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문학과지성 시인선 리커버 한정판’과 함께하는 특별한 여름!
여름, 바다, 장마…
지난 시간을 뜨겁게 채워온 세 권의 시집을
이 계절의 시집으로 다시 만나다!
“그 여름의 끝”을 향해 가는 길에서,
“바다는 잘 있습니다”라는 안부를 마음에 품고,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통권 585호를 돌파하며 600호의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는 〈문학과지성 시인선〉은(2023년 6월 현재) 1978년 황동규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시의 오늘을 담아내며 한국 현대 시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전무후무한 시집 시리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오고 있는 디자인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디자인은 초기의 판형, 용지, 제본 방식을 포함한 주 골격을 유지하되(오규원 디자인, 이제하 김영태 컷), 100호를 단위로 표지 테두리의 기본 색깔을 달리하고 내지와 표지에 쓰인 글꼴의 크기와 배치에 미세한 변화를 부여하는 선에서 본래 디자인의 전통성을 지켜왔다. 표지 전면의 액자 프레임과 시인의 독특한 캐리커처로 대표되는 시집의 얼굴은 그 과감한 색면 디자인과 압도적인 은유로 이 시집 시리즈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다. 시대를 앞서는 사유의 진폭과 언어 미학의 정수를 담아온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역사, 그 의미와 무게가 디자인에 고스란히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는 이러한 역사를 계속해서 써내려가는 가운데, 새로운 모색과 도전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개별 시집에 집중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디자인을 선보이는 리커버 작업이 그중 하나이다. 시작은 2020년, 문학과지성사 창사 45주년을 기념하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디자인 페스티벌’이란 기획으로 최승자, 허수경, 한강, 이제니 시인의 시집 리커버 한정판을 펴낸 것이었다. 시대와 세대를 가로지르며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온 세 권의 시집은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지금-여기 도착하여 독자들에게 익숙한 시를 신선한 감각으로 새롭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번에 두번째로 찾아온 ‘문학과지성 시인선 리커버 한정판’은 이성복의 『그 여름의 끝』, 이병률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박준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3종이다. 각각 1977년, 1995년, 2008년에 문단에 나와, 세대는 다르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까지 많은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는 시인들의 시집이다. 그 제목에서부터 이 여름을 시작하며 한 번 더 마음에 담아보고 싶은 이 세 권의 시집은 6월 14일부터 18일까지 코엑스 전시장에서 진행되는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첫 선을 보인다. 3,000부 한정판으로 나왔으며, 도서전 이후 소진 시까지 시중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오롯이 한 시집의 울림을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시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그 안에서 기존의 시들은 어떤 낯선 감정들을 불러일으킬지, 설레는 마음으로 독자들을 특별한 여름의 시 세계로 초대한다.
목차
자서(自序)
느낌 11
만남 12
서해 13
금기 14
물고기 15
꽃피는 시절 16
두 개의 꽃나무 18
어두워지기 전에 1 19
어두워지기 전에 2 20
거리 21
바다 22
집 23
산 24
앞산 25
산길 1 26
산길 2 27
산길 3 28
산길 4 29
산길 5 30
숲속에서 31
숲 1 32
숲 2 33
숲 3 34
나무 1 35
나무 2 36
나무 3 37
강 1 38
강 2 39
강 3 40
물가에서 41
물 건너기 1 42
물 건너기 2 43
절벽 44
아주 흐린 날의 기억 45
혹 46
손 47
고양이 48
기차 49
당신 50
아이 51
소녀들 52
어머니 1 53
어머니 2 54
섬 55
별 56
벽 57
역전(驛傳) 1 58
역전(驛傳) 2 59
역전(驛傳) 3 60
야생화 61
낮은 노래 1 62
낮은 노래 2 63
낮은 노래 3 64
비단길 1 65
비단길 2 66
비단길 3 67
비단길 4 68
비단길 5 69
그대 가까이 1 70
그대 가까이 2 71
그대 가까이 3 72
그대 가까이 4 73
그대 가까이 5 74
강가에서 1 75
강가에서 2 76
강가에서 3 77
병든 이후 78
슬픔 79
사슬 80
노을 81
새 82
발 83
기다림 84
울음 85
사막 86
문신 87
앞날 88
거울 89
노래 1 90
노래 2 91
운명 92
비 1 93
비 2 94
눈물 95
이별 1 96
이별 2 97
길 1 98
길 2 99
애가 1 100
애가 2 101
붉은 돌 102
비린내 103
바람이 지나간 길 104
숨길 수 없는 노래 1 105
숨길 수 없는 노래 2 106
숨길 수 없는 노래 3 107
숨길 수 없는 노래 4 108
입술 109
늘 푸른 노래 110
샘가에서 111
편지 1 112
편지 2 113
편지 3 114
편지 4 115
편집 5 116
그 여름의 끝 117
해설| ‘길’ 위에서의 사랑 노래 · 박철화 118
저자
이성복 (지은이)
출판사리뷰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길 위에서
대칭과 역설로 일깨우는 삶의 비밀들
고통과 사랑의 통과제의가 남긴 ‘숨길 수 없는 노래’
저마다 절망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세파(世波) 속 우리에게 매 고비 뜨겁게 읽혀온 ‘이성복의 시’는 어떤 의미일까. 누구는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라는 그에게서 위로받았을 것이다. 누구는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 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 테지요. 내가 당신을 떠남으로써만…… 당신을 사랑합니다”(『남해 금산』, 1986)라는 고백에 희열로 뒤척이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생에 밀착한 명료하고 강렬한 그의 시적 진술들로(『호랑가시나무의 기억』, 1993)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의 깊이를 맛보았을 테고, 또 어떤 이는 극도로 감정을 절제하고 사물의 부피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정확한 언어를 짚어내는 시들로(『아, 입이 없는 것들』, 2003) 남루한 생이 일순 아름답게 탈바꿈하는 비밀한 순간들을 목도했을 것이다. 어쩌면 외국어로 접한 수십 편의 시적 단상들(『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 2012)을 읽어내며 자신의 독서 이력과 삶의 허기가 함께했던 시간을 포개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하다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래여애반다라』, 2013)이라 말하는 그에게서 그 누구도 생(生)-사(死)-성(性)-식(食)의 기록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그리하여 생의 불가능성을 거듭 되씹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 역시 숱할 것이다.
이렇듯 생의 매 순간, 바라봄만으로 위안을 전하는, 실존의 고뇌와 감각의 깊이로 처연하게 빛나는 숱한 시를 노래한 이성복의 시-숲에서 『그 여름의 끝』(초판 1990)은 그의 세번째 시집이다. “치욕의 시적 변용”에서 지난한 “사랑과 타자”에 대한 고민을 거쳐 시와 문학과 생의 문에 닿는 궁극의 열쇳말을 찾아 흔들리는 ‘이성복의 풍경’에서 중허리에 해당하는 이 시집은 서시 「느낌」에서 시집에 표제를 내어준 「그 여름의 끝」까지 시 총 106편이 묶여 있다. 사랑이라는 말과 타인이라는 말을 거듭 옮기면서 한없이 되살아나고 다시 한없이 되살아내는, 내가 맺는 세계의 깊이와 넓이가 가뭇없이 확장해가는 그 경이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겠다.
뒤표지 시인의 산문
오랫동안 나는 슬픔에 대해 생각해왔다. 유독 왜 슬픔만이 세상 끝까지 뻗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 슬픔 뒤에 다시 슬픔이 남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슬픔은 범속한 나뿐만 아니라, 세상 이치에 대해 두루 통해 있는 성인들까지도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성인의 슬픔은 온통 슬픔 전체일 뿐, 다른 무엇의 대대(對待)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슬픔뿐만 아니라, 기쁨에도 본래 짝지을 것이 없다고. 하늘이 천둥 번개를 친 다음 노하는 것을 보았느냐고. 언제 시체가 슬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더냐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지껏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되었던 슬픔은 한 장의 덮개 그림처럼 떨어져내렸다. 벽도, 덮개 그림도 허깨비일 뿐이며, 그것들이 비록 양파 껍질처럼 거죽이면서 동시에 속이 된다 할지라도 허깨비 이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허깨비가 온통 허깨비 전체라면, 허깨비 아닌 실체가 따로 있겠는가.
시인의 말
세번째 시집을 엮으면서 역시 나는 내 그릇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내게 주어진 일은 남은 시간 동안 불과 몇 밀리라도 비좁은 그릇을 넓혀가는 것이리라.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내 잘못은 아닐 것이다. 마음속의 스승들께 부끄러운 책을 바친다.
1990년 5월
이성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