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세기 역사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새로운 역사책이자 천재적인 예술 작품!
체코의 작가 파트리크 오우르제드니크의 대표작 『유로피아나: 짧게 쓴 20세기 이야기』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유로피아나』는 의도적으로 길게 이어지는 독특한 문체로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종횡무진으로 가로지르며 과거의 역사적 기억들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화장실 휴지의 발명부터 인종 학살의 끔찍한 참상까지, 20세기 역사의 크고 작은 희비극이 병치되며, 일견 무덤덤하게 이어지는 문장들 속에 작가 특유의 정교한 조롱과 유머, 날카로운 통찰이 섬세하게 녹아 있다.
파트리크 오우르제드니크는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체코 작가 중 한 명으로, 이 작품을 통해 열린책들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유로피아나』는 현재까지 3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며, 체코의 공산주의 붕괴 이후 출간된 작품 중 가장 많은 나라에서 읽힌 체코 문학으로 자리 잡았다.
목차
이 책은 목차가 없습니다.
저자
파트리크 오우르제드니크
출판사리뷰
화장실 휴지의 발명부터 인종 학살의 끔찍한 참상까지
20세기 역사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새로운 역사책이자 천재적인 예술 작품!
20세기는 어떤 세기였을까? 21세기의 초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난 20세기는 다른 어떤 세기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의 삶의 양식의 대부분을 형성해 온 20세기의 역사적 기억들을 파고드는 일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문화적 지층을 들여다보는 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인류가 역대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하고, 삶의 양식을 바꾼 획기적인 발명품들이 개발되었으며, 최초로 인간이 달에 착륙하는 등, 인류 역사상 가장 눈부신 과학적·산업적 발전을 이룩한 세기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론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전쟁인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거대 규모의 끔찍한 인종 학살이 자행되며 인간의 적나라한 야만성이 드러난 [미친 세기]였기도 하다.
『유로피아나』는 20세기의, 특히 20세기 유럽의 역사적 기억들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역사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역사적 진실과 픽션이 사실상 동의어라고 보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이 작품은 문학 작품으로 분류되며, 역사적 사실의 단편들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해 낸 한 편의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다. [짧게 쓴 20세기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 한 세기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시대 구분, 연대기(年代記)적인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뜯어 쓰는 두루마리 휴지의 발명부터 대규모 인종 학살의 끔찍한 참상까지, 중요한 통계 자료에서부터 어느 이름 모를 개인의 사소한 일화까지 20세기 유럽 역사의 크고 작은 희비극이 종횡무진으로 어지럽게 병치된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일화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여 나열할 뿐 주관적 의견을 덧붙이지 않지만, 건조하게 이어지는 어조 속에 녹아 있는 특유의 섬세한 풍자와 고발, 유머러스한 냉소를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리고 공중에는 비행선과 비행기가 날아다녔고 이 때문에 말들은 엄청나게 겁을 먹었다. 그리고 작가와 시인들은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궁리하다가 1916년에 다다이즘을 발명했는데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미친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며 러시아 사람들은 10월 혁명을 발명했다. 그리고 군인들은 목이나 손목에 이름과 소속 부대 번호를 적은 표를 달아서 누가 누구인지 조문 전보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표시했지만 폭격 때문에 머리나 팔이 날아가서 군번표를 찾을 수 없으면 군 지휘부에서는 이들을 무명의 용사라고 선언했고 큰 도시에서는 이들이 잊히지 않도록 영원히 꺼지지 않는 추모의 불을 피웠는데 왜냐하면 불은 아주 오래된 과거의 기억이라도 계속 간직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인 전사자를 전부 이어 붙이면 2681킬로미터에 달했고 영국인 전사자는 1547킬로미터 독일인 전사자는 3010킬로미터에 달했는데 이것은 시신의 평균 길이를 172센티미터로 쳤을 때의 수치이며 전 세계적으로 1만 5508킬로미터의 병사들이 전사했다. (본문 8쪽)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비행기들과 잔뜩 겁을 먹은 말들의 광란적인 이미지, 미친 것 같은 세상을 조롱했던 다다이즘 작가들과 세상을 새롭게 바꿔 보길 꿈꿨던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가들, 폭격 때문에 머리와 팔이 날아가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익명의 군인들,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도시마다 하늘로 아득하게 피워 올린 추모의 불의 연기, 전쟁에서 죽어 나간 전사자들의 수를 킬로미터로 계산하는 기묘한 통계 등은 당대의 어둡고 부조리한 역사를 각각 다른 층위로 어지럽게 제시하지만, 이것들이 병치되고 어우러지며 그 부조리함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강렬한 잔상을 만들어 낸다. 혹은 [모든 것이 다 미친 것 같]은 세상을 그려 낸 다다이즘 화풍의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의 독창적인 스타일은 이처럼 역사의 단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며 변주해 내는 독특한 문체의 힘에서 기인하다. 이 작품의 문체는 언뜻 보기보다 훨씬 더 섬세하다. 같은 단락 안에서도 주된 소재와 의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태도가 바뀐다. 길고 복잡한 역사적 사건의 기승전결을 서너 줄짜리 한 문장 안에 간단히 압축해 버리는가 하면, 아주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사실들을 편집증에 걸린 듯 자세하게 설명하며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한다. 가령 작품에서 자주 열거되는 20세기의 수많은 철학과 예술 사조, 과학 이론들은 그 자체로 보면 진지하고 논리적이지만, 장황한 전문 용어들을 긴 만연체로 어지럽게 늘어놓는 화자의 어조에 의해 우스꽝스러워지고, 온갖 이론과 이념이 난무하며 허황된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20세기의 풍경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독특한 어조와 목소리를 가진 이 작품의 화자는 대체 누구일까? 이에 대해 오우르제드니크는 확정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답하며 오히려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킬 뿐이다. [화자는 외계의 존재일까요? 몹시 고약한 추론을 전개하는 교수님? 페퀴셰 없는 부바르, 부바르 없는 페퀴셰? 루소가 말하는 《선량한 미개인》일까요? 다시 살아난 캉디드? 지능 지수가 좀 높은, 포크너의 벤지? 미쳐 돌아 버린 역사학자? 나 개인적으로는 결코 만난 적 없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나도 몰라요.]
화자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 문체에 담긴 독특한 어조는 수많은 광기와 부조리로 점철된 20세기 역사의 모습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이 작품만의 독창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정보라 선생은 작품의 이러한 문체적 특징을 충실히 살려 내어, 문장을 끊지 않고 최대한 원문의 [길고 정신없는] 문장들의 어조를 원래대로 전달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역사의 희비극을 보여 주는 만화경
잔혹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인간 군상의 파노라마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이 작품에서 각종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인간사의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희극성을 띠지만, 카메라를 당기듯 가까이서 들여다볼 때의 역사 속 개인들의 삶은 시대의 비극이 낳은 씁쓸한 슬픔들을 보여 주곤 한다. 어리석기에 우스꽝스럽고, 그렇기에 슬프고 잔혹하기도 한 역사 속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 조각조각 흩어진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이어진다. 일견 건조한 말투로 스쳐 지나가듯 이야기되지만,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희노애락만으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이끌어 낸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 속에서 지쳐 버린 병사들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물물 교환을 위해 고양이에게 담배를 묶어 적의 참호 속으로 보내는 그들의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전쟁이라는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의외로 태평해 보이기도 한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목욕실인 줄 알고 가스실에 빽빽하게 입장하던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팔을 들어 올렸다는 짧은 장면은, 그 순간의 사람들에겐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의 하나였음에도, 이를 보는 독자들에게 야만적인 역사가 낳은 가슴 아픈 비극을 절감하게 한다. 전쟁 중 어느 이탈리아 병사가 자기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던 [내 마음속에서 좋았던 것이 모두 점점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날이 갈수록 확실해진다]라는 짧은 글귀는 이 작품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며, 시대의 잔혹함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상실되어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환기시킨다.
이 작품에서는 서사적 기승전결, 줄거리와 대단원 같은 소설의 일반적 특징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처럼 소설적인 진실을 담아내는 역사의 단편들, 다양한 역사적 아이러니들을 포착해 낸 순간들로 가득하다.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틈새에서 어떤 이의 생의 단편을 접했다가, 그를 놓쳤다가, 몇 쪽쯤 지나서 다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도 있다. 마치 미끄러져 가는 세계의 조각들이 정신없이 표류하고, 다시 부유하며 떠오르기도 하는 듯한, 기묘한 풍경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는 [역사]라는 것에 대해 매우 거창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만, 이 작품은 이 어지럽게 흩어진 작은 조각들이 바로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 작품 속에 담긴 역사관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겠으나, 이 작품을 번역한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작품 안에 묘사된 순진하거나 태평하거나 잔혹하거나 절박하거나 냉소적이거나 환상에 몰입해서 이성을 잃었거나 절망에 빠졌거나 냉정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다정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인간의 모습은 모두 진실하다. 인간의 삶이란, 그리고 역사란,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인간의 순간순간을 모아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계속해서 역사를 만들어》 가겠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말과 글로 전부 묘사할 수 없고 인간의 기억 속에 전부 담아 둘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언론평 및 추천사
희비극이 교차하며 시인들을 부러움에 떨게 하고, 모두의 눈물을 뽑아내는 한 편의 산문시. - 「빌리지 보이스」
이 작품의 화자는 웃기면서도 과학적이고 유치하면서도 풍자적이며 괴상하다. 『유로피아나』는 무척 새로운 역사책이면서 천재적인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 「시카고 리뷰」
『유로피아나』엔 20세기의 어두운 역사가 확실하게 담겨 있다. 강력 추천한다. - 「컴플리트 리뷰」
브래지어의 발명, 바비 인형, 사이언톨로지, 우생학, 인터넷, 전쟁, 집단 학살과 나치 수용소 등 다양한 주제와 사건들을 아우르는 『유로피아나』는, 놀랍도록 흡인력 넘치고 두렵기까지 한 거침없는 모노톤의 어조로 전개된다. - 「뉴욕 타임스」
유로피아나는 수천 권의 역사책들의 광기 서린 백과사전식 압축판처럼 읽힌다. 첫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게 구축된, 주관적인 책이다. (……) 웃음보가 터질 것을 보장한다. 또한 아마 씁쓸함과 함께, 강렬한 인상이 남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굉장한 책이다.
- 베르나르 키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