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다수의 성 인권 교재를 집필하고 ‘교육 자료전’에서 다섯 차례 수상한 25년차 보건 교사인 저자의 체험과 문제의식, 그리고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성 인권 교육서로,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들려줘야 할 새로운 대답을 담고 있다. 이 책이 지향하는 성 인권 교육은 아이들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여 그들이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성 인권을 존중하게 하며, ‘피해자 되지 않기’가 아닌 ‘가해자 되지 않기’에 초점을 맞춘다. 학교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 성 인권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목차
여는 글
1장. 성 인권 들여다보기 - 우리는 성적 주체로 살아가고 있나
1. 성 인권,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름
2. 십대에게 성은 있는가
3. 가해자를 만드는 “남성답게”
4. “여성다움”보다 “인간다움”
5. 성폭력을 “당하지 말라” 대신 “하지 말라”
6. 양성평등 없는 성교육은 가라
2장. 성교육의 방향 정하기 - 성 인권 교육으로 항로를 잡다
1. 성 인권이란 무엇인가
2. 성 인지 감수성과 스쿨 미투
3. 동의도 거부도 나의 권리, 성적 자기결정권
4. 검정도 다채로울 수 있다, 다양성 존중
5. 편견에서 공감으로
6. “안아 봐도 되겠니?”, 너와 나의 경계 지키기
3장. 성 고정관념 점검하기 - 내 안에 있는 성 인식을 바꾸다
1. 성은 학습되어 왔다
2. 여성에겐 언어가 없다
3. 학교가 미래의 걸림돌?
4. 성 고정관념이라는 가면
5. 성적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4장. 성차별에서 성평등으로 - 인간다움을 인식하다
1. 피부로 느끼는 성차별
2. 성적 불평등이 소년 소녀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
3. 혐오 사회에 갇힌 사람들
4. 성 역할이 낳은 폭력의 일상화
5. 성평등이 이루어지려면
5장. 성폭력 성찰하기 -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다
1. 타인의 권리 침해가 성폭력이다
2. 어쩌면 데이트, 어쩌면 폭력
3. 가정 폭력, 모든 폭력의 시작
4. 피해자다움은 없다
5. 예스라고 말할 때만 예스다
6. 연대의 손 내밀기
6장. 사회와 환경 이해하기 - 나를 둘러싼 성 문화를 개선하다
1. 음란물이 교과서?
2. 이중적 성 잣대의 함정
3. 그 누구의 몸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4. 성은 사서도 팔아서도 안 된다
5.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성
6. 여자에게 끌리는가, 남자에게 끌리는가
7장. 성 인권 다짐하기 - 성적 주체로 서다
1. 누구나 성 인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2. 누구나 성적으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
3. 누구나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4. 누구나 약자로서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5. 누구나 다름을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6. 우리는 함께 성장할 권리가 있다
닫는 글
참고 문헌
저자
엄주하
출판사리뷰
성폭력을 "당하지 말라" 대신 "하지 말라"
어른들의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의 미래도 바뀌지 않는다
N번방 사건을 비롯한 충격적인 성범죄가 코로나 19만큼이나 우리를 휩쓸고 있는 요즘,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어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왜곡된 성 인식을 바로잡는 일이 가장 급선무일 테지만,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문제의 근본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의 부재’라는 현실이 있다.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성범죄들이 증명하고 있듯이 한국의 성교육은 지금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과연 성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길래 성범죄자가 된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성교육의 현실과 우리 사회의 성 인식을 근본적으로 훑어봄으로써 성 인권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는 아이들 곁에서 성 인권 교재 집필과 강의를 하고 있는 25년 경력의 보건 교사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교육을 해 오면서 경험했던 실제 사례들과 그 속에서 느낀 점, 자녀나 학생을 대하는 많은 부모와 교사에게 제안하고 싶은 점, 그리고 한국 성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견해를 풀어 놓는다. 무엇보다 학교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이야기들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이제껏 아이들의 현실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게도 만들지만 한국 성 문화의 방향성을 근본적인 바탕 위에서 가늠해 보도록 하는 좋은 방향키가 되어 준다.
말하자면 이 책은 현직 교사의 손끝에서 탄생한 신랄한 성교육 비평서이자 앞으로 우리에게도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성적 존재이자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고, ‘피해자 되지 않기’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아닌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제안을 통해 아이들이 성 인권 의식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열쇠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열네 시간의 성교육만 받는 아이들이
과연 성 인권 의식을 키울 수 있을까?
한국의 교육과정에서 성교육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정규 교육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성교육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재량 교육이다. 2018년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 성교육 시간은 초등학교 5.17시간, 중학교 3.5시간, 고등학교 5.5시간으로, 아이들이 학창 시절 12년 동안 받는 성교육은 총 열네 시간에 불과하다. 국가에서는 매년 20차시 성교육을 실시하라고 학교에 권고하지만, 입시 위주의 우리 교육 환경에서는 대부분 평생 열네 시간의 성교육을 받는 것이다. 이렇듯 학교 성교육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성교육의 질과 양은 학교의 규모, 교사의 의지, 학교 관리자의 의식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과연 성 인권 의식을 제대로 가질 수 있을까? 아이들은 남녀 누구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성적 존재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누구한테 배울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이 자신과 타인에게 성 인권이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 채 사회에 들어선다.
십 대에게 성은 있는가?
그나마 이루어지는 성교육은 억압적인 교육이 주를 이룬다. 일례로 2015년에 교육부가 발표한 『성교육 표준안』을 보면 “학생의 성 행동은 금욕을 기본”으로 가르치라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억압적인 교육을 전제로 하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순결 교육으로 대표되는 성에 대한 위협 전술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의 눈을 벗어나 성생활을 하고 있고, 이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기에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을 성적 존재이자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는 성 인권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야말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여 그들이 마음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성적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부정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성 행동을 할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성 인권 교육의 출발이다.
‘피해자 되지 않기’가 아니라 ‘가해자 되지 않기’
그동안 한국 성교육의 주를 이루어 온 또 다른 줄기는 ‘저항(피하는) 교육’이다. 말하자면 아이들을 성범죄 상황의 잠재적 피해자로 상정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라고만 가르쳐 온 것이다. 그러나 35초면 풀리는 경계심을 가진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는 식의 막연한 교육은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싫어요” 교육은 위기 상황에서는 자칫 생명까지 잃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싫어요”라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은 이미 성폭력 상황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런 교육은 “싫어요”라고 말을 하지 못한 아이가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 책은 아이들을 겁주고 움츠러들게 하는 ‘피해자 되지 않기’ 교육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도모하는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성 행동이 타인에 대한 존중인지 침해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이에 더해 음란물을 통해 왜곡된 성 인식을 흡수한 아이들은 상대를 성적 도구화하는 데 익숙해지고 사랑 없는 성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렇듯 아이들 사이에서 심각한 성 인지 감수성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한국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조심하라는 교육만 하고 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 인식을 심어 주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 성적 주체로서 자신이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듯이 상대의 권리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인권 보호라는 것을 아이들이 확실히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타인의 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명백히 성폭력 범죄라는 인식이 어려서부터 자리 잡도록 해 주어야 한다.
여자는 얼굴이 권력이고 남자는 성적이 권력이다?
한 여자 고등학교의 교훈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이고, 한 남자 고등학교 학급의 급훈은 “여자는 얼굴이 권력이고 남자는 성적이 권력이다”라고 한다. 어느 시대의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대한민국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학교는 사회의 성 고정관념과 성차별적 요소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넘어 더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 역할에 맞게 자라기를 기대하는 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을 대하는 교육자들이 심각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변해야 할 것은 어른들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 특히 교사나 학부모의 성 인지 감수성은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내면화되므로 그들의 성 인권 인식 개선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이 학교의 현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성 고정관념, 성차별, 성폭력, 성 문화를 심도 있게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성 고정관념이 팽배하고, 성차별이 만연하며, 성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어른들의 인식이 변할 때 비로소 아이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기 이전에 어른들이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