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프랑스 문학으로 완성된 아랍의 이야기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 완역판
국내에 이제까지 소개된 『천일야화』인 리처드 버턴판 『아라비안 나이트』는 선정적이고 잔인한 내용을 첨가하여 원전을 재구성해 만든 작품이다. 이 책은 리처드 버턴의 작품 이전에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던 아랍의 이야기를 유럽 전역에 알리고 근대 전체를 풍미한 오리엔탈리즘을 촉발한 작품인 앙투안 갈랑의 불역본 『천일야화』를 번역한 것으로, 당대 화제가 되었던 『천일야화』를 원전에 가깝게 만날 수 있게 제작되었다.
근엄한 유럽 사회에서 금지되었던 내밀한 욕망들을 표현하기 위한 배출구에 지나지 않았던, 그래서 더더욱 외설적이고 잔인한 내용으로 각색될 수밖에 없었던 여타 번역본들과 달리, 『천일야화』의 원전은 지극히 건강하고 유쾌한 웃음을 전한다. 앙투안 갈랑의 불역본은 『천일야화』의 정수가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스한 연민, 황당무계한 판타지가 아닌 우리 내면 깊숙한 욕구들에서 비롯된 경이로운 마법,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 아닌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는 아랍 민중이 터뜨리는 건강한 해학과 풍자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또한 흥미로운 삽화도 함께 실어 아랍의 문화를 보다 세밀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알라딘과 신기한 램프 이야기 1399
칼리프 하룬알라시드의 모험 1567
장님 바바-압달라의 이야기 1576
시디 누만의 이야기 1593
코지아 하산 알하발의 이야기 1612
알리바바와 여종에게 몰살된 마흔 명의 도적 이야기 1655
바그다드 상인 알리 코지아 이야기 1711
저자
앙투안 갈랑
출판사리뷰
아랍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린 최초의 작품이자
리처드 버턴판 『아라비안 나이트』를 존재하게 한 앙투안 갈랑의 정전(正典)
놀라운 마법과 흥미진진한 모험이 펼쳐지는 가운데, 아랍의 문화와 관습은 물론 아랍인들의 세계관과 기질을 재미있게 전하는 『천일야화Les mille et une nuits』의 국내 최초 완역본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을지도 모른다.『천일야화』라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책인데, 어째서 여기에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느냐고. 하지만 국내에서 흔히 정본으로 알려진 리처드 버턴판 『아라비안 나이트』는 선정적이고 잔인한 내용을 첨가하여 『천일야화』 원전을 재구성하여 만든, 일종의 〈각색〉 작품인 셈이다. 리처드 버턴을 비롯한 수많은 역자들의 판본을 낳은 작품,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던 아랍의 이야기를 유럽 전역에 알리고 근대 전체를 풍미한 오리엔탈리즘을 촉발한 작품, 괴테와 플로베르, 스탕달, 뒤마, 코난 도일 등 유럽과 영미권 작가들은 물론 똘스또이나 뿌쉬낀 등 러시아의 대문호를 매혹시킨 작품, 발자크와 프루스트로 하여금 〈이 시대의 『천일야화』를 쓰고 싶다〉라고 말하게 한 걸작……. 서구 문화 가운데 하나의 이정표가 된 고전 중의 고전, 『천일야화』의 정전canon은 바로 프랑스의 동양학자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의 불역본이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를 빚어내고 생명을 불어넣다
프랑스의 학자 조르주 메Georges May는 〈『천일야화』는 결국 앙투안 갈랑의 작품이며, 아랍 문학의 걸작이 아닌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 앙투안 갈랑이 『천일야화』를 번역하고 엮어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이 세상에 내놓았던 1704년 당시, 아랍 세계에서 『천일야화』는 정통 문단의 인정을 받는 고전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정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교적이고 반체제적인 요소가 많은 이 서민적인 이야기 모음집은 근엄한 이슬람 사회의 음지에 숨어 이리저리 찢긴 채 흘러 다니고 있었고, 갈랑이 번역의 기본 텍스트로 삼은 시리아의 필사본 역시 〈천일야화〉라는 이름으로 흘러 다니는 수많은 이본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이렇듯 동방에서조차 은폐되고 조각나 흐릿한 실체에 불과하던 『천일야화』에 앙투안 갈랑은 명확하고도 결정적인 형태를 부여하여 전 세계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잠들어 있던 『천일야화』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셈이다.
그는 고전주의 시대 유럽 독자를 고려하여 『천일야화』를 적절히 〈번안〉하여 소개했을 뿐 아니라, 동방의 수많은 도시들을 여행하며 기록한 설화와 민담을 엮어 보충해 넣기도 했다. 가장 잘 알려지고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변주되며 회자되고 있는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 이야기」와 「알라딘과 신기한 램프 이야기」, 「알리바바와 여종에게 몰살된 마흔 명의 도적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알라딘과 알리바바 이야기의 경우에는 갈랑판 이전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출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이를 갈랑의 창작품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탄생한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는 출간된 1704년부터 유럽에서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학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에게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로 인해 『천일야화』의 간행은 그의 사후인 1717년까지 14년 동안 이어지게 되고, 나아가 동방 세계로 역수출되어 리처드 버턴의 영역판(1885~1888) 등 또 다른 『천일야화』들을 재편찬하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외설성과 잔인함이 배제된 건강한 웃음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천일야화』의 매력
근엄한 유럽 사회에서 금지되었던 내밀한 욕망들을 표현하기 위한 배출구에 지나지 않았던, 그래서 더더욱 외설적이고 잔인한 내용으로 각색될 수밖에 없었던 여타 번역본들과 달리, 『천일야화』의 원전은 지극히 건강하고 유쾌한 웃음을 전한다. 포르노그래피와 판타지가 넘치게 공급되는 오늘날, 과장되고 왜곡된 이국적 취미와 잔혹성과 외설성으로 둔중해진 그동안의 『천일야화』들은 그 유효성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그러나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읽어 본다면, 온전한 『천일야화』의 정수는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스한 연민, 황당무계한 판타지가 아닌 우리 내면 깊숙한 욕구들에서 비롯된 경이로운 마법,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 아닌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는 아랍 민중이 터뜨리는 건강한 해학과 풍자이다. 아랍인들의 빛나는 기지와 놀라운 마법은 아이들은 물론 성인까지 사로잡는다. 갈랑이 구사하는 고전주의 시대의 세련되고 고아한 언어 속에서 독자는 시공을 초월한 희로애락을 공감할 수 있고,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 속에서는 넘치는 스릴과 호기심을, 끊임없이 등장하는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 속에서는 순수하고도 솔직한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힘차게 뛰고 있었던, 그리고 여전히 뛰고 있는 인간 마음의 진실인 셈이다.
19세기의 아름다운 삽화 2백여 점으로 더욱 풍성해진 내용
내용과 분위기에 어울리게 배치되어 신비로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각각의 개별적인 아름다움도 뛰어나 감상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 213점의 삽화에는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다. 삽화들의 일부는 편집부에 참고 도서로 구비되어 있던 영역 축약본 The Arabian Nights (BARNES & NOBLE, 2006)에 수록되어 있던 것이다. 한 줄의 선까지 생생히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삽화들을 열린책들판 『천일야화』에 싣고자 했으나 이 영역 축약본에도 삽화의 출처는 명기되어 있지 않았고, 편집부에서는 이 작품의 출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곳을 뒤진 끝에 마침내 이 삽화들이 19세기의 조판공 달지엘 형제Dalziel Brothers가 1853년 발행한 영역 완역본 Dalziels Illustrated Arabian Nights Entertainment에 수록되어 있던 것으로, 여섯 삽화가의 공동 작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달지엘 형제 중 하나인 Thomas Dalziel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한 존 테니얼(John Tenniel)을 비롯하여 J. E. Millais(1829~1896), A. B. Houghton(1836~1875), J. D. Watson(1832~1892), G. J. Pinwell(1842~1875) 등 당대의 유명 삽화가들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판본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출간된 지 150년 가까이 되는 오래된 책이라, 판매처를 찾을 수 없었던 것. 매일같이 해외 중고 서적 사이트에 접속하다가 포기할 무렵이 되어서야 거짓말처럼 누군가 책을 내놓아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책의 실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 권 한 권 직접 물감에 담가 마블링한 것임이 분명한 표지의 무늬, 한 땀씩 손으로 직접 꿰맨 실 제본, 현대의 최첨단 기술보다 훨씬 정교하고 섬세하게 인쇄된 삽화들……. 통상적인 방법으로 책의 낱장을 뜯어내 스캔을 받기에는 아까운, 그야말로 〈물건〉이었다. 편집부는 고민 끝에 822면에 달하는 책장을 매고 있는 실을 풀어 스캔을 받은 후 원래대로 고스란히 꿰매기로 했다. 열린책들판 『천일야화』를 장식하는 200여 컷의 삽화들은 그렇게 빛을 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