도 가능하지만 이윤 추구만으로 기업과 비즈니스의 의미를 진정으로 빛나게 할 지속가능한 가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래도록 번성하는 기업은 무엇보다 분명한 철학을 존재 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더 높은 경영성과를 내는 데 몰두해야 하지만, 진정으로 고객과 사회에 유익한 방향을 추구하는 기업이 실제로 훨씬 큰 성과를 낸다.
존 매키의 홀푸드마켓은 물론이고 세계 최초 제약회사 머크(Merck)는 이 같은 사실의 대표적 증거이다. 머크는 2차 세계대전 중 페니실린을 약품으로 대량생산해 부상 군인을 위한 치료제로 상품화시킨 사실로 유명하다. 퇴임을 앞둔 그가 “의약품은 환자를 위한 것이지 결코 이윤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만 제대로 기억한다면, 이윤은 저절로 따라온다. 이것을 더 잘 기억할수록, 이윤은 더 커진다.”고 연설한 내용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만큼이나 의료계, 과학계, 기업경영 전반 여러 분야에서도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123~124쪽 내용)
생존문제와 치열한 경쟁 속에 높여 있는 기업이 월말 결산과 분기별 실적 집계에 몰두하다 보면 근본정신을 잃게 마련이다. 시장의 압력에 휘둘리다 보면 존재 이유 또한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실적과 수치보다 근본 존재 이유를 잘 기억하면 할수록 이윤이 더 높아진다는 기업 이윤의 특성, 이 같은 역설적 상황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윤의 역설(paradox of profit)이란 말이 있다. 이윤만 좇다 보면 이윤은 자꾸 도망가는데, 원래의 사업 본질에 충실하면 오히려 이윤이 따라온다는 것이다.”(125쪽)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업을 재정의한다.
기업은 ‘시장이라는 생태계 안에 자기 자리가 있는 생명체’라고 나는 가정한다. 그래서 생명이 본디 자신을 지키며 번성하려는 본성이 있듯, 기업도 스스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자구책을 찾게 마련이다. 단기적 이윤 창출과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책 마련은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기업 경영의 근본 과제가 되었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온전해질 수 없을 만큼 서로를 규정하는 동시에 상호 보완하는 역설의 관계이다. 시장이라는 생태계를 함께 지키며 생존하고 성장하고 번성해야 하는 기업에게 있어, 지금은 지속가능한 생산양식이 더욱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는 시대이다. (116쪽)
많은 기업들이 위기 돌파의 방법을 구하고 있는 이때, 저자는 20년 이상 전문경영인으로서 사업현장에서 깨우친 현대 경영에 대한 생각을 ‘시장’ ‘기업’ ‘인간’의 세 영역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토대로 경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기업의 존재 목적을 다시 정의하고 그 본래의 존재 의미에 충실할 때 지금의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고객에게 ‘사랑 받는 기업들’의 같은 기간 누적 투자 수익률은 1,026%로서, 무려 8배가 넘는 수치였다. 그리고 ‘사랑 받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찾아본 결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 더 큰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한편 ‘사랑 받는 기업들’과 S&P 500 지수에 들어간 500개 기업의 1996년부터 2011년까지 15년간의 주가상승에 따른 누적투자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이들의 평균 투자수익률은 1,646%로 S&P 500지수 기업들의 평균치인 157%의 10배가 넘었다.(168쪽)
저자에 의하면 기업은 단순히 이윤만을 좇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여 고객과 사회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다.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오직 자기 이익에 충실했을지라도 고객과 사회는 그 덕분에 유익함을 누리게 되고, 고객과 사회는 이런 기업에게 이윤이라는 선물을 되돌려 주는 선순환의 흐름을 충실하게 잇는 경제 주체”(174쪽)인 것이다. 기업은 보다 높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것은 수익이나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해 송호근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자인) LG인화원 사장 이병남, 그는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기업현장을 뛰는 경영인 중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20년을 기업에 헌신하면서 인간존중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잊지 않은 사람, 냉혹한 자본주의적 경쟁시장에서 상호호혜와 온정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숨 가쁘게 뛰었던 기업인의 감동적인 제언과 스토리가 여기에 담겼다.
‘기계론적 이성주의’가 승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시장, 기업, 인간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것임을 확신하는 그는 ‘유기체적 생태주의’로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시장은 인류가 살아갈 삶의 터전이자 에코시스템이다. 수요와 공급의 각축만이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의 삶을 보듬는 수많은 도덕적 감정과 정서, 천수관음보살의 손길, 인내천의 인간애가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 빚어내는 시장이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특별한 게 아니다. 무한경쟁 속에 소멸되는 우애의식을 회복하는 주체, 위협받는 생태계에 치유의 호르몬을 생산하는 생명체다.
공멸을 예고하는 ‘현대’의 운명적 행진을 구제할 신비의 명약이 우리가 일찍이 내다 버린 근대적 이상주의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경영학 박사이자 경영자인 필자가 20년 현장체험에서 건져 올린 이 생태론적 교훈은 시장, 기업, 인간이 삼위일체가 되는 질서로 안내한다.
2.
시장은 공감 능력이 살아 있는 사회적 존재들이 벌이는 축제의 장,
기업은 시장이라는 생태계 안에 자기 자리가 있는 생명체,
인간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이를 해결할 궁극의 답이다.
생산과정의 요소인 동시에 존엄한 존재인 노동하는 인간의 역설을 어떻게 경영의 가치로 재창조할 것인가.
이 책은 시장과 기업, 인간의 존재양식을 생태론적으로 파악하여,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공생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지기 위해 협력하는 공동체로 변모하는 길을 탐색하고 있다. 특히 노동하는 인간(Homo faber)의 특성에 집중해 ‘기능적 불평등성’과 ‘존재론적 평등성’의 원리를 역설적 관점에서 통합해 인간존중 경영의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
개인의 능력과 성과의 차이를 무시하면 기업의 생명력은 그만큼 떨어져 경쟁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시장의 작동원리’라는 환경적 요소다. 기업은 거기에 적응해야 하니 노동하는 인간의 ‘기능적 불평등성’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적 불평등이 아니라 ‘기능적 불평등’이다. 기업이라는 특정 조직의 운영에 기능적 불평등성에 바탕 하는 성과주의를 도입하지 않으면 시장생태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존재론적 차원에서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다. 자기 일만 잘한다고 그걸로 충분한가? 동료와의 동반 성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우리는 모두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온 우주가 오랜 세월 나의 출생을 준비했고, 나를 세상에 있게 했고, 내 성장을 기대하며 격려하고 있다. (225쪽)
시장생태계에서 생존하려면 기업은 공평성과 효율성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 개인의 능력과 성과의 차이를 무시하면 기업의 생명력이 떨어져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은 인간의 ‘기능적 불평등성’을 인정해야 한다. 공평성의 원리에 기반한 성과주의를 도입해야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과 기회를 주는 게 ‘성과주의’ 인사이다. 이 원칙이 지켜질 때 조직내부가 효율적이고 역동적이게 된다. ‘인간존중 경영’과 ‘성과주의 인사’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되게 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요소이다. 반면 존재론적 차원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다.
이 같은 노동의 역설은 인간존중 경영의 기본이다. “인간존중 경영에서 개인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끌어올릴 책임이 있고, 조직은 개발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개인에게 만들어 줄 책임이 있다. 능력계발의 극대화는 개인의 몫이고 회사가 할 일은 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251쪽) 이것이 저자가 제시하는 조직 안에서 인간 존재의 평등성과 함께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공평성의 원리이다.
아무리 엄격하고 독하게 일을 시킨다 해도 그 일이 상사의 개인적 출세가 아니라 공동의 성과를 내고 조직원 모두가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만 확고하다면 부하들은 종종 투덜대기는 할지언정 자존감에 상처를 입지는 않는다. “나는 이 부서에서, 이 회사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바로 그 존재감에서 주인정신이 나온다. 내 일, 내 부서, 내 회사가 바로 내 것으로 여겨질 때라야 비로소 창의성과 자발성이 발현된다. 이렇게 배려에서 존재감으로, 존재감에서 주인정신으로, 주인정신에서 창의와 자율로 이어질 때 개인은 성장하고 기업은 튼튼하고 유연해진다. (250쪽)
이 책은 시장과 기업, 이를 지탱하는 인간에 대해 경영의 관점에서 역설적인 해법을 모색한 보고서이다. 인간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를 풀어낼 해법 역시 ‘인간’에게서 비롯하므로 경영 또한 아둔한 단계에서 벗어난 인간, 지혜롭고 성숙한 인간에게서 그 최종적 답이 나온다는 관점이다. 그래서 제목이 ‘경영은 사람이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모든 위계의 정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각성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의미한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이 맺게 되는 관계를 통해 늘 변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신체적 변화 외에 우리의 정서는 물론 정신도 언제나 다른 상태로 변모할 수 있다는 점은 두렵고 위험할 수도 있으나, 역설적이게도 실은 그게 희망이다. 전에는 무조건 ‘하면 된다’는 단순논리로 인간 내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인간에 대한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전보다 훨씬 분석적인 동시에 통합적인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된 덕에, 마음먹고 노력만 하면 누구나 인간에 대한 이해, 나 자신의 탐구를 위한 요령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13쪽)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게 터진다. 기본 상식마저 위협하는 현실과 힘의 논리가 그 어느 시기보다 막강하게 세상을 흔들어대며 인류공동체와 지구생태계를 위협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이 더 많은 개인들의 각성과 시대에 맞는 역설적인 지혜를 찾기 위한 정신적 성장과 영적 성숙을 요구하는 징조로 해석한다. 이를 토대로 시장경제의 자유방임주의 아니면 정부의 규제, 이 모순되는 두 가지 중에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유기론적 생태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자료 1] 오늘날 부각되는 기업의 생존 위기와 노동의 문제, 삶의 질 문제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가: 기계론적 이성주의 VS. 유기론적 생태주의
?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의 강박을 극복하는 유기론적 생태주의의 가능성: 106쪽 [도표] 참고
? 인간과 기업과 시장에 대한 온전한 이해, 유기론적 생태주의라는 시대가 요구하는 관점이 널리 확산되는 게 시급하다. 이 관점을 통해 기계론적 이성주의 탓에 빚어지는 가장 큰 폐해 중 하나인 무한경쟁과 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겪는 존재의 불안이 심층적 차원에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본디 무한경쟁의 싸움터, 도둑 떼의 약탈이 자행되는 전쟁터일 필요가 없다는, 대신 공감능력이 살아 있는 사회적 존재들이 벌이는 축제의 장이었다는 점만 온전히 깨달을 수 있어도, 우리의 현실을 축복으로 바꾸고 새로운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역설적 변용의 전환점이 만들어질 것이다. (30쪽)
? 유기론적 생태주의 관점에서는 무한경쟁의 목표도 적자생존의 의미도 종전과 많이 달라진다. 이제 ‘무한경쟁을 통한 승자 독식’은 ...(중략)... 다양성의 상실, 궁극적으로 공멸을 향한 지름길이다. 나아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또한 배타적이고 모순된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으로 이들 서로의 공존과 공생을 추구하는 역설적 변용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을 움직이는 주체인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적 면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된다. (93쪽)
? 오늘날 인간과 기업과 시장에 대한 온전한 이해, 즉 유기론적 생태주의라는 시대가 요구하는 관점이 널리 확산되는 게 시급하다. 이와 관련해 수요와 공급으로 압축된 추상적인 곡선보다는 치유와 보살핌의 상징인 천수관음의 이미지가 아담 스미스가 원래 뜻한 ‘보이지 않는 손’의 본래 의미를 더 잘 살릴 것이라 믿는다. 기계론적 이성주의 탓에 빚어지는 가장 큰 폐해 중 하나인 무한경쟁과 이에 시달리는 오늘날 ‘성과 주체’로서의 현대인들이 겪는 존재의 불안을 훨씬 심층적 차원에서 해소할 것이다. 그로 인한 수많은 상처를 낫게 하는 치유제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 믿는다. 시장이 본디 무한경쟁의 싸움터, 도둑떼들의 약탈이 자행되는 전쟁터일 필요가 없다는, 대신 공감능력이 살아 있는 사회적 존재들이 벌이는 축제의 장이었다는 점만 온전히 깨달을 수 있어도, 우리의 현실을 축복으로 바꾸고 새로운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역설적 변용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65~66쪽)
[자료 2] 사회적 자본의 공유조건,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하는 법: 제주 잠녀 사례 등(87~91쪽)
아름다운 섬, 제주도의 성공사례에서 이는 더 선명히 드러난다. 제주에서 연안 지역은 바다도 역시 중요한 공유지이다. ‘우리 바당(바다)’의 자원은 마을 여성의 몫이라는 불문율이 있어 왔고, 1962년 어촌계가 성립되기 전에도 바다 자원은 잠녀의 공동 소유였다. 요즘은 이들의 벌이 정도면 충분히 스쿠버 복장을 할 수 있지만 내내 이어온 선배들처럼 아직도 조촐한 해녀복 차림으로 물에 들어가고 더 많은 해산물을 채취할 욕심을 내지 않는다. 물질에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바다 속 생태에 대한 총체적 지식이 필요하고, 혼자 움직이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 수시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아는 잠녀들은 선배들의 전통을 따르며 매사 공동으로 대처한다. 예를 들어 잠녀의 달력을 만들어, 산란기에는 소라의 채집을 금지해서 씨가 마르는 일이 없게 한다. 해양 자원의 남획에 동원될 싹쓸이 장비의 도입 따위에도 공동으로 대처하며 저지한다. 물질을 하다 보면 경쟁도 생기고 실력에 따라 채취하는 양도 다르지만, 개인의 능력에 따른 ‘기능적 불평등성’을 순순히 수용하기에, ‘우리 바다’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소중하게 지켜가는 것이다. 이들은 소수의 독점보다 다수가 나눠 갖는 식으로 자원을 유지하는 관행을 여전히 고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