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스마트폰에서 셀피, 스마트홈, 사물 인터넷, 인공지능까지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철학적 성찰
‘사물 세계의 관상학자’를 꿈꾸는 한병철이 그려낸 정보의 현상학
“우리는 이제 땅과 하늘이 아니라 구글 어스와 클라우드에 거주한다.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기억을 되짚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아두지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친구와 팔로워를 쌓아가지만 타자와 마주치치 않는다. 우리는 탈사물화한 세계, 정보가 지배하는 유령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신작. 그의 진단에 따르면 우리는 사물의 시대에서 반사물, 즉 정보의 시대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살고 있다. 우리의 주의력은 점점 더 사물에서 반사물을 향해 이동한다. 스마트폰은 묵주와 같은 기능을 하는 ‘디지털 성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좋아요’는 ‘디지털 아멘’이다. 정보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소통이 우리를 취하게 한다. 실재와의 사물적 접촉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실재는 고유한 현존을 박탈당한다. 한병철은 정보 및 소통에 대한 열광과 이것이 낳는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면서, ‘사물의 마법’으로 돌아갈 것을, 정보의 소음 속에서 잃어버린 고요를 되찾을 것을 요청한다.
목차
서문
사물에서 반사물로
소유에서 체험으로
스마트폰
셀피
인공지능
사물의 면모들
사물의 심술 | 사물의 등 | 유령 | 사물의 마법 | 예술에서의 사물 망각 | 하이데거의 손 | 충심의 사물
고요
주크박스에 관한 여담
주
부록 - 저자 인터뷰
역자 후기
저자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출판사리뷰
스마트폰에서 셀피, 스마트홈, 사물 인터넷, 인공지능까지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철학적 성찰
“오늘날 우리는 정보를 쫓아 질주하지만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두지만(zur Kenntnis nehmen) 깨달음(Erkenntnis)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는 차를 타고 온갖 곳으로 달려가지만(farhen), 단 하나의 경험(Erfahrung)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다.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기억을 되짚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와 팔로워를 쌓아가지만 타자와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정보는 존속과 지속이 없는 삶꼴을 발전시킨다.”(19쪽)
우리는 사물의 시대에서 반사물, 즉 정보의 시대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살고 있다. 우리의 주의력은 점점 더 사물에서 반사물을 향해 이동한다. 스마트폰은 묵주와 같은 기능을 하는 ‘디지털 성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좋아요’는 ‘디지털 아멘’이다. 정보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우리는 소통에 도취해 있다. 실재와의 사물적 접촉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실재는 고유한 현존마저 박탈당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정보 및 소통에 대한 열광과 이것이 낳는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면서, ‘사물의 마법’으로 돌아가고 정보의 소음 속에서 잃어버린 고요를 되찾을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나?
‘사물 세계의 관상학자’를 꿈꾸는 철학자가 펼쳐 보이는 정보의 현상학
한병철은 오늘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정보의 현상학’을 연구해왔다. 신작 《사물의 소멸》(원제: Unginge)에서 그는 미디어 이론가 빌렘 플루서가 수십 년 전 제시한바 사람들이 ‘정보’라고 부르는 ‘반사물(Unding)’들이 사물을 몰아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석을 이어받아, 2020년대의 오늘 이러한 상황이 어떤 방식으로 심화되고 있는지를 톺아본다. 에리히 프롬, 롤랑 바르트,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헤겔, 니체, 한스 울리히 굼브레히트, 로베르트 발저, 페터 한트케, 쇼사나 주보프, 그리고 하이데거를 두루 참조하며 예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보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의 참모습을 그려 보인다.
“《사물의 소멸》에서 제가 내놓은 주장들은 이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실재를 지각할 때 무엇보다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 지각한다. 그리하여 실재와의 사물적 접촉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실재는 고유한 여기 있음을 박탈당한다. 우리는 실재의 물질적 울림들을 더는 지각하지 못한다. 빈틈없는 막처럼 사물을 감싼 정보층이 집약성에 대한 지각을 차단한다. 정보로 환원된 지각은 우리를 기분과 분위기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공간들은 고유한 시학(詩學, poetik)을 상실한다. 그 안에서 정보가 분배되는, 공간 없는 연결망들이 공간들을 밀어낸다. 현재에,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디지털 시대는 시간의 향기를 몰아낸다. 시간은 점들과 같은 현재들의 계열로 원자화된다. 원자들은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 시간을 서사적으로 다루는 실행이 비로소 향기 나는 시간의 분자들을 만들어낸다. 요컨대 실재의 정보화는 공간 및 시간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 주장들은 어둡게 채색하기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건 현상학입니다.” (175-176쪽)
스마트폰과 셀피에서 스마트홈, 인공지능까지
세계의 전면적인 디지털화는 우리를 어떤 삶으로 인도할까?
그는 ‘사물 소유/수집’과 ‘체험/접속’을, 어린 발터 벤야민에게 섬뜩한 느낌을 안겨주던 무거운 유선 전화기와 오늘의 스마트폰을,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 특히 셀피를, 인간의 개념적 사유와 인공지능의 계산을 대조하면서, 사물에서 반사물로 이동하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찬찬히 그려낸다. 그 세계는 우리의 존재를 비끄러매주던 확고한 사물이 망각되고 타자가 사라진 세계다. 현대인이 열광하고 있는 기술들은 저자의 신랄한 평가를 피해가지 못하는데, 그에게 스마트폰은 ‘움직이는 강제노동수용소’가 아니면 ‘디지털 고해소’이며(41-42쪽), 사물인터넷은 ‘사물들의 감옥’(75쪽)이다. 인공지능은 ‘소름’이라는 생각의 첫 단계조차 경험하지 못하며(59쪽), 빅데이터는 상관관계만을 보여줄 뿐이다(65쪽). 역자가 선명하게 요약해 소개하는 것처럼 한병철에게 “정보는 우리의 삶을 망가뜨릴 위험성을 다분히 품은 요물이다. 그리하여 그는 디지털화 혹은 정보화의 대척점에 놓인 것들을 호명하고 찬미하는데, 그것들은 사물, 몸, 기억, 저항, 다름, 멈춤, 결속 등이다. 대표는 사물이다. 사물이 몸뚱이를 들이밀며 저항하고, 기억에게 깃들 곳을 제공하고, 덧없는 삶에 멈춤을 선사하고, 파편화된 채 실없는 소통에 몰두하는 개인들을 결속한다.”(188쪽)
주의를 앗아가는 정보의 시대
바라봄과 현존, 진실의 시간을 위하여
“어느새 우리는 모두 정보광이 되었다”(12쪽)는 저자의 지적에 동의 못 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주의를 앗아가는 정보에 지쳐가면서도 멈추지 않고 스크롤을 하며 뭔가를 ‘알아두려’ 하며, 클라우드의 용량이 넘치도록 자료를 그러모으는 일에 우리는 저마다 열심이지 않은가? 물론 오늘의 인류를 둘러싼 ‘정보권情報圈’이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도 사실이다(15쪽).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인류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과 ‘알림 신청’의 시대, 그러한 환경에서 지지와 연대의 표시로 위와 같은 일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빅테크 기업들을 가능하게 한 기술에 힘입어 우리가 현재 열심히 써내려가고 있는 ‘소통’과 ‘공유’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이 책은 들려준다. 바로 인간의 실존을 의미있게 하는 것, 불안한 일상을 지탱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얼마 전 ‘메타’라는 거대기업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맞춤형 광고 제공에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제시하며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며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고민하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좀 더 근원적인 곳에서부터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주크박스와 벼락맞은 대추나무 도장,
철학자 한병철의 충심의 사물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책은 대체로 짧고 힘있는 문장으로 전개되는데, 그에 덧붙여 우연한 기회에 주크박스 하나를 소유하게 된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담긴 한편의 우아한 철학적 에세이 〈주크박스에 관한 여담〉을 본문의 맨 마지막 글로 수록했다. 메스처럼 예리한 단문으로 오늘의 세계의 핵심을 그려내는 냉정한 사회비평가의 모습뿐 아니라, 오래되고 정든 것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해보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나의 조용한 방은 어쩌면 주크박스에게 적합한 장소가 아닐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나는 가끔 주크박스의 외로움, 주크박스의 고립을 등으로 느낀다. 내가 그 주크박스를 제자리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느낌, 이 경우에 소유는 모욕이라는 느낌이 자주 나를 덮친다. 하지만 오늘날 그 주크박스가 과연 어디에 놓여 있을 수 있겠는가?”(131쪽) “그 도장은 한국의 도장장이가 특별한 목재로 만든 것이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서 얻은 그 목재는 마법의 힘이 있어서 액을 막아준다고 한다. 그 도장장이는 떠나는 나에게 그 드문 목재의 작은 조각 몇 개를 덤으로 쥐여 주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내 지갑에 넣고 다닌다.”(142쪽) 부록으로는 이 책의 독일어판과 스페인어판 출간 이후 〈엘파이스〉, 〈아트리뷰〉와 가진 인터뷰를 실어 저자의 생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