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언어로 빛을 창조하려 했던 작가가 내뿜은 첫 번째 광휘
1943년, 브라질의 무명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인세 대신 책 100부를 받는 조건으로 첫 장편 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출간했다. 이듬해 이 소설은 브라질 문학계를 완전히 뒤흔들었고, 문학계 인사들은 그녀에게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작품이 충격을 안겨 준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감한 천재성 때문이었다. 심지어 막 작품을 탈고한 리스펙토르 본인도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 메모 뭉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이 놀라운 데뷔작에서 많은 작가의 흔적을 발견했다.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페르난두 페소아,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하지만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단순한 모자이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곳에서 모은 것들을 모두 녹이는 용광로였다. 재료들이 불타고 녹으면서 피워 내는 빛과 열이 이 작품의 진정한 형태였다. 리스펙토르를 번역하면서 빛에 피폭되었다고 말한 배수아 작가의 후기는 이 작가만의 특별한 매력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야생의 심장 가까이』의 논리적 도약과 시적 묘사 등은 유럽 모더니즘 문학보다 더욱 강렬하고 과감하다. 작품 속 사고의 궤적은 의식의 흐름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작품들만큼 위태로운 커브를 그리고, 리스펙토르의 비유는 우리가 알던 단어들을 생경한 방식으로 충돌시킨다. 마치 화려한 원색으로 가득한 꿈 또는 무의식 속으로 위험하리만치 빠르게 빠져드는 듯하다.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 주아나는 이 기이한 환상과 현실 속을 고독하게 떠돌다 불현듯 깨어난다. ‘리스펙토르 문학’이라는 전무후무한 우주는 그 순간 스스로의 탄생을 선언한 것이다.
목차
1부
아버지
주아나의 날
어머니
주아나의 산책
숙모
주아나의 기쁨들
목욕
그 목소리를 가진 여자와 주아나
오타비우
2부
결혼
선생님에게로 도망치다
작은 가족
오타비우와의 만남
리디아
그 남자
그 남자에게로 도망치다
독사
떠나간 그 남자
여행
저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은이), 민승남 (옮긴이)
출판사리뷰
언어로 빛을 창조하려 했던 작가가 내뿜은 첫 번째 광휘
1943년, 브라질의 무명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인세 대신 책 100부를 받는 조건으로 첫 장편 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출간했다. 이듬해 이 소설은 브라질 문학계를 완전히 뒤흔들었고, 그해 최고의 데뷔 작품에 주어지는 그라샤 아랑냐상을 수상했다. 문학계 인사들은 그녀에게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작품이 충격을 안겨 준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감한 천재성 때문이었다. 심지어 막 작품을 탈고한 리스펙토르 본인도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 메모 뭉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그녀의 연인이었던 작가 루시우 카르도주는 ‘이것은 새로운 문학’이라며 그녀를 간신히 설득했고, 제임스 조이스가 쓴 『젊은 예술가의 초상』 속 한 구절을 이 작품의 제목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몇몇 비평가들은 버지니아 울프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스펙토르는 그때까지 조이스와 울프를 읽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고, 자신의 스타일은 정밀한 무의식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대답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놀라운 데뷔작에서 더 많은 작가들의 흔적을 읽어 냈다. 페르난두 페소아,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그 총합이 바로 이 작품의 정수였다. 하지만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단순한 모자이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곳에서 모은 것들을 모두 녹이는 용광로였다. 재료들이 불타고 녹으면서 피워 내는 빛과 열이 이 작품의 진정한 형태였다. 리스펙토르를 번역하면서 ‘빛에 피폭’되었다고 말한 배수아 작가의 후기는 이 작가만의 특별한 매력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야생의 심장 가까이』의 논리적 도약과 시적 묘사, 성경 속 서신처럼 응축된 선언 등은 유럽 모더니즘 문학보다 강렬하고 과감하다. 작품 속 사고의 궤적은 의식의 흐름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작품들만큼 위태로운 커브를 그리고, 리스펙토르의 비유는 우리가 알던 단어들을 생경한 방식으로 충돌시킨다. 마치 화려한 원색으로 가득한 꿈 또는 무의식 속으로 위험하리만치 빠르게 빠져드는 듯하다. 특히 다른 작품에 비해 유독 이미지를 통한 비유를 많이 사용한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리스펙토르가 남긴 가장 감각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리스펙토르의 시작이자 모든 것
한편,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리스펙토르의 작법과 세계관을 조망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의 작품들이 틔우게 될 씨앗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는 리스펙토르 특유의 전개 방식, 즉 안온함 속에서도 불안의 징후를 찾아내는 천부적인 감각과 그 불안 속에서 홀연히 시작되는 철학적 독백, 또 그렇게 달라진 인식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나는 세계의 풍경이 반복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풍경과 사색들은 완전히 해설되지 않고 수수께끼인 채로 남겨진다. 이 수수께끼에 대해 작품의 주인공 주아나는 생각이 언어로 정리되는 순간 그 생각이 생명력을 잃기 시작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리스펙토르 자신의 세계관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녀가 문장과 문단 틈에 뚫어 놓은 구멍은 언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저 너머의 세계를 직관적으로 엿볼 수 있도록 준비된 창문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목적지는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구멍을 통해서만 목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주아나를 통해 이 주제 의식을 열렬히, 또한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방황의 끝에 다다른 주아나가 10여 페이지에 걸쳐 읊조리는 독백은 이후의 리스펙토르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그 독백은 스물세 살의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진 예언이었고, 그 예언에 따라 ‘리스펙토르 문학’이라는 우주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신비한 작가를 알아 가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단서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