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행에서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
한 권으로 읽는 한일 관계사 & 일본사
교토를 중심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일 관계사와 일본의 역사를 살펴본 책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됐다. 1천 년 이상 일본의 수도로서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교토는 일본의 문화 중심지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 책 한 권이면 일본의 역사와 한일 관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훑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라!
서울과 교토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한일 관계사 전문가가 들려주는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이야기가 당신의 시야를 넓혀 준다. 일본, 이제 알고 떠나자!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각 개성이 풍부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명의 교류는 평화롭게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침략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과 일본은 지구상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라는 명저에서 이런 한국과 일본을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로 비유했다.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을 되풀이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라고 촉구하는 그의 경구(警句)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교토의 유적·유물에는 그런 충고를 뒷받침해 주는 사연이 너무나 많이 깃들어 있다. -저자의 말 중에서
목차
저자의 말
한국과 일본의 시대구분
들어가기 전에 | 교토의 역사와 한일 교류
역사의 켜가 쌓인 교토 | 교토의 풍수지리 | 교토 문명의 탄생 | 헤이안쿄의 공간 구조와 시설 배치 | 무가의 도시가 된 교토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 도쿠가와 막부가 이끈 교토 부흥 | 번영을 되찾은 교토 | 교토에서 찾는 한일 교류의 궤적
1 고대 | 교토의 시작과 도래인의 역할
1. 한국 문화의 일본 전파
문명의 교류와 인간의 이동 | 교류의 기원과 한국의 역할 | 빗살무늬토기와 조몬토기 | 벼농사의 전파와 야요이 문화 | 국가의 형성, ‘왜, 야마토, 일본’ |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 일본을 바꾼 도래 문화 | 통일 신라·발해와 일본의 교류 | 일본과 중국의 교류 | 일본 고대 문명에 대한 바른 시각 | 한일의 문명 전환과 교토
2. 교토를 개척한 도래인 집단
도래인의 물결과 그들의 활약 | 하타 씨의 가쓰라 지역 개척 | 고류지의 쌍둥이 미륵반가사유상 | 가쓰라 본궁에 깃든 하타노 가와카쓰와 쇼토쿠 태자의 일화 | 백제계 도래인이 창건한 기요미즈데라 | 일본 신앙의 원조가 된 도래인
3. 교토에 살아 있는 백제와 신라의 숨결
백제 왕실의 인척, 천황가 | 무역 제국 신라의 위대한 흔적 | 고승 엔닌과 무역왕 장보고 | 신라선신당과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미쓰
2 중세 | 무가의 득세와 선종의 융성
1. 무사의 시대, 교토의 변신
헤이안쿄에서 교토로 | 율령제를 대신한 장원공령제 | 전국적 무가 정권, 가마쿠라 막부 설치
2. 무로마치 막부와 선종 문화
무가의 권력 다툼에 멍든 교토 | 선종의 유행과 쇼코쿠지 | 긴카쿠지와 난젠지의 일본식 정원
3. 나라와 시대를 뛰어넘은 고승의 존경과 공감
고잔지와 묘에 스님 | 의상과 원효대사가 주인공인 두루마리 그림 | 의상대사를 향한 선묘 낭자의 연정 | 의상대사를 본받으려 한 묘에 스님
3 근세 | 교토의 개조와 교류의 확대
1. 통일 전쟁의 중심이 된 교토
오다 노부나가의 사라진 꿈 | 교토를 개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2. 교토에 배어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욕
사치를 탐한 히데요시의 호화찬란한 저택, 주라쿠다이 | 임진왜란을 예고한 조선 통신사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만남 | 도요토미 가의 멸망을 부른, 호코지 동종의 명문 | 한때 정치와 외교의 무대였던 후시미 성 | 히데요시가 벚꽃놀이를 즐긴 다이고지 | 히데요시와 센노 리큐의 비극적 교유
3. 임진왜란과 교토
최악의 침략 전쟁, 임진왜란의 발원지 교토 | 조선인의 원혼이 떠도는 이총 | 노예로 팔리거나 학대당한 조선인들 | 교토에서 유학을 가르친 조선의 학자들 | 계획적인 조선 문물 약탈과 보전 | 조선의 꽃나무까지 파 간 일본군 | 메이지 정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영웅으로 부활시키다
4. 지략과 간계가 뒤엉킨 임진왜란 강화 회담
험난한 임진왜란 전후 처리 | 강화회담의 물꼬를 튼 송운대사 | 쓰시마 번의 조일 강화 중개 | 일본의 전문 외교관, 조선수문직 | 송운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시미 성 담판 | 서로를 알아 가는 한일 역사 기행
5. 실리를 위해 대결 구도를 피한 사절 외교
조선의 강화 조건과 쓰시마 번의 책략 | 궁리 끝에 보낸 외교 사절, 회답겸쇄환사 | 임진왜란의 전후 처리가 주는 교훈 | 지쇼인에 남은 조선 통신사의 흔적 | 장군은 일본 국왕인가, 일본국 대군인가 | 통신사 외교, 신의 속의 자존심 대결 | 통신사의 여정과 교유 | 통신사 외교의 변질과 종말 | 통신사 부활이 만든 지역 간 교류의 촉진과 세계기록유산 등록
6. 비단·인삼·은화의 3국 교역과 교토의 번영
조일 무역의 창구, 왜관 | 교토의 젖줄이 된 다카세가와 운하 | 무역의 결제 수단이 된 일본의 은화 | 교토의 비단과 염색 | 3국 무역의 최고 인기 상품, 조선 인삼 | 중계무역의 쇠퇴와 갈림길에 놓인 조선 | 외교 방식의 개편으로 궁지에 몰린 쓰시마 번
4 근대 1 | 메이지 유신과 재생을 위한 교토의 노력
1. 혁명의 도시가 된 교토
교토, 혁명의 도가니에 빠지다 | 조슈 군과 사쓰마 군의 전투, 불타 버린 교토 | 모반과 암살의 무대, 교토에 남은 유신의 사적들 | 메이지 유신 단행과 국가 개조 | 일본 애국의 성지, 료젠 묘역
2. 위기를 기회로 바꾼 교토의 저력
수도 이전이 가져온 교토의 위기 | 교토 부활의 바탕이 된 소수사업 | 교토의 저력을 과시한 정도(定都) 1,100년 기념사업 | 교토에 활력을 불어넣은 교토의 기발한 기획 - 영화, 춤, 벚꽃, 시장, 교육
4 근대 2 | 일본의 한국 지배와 한국인의 고투
1. 국제 정세의 변화와 일본의 한국 강점
러일의 대립과 광무개혁의 좌절 | 강요된 협약 체결에 의한 대한제국 폐멸 | 합법을 가장한 병합 조약
2. 교토에 건재한 한국 침략의 유적
근대 일본의 상징 메이지 천황의 무덤 | 충신의 아이콘이 된 노기 마레스케 | 한국 강점을 정당화한 한국합병봉고제비 비문 | 일본의 대러정책을 결정한 곳, 무린안 |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별장, 간코다카세가와니조엔 |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순종황제의 영욕을 품은 조라쿠칸
3. 도일한 한국인의 비참한 생활
늘어난 재일 한국인 | 재일 한국인의 민족차별 속 생존 투쟁과 민족운동 | 간토 대지진과 한국인 학살을 부른 유언비어 | 한국인 동화 사업과 전시 동원 | 일본의 항복과 한국인의 귀환
4. 교토에서 고난을 헤쳐 나간 한국인의 자취
한국인 노동자와 니시진 | 비와 호 소수 공사에 참여한 한국인 노동자 | 돼지우리라고 불렸던 한국인 노동자의 집단 거주지 | 가파르게 늘어난 한국인 유학생 | 한국인 유학생의 활동과 민족운동 | 학도병 소집과 대일 협력 | 교토제국대학의 한국인 교수 | 윤동주의 시비를 세운 도시샤대학 | 교토제국대학의 송몽규와 독립운동 | 정지용과 교토의 시상(詩想)
5 현대 | 한일의 문명 전환과 평화 공영 모색
1. 일제의 패망과 남북에 남은 일제 유산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해방 | 미 · 소의 점령과 분단국가의 수립 | 일제의 유산 ⑴: 인적 자원의 활용과 처벌 | 일제의 유산 ⑵: 물적 자원의 분포와 대체 | 일제의 유산 ⑶: 법령 · 제도, 이념 · 체제의 계승과 개혁 | 남북한과 일본의 문명 전환
2. 일본의 체제 변혁과 경제 발전
연합군이 주입한 자유와 민주 | 동아시아의 냉전과 미일 안보조약 | 6·25 전쟁과 일본의 경제 부흥
3. 한일의 국교 재개와 교류 확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 |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 | ‘평화선’의 철폐와 어업 지원 |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영주권 확보 | 문화재 반환과 문화 교류 | 독도 영유권 문제의 처리 | 남겨진 과제, 북일 수교 | 눈부시게 증가한 한일의 물적·인적 교류 | 서로에게 이익이 된 교류와 협력 | 자라나는 연대와 공감 의식
4. 한일 연대와 공생을 일깨우는 교토의 사적
일본인과 한국인을 함께 새긴 해방전사비 | 한국인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만주지 | 우키시마 호 순난자 추도비 | 우토로의 한국인 거주지 | 한국 문화의 멋을 보여 주는 고려미술관
5. 한일 관계의 새로운 이해와 『서울과 교토의 1만 년』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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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재정
출판사리뷰
일본인의 마음의 도시이자 1천 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문화 중심지 교토를 통해서 본 일본과 한국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두 나라가 육지로 연결돼 있던 약 6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해가 호수였던 시절부터 이어진 사이니 보통 관계는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한일전만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앙숙 같은 사이가 돼 버렸을까.
곧바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가 떠오른다. 임진왜란은 역사상 최악의 침략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아무런 명분 없이 쳐들어와 조선의 문물을 마구 약탈했는데, 여섯 개의 특수 부대까지 편성한 조직적인 약탈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은 승리의 증거로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본국으로 보냈기에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 일제강점기는 그 깊은 상처와 갈등이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해결되지 않고 있기에 더 말하지는 않겠다. 그런 일본이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가난에 쪼들릴 때 한국 전쟁 특수로 경제 회복을 넘어 경제 부흥을 이루게 됐으니 관계가 꽤나 복잡 미묘하긴 하다. 문명 전달의 관계 전환, 침략전쟁, 그럼에도 다시 시작한 교역…….
이러한 관계 변화의 한가운데에 교토가 있었다. 천 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곳곳에 유적과 유물이 있는,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파한 도래인(이주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조를 단행했던 곳이며, 윤동주와 정지용 등 우리 유학생들의 애환이 어린 곳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노동자로 동원된 뒤 일본에 잔류한 재일동포 집단 거주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한일관계사의 권위자인 정재정 교수가 교토의 곳곳을 다니며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더듬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고 그곳 학자들과 교류하며 한일 관계사를 연구한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은 받아들인 것을 한 번 쓰고 내버리는 ‘설사 문화’고,
일본은 받아들인 것을 꼭꼭 쌓아 두고 우려먹는 ‘변비 문화’다?!
이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나라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어떻게 다른 문화를 형성하게 됐는지 그 배경과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왜 교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을까?
- 교토는 백제, 신라, 가야, 고구려 등 아시아 대륙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으로, 그들이 일본 문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 무가와 천황 간 정권 교체의 중심에 있었기에 이 정권 교체가 일본과 이웃 나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보여 준다. 또한 교토는 수도의 지위를 잃고도 거듭 변신을 꾀하며 발전해 왔는데, 이를 위한 교토시민의 다양한 노력을 볼 수 있다.
- 역사적인 사건이 많이 벌어졌던 곳이며, 세력가들이 자신의 권세를 자랑하고 싶을 때 이곳에 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에 역사의 흔적이 담긴 유적·유물이 많다. ‘교토에서는 발에 차이는 게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 임진왜란의 시작점이기에 우리와는 악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은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다 묻은 이총과 고종황제를 황제 자리에서 쫓아낸 장본인인 메이지 천황의 묘가 있는 곳으로, 고종황제는 그 묘를 참배하는 능욕까지 겪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윤동주, 송몽규, 정지용 등이 유학했고, 많은 한국인 노동자가 일했던 곳이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살았던 한국인들의 활동과 행적을 읽을 수 있다.
- 지금도 시내에 1,600여 개의 사원과 400여 개의 신사가 성업하고 있는 곳으로, 일본의 독특한 종교 문화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