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김형중의 비평집 『제복과 수갑-긴급조치 시대의 한국 소설』(문학과지성사, 2023)이 출간되었다. 한국문학의 한가운데서 꾸준한 저작 활동을 해온 저자는 소천비평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비평에서의 자기 영역을 끊임없이 개진해왔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가 식민지 시기부터 지금의 분단국이 형성되기까지 단 한 번도 ‘예외상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집중하여, 이를 푸코의 ‘생명권력’에 입각해 다채로운 시각으로 분석한다. 특히 ‘한강의 기적’이라는 구호 아래 기형적인 성장을 일궈낸 1970년대를 중심으로 개발독재, 군사독재, 급속근대화가 이루어졌던 배경과 그 이후에 남은 병폐를 짚어나간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1960년대부터 팬데믹의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사에서 깊이 다루지 않았던 작가를 조명하는 건 물론, 발표 이후 단일한 연구 방법으로만 분석되어온 작품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과정은 고속도로 발전한 한국 사회의 성장 이면을 해체하는 과정이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작품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1부 프롤로그
한국의 1960~70년대와 생명정치 9
2부 생명권력과 문학사
파우스트의 시대 31
─김광식·김동립·남정현·박태순·김정한 소설 재론
풍자와 정신병리 1 59
─남정현 소설에 나타난 정신병리
풍자와 정신병리 2 86
─남정현 소설에 나타난 정신병리와 권력의 테크놀로지
강요당한 선택 106
─김승옥의 1960년대 중·단편 소설 재론
민도식의 해방 129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에 나타난 권력의 양상
난민들의 문학사 154
─‘광주 대단지 사건’과 생명정치 시대의 한국문학
긴급조치 시대의 호모 사케르 180
─최인호의 중·단편 소설 재론
3부 팬데믹 이후
다시 포스트모더니즘을 찾아서 199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 통치성
마스크 쓴 사회 220
─‘코로나 19’ 시대에 대한 메모들
PESD와 ICD 242
4부 에필로그
심기증(Hypochondria) 시대 269
마치며 284
저자
김형중 (지은이)
출판사리뷰
오늘날 한국의 역사, 경제, 정치를 말할 때면 빠지지 않고 1960~70년대가 소환된다. 각자의 삶의 궤적에 따라 혹은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달리 일컫는 시대.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 묵살되어왔던 개인의 삶을 이 책은 푸코의 권력이론을 발판 삼아 세심하게 분석해나간다. 오랜 시간 문학장의 중심에서 한국사에 한국문학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분석으로 자기만의 비평을 이어온 작가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자신이 푸코의 권력이론에 매료되었음을 밝힌다. 푸코의 생명권력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의 권력이 이전 시대와는 확연하게 다름을 우선으로 한다. 이전 시대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전략을 고수한 근대 권력은 개인 단위가 아닌 인구 단위의 대규모 집단의 질서를 구축하고 창조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즉 개인이라는 자원을 국가 질서에 개입시키기 위해 보다 더 효율적으로 길들이는 것이다. 이는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소환되는 박정희의 독재정치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모두 “온 국민을 같은 시간에 깨우고 같은 시간에 귀가시키고 비슷한 노래를 듣게 하”는 게 당연하듯 용인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거대한 정치권력에 조직적으로 길들어진 개인의 삶과 욕망은 찾아볼 수 없다. 혹은 이름만 남기고 그 행적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듯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에서 번뇌하는 개인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가.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문학작품이다.
전쟁이 아닌 실직에 고통받는 사람들
1960년대 한국 소설
저자는 그동안 문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1960년대 소설에 대해 조명하면서 예로 든 작품을 괴테의 『파우스트』와 병치해 혼란스러운 시대의 작품 속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번뇌와 고통에 대해 보여준다. 즉 한국의 개발독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60~70년대의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을 ‘사이비 파우스트’에 맞선 기록물들로 새로이 분석해낸다. 이렇듯 1960년대 한국문학을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50년대와 개발독재와 민중의 현실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 70년대의 가교 구실에서 벗어나 그 시대만의 특수한 문학사상을 짚어낸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그간의 문학사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은 김광식과 김동립의 작품 세계를 다루는데, 여기서는 전쟁의 상흔이 아닌 이후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국적 모더니티’에 집중한다. 이제 더는 전쟁의 트라우마가 아닌 ‘근대의 공포’가 자리 잡은 시대적 변화를 꼬집는 것이다. 이러한 변모를 잘 드러내는 김광식의 단편 「213호 주택」(1956)은 일종의 강박신경증을 앓는 주인공 김명학의 의미 없이 반복되는 행위와 정확성에 집착하는 태도는 ‘전쟁’이 아닌 ‘실직’에 고통받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전쟁이 아닌 이제 막 산업사회를 맞이한 한국의 자본주의적 일상을 보여준다.
김광식, 김동립이 60년대 소설의 징후를 보여주었다면 사회의 규율과 현대인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확장한 작가는 남정현이다. 한국 문학사상 최초의 반미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반미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분지」(1965)를 중심으로 그동안 남정현 작품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정신분석학적 연구 방법을 대입시킨다. 그간 남정현의 소설이 반미문학, 풍자문학이라는 평 외에는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남정현의 작품에 정신병리적 상태에 놓인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이 없다는 것을 짚어낸다. 망상과 편집증부터 여러 도착적 증세와 강박에 시달리는 남정현의 작품은 “다양한 신경증 징후들의 진열장”이라 해도 될 정도로 그 모습이 다양한데, 그중 허허 선생(「허허 선생」 연작)은 자신의 안전이 침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 채 수많은 개를 기르고 위험한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집을 만들고, 땅굴을 파는 것과 같은 태도를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이처럼 남정현의 작품 속 인물들의 과대망상과 강박증은 당시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사대주의와 정치적 부패를 공격적으로 풍자하는 데 성공한다.
산업화의 전말은 소외된 도시인
1970년대 한국 소설
박정희 집권 당시 대한민국은 권력이 국가 건설에 필요한 개인과 인구 질서를 조형하는 생명권력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어왔다. 그중 광주대단지사건은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 행정에 반발하여 시민들이 도시를 점거한 빈민항거운동으로 가까스로 정부의 입장 변화를 끌어내긴 했지만 ‘단순 폭동’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당시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윤흥길은 자신이 가르치는 한 여학생의 우울한 얼굴과 예비군 훈련장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의 당사자를 만난 것을 계기로 이 사건을 더 알리기 위해 교편을 내려놓고 집필을 시작한다. 그 작품이 바로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며 문학으로서 역사를 기록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이다. 민중문학을 예비한 예언적 작품인 동시에 산업화 시대 한국의 소시민들의 세계를 예리하게 묘파한 이 작품은 순박한 시민 ‘권기용’과 병든 지식인 ‘오 선생’을 주축으로 여러 해석과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김형중은 이 연작의 주요 인물이 둘이 아닌 셋임을 강조하며 제3의 인물 민도식을 소환한다. 1980년대 한국의 문학사는 민도식의 의미화를 뒤로해왔다. 당시 강제이주를 당한 철거민들이 주권 없는 난민 신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민도식이 불안에 가득 찬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다. 김형중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도시 봉기이자 박정희 개발독재권력의 성격을 보여주는 광주대단지사건을 대척점에 서 있는 시민과 지식인을 통해 보여주는 게 아니라 모진 시련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끊임없이 말하려 했던 각각의 인물에 더 탐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1970년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는 최인훈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최인훈은 “당시 주류 소설과 달리 한국의 모더니티를 개인심리와 일상의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타인의 방」은 아내가 외출한 사이 출장에서 돌아온 남자가 사물로 변한다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이때 수많은 사물이 남자에게 말을 걸고 반대로 남자는 점점 사물처럼 굳어간다는 설정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모던하고 감각적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등장한 ‘아파트’와 같은 상징 최인훈 소설을 읽는 것도 하나의 독법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최인훈이 「타인의 방」 외에도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 「위대한 유산」 「깊고 푸른 밤」 같은 문제작을 발표했다는 것에 집중해 그의 작품이 너무도 선구적인 탓에 당시 한국의 문학장에서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적절하게 대응할 개념적 도구나 패러다임이 부재했음을 짚어낸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여전히 불안을 먹고사는 사회
책은 1970년대를 지나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 작품에서 나타나는 ‘생명권력’의 그늘을 조명한다.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 국민이 통제된 생활을 해야만 했던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되짚는다. 한국은 팬데믹 당시 철저한 확진자 이동 경로 탐색과 실시간 데이터 공유로 잠시나마 과학 방역의 성공을 경험하는 듯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개인위생에 철저히 신경을 썼으며 정부와 지자체 역시 개인의 작은 움직임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이 대규모 인구 단위의 통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일찍이 일제의 위생경찰 제도와 박정희 정권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근대 권력 주도하에 우리는 주체성을 가진 한 개인이 아닌 보다 정확한 생산성을 가진 시민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한국 사회의 ‘생명권력’은 전쟁의 불안, 자본주의 불안, 도시화의 불안, 질병의 불안과 함께 변화해왔고 이와 함께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의 심기증은 더욱더 극심한 형태로 그려졌다. 이 책의 마지막 차례인 「심기증(Hypochondria) 시대」에 “자본은 심기증을 먹고산다. 그리고 먹이를 쉽게 놓아주는 것은 자본의 생리가 아니다”라는 평론가 김형중의 말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