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집 3권 중 첫 권에 해당하는 책으로 1997년 출간해 칠레의 산티아고상 및 스페인의 에랄데 소설상을 휩쓴 작품이다. 시인, 작가, 탐정, 군인, 낙제한 학생, 러시아 여자 육상 선수, 미국의 전직 포르노 배우와 그 외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14편의 이야기들 담고 있다. 담겨 있는 단편들은 각각의 작품의 틀을 넘어 또 다른 단편소설 및 장편소설들과 각기 짝을 짓는데 이것으로 저자의 작품 세계의 특징 중 하나인 상호텍스트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또한 총 14편의 단편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는 볼라뇨의 자전적 이야기 요소는 경우에 따라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목차
제1부. 전화
센시니
앙리 시몽 르프랭스
엔리케 마르틴
문학적 모험
전화
제2부. 형사들
굼벵이 아저씨
눈
또 다른 러시아 이야기
윌리엄 번즈
형사들
제3부. 앤 무어의 삶
감방 친구
클라라
조안나 실베스트리
앤 무어의 삶
저자
로베르토 볼라뇨
출판사리뷰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no의 단편소설집 『전화』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집 3권 중 첫 권에 해당하는 『전화』는 볼라뇨가 자신의 초기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펴내기 1년 전인 1997년 출간해 칠레의 산티아고 시상 및 스페인의 에랄데 소설상을 휩쓴 작품이다. 시인, 작가, 탐정, 군인, 낙제한 학생, 러시아 여자 육상 선수, 미국의 전직 포르노 배우와 그 외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14편의 이야기들은 작가의 삶(1부), 폭력(2부), 그리고 여성의 일생(3부)에 대한 볼라뇨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또한 이 단편들은 작품 『전화』의 틀을 넘어 볼라뇨의 또 다른 단편소설 및 장편소설들과 각기 짝을 지음으로써 로베르토 볼라뇨 작품 세계의 특징 중 하나인 상호텍스트성을 완성한다.
이렇듯 볼라뇨 세계를 구축하는 등장인물들은 대개 서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한쪽이 실종된 상태다. 이렇게 물리적인 거리가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상황들 가운데 심리적 거리가 생기고, 이러한 사람들의 상황과 관계가 만들어 내는 거리감과 그에서 비롯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전화나 편지 정도로만 간간이 소통하는 이들의 삶을 볼라뇨는 철저히 제3자의 입장에서 기술해 나간다. 상황 자체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볼라뇨의 이러한 태도는 왜 그가 『칠레의 밤』, 『부적』, 『먼 별』 등 그간 자신의 작품 가운데 칠레와 멕시코 등의 정치적 현실을, 쿠데타 주위를 직접적으로 파고들기 보다는 맴도는 쪽을 택했는지 깨닫게 한다. 즉 당시 쿠데타의 실제 공포를 직접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독자인 우리로 하여금 간접적인 공포 정도를 감지하고 경험할 수 있게끔 한 작가적 선택인 것이다. 이렇듯 볼라뇨의 단편들은 볼라뇨의 또 다른 장편들을, 나아가 볼라뇨의 작품 세계 전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놓여 있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볼라뇨의 자전적 이야기
『전화』의 각 이야기에는 작가 볼라뇨의 실제 삶이 어른거린다. 『전화』의 제1부 첫 단편으로 수록되었으며 출간 당시 단행본으로 따로 선보이기도 했던 작품 「센시니」에서는 온갖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하며 이로써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생계를 간신히 유지해 나가는 아르헨티나 작가 센시니가 등장하는데, 이는 볼라뇨가 작가로 인정받기 전의 젊은 시절 모습이기도 하다. 실존 인물이었던 아르헨티나 소설가 안토니오 디 베네데토(1922~1986)를 모델로 삼은 이 소설은 1983년 발렌시아 시가 주관한 알팜브라 단편 경연 대회에서 그와 알게 된 볼라뇨가 이후 서신을 교환하며 친분을 유지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설 말미에 수록되었듯 실제로 쿳사 재단이 후원하는 산세바스티안 시 소설상을 수상하며 볼라뇨식 정점을 찍은 이 작품은 1980년대 초 중남미 역사가 독재에 의해 파괴된 가운데 오히려 문화는 태동하던 시절, 중남미 붐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던 시절, 실제 중남미 작가들의 서글픈 삶을 그리고 있다.
제2부를 여는 단편 「굼벵이 아저씨」에서는 「책 도둑」 볼라뇨가 등장한다. 볼라뇨가 멕시코시티에 살 때 자주 들렀던 서점 두 곳, 「크리스탈(유리) 서점」과 「소타노(지하) 서점」을 둘러싼 이 이야기는 카뮈의 『전락』을 비롯해 프랑스 문학에 집착했던 볼라뇨가 어떻게 책을 훔치며 하루하루를 보냈는지를 들려준다. 아침 8시 반쯤 크리스탈 서점에 도착해 책을 되작이다 10시쯤 조조 영화를 보고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던 젊은 시절 볼라뇨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한편 2부의 마지막 단편 「형사들」에서는 이후 스무 살의 볼라뇨를 만날 수 있다. 멕시코에서 조국 칠레로 돌아가 아옌데의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좌파 진영에 가담했다가 쿠데타가 일어나자 콘셉시온 근처에서 체포되어 투옥되고, 마침 어릴 적 친구였던 간수의 도움으로 8일 만에 석방되었던 행적을 형사들의 대화 가운데 녹여 쓴 작품이다.
볼라뇨는 이렇듯 자신의 실제 삶을 각각의 이야기 속에 녹이는 가운데 중요한 인물을 등장시킨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이름을 닮은 「아르투로 벨라노」가 바로 그 인물로, 그는 전작 『먼 별』에서 처음 등장한 바 있는 볼라뇨의 얼터 에고로 볼라뇨의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는 주인공 역할을 한다. 『전화』 속 1인칭 화자들은 거의 대부분 아르투로 벨라노인데, 과연 그가 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볼라뇨의 각 작품마다 등장하는 이 인물이 경험한 삶의 내용들이 각기 다 다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볼라뇨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인물인 동시에 소설 속 등장인물로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물인 아르투로 벨라노는 볼라뇨 작품을 상징하는 이이다. 자전적 요소와 픽션적 요소가 결합한 창조물인 볼라뇨의 작품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볼라뇨는 이를테면 일기와도 같은 사변적인 작품을 쓰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 단순히 기억을 되살린다는 차원에서 자전적 요소를 불러내 픽션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하나의 기능으로 활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볼라뇨식 창작 기법이다.
변방의 삶 - 방랑자들, 그들의 어긋난 세계를 찾아서
Q :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A : 작가가 되는 것보다는 살인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가 되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밤중에 혼자 범죄 현장을 다시 찾아가고, 귀신을 보고도 겁먹지 않는 형사 말입니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경찰이기 때문에 자기 입에다 한 방 먹이면 그만입니다.
- 『플레이보이』지 인터뷰 중에서(볼라뇨 에세이집 『괄호 치고』에 수록)
대표작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읽고 난 후라면 더욱 확실해 질 사실이지만, 볼라뇨는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을 결국 탐정으로 만들고 마는 수법으로 독자들을 매혹한다. 이는 볼라뇨의 모든 작품에 드리워진 탐정 소설의 기운에 기인한 것으로, 단편집 『전화』에서도 이러한 매력적인 요소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볼라뇨의 사람들은 결국 멀리 떨어진 사람들, 실종된 사람들, 망명자들이다. 서로 줄곧 편지만 주고받다 결국 화자와 얼굴을 대면하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난 가난한 작가(단편 「센시니」), 모스크바와 스페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칠레인(「눈」), 자신의 부대에 머물지 못하는 군인(「또 다른 러시아 이야기」), 여러 남자에게 몸을 맡기는 포르노 여배우(「조안나 실베스트리」) 등 볼라뇨의 사람들은 「정착」과는 거리가 멀다. 볼라뇨는 이렇듯 대개 세상의 주인공이라 여기기 어려운 이들, 변두리의 삶을 사는 이들을 찾아 자신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 방랑자들의 삶을 우리 앞에 던져 놓고, 읽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따라 나서도록 한다. 그 과정 가운데 우리는 등장인물을 끝내 발견하지 못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어렴풋한 실루엣 정도만 감지해 내기도 한다. 우리가 이들의 삶을 꿰뚫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의 일생이 일반적인 세계에 자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 뒤틀리고 어긋난 세계, 그곳이 바로 이 방랑자들이자 망명자들이 머무는 곳이며, 볼라뇨가 우리를 부르는 곳이다.
이러한 로베르토 볼라뇨식 「탐정 놀이」는 이제 시작이다. 볼라뇨가 여기 던져 놓은 14가지 짤막한 단서들은 볼라뇨의 보다 긴 이야기들을 통해 다채롭게 변주될 예정이다.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물론 읽는 이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