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옛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그들의 일기 편지 제문 상소 등에 걸친 64편을 보면 어렴풋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차를 보내주지 않는다고 재촉하는 편지를 보내거나, 풍경을 감상키 위해 소를 타고 다닌다는 등 권 근, 김부식, 박지원, 정약용 등 이름난 명사들의 생각 역시 오늘의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추사체라는 독특하고 힘있는 필법으로 유명한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 기다리던 답장이 오지 않자 추사는 "나는 선사를 보고 싶지도 않고, 또한 선사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차로 해서 맺은 인연만은 끊어버리지 못하고 또 쉽게 부숴버리지 못하여 다시 차를 재촉하는 것이니..."라고 또다시 편지를 쓴다. 그가 진정 차를 마시고 싶어 그런 것인지 초의 선사와의 교류를 계속하려고 그 편지를 쓴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대목은 옅은 미소를 지어내기에 충분하다. 요즘 아이들이란, 오래된 유적의 흔적에서 보이듯, 시대와는 상관없이 사람의 생각은 다들 같은 모양이다.
목차
1. 생활의 예지
.늙은 쥐의 꾀-고상안 ... 15
.아비 도둑과 아들 도둑 이야기-강희맹 ... 18
.세 형제의 등산-강희맹 ... 23
.꿩 사냥-강희맹 ... 27
.대나무-이인로 ... 32
...
.밤새 강을 아홉 번 건너다 ... 55
2. 한가로운과 풍류
.숨어사는 선비의 즐거움-신흠 ... 63
.구름 속의 정자-김수온 ... 75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정약용 ... 79
...
.게으름도 때로는 이로움이 되나니-성현 ... 117
3. 사랑과 고뇌 그리고 소망
.의로운 거위 이야기-주세붕 ... 125
.아내의 영전에-김종직 ... 128
.형님 영전에 바칩니다-김일손 ... 132
...
.친구 박영기가 토계의 수신에게 제사 지내고 그 아우의 시신을 찾는 것을 돕기 위해 지은 글-김택영 ... 170
4. 오는 정 가는 정
.백영숙을 기립협으로 보내며-박지원 ... 179
.술 익자 살구꽃 피니-이규보 ... 181
.초의 선사께-김정희 ... 183
...
.남명 조식 선생께-이황 ... 208
5. 사랑하는 사람들, 정다운 이웃들
.닭의 여섯번째 미덕-이첨 ... 217
.나의 어머니 사임당의 생애-이이 ... 219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현보 ... 224
...
.고양이-서거정 ... 255
6. 인식과 비판의 칼
.이상한 관상쟁의 이야기-이규보 ... 261
.금남에 사는 어느 야인의 비판-정도전 ... 265
.파리를 조문하는 글-정약용 ... 268
...
.선비 정신-신흠 ... 289
7. 옛 법을 다시 쓰니
.꽃으로 왕을 깨우치다-설총 ... 295
.규정기-조위 ... 298
.<삼국사기>를 바치며-김부식 ... 302
...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최치원 ... 318
삼국사기>
저자
강희맹 외
출판사리뷰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출판계에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바로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탐구가 그것이다. 더욱 새롭고 유익한 정보를 찾는 독자들과 소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출판계, 모두에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반가운 움직임이 한때 몰아치고 지나가 버리는 광풍이 아니라, 독자들의 일상 속에 꾸준히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의미 있는 우리 고전 한 권이 출판되었다. 선조들의 진한 풍취를 담은 고전 한문수필을 우리 일상의 언어로 재미있고 친숙하게 되살려 낸 이 바로 그것이다.
설총, 최치원, 이규보, 이수광, 박지원, 정약용, 허균, 김시습, 이황, 이이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단을 빛낸 선인들의 주옥 같은 한문수필 64편을 담았다. 서정성에 가장 큰 기준을 두되, 풍자와 해학의 현실비판적 글 또한 빠트리지 않고 가장 빼어난 작품들을 엄선한 것이다. 이 책은 주제별로 나누어 총 7장으로 구성했다. 한문 문체의 특성도 고려하였는데, 설류(說類)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모은 제1장 생활의 예지를 시작으로, 제2장 한가로움과 풍류는 기류(記類), 제3장 사랑과 고뇌 그리고 소망은 제문(祭文), 제4장 오는 정 가는 정은 서류(書類)에 해당한다. 제5장 사랑하는 사람들 정다운 이웃들에서는 생활 주변의 일화를 모았고, 제6장 인식과 비판의 칼은 소(疏)와 논(論)을, 마지막 장 옛 법을 다시 쓰니에서는 각종 헌사(獻詞) 등을 모아 엮은 것이다. 글맛이 살아나는 자연스러운 문장은 이 책을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한문 원전만의 독특한 맛 즉 주제의 통일성, 구성의 논리성, 간결한 표현미와 문장의 리듬감 등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의 취향에 맞는 문장으로 표현해 내는 데 주력하였다. 원문의 얼개와 향기를 살리되 딱딱한 의고체를 피하고 경박하지 않으며, 원전의 독특한 맛과 리듬감을 살린 문체로 고전 수필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하였다.
이 책은 일반인뿐 아니라 중고생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으며 고전 문학은 어렵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단번에 깨어줄 재미있는 구절로 가득하다. 예컨대, 다산 정약용이 교우들과의 친목과 학술을 도모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면서, 그 모임의 이름과 규약을 기록하였는데, (竹蘭詩社書帖)이라고 하는 이 규약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역사에서 만난 대학자 정약용의 근엄한 얼굴 위로 한가로이 풍류를 즐기며 장난기까지 묻어나는 선비의 얼굴이 겹치면서, 독자들은 은근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
"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서늘한 초가을 서지에 연꽃이 구경할 만하면 한 번 모이고,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이 되어 큰 눈 내리는 날 한 번 모이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이기로 한다.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해서 술을 마셔가며 시가를 읊조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 나이 어린 사람부터 먼저 모임을 주선토록 하여 차례대로 나이 많은 사람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시작하여 반복하게 한다. 정기 모임 외에 아들을 낳은 사람이 있으면 한턱 내고, 고을 살이를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한턱 내고, 승진한 사람도 한턱 내고, 자제가 과거에 합격한 사람도 한턱 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