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한 해
“아버지는 다음 주 목요일을 죽음의 날로 정했다”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수명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오늘날, 그 이면에서는 다른 고민들이 자라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를 고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살고 있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닌 듯하다. 스위스 사회에 죽음의 자유로운 결정이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논란을 촉발시킨 이 책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에서 저자 윌리 오스발트는 아버지의 자유죽음에 직면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맞닥뜨린다. 늙고 병들어 품위를 모두 잃더라도 끝내 죽지 않고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살아 내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까? 인간에게 스스로 죽을 권리 같은 것은 없을까? 자유죽음을 선택한 아버지와 함께했던 마지막 한 해를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어조로 기록하고 있는 저자의 대답은 자명하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죽기로 결심한 자의 가족은 이러한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죽음은 가족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는가? 조력 자살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스위스라고 해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우리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인륜은 이러한 상황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러나 윌리 오스발트는 그 어떤 금기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솔직한 자세로 아버지가 자유죽음을 생각한 순간부터 이를 결정하고 마침내 실행으로 옮기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 전 과정을 감동적으로 기록한다. 삶과 죽음,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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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윌리 오스발트
출판사리뷰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화해,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인간에게 스스로 죽음을 택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는 있지만, 이 책은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갈등과 화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명망가 아버지와 그 그늘에서 힘들어하는 아들. 하지만 이제 아버지는 일에서 은퇴한 지 오랜, 늙고 병들어 지친 노인일 뿐이다. 인생을 충분히 맛본 노인은 이제 삶에 포만감을 느끼고 어떻게 삶의 끈을 놓을지 궁리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완고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아들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기 생각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위는 위이며, 아래는 아래일 뿐이라고 아버지는 늘 강조했다. 머리가 배를 다스리지, 그 반대는 아니라고도 했다. 내가 정작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슬그머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도였다. 늘 당신의 가치 기준으로 내 인생의 성공 여부를 가늠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능력으로 거두는 성과는 아버지가 무의미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기는 분야에서만 얻어졌다. 이렇게 살아도 좋은 것인지 하는 회의와 불안이 늘 따라다녔다.” “나는 아버지를 향해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이해할 수도 없고,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어차피 집에 있는 일도 없으니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나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뺨 위로 눈물을 줄줄 흘렸을 뿐이다. 아버지는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나는 집을 뛰쳐나가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가까운 연못으로 달려갔다. 깊은 물이 나에게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언제나 철부지였다.
그러나 갓 아흔을 넘긴 아버지는 삶에 포만감을 느낀다. 아버지는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삶에 진저리를 치며 스스로 죽을 결심을 하고 조력 자살 단체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평생에 걸쳐 갈등하던 아들에게 도움과 조언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죽음의 날을 정한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다음 주 목요일에 스스로 목숨을 거두어들이겠다고 말한다. 스스로 죽겠다는 아버지의 결심을 가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죽음의 날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아버지는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의 약을 들이킨다.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젊은 시절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잠이 든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죽음의 자유로운 결정이라는 문제
존엄사와 안락사, 그리고 조력 자살 같은 용어들은 더 이상 낯선 용어들이 아니다. 스위스의 조력 자살 단체 엑시트Exit가 공중파에서 소개된 바 있고, 독일과 영국에서 스위스로 자살 여행을 떠난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9년 ‘김할머니 사건’을 통해 존엄사와 안락사, 연명 치료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곤 했다.
그리고 최근 다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의 뇌종양 말기 여성 브리트니 메이너드가 SNS를 통해 존엄사를 하겠다는 사실을 알리고, 또 이를 실제로 실행으로 옮기면서 논란은 증폭되었다. 여론은 크게 ‘스스로 죽을 권리’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주장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것이 품위 있는 죽음인지, 자살에 불과한 것인지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현재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로는 네덜란드, 벨기에 등이 있고, 미국에서는 오리건, 워싱턴, 버몬트, 몬태나, 뉴멕시코 등 5개 주가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노년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앞으로 더욱 큰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만 해도 노인 인구와 노인 자살률, 노인 빈곤층 등이 모두 급증하는 추세에 있다. 인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평생 쓰는 의료비의 3분의 2를 쓴다는 통계도 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른 노년층 환자들의 고통 못지않게 이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심리적, 경제적 고통 또한 크다. 노년의 죽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의료 기술의 발달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윌리 오스발트 또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접하게 되는 딜레마에 대해 말한다. “우연은 일체 배제된 죽음. 이런 사무적인 처리는 한 인간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가눌 수 없는 고통, 호흡 곤란, 중환자실에서 벌어지는 요란함이라고 해서 이 순간에 더 알맞을까?”
윌리 오스발트의 아버지 하인리히 오스발트에 대하여
저자 윌리 오스발트의 아버지 하인리히 오스발트Heinrich Oswald(1917~2008)는 스위스의 유명한 전문 경영인으로, 스위스 군대의 개혁위원회를 맡아 군의 현대화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1941년에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43년에 특허권 전문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그해 베른의 경제부 관료가 되어 1946년까지 근무했다. 이후 식료품 전문 대기업 크노르에 입사해 인사 책임자, 구매 및 수출 책임자, 마케팅 이사 등의 직책을 거쳐 1966년에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그리고 1972년부터 1983년까지는 스위스 최대의 미디어 기업 링기어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특히 스위스 군대의 개혁위원회를 맡아 군대의 고착된 위계질서를 과감하게 혁신한 업적 덕분이다. 1984년에 은퇴했으며, 2008년 3월 6일 조력 자살 단체인 엑시트Exit의 도움을 받아 자발적으로 인생과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