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망할 놈의 인생이지만 기막히게 아름답네요”
베트남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응우옌후이티엡
짧은 문장에 담은 절제된 표현과 대담한 묘사
근대적 개인에 천착한 불온하고 도전적인 작품들
20세기 베트남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응우옌후이티엡의 소설집 『왕은 없다Khong co vua』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83번으로 출간되었다. 『왕은 없다』는 베트남 전후 문학을 대표하며 개혁·개방 시대의 베트남 문학을 견인한 작가로 손꼽히는 응우옌후이티엡의 단편소설 15편을 모은 것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집이다.
돈 잘 버는 가장이지만 밥 먹듯이 사람들과 다투고 며느리를 훔쳐보는 끼엔 영감(「왕은 없다」), 예편 후 돌아온 집에서 목격한 비인간성에 무력감을 느끼는 퇴역 장군(「퇴역 장군」), 원숭이 사냥에 나섰다가 암컷 원숭이의 집요한 추격에 쫓기며 인간의 이중성에 시달리는 노인(「숲속의 소금」) 등. 전쟁과 민족 같은 거대 담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벗어나 마침내 발현된 응우옌후이티엡의 소설 속 ‘개인들’은 급변하는 세상을 방황하며 욕망, 고독, 권태, 부조리를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인다. 어부, 농사꾼, 소수민족, 군인, 거지, 사냥꾼, 유랑인, 벌목꾼, 교사, 시인, 똥 시장 주인 등, 작가는 정형화되지 않은 인물들과 그들 사이의 갈등, 양면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잃어버린 개인과 인간성 회복의 시작을 보여준다.
“응우옌후이티엡의 「퇴역 장군」을 얻을 수 있다면 내 인생을 모조리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_응우옌카이(호찌민상, 동남아문학상 수상 작가)
목차
흘러라 강물아
왕은 없다
퇴역 장군
꾼
숲속의 소금
강 건너기
수신의 딸
벌목꾼들
농촌의 교훈들
후어땃의 바람
도시의 전설
핏방울
사는 건 참 쉽지
몽 씨 이야기
우리 호앗 삼촌
옮긴이 해설·왕이 없는 땅에서 인간을 돌아본 작가 응우옌후이티엡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저자
응우옌후이티엡 (지은이), 김주영 (옮긴이)
출판사리뷰
불온한 문학으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작가, 응우옌후이티엡
“1986년에 문학 · 예술 분야의 개혁 · 개방 정책이 시행된 후 새로운 작가들이 다수 등장하여 독창적인 작품들을 속속 발표했지만, 그들 중 문학적 완성을 이룬 걸작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작품은 응우옌후이티엡의 작품이 유일하다·” _라응우옌(문학평론가)
응우옌후이티엡은 기나긴 사회적 암흑기에 억압되어온 개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묘사하면서 제도권이 아니라 시대에 부응한 ‘불온한 문학’을 선보였다· 등단 다음 해인 1987년에 발표한 「퇴역 장군」은 민족 해방 전쟁의 주역이었던 한 장군이 퇴역 후 시장경제 사회로 돌아와 목격하게 되는 비인간성과 그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전장으로 되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응우옌후이티엡 현상’을 불러올 정도로 반향이 컸다· 표제작인 「왕은 없다」 또한 전통적인 가족의 붕괴와 무너져가는 가장의 권위, 인간의 도덕적 타락을 풍자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여러 차례 연극으로 상연되기도 했다· 이 외에 「숲속의 소금」은 원숭이라는 대상을 쫓아 사냥에 나서면서 선과 악 사이를 오가는 줄타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복잡한 내면을 잘 보여주고, 「강 건너기」는 함께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승려 · 연인 · 모자 · 골동품 상인 · 교사 · 시인 · 도둑 등 인물 각각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도시의 전설」은 복권 당첨에 집착하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가난한 청년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도시인들의 욕망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응우옌후이티엡의 이와 같은 불온하고 도전적인 면모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정치 · 사상의 제약에서 벗어나 베트남 문학이 잃어버린 개인, 붕괴된 인간성의 회복을 향한 시작을 열어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예리한 통찰과 비판적 사유,
짧은 문장 속 절제된 표현과 대담한 묘사
응우옌후이티엡의 작품들은 짧은 문장 속에 절제된 표현과 대담한 묘사가 돋보이며, 이야기 속 배경과 등장인물 및 소재가 무척 흥미롭고 다양하다· 농촌 · 산간 · 도시를 가리지 않는 작품 속 배경과 어부 · 농사꾼 · 소수민족 · 군인 · 거지 · 사냥꾼 · 유랑인 · 벌목꾼 · 교사 · 시인에 똥 시장 주인까지 다양한 인물 군상을 등장시키는 한편, 민간 신앙 · 불교 · 유교 · 천주교를 넘나드는 종교와 관련한 이야기, 베트남의 전통 풍습 · 문화 · 역사 등이 어우러지는 이야기, 작가의 의도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짧은 시 등, 작가는 다채로운 ‘개인’을 문학 속에 발현하면서 독자들이 함께 사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끝내 사람이 되지 못한 남자의 짧은 생을 그린 「꾼」, 늘 ‘사는 건 참 쉽다’고 말하던 교육시찰관의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을 보여준 「사는 건 참 쉽지」는 ‘사람’의 의미와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흘러라 강물아」에서는 신비한 검은 물소를 찾아 나서지만 냉소와 잔인함만을 마주하게 되는 소년의 절망을, 「수신의 딸」에서는 세상을 구원할 성모와 같은 존재를 찾아 길을 떠나지만 결국 사회의 모순과 암울함을 깨달으며 길 위에서 헤매는 주인공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을 표류하는 고독한 개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응우옌후이티엡의 작품은 이처럼 인간이라는 보편성에 닿아 있기 때문에 베트남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의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각 작품마다 짧은 문장 속에 녹여낸 예리한 통찰과 비판적 사유가 진한 감동과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