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40년의 추적이 빚어낸 동해와 일본해에 대한 국내 최초 연구서!”
동해를 잃으면 독도를 잃게 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잃게 된다. 동아시아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만주족들은 2,000년 전부터 동해를 ‘東海’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적으로 동해를 ‘일본해’라고 부르는 흐름이 훨씬 우세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동해가 만주족의 지명임을 밝힌 드 페르의 〈동아시아〉 지도에서 태평양을 대일본해라고 표기한 다카하시 가게야스의 〈신정만국전도〉까지, 결정적 증거들을 100여 점의 고지도를 통해 동해가 누구의 바다인지를 이 한 권에 담았다.
목차
서문 1 40년 동해 명칭 탐구에 마침표를 찍다
서문 2 고지도 속 동해가 준 선물
제1부 동해의 이름을 찾아서
1. 동해라는 보물창고
2. 동해라는 이름
3. 동해/일본해 관련 모든 명칭의 배경과 그 지명학적 지위
4. 국제기구와 동해 명칭
5. 세계 속의 동해 명칭
6. Map Road
7. Korea Road
제2부 세계의 동해 명칭 표기
1. 아랍의 동방 진출과 한국에 대한 인식
2. 이탈리아 고지도와 동해 명칭 표기
3. 바티칸 선교사들의 지도와 동해 명칭 표기
4. 독일어권의 고지도와 동해 명칭 표기
5. 포르투갈의 고지도와 동해 명칭 표기
6. 네덜란드 고지도와 동해 명칭 표기
7. 프랑스의 고지도와 동해 명칭 표기
8. 영국의 고지도와 동해 명칭 표기
9. 러시아 지도의 동해 명칭 표기
10. 일본에서의 동해/일본해 명칭 연구와 그 표기
11. 중국 사료에 나타난 동해 명칭 표기
12. 한국의 역사 문화적 문헌과 고지도에서의 동해 명칭 표기
제3부 동해 명칭 관련 논문
1. ‘지명의 발생과 기능’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서양 고지도 연구와 그 문제점
2. ‘일본해’ 단독 표기에 반대하는 이유
에필로그 나와 동해와의 인연
일러두기
저자
서정철
출판사리뷰
“40년간의 집념 어린 추적이 빚어낸
동해와 일본해에 관한 국내 최초 연구서!”
동해가 2,000년이 넘은 만주족의 지명임을 밝힌 드 페르의 〈동아시아〉 지도에서
태평양을 대일본해라고 표기한 다카하시 가게야스의 〈신정만국전도〉까지
결정적 증거들을 100여 점의 고지도를 통해 이 한 권에 담다!
동해를 잃으면 독도를 잃는다
동해의 명칭 문제는 국가 영토를 둘러싼 정치적 분쟁뿐 아니라 자원 개발과 관련된 경제적 문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외교적 위상까지 얽힌 복합적인 이슈다. 동해의 이름에 관한 문제가 처음 국내에서 제기됐을 때 어떤 사학자는 “남이 무엇이라 표기하든 우리만 동해라고 하면 됐지 그런 것이 무슨 문제냐?”라고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가령 독도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가 “독도는 동해에 있다”고 설명해도 외국 사람들이 “동해가 아닌 일본해에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또 우리가 동해의 우리 영역 내에서 지하자원을 개발해도 외국에서 한국이 일본해에서 지하자원을 개발한다고 오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해의 이름은 이처럼 복잡다단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 사안이다. 동해의 이름을 잃는 것은 독도를 잃는 것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잃는 것으로 귀결된다.
열네 살 소년이 칠순 노인이 되기까지 동해와의 깊은 인연
이 책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의 저자 서정철과 김인환은 동해의 명칭 문제를 국내에서 최초로 연구하고 문제 제기한 인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열네 살 소년이던 서정철은 미군이 찻집에 놓고 간 지도에서 동해에 ‘Sea of Japan’이라고 쓰인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 바다가 모두 일본의 바다라는 말인가?’ 10년 후 프랑스 유학 중 서정철은 베르사유궁의 루이 14세 응접실에서 ‘Mer Orientale’, 즉 ‘동해’라고 쓰인 지구의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본래 불문학도였던 서정철과 그 동반자 김인환의 인생은 그때부터 180도 뒤바뀌게 된다. 40년 동안 사재를 털어 200여 점의 고지도와 많은 고서를 수집하며 동해와 일본해 이름의 진실을 연구하는 데 매달리고, 이렇게 모은 귀중한 고지도들을 2004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다. 또한 동해의 이름을 바로잡기 위해 유엔 대표단으로 국제회의에 참여하면서 일본 측의 거친 정치적 압력을 경험하고 일본의 환일본해연구소를 방문하면서 그들의 활발한 연구 현황을 목도한다. 20여 년 동안 지속된 동해연구회 세미나를 통해 서울대학교 이기석 교수 등 국내 학자들과 만남을 가지는 것은 물론 영국의 우드먼 교수, 이스라엘의 카드먼 교수, 중국의 우송디·리우씬준·쳉롱 교수, 프랑스의 펠르티에 교수, 일본의 아오야마·야지 교수, 그 외 미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알제리, 튀니지, 남아공, 러시아 등에서 온 학자 및 전문가들과 학문적 교류를 나눈다.
2,000년이 넘은 동해와 100년밖에 안 된 일본해
이 책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는 40여 년에 걸친 집념 어린 추적이 빚어낸 동해와 일본해 이름에 관한 국내 최초의 연구서다. 저자들이 이 책을 쓴 이유는 2,000년이 넘은 토착명이지만 지금은 세계인의 뇌리에서 사라진 이름 ‘동해’를 되찾기 위해서이다. 또한 저자들은 이 책이 동아시아에 평화의 기운을 불어넣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1부에서는 동해의 현재와 역사, 동해를 둘러싼 국가들의 이해관계, 동해/일본해에 관련된 20여 개 명칭의 지명학적 분석, 국제적인 차원에서 동해의 위상, 그리고 지도 발달의 역사에서 동해 명칭의 변천 과정 등을 설명했다. 2부에서는 각국에서의 동해 표기를 살펴보되 ‘이중 나선형 방식’을 취했다. ‘이중 나선형 방식’이란 고지도가 세계적으로 아랍 세계에서 출현한 후 동아시아 삼국의 지도에 이르기까지를 연대순으로 고찰한 후, 각국에서의 표기 문제를 보다 세밀한 역사적 출현 관계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다. 아랍의 지도에서 바티칸 선교사들의 지도, 이탈리아·독일어권·포르투갈·네덜란드·프랑스·영국의 고지도와 러시아 지도, 그리고 동아시아 삼국에서의 동해 표기에 대해 다루었다. 3부의 논문들에는 일본 측의 편향적인 동해 명칭 연구에 대한 비판과 일본해 단독 표기에 반대하는 이유를 담았다.
본문에 수록된 100여 점의 고지도와 다양한 고문헌들을 바탕으로 동해와 일본해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이 책에서 저자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동해’는 2,000년 전부터 한민족과 만주족이 사용해온 토착명으로서 역사적 정당성을 지닌 이름이다. 둘째, 일제강점기에 국제수로기구에 등재된 ‘일본해’는 일본에서도 정착된 지 100년이 되지 않은 외래명으로서 그 바다를 둘러싼 다른 국가들을 배제하고 있다.
동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고문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중국의 《산해경》와 《후한서》 등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부분에 북부여의 도읍을 동해가의 가섭원으로 옮기라는 꿈의 계시가 기록되는데, 그때가 B.C. 59년으로 이것은 우리 민족이 2,000년 이전부터 동해 명칭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그런데 우송디와 구렌허, 쳉롱 등 중국 학자들은 중국의 사료에서 2,000여 년 전에 만주족들이 동해를 언급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실이 서양 고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동해를 동대양, 동해, 한국해, 조선해, 일본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이중에는 단순히 유럽의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동대양 또는 동해라고 부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동해가 만주족이 2,000년 이상 써온 토착명임을 알고 표기한 경우가 있다. 평생 700여 종의 지도를 발간한 대규모 지도상이었던 프랑스의 드 페르는 1703년 발간한 〈동아시아(L’Asie Orientale)〉의 상단 여백에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바다이나 타타르인(만주인)들은 이 바다를 동해라 부른다(Mer peu ou point connue des Europeens. Les Tartares l’appellent〔sie〕 Orientale)”는 이례적인 주석을 기재하고 있다(본문 173쪽 지도 참조). 이러한 표기는 기욤 드릴, 센크, 반 데르 아아 등 여러 지도 제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18세기 서양의 고지도에서는 ‘동해’ 또는 ‘한국해’ 표기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동해를 처음으로 한국해(Sea of Korea)라고 표기한 사람은 고디뉴 데 에레디아로, 1615년 마카오에서 발간한 동아시아 지도에서 한국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네덜란드 개신교 목사 출신의 몬타누스도 1669년 일본 관계 저서의 부록 지도에서 동해를 ‘Sea of Korea’라고 표기했는데. 그의 저서는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어 여러 언어로 번역됐고 18세기를 ‘한국해’의 황금기로 만든 초석을 놓았다. 그의 뒤를 이어 타베르니에, 샹봉, 벨랭 등도 동해를 한국해(Mer de Coreer)로 표기한다.
서양 고지도에서 ‘일본해’가 등장한 것은 1604년 마테오 리치가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서 Ribon Hai라고 표기하면서부터인데, 이것은 일본에 이렇다 할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일본에서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하는 지도가 출현한 것은 〈곤여만국전도〉가 출판된 지 200년이나 지나서였다. 19세기에 들어서도 막부의 천문방으로 지도 출판을 담당하고 있던 다카하시 가게야스는 1806년의 〈일본변계약도(日本邊界略圖)〉와 1811년의 〈신정만국전도(新訂萬國全圖)〉에서 동해를 ‘조선해’라고 표기했고, 다카하시를 따르는 제자들과 지도 제작자들도 1870년까지 동해를 ‘조선해’라고 표기했다. 그들이 ‘대일본해’라고 표기한 곳은 동해가 아니라 태평양이었다. 종래에 일본은 외국에서 먼저 일본해 지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본래 동해의 지명이 일본에서 ‘일본해’가 아니었음을 실토하는 것이고 일본해가 외래명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임을 깨달은 일본은, 최근에 와서야 일본해는 외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써왔고 외국에 그 지명이 알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 없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 일본에서는 동해를 ‘북해’라고 부르는 전통이 있었다. 심정보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19세기 말경까지 일본의 교과서, 사전, 신문, 역사와 지리서 등의 저서에서 일본해라고 써야 할 곳에 북해가 쓰여 그 두 가지 명칭이 혼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것은 일본인들이 습관적으로 북해라는 명칭에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 측 학자들은 ‘북해’라는 명칭을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숨기고 있다.
‘동해’의 역사적 정당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책!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면 흥분하고 축구조차 한일전이라면 목숨을 건다. 우리 국민들의 자연스러운 애국심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쓰라린 경험에서 나온 국가 감정의 발로다. 그러나 현실의 복합적인 문제는 감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차가운 이성과 논리적인 근거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만 냉정한 약육강식의 국제 정치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동해’의 역사적 정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 한 권의 저서가 있다면 바로 이 책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