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선구적 페미니즘 작가 케이트 쇼팽의 대표작
케이트 쇼팽의 장편소설 『각성』이 한애경 교수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246번째 책이다. 주로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 여성들의 삶과 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투쟁을 담은 작품들을 남긴 케이트 쇼팽은, 오늘날 미국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는 작가다. 『각성』은 쇼팽의 대표작으로, 결혼한 상류층 여성인 28세의 젊은 부인 에드나 퐁텔리에가 여름휴가로 머물게 된 섬 그랜드 아일에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독립적인 자아를 찾아 나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여성의 부도덕한 일탈을 그리며 당시 여성상에 어긋나는 가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출간 후 독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절판되었다가 쇼팽 사후 6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로 조명되며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여러 대학에서 여성학과 문학 수업의 필수 도서로 읽히는 등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 고전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의 한애경 교수는 섬세하고 시적인 쇼팽의 문체를 정제된 한국어로 세심하게 옮겼다. 번역 원본으로는 2018년 출간된 노튼 비평판을 사용했다.
목차
각성
역자 해설: 〈전통과 편견〉 너머
케이트 쇼팽 연보
저자
케이트 쇼팽
출판사리뷰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원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
부유한 사업가와 결혼하여 겉으로는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에드나. 남편과 함께 미국 남부에 있는 뉴올리언스 근처의 섬 그랜드 아일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게 된다. 그곳의 자유로운 공기와 탁 트인 바다, 휴가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관능적이고 솔직한 인간관계,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겪으면서, 에드나는 오랜 세월 억눌린 채 잠들어 있던 자기 안의 열망들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 별장 주인의 아들인 매력적인 청년 로베르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여성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세상의 기대치에 맞춰 살아온 에드나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삶의 기쁨과 해방감을 맛본다. 그러나 로베르는 유부녀인 에드나와의 사랑으로 고뇌하다 갑작스레 멕시코로 떠나 버리고, 휴가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에드나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후 에드나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자신의 삶의 방식과 조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을 하나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며, 세상의 평판이나 체면, 의무보다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의무적으로 행하던 집안 행사보다 그림 그리기와 독서에 몰두하고, 고독을 즐기면서 홀로 낯선 곳을 배회하곤 하여 남편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남편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기 위해 자기 힘으로 주거 공간을 마련하여 이사를 가기도 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도 보여 준다.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인물인 남편에게 에드나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가지만, 그녀는 그럴수록 오히려 자신이 [삶의 저변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의 여러 저항의 시도들은 당시 사회의 한계를 반영하듯 결국은 비극적으로 끝을 맺지만, 19세기에 쓰였다고는 믿기지 않는 이 작품의 진보적인 인식과 통찰, 세련된 서술 등은 오늘날까지도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대와 감동을 자아낸다.
[부도덕한 소설]에서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 고전]으로
작가 사후 60여 년 만에 빛을 본 걸작
『각성』이 출간되었을 때, 당시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도덕관념이 없는 소설]이자 [병적이고 천박하며 공감할 수 없는 소설]이라고 비판했다. 금기시되던 여성의 성적 욕망과 일탈을 다루며 당시 여성상에 맞지 않는 가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에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출간이 금지되기에 이르렀고, 쇼팽이 살던 세인트루이스의 예술가 협회에서 그녀의 이름이 제명되었으며, 도서관에서 그녀의 책을 비치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후 출간 예정이던 그녀의 세 번째 단편집 역시 곧 알 수 없는 이유로 출간이 취소되고, 충격에 휩싸인 쇼팽은 전처럼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04년에 뇌출혈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절판되었다가 쇼팽 사후 60여 년이 지나 1970년대 여성 해방 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재평가되었다. 출간 당시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던 이 작품의 페미니즘적 가치가 주목되면서, 현대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로 조명되며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비록 쇼팽은 스스로를 여권 신장론자나 여성 참정권 운동가로 표방한 적은 없었으나,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이 자신을 독립된 한 인간으로 인식하고 온전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고투해 가는 과정을 생생하고 섬세한 필치로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페미니즘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케이트 쇼팽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으며, 특히 『각성』은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 고전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 남부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문화를 담은 소설
이 작품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최대 도시인 뉴올리언스와 그 근처의 섬 그랜드 아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뉴올리언스는 당시 프랑스풍의 크리올(미국에 정착한 프랑스계나 스페인계 귀족의 후손들) 문화가 지배적인, 남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런 만큼 이 작품에는 프랑스식의 명칭과 풍습, 크리올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곳곳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프랑스계 귀족 혈통의 어머니와 아일랜드 출신의 사업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케이트 쇼팽은, 스무 살 때 루이지애나주 출신의 크리올 남편과 결혼하여 9년 동안 뉴올리언스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이 이국적인 도시에서 지낸 9년간의 생활은 이후 쇼팽의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루이지애나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곳 사람들의 삶과 문화, 특히 프랑스계 크리올 문화의 특색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쇼팽은 남부 로컬 작가로서의 성격 역시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각성』은 20세기로 이어지는 위대한 미국 남부 문학의 앞선 계보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열린책들에서는 이 작품의 지방적 특색을 드러내는 원문 속의 프랑스어를 구분할 수 있도록 표기하여, 독자들이 작품의 분위기와 질감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