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떠돌이를 자처하고 진하게 경험하며 온몸으로 삶을 돌파해 낸 이윤기,
새롭게 태어난 그의 첫 장편소설
1994년 세 권으로 출간되었던 이윤기의 첫 장편소설이 묵직한 한 권이 되어 재출간되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디자인과 함께, 문학 평론가 황현산과 이남호, 시인 배문성, 출판디자이너 정병규 등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의 발문이 덧붙었다. 『하늘의 문』은 인간의 삶과 죽음, 종교의 본질을 파고든 묵직한 소설인 동시에, 이윤기의 경험과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내면의 고백이다. 한국 전쟁 시기의 어린 시절과 월남전 참전, 연좌제에 희생된 개인의 고통 등 뒤틀린 민족사와 맞물린 전개 속에서, 그는 종교와 신화에 대한 오랜 공부의 산물을 기록하며 자신만의 풍부하고 살아 있는 언어로 자아와 구원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굴곡진 이승의 삶에 평생 안주하지 못했던 영혼의 응어리를 게워 낸 이윤기 자신의 이력이자 사색이며 잠언집인 셈이다.
작중화자 이유복의 삶의 궤적은 이윤기의 그것과 맥을 같이한다. 스스로를 자유를 구속당하거나 긴 약속에 붙잡혀 있는 것을 몹시 견디기 어려워하는 어떤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복은, 한곳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떠돈다. 월남전 체험, 문필 생활, 미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방랑기 속에서 이유복의 내면이 변화하고 깨우침을 얻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은 곧 이윤기의 삶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윤기가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가며 깨달은 인생의 지혜를 알게 된다.
긴 호흡을 가진 이 소설 속에는, 몇 편의 중편소설과 단편소설이 숨어있다. 이들을 감칠맛 나게 들려주는 데에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이유복, 그리고 이윤기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철학자나 신화학자가 아닌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인류사의 근원에 깃든 온갖 이야기는, 초월적 공간인 문으로 수렴한다. 이윤기의 언어의 특징인, 보석처럼 빛나는 생생한 우리말 또한 이야기의 한 축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준다. 자전적 요소와 민족사가 맞물린 전개, 그리고 삶 속에서 체득한 지혜와 평생 공부해온 것의 결실이 섞여 거대한 사유의 장이 된 이 소설은, 초판 이 발간된 지 18년만에, 그리고 이윤기의 영면 2년 만에 다시 자아와 구원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목차
제1부 바람개비 제2부 가설극장 제3부 패자부활 작가의 말 : 변역을 찾아서 이윤기가 있었다 ┃ 황현산 이윤기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 ┃ 배문성 똥폼의 싸나이 이윤기 ┃ 이남호 『하늘의 문』을 재출간하며 ┃ 정병규 이윤기 연보
저자
이윤기 (지은이)
출판사리뷰
번역가이자 신화 연구가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던 고(故) 이윤기의 첫 번째 장편소설 『하늘의 문』이 그의 사망 2주기를 기념하여 열린책들에서 재출간되었다.
『하늘의 문』은 인간의 삶과 죽음, 종교의 본질을 파고든 묵직한 소설인 동시에, 이윤기의 경험과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내면의 고백이다. 한국 전쟁 시기의 어린 시절과 월남전 참전, 연좌제에 희생된 개인의 고통 등 뒤틀린 민족사와 맞물린 전개 속에서, 그는 종교와 신화에 대한 오랜 공부의 산물을 기록하며 자신만의 풍부하고 살아 있는 언어로 자아와 구원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굴곡진 이승의 삶에 평생 안주하지 못했던 영혼의 응어리를 게워 낸 이윤기 자신의 이력이자 사색이며 잠언집인 셈이다. 문학 평론가 황현산, 이남호와 시인 배문성, 출판 디자이너 정병규가 발문을 붙여, 영면 후에도 수많은 인문서와 문학 작품의 매 페이지에서 숨 쉬고 있는 문학계 거장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냈다.
오는 10월 23일(음력 9월 9일) 경기도 양평에 있는 이윤기의 옛 작업실에서는 중양절을 맞아 추모회 겸『하늘의 문』의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가족들과 더불어, 이윤기가 이승에서 인연을 맺었던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떠돌이를 자처하고 진하게 경험하며 온몸으로 삶을 돌파해 낸 이윤기,
그가 쓰고 번역한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
『하늘의 문』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이윤기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개인적 경험과 소설적 허구 사이에 위치한 이 글은 나 자신과 내가 지어낸 인물의 공동 체험담」이라고 밝혔듯이, 『하늘의 문』은 그의 자전적 요소와 더불어 삶 속에서 체득한 철학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작중 화자 이유복은 스스로를 「자유를 구속당하거나 긴 약속에 붙잡혀 있는 것을 몹시 견디기 어려워하는 어떤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또 작중 인물의 입을 통해 「일상을 깨뜨려 긴장을 얻고 싶어 하는 자, 보다 나은 존재를 획득하려고 떠도는 자」로 묘사하기도 한다. 실제로 화자 이유복의 성장기부터 월남전 체험, 문필 생활, 미국으로 일본으로 이어지는 방랑기는 이윤기 자신의 인생과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한곳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떠돈 그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유복 내면의 흐름과 깨우침 또한 이윤기의 그것과 맥을 같이한다. 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학을 공부하다가 종교적 도그마에 염증을 느껴 대학 공부를 포기하지만 전쟁터 같은 세상과 인생과 관계 속에서, 그리고 실재하는 전쟁 속에서 종교와 자아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이유복의 여정은 작가 이윤기가 온몸으로 부딪혀 살아 내며 깨달은 인생의 지혜를 전한다. 체험으로 완성된 이윤기식 「혼자 서는 철학」을 통해 독자는 신과 인간, 삶과 죽음, 사랑과 용서의 개념을 새롭게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지닌 의견과의 부대낌을 통하여 자기 의견을 성숙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의심한다. 사람들의 모듬살이에 어울리다 보면 기묘하게도 자꾸만 복화술이 늘어 가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어진다. 복화술은 선문답이 아니다. 모듬살이에 어울릴 때마다 만나게 되는 수많은 복화술사들은 나를 얼마나 골나게 했던가.
나는 어떤 습관에 길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자리에 길들어, 내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 자리에 적당하게 들어맞게 되어 버리는 것을 나는 견디지 못한다. 버릇 듦은, 내 세계가 나날이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이렇게 되면 나날을 전혀 다른 삶으로 살고자 했던 나는 재미가 없어진다.군대에서 여러 차례 체험했듯이, 하나의 조직 정비가 완료된 체제에서 도망쳐 가장 만만한 조직을 찾아 나가면 오래지 않아 그 만만한 조직 역시 하나의 체제가 되어 체제의 이름으로 내 목을 조르고는 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한다. 괴팍하다는 비난이 나는 두렵지 않다.
본문 741면
이야기의 원류를 찾아 평생을 헤맨 사람이 펼쳐 놓는 백과사전적 지식
『하늘의 문』은 드물게 긴 호흡을 가진 지식의 소설이다. 몇 편의 중편소설과 단편소설이 숨어 있는 이야기의 보고이기도 하다.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이윤기는 자신이 독학으로 체득한 온갖 범위의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역시 신화와 종교에 대한 그만의 해박한 지식일 것이다. 고전어를 배우기 위해 신학대학교에 입학했을 정도로 신화학과 언어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남달랐고 이는 그가 번역한 책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가는 철학자나 신화학자가 아닌 「이야기꾼」 이유복의 모습으로 인류사의 근원에 깃든 온갖 이야기를 전한다. 이후 그 자신으로 인해 우리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기독교와 불교의 잠언, 중국의 노장 철학, 인도의 우파니샤드도 등장한다. 그 모든 신화와 종교의 세계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지만 초월적 공간으로 나아가는 「문」이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나누어 갖는다는 점, 그 「문」들은 하나의 진리를 가리키는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점을 발견하며, 이윤기는 성속(聖俗)의 의미를 새롭게 끌어안는다. 그의 안내에 따라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담은 신화와 상징의 암호를 풀고, 또 그 암호들이 옛 시인들의 시구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모습을 바꾸는 과정을 즐기는 동안 독자 또한 「하늘의 문」으로 연결되는 「사다리」의 이미지를 발견할 것이다.
세상이 사막 같아 보이던 시절, 수많은 빈 들을 지나서 이른 그 세상마저 사막 같아 보이던 시절에 나는 신화와 고대 종교를 만났다. (……) 사람들은 분석되지 않는 꿈도 꾸고, 유치한 신화시대의 이름도 끌어다 쓰고 싶어 하고, 프리즘이 발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뛴다고 하고, 이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읊조리기도 한다. 더러는 이로운 것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기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술에 취하기도 하고, 더러는 우상인 줄을 훤하게 알면서도 겨레붙이의 제의에 참례하여 하늘과 땅이 열리던 아득한 때의 그 시간을 경험하면서 신화의 시대로 회귀해 보고 싶어 한다. (……) 그 까닭이 나는 궁금했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어느 날 문득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던 것을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사념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 뮈토스에는, 뮈토스 이외의 어떤 목적도 없다. 아름다우면 그만이고 진실하면 그만이다. 뮈토스에 고여 있는 아름다움과 사랑과 진실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고 믿음의 대상이다. 여기에는 참과 거짓의 경계가 없다. 아름다움과 믿음이 있을 뿐이다. 뮈토스는 로고스로부터 논증의 임상적 증거를 빌지 않는다. 종교는 과학으로부터 임상적 증거를 빌지 않는다.
여기에서 뮈토스는 대뜸 종교의 자리로 뛰어오른다.
본문 799~800면
그의 상상력 안에서는 신화 속의 존재들과 동서양 역사상의 모든 영웅들, 무훈담이건 소설이건 온갖 서사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가 생애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같은 자격으로 동일한 공간에 모여 있었으니, 그보다 더 밀도 높은 공간을 소유한 정신을 나는 끝내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문』의 어느 페이지를 열어 보아도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그의 타임머신은 그때부터 가동 중이었다.
황현산(문학 평론가)
언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해박한 이해가 빛나는 작품
『하늘의 문』의 언어는 국어사전보다 풍부하고 생생하다
『그리스인 조르바』, 『장미의 이름』 등 「번역가」 이윤기의 작업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말을 다루는 그의 탁월한 솜씨일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가」 이윤기의 언어는 어떨까. 그가 구사하는 언어와 표현은 1천 페이지가 넘는 『하늘의 문』 전체에 걸쳐 아름답게 빛난다. 사전에 갇혀 죽은 말이 아니라 일상에, 저잣거리에, 지방에 살아 있는 우리말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성격과 배경과 상황에 맞게 변화하고 달라지는 언어들이 각각의 등장인물을 새롭게 만들고 작품으로의 몰입도를 높인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그렇지만 낯설지 않은 이윤기의 언어와 표기법, 토속적인 표현들이 『하늘의 문』에는 그대로 살아 있다. 언어와 기호에 천착했던 이윤기는 우리말은 물론 영어, 라틴어, 일본어를 활용하여 가장 알맞은 곳에서 가장 적확한 표현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이야기의 원류를 찾듯이 단어의 원류를 찾아 가는 과정 또한 흥미롭다. 작품 속에서, 그는 모국어를 비롯해 그 자신이 능통했던 외국어와 아프리카의 부족 언어까지 언급하며 그 기원과 공통분모를 찾아내며, 동시에 번역과 창작을 대하는 스스로의 자세를 드러낸다. 이윤기가 발표했던 길고 짧은 글들이 각각 지류들이라면 그 큰 줄기와 본류가 곧 『하늘의 문』이며, 번역하여 소개해 온 굵직한 작품들의 근거도 바로 『하늘의 문』 안에 있다.
윤기 형이 말을 사용할 때는 그 말에 부수적으로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회적, 어원적 의미들을 잘 활용한다. 다르게 말하면, 어떤 말의 함의에 대해서 남달리 능통하다. 윤기 형은 이야기를 할 때 어떤 말이 지니고 있는 생활이나 아우라를 적극 활용하여 의미를 전달한다. 특히 말 속에 담겨 있는 인생론을 활용하는 데 재주가 있다. 이런 말재주는 그의 글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윤기 형의 수필과 소설의 문체는 다분히 구어체적 성격이 강하다. 윤기 형의 말투는 그대로 그의 문체가 된다. 인생의 굴곡이 그대로 담겨 있는 실생활의 말을 그대로 글로 옮김으로써 그의 글은 인생을 담게 된다.
이남호┃문학 평론가
첫 출간 후 18년, 영면 후 2년 만에 다시 만나는 『하늘의 문』
1994년 『하늘의 문』이 처음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을 때, 사람들은 「번역가」 이윤기의 「첫 장편소설」에 주목했다. 2012년 새롭게 출간된 『하늘의 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사유(思惟) 이다. 『하늘의 문』의 재출간은 이윤기가 생전에 희망했던 일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생전에는 재출간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으나 2012년, 정병규의 디자인으로, 세 권이었던 책이 묵직한 한 권이 되어, 그와 연을 맺었던 이들의 발문이 덧붙어, 『하늘의 문』이 다시 독자 앞에 나온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이 시대에, 「더러는 이로운 것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기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술에 취하기도 하고, 더러는 우상인 줄을 훤하게 알면서도 겨레붙이의 제의에 참례하여 하늘과 땅이 열리던 아득한 때의 그 시간을 경험하면서 신화의 시대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라면 그 누구보다 다시 태어난 『하늘의 문』을 반가워할 것이다.
그가 타계를 하고 나서, 어느 날 나는 『하늘의 문』 초판이 94년에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 2004년은 『하늘의 문』이 나온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때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후에도 윤기는 띄엄띄엄 나에게 『하늘의 문』 재출간을 상기시켜 주었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의 1주기 모임을 다녀온 후 『하늘의 문』 재출간은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병규┃디자이너
이윤기는 『하늘의 문』에서 인간의 철학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군집과 의미의 철학이 그 하나이며, 벗어남의 철학이 그 하나이며, 독립과 해탈의 철학이 마지막 하나이다. 군집의 철학이 세상과 존재의 의의를 믿고 그 의미의 실천인 질서에 헌신하는 철학이라면, 이탈의 철학은 그 질서의 외각으로 나가려는 타자의 철학이다. 그러나 독립하고 해탈하는 자는 그 질서를 제 안에 놓아 버린다. 이윤기는 인간들이 무의미를 숭상하면서도 저 자신을 자진하여 사물로 만드는 이 기이한 종속의 시대에 근원과 그 원리를 끝까지 믿음으로써 타자가 되었으며, 마침내 의미와 질서를 자신의 육체 안에서 확인하는 철저한 독립인이 되었다. 그는 질서가 자유인 세계로 갔다. 그러나 그 전에 기록이 일실된 이 세상의 모든 순례가 그를 통해 다시 기록을 얻었다.
황현산┃문학 평론가
이윤기의 작가 이력을 보면 베트남전 이야기가 소략하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다. 번역서까지 더하면 꽤 다작이랄 수 있는 그의 작가 이력에서 베트남전을 다룬 것은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데뷔작인 「하얀 헬리콥터」(1977년)와 『하늘의 문』(1994년)이다.
피하고 싶었을 경험이고, 또 피할 수 없는 상흔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된다. 이윤기의 삶 전체에서 베트남전 경험은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리라 싶다. 그는 지워 가면서 잊어 가면서 ,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을 조금씩 내비쳤다. 그의 후반기 소설들…… 『두물머리』, 『숨은그림찾기』, 『나비넥타이』 등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어른들……. 세상사에 치이고 상처받았음에도 삶을 품으려는 그 고초의 흔적들을 베트남전 참전 기억에 얹어 보면 그의 작품들이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 왜 그가 그렇게 힘들게, 또 열심히 삶을 껴안으려 했는지…….
배문성┃시인
윤기 형의 폼은, 아웃사이더의 감각이고 현실을 별로 개의치 않으며, 현실적 효용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자존심을 더 앞세운다는 점에서 똥폼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 직접 도움도 안 되는 똥폼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윤기 형은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윤기 형의 똥폼은 단순히 낭만주의자의 아웃사이더 취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심각한 실존적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재주는 많지만 가진 것은 없는 아웃사이더가 엉터리 세상을 살면서 자존심을 지켜 내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엉터리 세상의 엉터리 질서와 엉터리 권위와 엉터리 가치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지키는 「이윤기표 삶의 방식」이 바로 똥폼 잡기가 아니었을까? (……) 윤기 형이 살아생전 힘겹게 실천했고 또 이렇게 우리에게 남긴 「똥폼의 자존심」은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도 더 소중한 그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이남호┃문학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