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무슨 책 읽으세요]가 안부 인사가 되는 세상
책 읽기로 연결된 39명의 릴레이 주자들
[우리도 이제 뭘 먹는지, 뭘 먹을 건지만 묻고 답할 게 아니라 마음속 허기와 정신의 취향에 대해서도 편히 이야기해 봅시다.] 톡톡 튀는 콘텐츠로 침체된 독서 문화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북클럽 오리진의 인기 코너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를 책으로 만난다. 이 책을 묶은 이는 북클럽 오리진의 전병근 대표.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로 활자 다루는 일에 잔뼈가 굵은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책 예찬론자다.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는 2년 전 신문사를 뛰쳐나와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인 동시에, [무슨 책 읽으세요?]라는 말이 안부 인사가 되는, 전 대표가 꿈꾸는 세상을 한마디로 함축한 표현이다.
2016년 2월 첫발을 뗀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는 인터뷰이가 다음 인터뷰 대상자를 지목하는 추천 릴레이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매번 의외의 인터뷰이가 등장하고(일면식도 없이, 상대에게 사전 양해도 없이 추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배우 박정민으로부터 지목당한 뮤지션 차세정은 [아 정말 무작위로 하는구나……]하며 실감한다), 읽고 있는 책, 추천하는 책 또한 예측불허다. 그렇다 보니 그간 명사들의 독서 이력이나 [우리 시대 필독서]에만 집중돼 온 책 인터뷰와는 다른 결을 보여 준다. 직업 면에서도, 소설가, 건축가, IT 기업 대표, 만화 카페 주인, 뮤지션, 디자이너, 영화 종사자 등 다양한 층위를 포함하고, 책 취향이나 좋아하는 작가 역시 범주화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이번에 출간한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는 소설가 김연수로 시작하는 첫 번째 릴레이, 카카오 대표 임지훈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릴레이를 한데 묶어 총 39인의 인터뷰를 수록했다(39인의 누적 조회 수만 250만이 넘는다). 소설가 장강명, 영화배우 안성기,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영화감독 이준익, 배우 박정민, 가수 김수철 등 친숙한 이름도 있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 저술가, 우리 사회 한켠에서 나름의 커리어와 일상을 가꾸어 가는 보통 사람들도 많다. 저자의 말마따나 [사람들 사이사이에, 일과 삶이 영역 곳곳에 책이 숨구멍처럼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음을 (……) 서로 다른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 책을 매개로 시간과 공감을 넘어 종횡으로 모이고 퍼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첫 번째 릴레이
1. 소설가 김연수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 사연 많은 미녀 이야기에 빠져들었죠
2. 저술가 이종영
박범신의 『당신』, 그 연배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어요
3. 북디자이너 조원식
클로에 크뤼쇼데의 『여장 남자와 살인자』,보고 읽는 내내 행복했죠
4. 만화가 박흥용
김세윤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왜 다들 행복해지려고 하는 걸까요
5. 영화감독 이준익
윤동주의 시는 달을 가리키는데, 다들 손만 쳐다봐요
6. 영화배우 박정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 어느 순간 깊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
7. 뮤지션 차세정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순 없잖아요
8. 뮤지션 한희정
시인 조원규, 그의 시집은 모든 페이지를 접게 됩니다
9. 「무나씨 드로잉」의 작가 김대현
헤르만 헤세의 『요양객』, 그의 맑고 투명한 문체가 그리웠습니다
10.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민
소설가 제임스 설터, 그의 소설을 읽는 즈음 항상 누군가와 이별 중이었습니다
11. 재즈 뮤지션 허소영
조정래의 『태백산맥』, 노랫말처럼 읽히는 전라도 방언의 아름다움
12. 북바이북 대표 김진양
신현만의 『사장의 생각』, 30대 사장에게 필요한 70대 인턴 같은 책
13. 소설가, 에세이스트 임경선
올리버 색스의 『고맙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작별 인사
14. 소설가 장강명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 장편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 준 교본 같은 책
15. 전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조성주
사울 D.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진보적〉라는 자기만족을 경계하며
16. 소설가 손아람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영리하고, 성실하고, 무시무시한 소설
17. 민변 회장 정연순
재일조선인 서경식, 우리 현대사의 풀리지 않는 업보들이 보이죠
18. 영화감독, 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 임순례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 그가 설계하고 실현한 삶이 제겐 가장 완벽해 보입니다
19. 작가,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조선희
강준만의 [한국 근현대사 산책] 시리즈, 역사의 디테일들로 한국사의 길을 닦다
20. 서울문화재단 대표 주철환
김훈의 『공터에서』, 우리에겐 여백과 공터가 필요합니다
21. 「비정상회담」의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 몬디
지금의 나로 이끈 다섯 번의 선택
두 번째 릴레이
1. 카카오 대표 임지훈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 한 사람의 철학이 담긴 책을 좋아합니다
2.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임정욱
댄 샤피로의 『핫시트』, 스타트업 CEO를 위한 아주 현실적인 조언
3. 배달의 민족 대표 김봉진
홍성태의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경영이란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드는 과정
4.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김주환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 그 안에 담겼더군요
5. 바른세상병원 원장 서동원
『스티브 잡스』, 그의 완벽주의와 융합을 배웠습니다
6. 영화배우 안성기
최인호의 『인생』, 남은 날이 적다는 생각에, 다시 꺼내들었어요
7. 가수 김수철
『페터 춤토르 건축을 생각하다』, 눈으로 보는데 귀로도 들리면 그게 명작이죠
8. 경희대 명예교수 도정일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작은 쪽지들에 담긴 치열한 목소리들
9. 방송인 유정아
우르스 비트머의 『아버지의 책』, 스위스 작가한테서 남미의 향기가 납니다
10. 건축가 황두진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 언어라는 재료를 가혹하게 다루는 방식이 건축가를 닮았죠
11. 서울 오감도의 큐레이터 홍수영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어머니를 잃은 작가의 글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12. 소설가 정지돈
장 뤽 고다르의 『고다르 X 고다르』, 선언하듯 내뱉는 무모함과 예언으로 가득 찬 인터뷰
13. 영화감독 홍석재
제임스 엘로이의 『내 어둠의 근원』, 엄마의 죽음을 추적하는 한 작가의 회고
14. 포크 뮤지션 김해원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 극단의 경험에서 끌어올린 삶과 창작의 미학
15. 만화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 대표 이성민
허영만의 『오! 한강』,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화가의 성장기
16. 음식 문헌 연구자 고영
박찬일의 『미식가의 허기』, 음식 문화사를 모르고서야 미식가 행세 해봤자죠
17. 음악평론가 김작가
로버트 힐번의 『존 레넌과 함께 콘플레이크를』,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음악과 인생 이야기
18.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이기용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지친 밤, 몸을 담글 수 있는 욕조 같은 책
추천 도서 모음
저자
전병근
출판사리뷰
각양각색의 독서 체험
책에 등장하는 39인 모두 책을 고르는 방식도, 읽는 습관도 제각각이다. 카카오 대표 임지훈은 책을 써서 얻을 것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그걸로 뭔가 잃을 수도 있는 사람의 책을 신뢰한다고 얘기한다. [저는 인생에 몇 권 안 쓰는 사람들의 책이야말로 정말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 책을 잘못 썼을 경우에 잃을 게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추천 책을 고른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탈리아인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는 랩 가수 조바노티의 열렬한 팬이다. 덕분에 조바노티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탈레반을 주제로 한 주세페 카토젤라의 Il Grande Futuro(위대한 미래)를 읽고 있다고 한다. [제가 믿을 만한 문학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추천하는 책을 보곤 합니다.] 민변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표 정연순 역시, 페이스북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에서 추천받은 베른트 하인리히의 『생명에서 생명으로』를 읽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직업과 연결 지어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다. 음식 문헌학자 고영의 독서는 일반적인 독서라기보다 연구나 공부에 가깝다. [인류학이나 역사학 주제, 특정 역사 주제 전문서를 많이 보게 되는데, 보면서 주석과 레퍼런스를 아주 꼼꼼하게 따라가지요. 저는 원자료를 확인하면서 단행본을 보는 독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번역 준비도 되고, 제가 필요한 분석-해석 능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건축가 황두진도 건축이라는 직업적 관심사를 독서를 연결한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 소설이 있다는 얘길 듣고 김남천의 『경영』(1940)과 『맥』(1941)을 찾아 읽고, 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를 읽고 [그가 한국어를 능숙하면서도 가혹하게 다루는 방식]에서 [건축가가 재료의 통속적인 물성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뜻밖의 사람, 뜻밖의 책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터뷰이가 대체로 의외지만, 유독 낯선 인물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추천하는 책들도 인터뷰이만큼이나 뜻밖이다. 먼저 홍대 주변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인 만화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 대표 이성민. 만화 편집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이 대표는 허영만 화백의 『오! 한강』을 나름 인생의 책으로 꼽는다. 만화 속 주인공 이강토가 최인훈의 『광장』 속 이명준에 비견된다고. 현재 이 책은 절판 상태다. [배달의 민족] 대표 김봉진은 숨은 독서 고수다. 마케팅과 브랜드에 대한 책은 물론, 고전의 다양한 변주들까지 다양한 독서 이력을 자랑한다. 그가 추천하는 책은 홍성태의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이다. 이 책을 통해 김 대표는 회사 경영을 [하나의 인성과 페르소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밝힌다. 배달의 민족만의 독특한 기풍과 키치적 느낌, B급 정서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홍수영 큐레이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황두진 건축 사무소에서 인문적인 자료 조사를 맡아 한다는 그녀는, 자신의 거실 겸 서재를 비정기적으로 서점으로 개방하는 [서울 오감도]를 운영한다. 그녀의 큐레이팅은 도서관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제 나름의 무질서한 책장 분류 방식이 있습니다. 장소성, 건축과 도시, 여행, 사랑에 관한 책, 죽음에 관한 책, 책에 관한 책, 나무와 식물에 관한 책, 실험적인 작업을 했던 작가의 책, 실패한 사람 또는 결핍이 있는 사람에 관한 책……] 큰 수술을 한 차례 경험한 그녀는 요즘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고 있다.
그 밖에 [뜻밖의 책] 명단에 올릴 만한 책으로는 작가 임경선이 추천하는 19금 만화 [시마 과장] 시리즈, 소설가 장강명이 추천하는 『촌놈』(우상호 의원), 소설가 손아람이 무시무시한 작품으로 극찬한 『무기의 그늘』(황석영), 영화감독 홍석재가 만화계의 이언 매큐언으로 치켜 세운 『소년 마법사』(나루시마 유리) 등이 있다. [좋은 책은 우리 주변에 여전히 산재해 있고, 많은 이들이 곁에 두거나 가까이 하려 한다는] 소문, 정말 사실이었다.
그들은 왜 읽는가
인터뷰이의 개성만큼이나 책을 읽는 목적들도 다양하다. 영화감독은 작품 구성을 위해, 배우는 맡은 배역을 더 깊게 연기하기 위해, 음악가와 디자이너는 창작의 단초를 얻기 위해, 경영자는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읽기 위해 책을 꺼내 든다.
영화감독 박준익은 『정약용의 고해』(신창호)와 『다산 정약용 평전』(박석무)을 곁에 두고 읽고 있다. [수많은 어떤 이야기의 보물 창고를 계속 뒤적뒤적하다가 손에 뭔가 꽉 잡히면 그걸 영화화하는] 게 영화 창작자의 일이란다. 영화배우 박정민은 영화 「동주」의 송몽규 역을 확정 받고 촬영에 앞서 한동안 책을 끼고 지냈다. 『윤동주 평전』(송우혜)은 물론이거니와 송몽규 선생이 공산주의에 심취했다는 기록을 보고 『공산당 선언』을 읽었다. 일제 강점기 북간도 서민들의 삶을 알기 위해 관련 역사책들도 구해 읽었다. 에피톤 프로젝트 차세정은 가사 작업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엔 작업실에서 [강제 독서]를 한다. 한 음절의 가사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을 펴기도 한다. [무작정 통독이라도 하다 보면 어떤 단어라든가, 문장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딱 잡힐 때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가사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무나씨 드로잉」의 작가 김대현은 그림을 그릴 때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인문 서적들을 읽다가 흥미로운 생각을 얻게 되면 노트에 적어 놓았다가 그 생각을 이어가며 좋은 구상을 떠올립니다. 주로 문장으로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해 놓고, 그 문장을 어떻게 그림으로 번역해 낼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만큼 저의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의 관계는 밀착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바른세상병원 원장 서동원은 책을 통해 병원 경영의 귀중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의 서가에는 피터 드러커의 『창조하는 경영자』가 꽂혀 있다. 페이지마다 단어만 바꾸면 병원 시스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단다. 최근에는 전기 『스티브 잡스』를 읽고 잡스가 추구한 융합적 사고를 어떻게 의료 현장에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독서 너머의 찰진 인생 이야기
이 책은 독서 릴레이지만, 그렇다고 인터뷰가 책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혹독한 현실 앞에 아슬아슬하게 꿈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생 선배들 들려주는 삶은 그 자체로 귀중한 응원과 위로가 된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군 전역 후 2년간 백수 생활을 했다. 아역 배우로 인기를 얻었지만, 당시만 해도 다시 영화를 할 수 있을지 막막한 생태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저녁 시간을 돈 안 들이고 집에 폐가 안 되게 보낼 수 있을까] 싶어, [저녁에 밥을 먹고 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힌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영화도 보고, 몸도 만들고, 개발새발 시나리오도 쓴 그 시절이 지금의 안성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철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으면 계속할 수 있어요. 자기를 놔버린다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다른 데서 뭘 찾아본다거나 그러면 곤란해요. 뭘 해도 불안한 미래인데, 자기가 준비를 잘하고 있으면 된다고 늘 생각해요.]
가수 김수철 역시 대중음악으로 입문해, 88 올림픽, 2002 월드컵 등 각종 국제 행사의 음악감독과 작곡을 도맡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 뒤엔 나름의 실패도 있다. 우리 소리 현대화라는 목표로 36년간 뛰며 냈던 25장 앨범 가운데 성공한 건 「서편제」 한 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꿈을 돈하고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럴 때일수록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하세요. 그 대신 고생은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거라면 사랑하는 거라면 기꺼이 이겨 낼 수 있을 거예요.].
PD라는 직함이 더 익숙한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조그마한 가게의 다락방에 엎드려 혼자 뭔가 끼적거리던 다락방 소년 시기가 지금 나를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제일 비교육적인 말이 [너 무슨 생각해?]였다고 떠올린다. [저는 학생들에게 인생에서 《모범 트랙》 말고 《모험 트랙》을 타라고 해요. 좀 모험적인 삶을 살라고 권해요.] [좀 혼자 생각하게 뒀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겐 여백이, 공터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책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독립재
책을 읽을 시간도, 마땅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고 토로하는 요즘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의 독서 체험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책만이 줄 수 있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 분명 존재한다고.
소설가 정지돈 말한다. [굳이 이유를 만들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 다만 생각을 구조화하고 정리하는 데 활자화된 언어만큼 효과적인 건 없습니다.] 음악가 김해원은 고백한다. [인터넷상의 짧은 글을 읽는 것, 정확히 이야기해서 찾아서 읽는 글이 아니라 눈에 보여서 확인하는 정보들은 확실히 소모적입니다. 이것들은 나중에 제 생각과 상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단순히 증발해 버린 시간을 확인하게 할 뿐입니다. 문장의 구조를 제대로 갖춘 글쓰기와 책이라는 몇십 쪽에서 몇백 쪽 분량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독서는 그런 면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감독 홍석재도 독서만이 줄 수 있는 질적 도약에 주목한다. [책과 블로그 포스팅이 다른 건 사실상 양의 차이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양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우리가 얻는 경험이 질적으로 도약하기도 해요.]
독서가 주는 고양감, 정서적 감동을 한차례 느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을 쉬이 잊지 못한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는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정신을 불안한 상승의 높이 앞에 서게 하는 일, 정신이 정신에 도전하게 하는 일입니다. 독서가 창조적 대화라는 주장은 그런 의미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독서인이 희귀종이 되어 가는 시대에, 우리가 새삼 책의 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전한 몰입을 통해 책의 감동을 맛본 사람들에게 책은 [대체재]가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독립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