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SF 역사를 새로 쓴 ‘그랜드 데임’,
옥타비아 버틀러가 다다른 가장 장엄한 세계
흑인 여성 SF 작가로서 선구자적 활동을 펼친 ‘그랜드 데임’ 옥타비아 버틀러의 디스토피아 소설. 버틀러가 남긴 마지막 시리즈(‘우화’ 시리즈)의 시작을 여는 작품이다.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2024년을 배경으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초공감자’ 로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30년 전 쓰였다고 믿기 힘들 만큼 현실의 비극을 정확히 담아낸 예지가 이목을 끌어, 2020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시대를 뛰어넘어 공명하는 걸작의 가치를 증명했다.
열다섯 살 로런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소도시 ‘로블리도’에 살고 있다. 폐쇄적 공동체의 삶은 일견 평온해 보이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장벽을 비껴가지 않는다. 로런이 보기에 이 세상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혐오와 배제의 논리로 움직이는 고통 가득한 세상에서, 로런은 자신이 꿈꾸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목차
2024년
2025년
2026년
2027년
저자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출판사리뷰
절망과 슬픔의 2024년,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초공감자’ 소녀
변화의 힘을 믿는 단단한 목소리
극심한 기후 변화와 잇따른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2024년 미국. 총성과 마약, 방화와 살인이 들끓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열다섯 살 로런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목사인 아빠와 가족, 이웃과 함께 살고 있다. 로런이 보기에 이 세상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로런은 자신이 믿는 것을 글로 기록하고, 장벽 안에서 안주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 로런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느끼는 ‘초공감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바깥세상에서 생존하기는 더욱 힘들겠지만, 로런은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꿈꾸며 장벽 밖으로 나가겠노라 결심한다.
“세상은 지금도 변하고 있어. 우리 동네 어른들은 전염병에 걸려 싹 사라지지 않은 덕분에,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살아가면서 좋았던 옛 시절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지. 하지만 세상은 이미 꽤 많이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할 거야. 세상은 늘 변하고 있어. 지금은 조금씩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쉬운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크게 성큼 뛰어넘는 방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뿐이야.”
_본문 99쪽
《1984》 《시녀 이야기》 그리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30년의 시간을 건너온 가장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드넓은 우주를 열망하는 SF 소설이자, 어린 주인공 로런이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성장 소설이며, 예리한 시선으로 몰락 직전의 세상을 그려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뛰어난 디스토피아 소설은 때로는 시대를 예견한 예언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문제를 현미경으로 보듯 확대하여 묘사하는 문학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일이다. 작중 미래의 모습은 버틀러가 1993년에서 2024년으로 건너와 시대를 직접 보고 쓴 것처럼 생생하다. 초능력(《와일드 시드》)이나 타임 슬립(《킨》), 외계인(〈블러드차일드〉) 등과 같이 초현실적인 요소가 주가 된 전작과는 다르게,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의 세상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기후 변화와 경제 위기로 무너진 국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거대 기업, 이방인을 차단하기 위해 장벽을 세우는 사람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해진 2024년의 풍경은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버틀러는 초능력이나 마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소설이 아니라, 실현성 높은 미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작품은 버틀러가 현실감 있게 미래를 담아낸 결과물인 셈이다. 다층적인 서사를 유려하게 꿰는 버틀러의 강점은 이번 소설에서도 빛난다. 크고 묵직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서사적 긴장감이 끝까지 팽팽히 유지되는 덕분에, 책을 펼친 순간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리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여성 인물
차별과 혐오를 이겨내는 공감과 변화의 힘
소설의 주인공 ‘로런 오야 올라미나’는 어린 흑인 여성이며, ‘초공감증후군’이라는 일종의 장애를 가진 소수자이다. 중첩된 소수자성을 지닌 로런의 모습은 버틀러가 매 작품에서 내세우는 주인공의 특성이자, SF 문학이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에 흑인 여성 작가로서 길을 개척한 버틀러 본인의 특성이기도 하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속 여성들은 실존적 위협에 처해 있다. 장벽 밖 여성에게 강간은 일상이며, 장벽 안 여성은 돈 많은 남성의 소유물처럼 사고팔리기도 한다. 나이도 어리고 흑인인 데에다 신체적인 한계까지 안고 있는 로런에게 생존은 더욱 힘든 일이다. 하지만 로런은 좌절하지 않는다. 로런은 침례교 목사인 아버지의 종교를 떠나 ‘변화’를 신으로 믿는 ‘지구종Earthseed’의 창시자가 된다. 자신의 믿음을 글로 기록하고, 소수자와 연대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로런은 약자의 자리로 내몰린 희생자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주체의 자리를 되찾은 여성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런이 앓는 초공감증후군은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건네는 버틀러의 제안이다. 작가는 아픈 자와 함께 아파할 줄 아는 감각, 즉 공감의 감정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수적이라 말한다. 나아가, 버틀러는 재앙에 대항할 힘으로 변화를 내세운다. 변화의 힘을 믿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재앙을 이겨낼 유일한 방법이라 말하는 SF 거장의 전언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모든 이가 다른 모든 이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면, (중략) 누가 남에게 쓸데없는 고통을 가하겠는가? 전에는 내가 앓는 병이 어떤 식으로든 좋은 효과를 일으키리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내 문제가 도움이 될 것도 같다. 남들에게 초공감증후군을 나눠주면 좋겠다.”
_본문 200~201쪽
종교와 신화를 아우르는 풍부한 시선
《은총받은 사람의 우화》로 이어지는 ‘우화’ 오디세이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에는 전 분야에 걸친 버틀러의 사유의 유산이 곳곳에 녹아 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라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버틀러는 성경의 인용과 비유를 작품 적재적소에 배치해두었다. 변화를 중요시하는 지구종의 사상은 불교와 일면 비슷한 부분이 있으며, 작중 로런이 쓴 시는 《도덕경》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주인공 로런의 중간 이름인 ‘오야’는 서아프리카 요루바족의 토속 신앙에서 유래했다. 오야는 영리하면서도 위협적인 나이저 강의 여성 신인데, 버틀러는 이 신의 특성을 로런에게 녹였다고 설명한다. 풍성한 은유로 가득한 이 작품은 오늘날의 우화가 되기에 충분하다.
버틀러의 ‘우화’ 시리즈는 총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권인 《은총받은 사람의 우화Parable of the Talents》는 극우주의 성향의 대통령이 등장하며 소수자 탄압이 더욱 심해진 2030년대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대통령이 내세운 선거 구호는 어쩐지 무섭도록 익숙한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 희망과는 다르게 더욱 나빠진 세상에서, 로런의 의지가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해봐도 좋다.
어떤 디스토피아가 시대를 가장 잘 예견했는지 논쟁이 많지만, 버틀러의 ‘우화’ 시리즈를 능가할 작품은 없다.
- 뉴요커
《1984》 《시녀 이야기》와 나란히 놓이는 뛰어난 소설.
- 존 그린 (작가)
버틀러의 디스토피아는 섬뜩하게 뒤틀려 있으면서도 손에 만져질 듯 익숙하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는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우리에게 그 갈망을 현실로 만들 의무가 있음을 깨닫는다.
- 새너제이머큐리뉴스
지금 여기, 현실의 여성을 작품에 담아낸다. 버틀러의 여성 인물이 SF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빌리지보이스
예언으로 가득한 오디세이.
- 에센스
희망과 신념을 다룬 작품 중 이토록 힘 있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 덴버포스트
엄혹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보다 무서운 현재가 보이는 과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93년에 쓰인 이 소설이 지금 더 특별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글로리아 스타이넘 (페미니즘 운동가,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