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25년도에 발표되었던 장편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1996년 10월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백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지난 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그레이트 북스’에 들어갈 만큼 울프의 기념비적 작품이며 20세기 현대문학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독보적 위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울프가 전통적 글쓰기 수법을 탈피, 『제이콥의 방』과 『월요일이나 화요일』 같은 작품에서 선보였던 실험적 기법들이 처음으로 예술적 통일성을 획득한 작품이다.
20세기 문학사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실험적인 서술 기법을 발전시킨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자유간접화법을 통해 드러나는 인물들의 내면세계와 시간과 공간의 긴 터널들을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작가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문체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살려낸 번역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작가적 면모와 〈의식의 흐름〉 기법의 문학적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중년의 여인 클러리서 댈러웨이는 기다려오던 파티를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하다. 평온했던 그녀의 마음은 부루톤 여사가 남편 리처드만 오찬에 초대하고, 과거의 연인 피터 월쉬가 찾아오는 등 여러 가지 일로 복잡해진다. 도착한 손님들을 응대하고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젊은이 셉티머스가 정신이상 증세를 앓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시간상으로는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작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하여 댈러웨이 부인과 주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의식을 묘사하며 그들의 내면을 자세히 표현한다. 이 소설에 감명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은 『디 아워스』를 써서 1999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를 원작으로 한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주연의 영화 또한 2002년 제작되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목차
존재의 순간들을 위한 봉헌 : 댈러웨이 부인의 파티
버지니아 울프 연보
저자
버지니아 울프
출판사리뷰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고전이라 불리는 『댈러웨이 부인』은 〈소설사에서 몇 안 되는 진정한 혁신의 하나〉로 손꼽히는 난해한 〈의식의 흐름〉 또는 〈내적 독백〉 기법이 단순히 실험되었다는 의의를 넘어서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와 비범한 지성과 창조력이 결합된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이다. 특히 심리적 방법, 의식의 흐름을 표출하는 내적 독백 등 모더니즘 소설의 기법 면에서, 그리고 작품의 시공간적 구도 면에서 비슷한 까닭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비교되곤 한다.
더 나아가 〈방법은 성공적일수록 주목을 덜 끈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방법〉을 전면에 내세운 많은 실험적 작품들이 새로운 시도 이상의 의의를 획득하지 못하고 잊혀 가거나 그 난삽함 때문에 일반 독자들에게는 읽히지 않는 반면, 『댈러웨이 부인』은 그런 실험적 의의를 넘어서 널리 호소력을 가지며 문학 작품으로서도 성공을 거둔다.
물론 작가의 문장이 단순 명쾌하고 쉽게 읽혀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 레이스처럼 정교한 그 구문을 통해 작가가 그려 내는 것은 현학적이지도 난해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이다.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것은 그처럼 폭넓은 호소력과 삶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깊은 이해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1923년 6월의 어느 하루 동안 여주인공인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가는 데서 시작하여 저녁의 파티에서 끝을 맺는 이야기이다. 클라리사는 오십대 초반의 상류층 여성으로 아침 일찍 런던의 길거리로 나서면서 30여 년 전 자기 앞에 놓인 삶을 향해 무한한 설렘을 가지고 뛰어들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에 부풀어 있던, 세상을 개혁하려 했던, 모든 일에 대해 나름대로의 이론을 가지고 있던, 그 발랄한 처녀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은? 바로 그날 30년 전의 첫사랑이 귀국하여 찾아오고 옛 친구가 우연히 파티에 들른다는 우연의 일치는 사실주의적인 견지에서는 개연성이 딸리는 얘기지만, 그런 설정 덕분에 등장인물들은 30년 전의 옛 시절과 현재의 삶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에 놓인 세월의 폭과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하지만 30년 전 찬란했던 청춘남녀의 모습은 어느덧 부르주아 산업가의 아내로, 사회적 낙오자로, 클라리사 자신은 〈계단 위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완벽한 안주인〉이 되어 있다. 결국 〈세상 누구에 대해서도 이렇다든가 저렇다든가 말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들고 만 것이다. 처음 시작과는 사뭇 다르게 와버린 길,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의 이쪽 끝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그녀는 과연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가를 자문한다.
작가가 보여 주려는 것은 바로 이런 인생의 이면이었을 것이다.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삶, 사람들 사이의 고독, 서로의 눈에 비치는 그 인간적인 왜소함과 나약함 등. 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도, 살고 있는 사회도 진정한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버지니아 울프는 일기에서 〈나는 사회 체제를 비판하고, 그것이 가장 가열하게 작동하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쓴 바 있는데, 실제로 작가는 영국 사회를 지배하는 각종 권위에 도전하는 듯하다.
정체 모를 귀빈의 차량에 표하는 군중의 맹목적인 경외감이라든가 대영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수상의 범용함, 여러 인물들의 허세와 속물주의 등이 그것이다. 클라리사의 파티 준비와 병행되는 또 하나의 줄거리인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라는 인물의 광기와 자살에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 역시 전쟁의 광기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의사들의 횡포이다.
그렇다고 해서 『댈러웨이 부인』이 사회 고발 자체를, 인간에 대한 풍자를 목적으로 하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억압에 굴하지 않는 삶에 대한 긍정을, 불완전한 인간들에 대한 포용을 모색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