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다음 세대의 페미니즘
국내에 소개된 수많은 페미니즘 서적들과 비교해 보면, 2015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평범해 보인다. 거창한 내용도, 유명 저자도, 뜨거운 찬사도 없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 보면, 책의 모든 면면이 소중하다.
페미니즘은 이제 연령과 성별을 뛰어넘는 화두가 되었지만, 누구에게나 발언권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칠고 미숙한 젊은 여성들, 10대 학생들도 나름의 문제의식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나이 든 여성, 유색인 여성,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여성, 장애 여성, 트랜스,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무성애자, 퀴어, 간성 여성, 뚱뚱한 여성, 성노동 여성들에게도 나름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북돋고, 발언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다.
부제가 말해 주듯이, 책은 30대 이하 25명의 글을 모은 앤솔러지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 사회적 배경을 가진 평범한 젊은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를 표방하게 되었는지를 보인다.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할까? 페미니즘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이 된 현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몽타주를 제시한다. 각각의 글 말미에는 이미 잘 알려진 페미니스트들의 글과 코멘트를 부록처럼 달았다. 다음 세대의 발언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일종의 응원인 셈이다.
목차
서문
여자치고 잘했다는 말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
페미니스트는 내 운명
페미니즘을 향한 나의 여정
핫스퍼:?슈퍼우먼
일어나서 참여하라
나는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가
우리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른다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위한 선언문
이건 페미니스트의 호들갑이 아니다: 여성을 침묵시키는 언어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른다
우리 세대의 이야기
로티 카마나:?어떤 생존담
나는 팔꿈치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른다
전형적인 엔지니어
이슬람이 내 페미니즘이요, 페미니즘이 내 이슬람이다
천장을 응시하며: 예스/노 너머의 문제
인권법을 지켜 내야 할 이유: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아이들과 어머니들을 위해
당신은 스트리퍼거나, 제모를 합니까?
연결이 전부다
까다롭고 사귀기 어려운 연애 칼럼니스트
쓰레기처럼 굴 권리
착한 여자는 이제 안녕
말이 뭐라고
나는 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르는가
남성이 페미니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필진 소개
글 저작권
도움 주신 분들과 글
옮긴이의 말
저자
빅토리아 페프
출판사리뷰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른다
어떤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될까?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데 어떤 특별한 조건이라도 있다는 듯이. 페미니즘은 하나의 [라벨label], 낙인처럼 여겨져 왔다. 고학력 중산층 여성의 전유물로, 그들의 이익 추구를 위한 전략적 도구로 치부된다. 또 페미니스트는 [브래지어를 불태우고 남성을 혐오하며 모든 종류의 섹스가 강간이라고 믿는 사람]으로 매도된다. 그렇다 한들 뭐가 문제일까마는, 이러한 부정적 라벨은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를 자청하기 어렵게 만든다.
서문에서 강조한 대로, 이들은 [페미니스트로 태어난 게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된 것이다]. 많은 필자들이 라벨의 제약을 이야기한다. 처음에 그들은 페미니스트를 싫어하고 결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온갖 제약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른다. 이들이 털어놓는 삶의 경험에서 분명히 느껴지듯, 페미니즘은 사상이 아니라 생존의 도구다. 페미니즘이 없다면 이들은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할 허가를 받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이들의 삶에 〈산소처럼, 식수처럼〉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들이 아직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부르길 꺼린다. 이 책은 묻는다. 대체 페미니즘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여성 해방〉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투표할 자유가 있다는 것? 당신이 남편에게 종속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 동일한 임금을 위한 운동? 라벨의 제약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결국 여성들이 그들 삶의 필수 요소로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임을 확신시킨다.
차이의 수용
이 책은 특정한 〈유형〉의 페미니스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필자들은 고유한 목소리와 배경과 감수성을 지녔다. 그들 대부분은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갈 법한 [보통 여자]다. 법조인, 회사원, 엔지니어, 작가, 공연 예술가, 카피라이터……. 그들은 서로 결이 다른 삶을 살고 있기에 여자로, 또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에 관해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가장 명확한 젠더 폭력인 산(酸) 테러 생존자들에 관한 글과, 뚜렷한 경계를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 데이트 폭력에 대한 글은 폭력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하게 해준다. 강하고 성공한 여성에 대한 우상화가 어떻게 여성을 다시 억압하는지 예리하게 통찰하는 사람도 있고, 인권법 이야기를 하는 법조인이 있는가 하면, 교내 페미니스트 클럽 이야기를 하는 학생도 있다. 히잡을 쓰고 벗는 것의 정치학과, 이민자로서 겪은 두 사회의 페미니즘에 대한 글은 지금 여기에 얽매인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페미니즘에도 주류가 있음은 분명하다. 주변부가 때로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것도 분명하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이들이 특히 주목하는 부분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안 들어 본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은 [차이를 적대하기보다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사회뿐 아니라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퀴어, 흑인, 장애인, 빈곤층, 부자, 트랜스 젠더, 여성, 남성, 노동자, 부모, 운동가, 학생으로서 기를 쓰고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이것이 더 포괄적인 페미니즘을 위한 유일한 열쇠임을 분명히 한다.
교육의 필요성
특히 주목되는 것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학생들의 목소리다. 16세의 준 에릭어도리, 18세의 야스 네카티, 고등학생인 피비 해밀턴존스, 대학생 마이사 하크, 지난 유니스, 타니아 슈는 누구보다도 절실히 페미니즘을 필요로 한다. 「여자치고 잘했다는 말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에서 하자르 우들랜드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처음 흔든 것이 페미니스트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녀가 내면화된 여성 혐오에 의문을 제기한 첫 발걸음이었다. 청소년은 기성 사회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예민하게 느끼는 세대다. 동시에 부모와 교사의 말에 전적으로 휘둘리는 세대다.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할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2017년 9월 인터뷰에서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가 네티즌으로부터 비난 공세를 받고 나아가 보수 단체에서 고발까지 당한 최현희 교사의 사례는 극명한 예다. 일각에서는 그것을 〈사상 교육〉이라고 불렀고, 남자 아이들에 대한 차별이라고도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될까? 세상이 무너질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어리다고 해서 생각과 목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들이 생각하고 발언하도록 독려할 때, 얼마나 쉽게 훌륭한 페미니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비단 학생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 책의 많은 필자들 역시 주변의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배웠다. 아직 페미니스트가 아닌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도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그러한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