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웃기자고 쓴 건 [절대] 아닌
우리말, 우리 언론, 우리 사는 이야기
『손들지 않는 기자들』은 일상을 비트는 뜨끔한 유머, 솔직하다 못해 직설적인 글쓰기로 정평이 난 언론인 임철순의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우리말, 우리 언론, 소시민적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크고 작은 단상들을 맛깔나게 담았다. 임철순은 평기자로 시작해 편집국장과 주필까지 두루 거친 40여 년 내공의 신문기자다. 그러나 전작 『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처럼 이번 에세이집 역시 세상을 주물럭거리는 여느 [논세가(論世家)]의 뽐냄을 찾아볼 수 없다. 초등학생 연애부터 지하철 독서인, 버스 기사와 택시 기사, 부고 기사에 난 어머니들 이름까지 일상생활에 바탕을 둔 체험들이 글감이 되고, 글맛을 더한다. (1974년 견습 기자 시절을 함께했던) 김훈 작가의 표현대로 [지지고 볶는 일상의 작은 기미들을 소중히 여기는] 글편들이다.
임철순은 말과 글을 다루는 언론인으로서 그간 우리말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 이번 에세이집은 [어문 에세이]라는 책의 부제가 보여 주듯, 우리말을 둘러싼 이야기가 중심이다. 뇌졸중을 뇌졸증으로 내걸고도 맞다고 우기는 약사. [이리 오실게요], [저리 가실게요] 같은 일상 속 잘못된 접객어. 심지어 국가의 중요 문서인 [남북 합의문]과 [대통령 당선증]에까지 등장하는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들. ㅋㅋ와 ㅠㅠ가 범람하는 자판 시대의 씁쓸한 초상(회사 직원의 경위서에 외국인 노동자가 으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ㅋㅋㅋ을 써넣어 제출한 사연)과 한자 교육을 등한시하면서 거꾸로 우리말 이해력이 낮아지는 아이러니도 유쾌하게 담겼다. 우리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사들의 엉터리 교정·교열 지적도 신랄하다. 제6판이나 찍은 스테디셀러에 오자가 수두룩하고, 기대를 품고 구입한 한문 고서 번역판이 기가 찰 만큼 오류투성이라는 사실에 분개한다. 지자체의 관광지 안내판에도 종종 저자는 [기분을 잡친다]. 오랜만에 기운을 받으러 올랐던 산에서 마주한 안내판은 교열도 안 거친 듯 오역·오자투성이다. 통신사와 내비게이션의 안내 멘트는 또 어떤가? [교통 변화를 탐색 중입니다. 기존 경로로 계속 안내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지금 가는 길로 계속 가세요] 딱 한마디만 하면 얼마나 알아먹기 쉬운가?
목차
추천의 말(소설가 김훈)
책을 내면서
1 시 상금 좀 올리세요
되도록이면 오래 살아서
아름다움을 어떻게 간직할까
내가 배운 첫 문장
어김없는 지하철 독서인
그 아이들은 어디에
시련과 구원 사이
시(詩) 상금 좀 올리세요
낮술을 마시면서
다모토리로 쭈욱 한 잔!
「봄날은 간다」 제5절
<세계 한국어의="" 날="">을
독일어의 성 전환
2 슬갑도적과 여성 속곳
광복 분단 70년 명멸한 유행어 은어
언어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
어이, 아베 신조 상, 꿇어!
달려라, 무릎을 긁으면서
무릎을 꿇는 낙타처럼
무릎을 모으라, 그리고……
<운디드 니="">를 돌아보라
슬갑도적과 여성 속곳
이걸 어째, 초딩 연애 <상>
이걸 어째, 초딩 연애 <하>
ㅋㅋ이 잦으면 ㅠㅠ가 된다
치맥의 즐거움이여, 슬픔이여!
잎마다 꽃 되니
아재개그여, 쫄지 마시라
3 피로는 회복하지 마세요
참 이상한 접객어
피로는 회복하는 게 아니올시다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
영화 제목 좀 알기 쉽게
<디바이스가 곧="" 꺼집니다="">
그만 좀 전하고, 바로 말해!
페이스북아, 나 이런 생각한다
우스워라, 서울시의 <소녀 행정="">
니 구두 내 구두, 하우 두 유 두?
아아니, 소주를 팔지 말라구?
<한 마리의="" 소시민="">이 되어
어머니들의 서러운 이름
4 남의 책 시비 거는 사람
피눈물 흘리면서 책을 버리다
낭독은 힘이 세다
<깃동>과 <문주반생기>
남의 책 시비 거는 사람
출판물에 <교열 실명제="">를
편집자들에게
선능역인가 설릉역인가
남북 합의문에 이의 있음
혼찌검, 손찌검, 말찌검
살풍경 공화국
은행을 밟으면서
5 남의 글에 손대지 마시오
골퍼들이여, 재치를 키우시오
대통령이 우스갯거리가 돼야
시오노와 소노, 일그러진 일본의 지성
<좋은 글="">을 퍼뜨리기 전에
남의 글에 손대지 마세요
공짜 글은 없다
동거동락이라고 쓰는 아이들
패러디의 기쁨을 아는 몸
알 수 없는 국립국어원
<당신들의 우리말샘="">은 곤란
<말 다듬기="">에서 유의할 것
당신의 ( )가 좋아요, 그냥
지자체에 공공 어문심의위원회를
6 아빠, 한심한 우리 아빠
좀 <지저분한> 부부 이야기
남자는 다 애 아니면 개?
정말 로또 같은 남자들
아빠, 한심한 우리 아빠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성인 유치원 다니고 싶어?
그놈의 메르스 마스크 때문에
졸릴 때는 욕이 특효여
<철> 자는 아무 죄가 없다
나도 <어시>가 있었으면
아베 군, 이제 그만 좀 하시게
고독녀가 진실남에게
<마밀라피나타파이> 정치인들
7 손들지 않는 기자들
언론의 품격은 글에서 나온다
손들지 않는 기자들
사람 기사를 잘 쓰는 신문
낙종과 실수의 <반성문적 기록="">
형과 선배, 그리고 당신
버릴 것, 남길 것, 넘길 것
육필의 시대는 이미 갔지만
정작 대필이 필요한 것은
가짜 기사, 똥이나 먹어라!
<집필이 아니라="" 주필입니다="">
백 가지 생각 천 가지 행동의 언론인 장기영
사회부 기자의 전범 김창열집필이>반성문적>마밀라피나타파이>어시>철>지저분한>말>당신들의>좋은>교열>문주반생기>깃동>한>소녀>디바이스가>일해라>하>상>운디드>세계>
저자
임철순
출판사리뷰
남의 글에 손대지 마시오
임철순의 우리말에 대한 [지적질]은 인터넷 시대의 ctrl+c, ctrl+v 문화가 만들고 있는 신종 병폐로 향한다. 첫째, [글 도둑질]. 다른 사람의 글을 자기가 쓴 글인 양 올리는 사람들 얘기다. 직접 경험한바, 저자가 칼럼을 써서 온라인상에서 다중의 독자에게 배달했더니 마치 자기가 쓴 글처럼 출처 표기도 없이 블로그에 꾸며 놓았단다. 어떤 온라인 매체는 대담하게 본인을 매체에 소속된 사람인 양 [임철순 칼럼 기자]라고 명패까지 붙여 놓고 글 도둑질을 했다. [세상에 공짜 글은 없고 (……) 한번 저지른 글 도둑질도 전과가 잘 지워지지 않으니], 저자는 제발 글 도둑질을 삼가라고 경고한다.
두 번째는 [왜곡 전파]. 유명 인사의 글을 퍼 나르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다 보니 원작자와 출전이 왜곡되는 일이 허다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우산」이라고 지인이 보내온 시는 알고 보니 양광모 시인의 작품의 축약본이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으로 시작하는 작품 역시 윤동주가 아닌, 김준엽의 작품이었다. 심지어 우리에게 익숙한 타고르의 시.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이게 전문이다. 헌데 언제부터 뒷대목에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중략)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가 덧붙여졌다(232면). 저자는 [남의 글을 인용할 때 근거를 제시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퍼나르기만 하다 보니 왜곡 공해가 쌓여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손들지 않는 기자들 - [낡은] 언론인의 충고
이 책은 우리말뿐만 아니라 우리 언론을 향한 따끔한 비판도 적지 않다. 임철순은 스스로를 [낡은 언론인]으로 낮추지만, 언론계 선배로서 우리 언론을 향한 조언과, 경륜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들은 되새길 만하다. 먼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기자가 되라는 충고. 임철순은 우리 언론사의 가장 창피한 순간으로 2010년 열린 G20정상회의 폐막식을 꼽는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주었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그 질문권은 중국 기자한테로 넘어갔다). [나를 포함한 요즘 기자들은 질문을 잘 할 줄 모른다. 기자들은 어느새 받아쓰기 글꾼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 틀을 깨는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기자를 본 적이 없다.] 저자는 [기자에게 본질적으로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고 강조한다. [질문은 공격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사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다만 보도는 냉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이번 에세이집의 제목 [손들지 않는 기자들]은 바로 우리 언론의 모습을 압축한 말이다.
저자는 우리 언론의 신뢰 위기를 절감하며, 언론이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기자들이 좀 더 분발해 주길 독려한다. 그는 오래전(육필시대) 편집국에 [기자의 자세를 일깨우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자료로 「영구보존하세」라는 스크랩북이 있었다]고 추억한다. [말도 안 되는 잘못이나 오류, 우스운 기사를 적발해 놓은 스크랩북]으로, 수습기자들의 교육에 유용했단다.
[여기는 적도.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빨간 줄은 없다]로 시작되는 해사 순항부대 동행 취재기로부터 [갈매기 울음소리 까악까악] 등 재미있는 게 참 많았다. 만날 화재 등 사건 사고만 따라다니던 기자가 취재한 대학 총학장회의 기사는 [이날 회의는 3시간 만에 꺼졌다]로 끝난다. 최고 히트작은 이거다. [벙어리 김모 씨가 신병과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씨는 평소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기사를 받은 시경캡은 그 기자를 세워 놓고 [벙어리가 말을 했어? 야 인마, 그러면 그게 기사지, 자살한 게 기사냐?] 하고 놀려먹었다. - 352면, 「가짜 기사, 똥이나 먹어라!」
[보도인지 해설인지 모를 기사와,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 진영의 논리와 주장에 봉사하는 논평]이 쏟아지는 어지러운 언론판이지만, 그럴수록 저자는 언론의 본질을 놓치지 말 것을 주문한다. [민주 공화국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언론의 힘이나 권력은 글로부터 나옵니다. 이 평범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고맙게 새로 확인하면서 기자의 존재 이유와 본분을 마음에 다시 새깁니다.]
우리 시대의 문장가 김훈은 임철순의 글에 대해 [어려운 말을 어렵게 하기는 쉽고, 쉬운 말을 어렵게 하기는 더욱 쉬운데, 어려운 말을 쉽게 하기는 어렵다. 어려운 말을 쉽게 한 말은 어려움의 티가 나지 않는다]고 평한다. 만만한 언어로 쓰였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허투루 읽히지 않는 임철순표 에세이가 이번 『손들지 않는 기자들』 출간을 계기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