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인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프랑스 근대 소설의 대가가 19세기 파리를 무대로 초기 자본주의사회 세태를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고리오 영감』 속에는 권력에의 의지, 사회, 돈, 출세 지상주의, 외곬의 열정(집착) 등과 같은 주제가 모두 응축되어 있다. 또한 파리 상류 사회로의 진출을 꿈꾸는 라스티냐크의 성장 소설이자 근대 사회를 상징하는 공간인 파리의 영화와 악덕, 금전만능의 사회상을 고리오라는 인물의 몰락을 중심으로 통렬히 파헤친 사회 소설이기도 하다.
발자크는 이 책에서 19세기 프랑스 사회와 인간 군상의 전형을 그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온갖 직업과 성격을 지닌 수천 명의 인물을 작품 속에 담아냈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세세히 묘사하여 그 속에서 인간의 특성을 밝혀 나갔다.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가 인물재등장기법이라는 자신의 독창적인 소설기법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작품으로, 동일한 인물이 다음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재등장기법을 통해 당시 사회의 인물의 전형을 제시하여 소설의 현실감을 더하고자 했다.
목차
제1장 하숙집
제2장 사교계 입성
제3장 불사신
제4장 아버지의 죽음
'인간 희극'의 길들이 만나는 네거리광장「고리오 영감」 / 임희근
오노레 드 발자크 연보
저자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은이), 임희근 (옮긴이)
출판사리뷰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인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임희근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1834년 12월부터 『파리 평론Revue de Paris』지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835년에 책으로 출간된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의 방대한 작품 세계 속에서 마치 커다란 〈네거리〉와 같은 작품이다. 발자크가 이 소설을 집필하던 시점의 프랑스 사회는 1830년 7월 혁명을 거치면서 왕정복고 시대의 폐쇄된 사회가 개방되는 듯하면서 일견 모든 것이 가능한 새 시대가 열리는 듯했지만, 곧 구질서로 회귀하면서 새 시대의 열망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7월 혁명은 19세기 전반부의 정치, 문화, 정신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은 발자크의 소설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인데, 『고리오 영감』 속에도 권력에의 의지, 사회, 돈, 출세 지상주의, 외곬의 열정(집착) 등과 같은 주제가 모두 응축되어 있다. 또 파리 상류 사회로의 진출을 꿈꾸는 라스티냐크의 〈성장 소설〉이자 근대 사회를 상징하는 공간인 파리의 영화와 악덕, 금전만능의 사회상을 고리오라는 인물의 몰락을 중심으로 통렬히 파헤친 〈사회 소설〉이기도 하다.
『고리오 영감』은 열린책들이 2006년 초에 처음 선보인 뒤 꾸준히 펴내고 있는 〈미스터 노 세계문학〉 시리즈의 한 권이다. 〈미스터 노 세계문학〉은 상세한 해설과 작가 연보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한편, 가볍고 실용적인 사이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현대적 감각을 살린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시리즈이다. 앞으로도 열린책들은 세계 문학사의 걸작들을 미스터 노 시리즈를 통해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인간 희극〉의 길들이 만나는 네거리 광장 『고리오 영감』
「나는 지금 그야말로 천재가 되는 중이니, 축하해 줘!」 - 드 발자크
발자크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와 인간 군상의 전형을 그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온갖 직업과 성격을 지닌 수천 명의 인물을 작품 속에 담아냈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세세히 묘사하여 그 속에서 인간의 특성을 밝혀 나갔다. 또한 주요 인물을 후속 작품에 다시 등장시키는 〈재등장〉 기법을 통해 작품과 작품, 인물과 인물을 유기적으로 연관 짓고 통일성을 부여하였다. 이렇게 현실 못지않게 완벽하고 활기 있는 세계를 재창조해 보이려는 발자크의 야심찬 계획은 약 90편의 소설로 구성된 〈인간 희극〉으로 완성되었다.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작품들은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가 〈풍속 연구〉로,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 〈사생활의 정경들〉, 〈지방 생활의 정경들〉, 〈파리 생활의 정경들〉, 〈정치 생활의 정경들〉, 〈군인 생활의 정경들〉, 〈전원 생활의 정경들〉이다. 둘째는 〈철학적 연구〉로 사물의 〈원인〉을 파헤친 소설들이며, 셋째가 〈분석적 연구〉로 삶의 〈원리들〉에 천착하는 소설들이다. 『고리오 영감』은 이 중 첫 번째인 〈풍속 연구〉, 그중에서도 〈사생활의 풍경들〉의 갈래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가 〈인물의 재등장〉이라는 야심 찬 기법을 실현한 첫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라스티냐크는 이미 그전에 쓴 소설 『상어 가죽La Peau de chagrin』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보트랭, 뉘싱겐 부인, 보세앙 부인, 의사 비앙숑, 랑제 공작 부인 등 주요 등장인물들과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 이후 발표된 소설들에도 나온다. 그러니 『고리오 영감』이야말로 발자크의 소설 세계를 열어 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꾸준히 발자크를 읽어 가는 독자라면 이 소설에서 처음 만난 등장인물들을 그 뒤에 다른 작품들 속에서 다시 만나며 더욱 심층 탐구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고리오 영감』은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신경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 파리뿐 아니라 21세기 현재에도 〈재등장〉하는 발자크의 살아 있는 인물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소설의 주제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돈과 무모한 열정이다. 여기서 돈은 처음부터 구체적이고 정확한 숫자로 표시된다. 고리오 영감의 하숙비와 연금, 라스티냐크가 고향집에서 한 달에 송금받는 액수, 이 모든 것이 때로 따분하고 지겨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금전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고리오 영감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은 영감의 남은 연금 문제, 빚 문제, 딸들 대신 갚아 주는 어음 문제, 심지어 얼마 남지 않은 값나가는 물건을 전당포에 가서 돈으로 바꾸는 문제 등과 사사건건 연관된다.
소설 첫 부분부터 사회적인 두 공간이 서민들의 공간(보케 하숙집 식당)과 사교계의 살롱(보세앙 부인의 집)으로 대조되면서, 독자는 이 두 공간이 주인공이 〈지금 몸담은 곳〉과 〈앞으로 몸담고 싶어 하는 곳〉을 대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하는 주인공은 결국 범속하고 비천한 하숙집에서나, 사교계의 으뜸가는 우아한 공간에서나 똑같은 교훈을 얻을 뿐이다.
예컨대 고리오의 재산을 탐내 한때는 짝이 되기를 꿈꾸지만 노인이 빈손이 되자 가차 없이 경멸하는 보케 부인의 모습이나 지참금을 위해 대가문의 딸과 결혼하는 다주다 후작 같은 귀족의 모습은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주다 후작에게 배신당한 귀족 부인의 눈물을 구경하러 무도회에 몰려드는 사교계 속물들의 잔혹성은 고리오를 멸시하고 그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하숙인들의 잔인함과 일치한다. 보세앙 부인 집에서 아직 애송이인 라스티냐크가 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쏟아 놓는 감언이설이나 보케 하숙 식탁에 둘러앉은 하숙인들의 바보 같은 농담들이나 우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아함으로 포장된 인물이든 보트랭처럼 평민의 탈을 쓴 범죄자이든, 결국 라스티냐크에게 들려주는 말은 같다. 결국 사회는 가차 없이 악랄한 것이고, 그에 대응하는 법은 그 사회를 〈정복〉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발자크는 소설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혼자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의 높은 언덕 쪽으로 몇 걸음 걸어 올라가, 등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센 강의 양쪽 기슭을 따라 구불구불 누워 있는 파리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거의 탐욕스럽게 집착한 곳은 방돔 광장의 기둥과 앵발리드의 둥근 지붕 사이, 그가 뚫고 들어가고 싶어 했던 그 멋진 사교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웅웅거리는 벌집 같은 이곳에 그는 미리 꿀을 빨아내기라도 할 듯한 시선을 던지며 이 거창한 말을 던졌다.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 본문 334면
하지만 발자크의 인물들은 못마땅한 사회를 파괴하는 혁명가도 아니며 그 사회를 피해 숨는 은둔자도 아니다. 〈인간 희극〉의 여러 작품에 출몰하는 주요 인물 보트랭도 마찬가지다. 탈옥한 죄수의 신분을 숨기고 사회의 변방에서 살아가며 사회를 증오하고 경멸하고 그 모순을 폭로하지만 그는 사회를 파괴하는 혁명가는 절대 아니며 오직 사회를 이용해서 자기 이득을 얻어 내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결국 〈인간 희극〉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이란 〈권력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바로 당시 발자크가 속한 계층인 부르주아지의 상승 의지와 연결된다.
발자크와 닮고, 발자크의 삶을 닮은 인물과 상황들
소설에 표현된 여러 요소 중에서 발자크의 실생활과 일치하는 면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작품 속 라스티냐크의 동생들 이름이 발자크의 실제 동생들의 이름(로르, 앙리)과 똑같다. 또한 발자크도 처음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는 라스티냐크가 살던 방 같은 초라한 다락방에서 힘든 시절을 보냈고, 사교계 생활에 입문하여 화려한 속물 청년들과 서로 멋을 겨루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정열과 관심도 일치한다. 유년기와 소년기에 어머니 사랑이 부족했던 발자크는 20대에 〈딜렉타〉라는 별명을 지닌 22세 연상의 드 베르니 부인을 만나 애정을 쏟았고, 그녀가 죽은 후엔 우크라이나의 열렬한 독자로 편지를 보내온 〈이국 여인〉(처음엔 자기 이름을 감추고 이렇게 칭했다) 한스카 부인과 오래 사랑을 나누다가 우여곡절 끝에 1850년 결혼식을 올리고 바로 죽음을 맞는다. 그러므로 『고리오 영감』은 작가 자신이 체험한 현실에서 풍부한 소재를 길어 올려 그것을 소설의 보편성으로 변모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고리오 영감』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 보트랭 역시 탈옥수로 경찰 대장까지 지낸 실존 인물 비도크를 모델로 삼았다. 선량한 수련의 비앙숑 같은 인물은 당시의 의학 발달 상황을 잘 보여 주며 독자는 이 인물을 통해서 갈 박사의 골상학 등 당시의 과학 지식도 얻게 된다. 발자크는 이 인물에 몰두한 나머지, 실제 죽어 가는 병석에서 의사를 찾을 때 자기도 모르게 〈비앙숑〉을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발자크는 자정부터 시작하여 열 몇 시간을 내처 쓰는 초인적인 작업 뒤에는 엄청난 정정과 고쳐 쓰며 작업했다. 〈『고리오 영감』은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괴물처럼 슬픈 작품이기도 합니다. 완벽하기 위해서는 파리의 정신적 하수구를 보여 주어야 했고, 그래서 역겨운 상처 같은 효과를 자아냈습니다〉라는 것이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심신의 고투 끝에 나온 산물인 그의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면서 19세기 전반을 가득 채웠던 거장의 필력을 21세기에 새롭게 느껴 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