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사랑이 아닌
타인을 환대하는 용기이다
*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장희원 첫 소설집 *
* 마음의 온기가 삭막한 이 시대의 희망처럼 읽힌다 *
영영 오지 않을 사람들에게, 환대를…
그리운 건 언제나 찰나의 우리였기에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장희원의 첫번째 소설집 『우리의 환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마음의 온기가 삭막한 이 시대의 희망처럼 읽힌다”(오정희·성석제)라는 심사평과 함께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장희원은 일상 속 소외된 마음과 그 이면에 남아 있는 희망을 정확한 문체와 사려 깊은 묘사로 꾸준히 그려왔다. “모두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우리의 환대』는 타인을 환대하는 용기야말로 자기 자신과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랜 시간 세공하듯 다듬어진 아홉 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부재’인 것 역시 지나간 시간과 흩어진 마음마저 껴안으려는 작가의 선하고 단단한 의지가 엿보인다고 볼 수 있다. 소설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잃어버렸거나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에 놓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고로 자식을 잃고 혼자 시골로 내려간 아버지(「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와 죽은 애인과 갔었던 여행지에 혼자 가는 여자(「남겨진 사람들」) 등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은 마음이 무너지는 것마저 망각한 채 살아간다. 그들은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 하거나 자신에게서 멀어진 이에 대해 원망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가까이 있었음에도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마음을 천천히 되짚을 뿐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모리스 블랑쇼는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의 매혹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며 이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주도를 할 수 없는, 긍정 이전에 이미 긍정이 되돌아와 있는 그러한 시간”(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이달승 옮김, 그린비, 2010, p. 28)이라 했다. 장희원의 소설에서는 스스로 세상을 등진 딸이 엄마에게로 가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오래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펄펄 내리는 눈을 맞을 수도 있다.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가 다시 한번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부재를 확인하고 더 밝고 선명한 세계로 나아간다. 이미 사라진 대상과 시간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을 증명하는 게 문학이라면 신예 장희원은 이러한 작업을 그 어떤 부침 없이 감각적으로 또 믿음직하게 해낸다.
목차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 7
우리[畜舍]의 환대 37
폐차 71
혜주 99
Give me a hand 123
남겨진 사람들 137
작별 167
기원과 기도 175
우리가 떠난 자리에 195
해설 │ 그날 이후, 우리는, 이소 212
작가의 말 229
저자
장희원 (지은이)
출판사리뷰
저기 눈부신 햇빛 아래
서로가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등단작 「폐차」는 소외된 이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이들이 내몰린 현실과 선택의 순간까지 빠짐없이 조명한다. 폐차장에서 일하는 정호에게 친구의 차를 폐차하고 싶다며 동생 정기가 찾아온다. “잘생겼던 인상이 조금씩 볼품없어” 보이는 동생을 바라보며 정호는 정기야말로 노모의 끈질긴 생명을 지켜보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보호자임을 상기하게 된다. 자신들의 엄마와 어린 형제가 살던 다세대 빌라를 벗어난 이는 자기 자신뿐이란 생각에 정호는 어쩐지 동생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런데 정기가 대뜸 자신이 몰고 온 차 트렁크에 살아 있는 고라니가 들어 있다면서 “저걸 받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도시를 배회하다 정기의 차에 부딪힌 고라니는 그 자체로도 연약한 생명이자 소외된 이들을 상징하며 동시에 노모에 대한 형제의 이중적인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두 형제는 어둔 찻길을 빠져나와 허공에 대고 컹컹 짖는 들개를 지나 외다리 트럭 기사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폐차장의 철근을 훔치는 장면까지 목격하게 된다. 두 사람은 그가 필요한 만큼의 철근을 다 챙겨서 돌아갈 때까지 꿈쩍 않고 지켜보다가 고라니가 들어 있는 차를 폐차 압축기로 납작하게 누른다. 장희원의 탁월함을 증명해낸 등단작 「폐차」는 두 형제를 통해 타인에 대한 연민과 마음 깊숙이 남아 있는 인간성을 저버려야만 또 다른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단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처절한 현실과 희망을 동시에 조명한 작품으로 단편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는 곳이 옳다. 옳다.
우리는 자신이 구축한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타인을 환대하는 일을 망설이곤 한다. 내가 아닌 상대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쁨과 슬픔을 마주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것이다. 「우리[畜舍]의 환대」와 「Give me a hand」의 부모는 호주의 남서부 끝에 있는 퍼스와 미국 뉴욕에서 아들을 잃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미 오래전에 아들을 떠나보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畜舍]의 환대」의 재현은 아내와 함께 아들 영재를 만나기 위해 호주로 간다. 그는 스물일곱씩이나 된 아들이 새로운 장소에서 학업을 이어간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생의 과정 중 하나로 여길 뿐 깊이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과거 재현은 영재가 게이 포르노를 본다는 사실에 격분해 곧장 아들에게 달려들어 “더러운 놈”이라 울부짖으며 아들이 “납작 엎드려 소리 내어 울” 때까지 주먹을 휘두른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아들의 상처는 외면한 채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우연이라 여기며 그 기억을 도려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호주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아들이 흑인 노인 한 명과 허벅지에 커다란 문신을 한 여자아이와 사는 걸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들의 새로운 식구는 그들 부부를 누구보다 환대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누렇게 빛바랜 러그 위에 탁자”와 “벗어 던진 옷가지와 다 마신 맥주병”이 널브러진 모습뿐이다. 아들의 새로운 집에서 반나절도 버티지 못한 그는 자신이 과거에 알던 아들을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직감한다. “상식적인 기대가 얼마나 세속적이며, 또 타자적인 것들을 억압하기 쉬운 마음 무늬들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문학평론가 우찬제)라는 평처럼 재현은 자신이 아들에게 기대했던 상식은 결국 자기가 사는 세상의 것이었음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들이 사는 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Give me a hand」의 엄마는 아들이 자해를 시도하다 자메이카 룸메이트에게 들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뉴욕으로 향한다. 그녀는 아들이 구금된 상황에서도 여느 관광객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인한 봉쇄로 아들을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마침내 아들이 있는 곳까지 왔으나 그 아이가 자신을 해치려 하는 이유를 짐작하지도, 직접 물어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뉴욕의 길 한복판에서 한 소년으로부터 급소를 맞아 쓰러졌을 때,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극한의 상황에 놓이고서야 아들이 타지에서 느꼈을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된다. 두 작품 속 아들들은 부모의 기대와 억압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을 각기 다른 양상으로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이들은 끝끝내 기성세대가 사랑이라 여겼던 비뚤어진 마음을 뒤로하고 더 크고 단단한 환대로 자기 자신의 삶을 증명해낸다.
앞서 두 작품이 자식의 변화를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의 입장을 보여준다면, 그런 부모가 늙고 병들었을 때 누구보다 애처롭게 바라보는 자식들도 있다. 「혜주」의 화자인 ‘나’는 한때 좋아했던 중고등학교 동창 혜주를 그녀의 아버지가 입원한 대학병원에서 만난다. 혜주는 매일같이 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밀며 공원을 돌곤 한다. “기어이 날 힘들게 하는 게 좋은가 봐”라며 늦은 시간 병원 한구석에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혜주는 “오래오래 잠든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화가 나 미칠 지경”이라면서도 잔뜩 골이 났다가 무해한 얼굴로 잠든 아버지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나는 “그런 혜주와 혜주의 아버지를 생각하다 마음이 착잡해지곤” 하지만 때때로 죽고 싶다는 혜주를 살게 만드는 것 역시 그녀의 아버지라는 걸 선선히 받아들이고 “혜주가 여전히 그곳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기원과 기원」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나’가 자신의 제사를 준비하는 엄마와 동생 현수의 하루를 가만히 따르는 이야기이다. 엄마보다 세상을 먼저 떠난 딸은 젊었던 엄마가 화가 나면 벼르듯이 “너희만 크면. 진짜 너희만 다 크고 나면”이라고 했던 걸 떠올린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엄마가 어딘가로 간절히 가고 싶어한다는 걸 느꼈던 아이는 시장에서 “엄마가 건넨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내색하지 않고” 뒤를 따른다. 이따금 ‘나’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엄마는 낯선 이들에게 “지금도 현주가 여기 있는 것 같아”라고 고백하고, 나 역시 “왜 나는 아직 이곳일까” “왜 이곳에 마음을 두고 있을까” 자문하며 엄마와 현수가 탄 차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그 풍경을 마주”한다. 「우리[畜舍]의 환대」로 제11회 젊은작가상을 받은 작가는 당시 작가의 말에서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는 곳이 옳다. 옳다”라고 여러 번 힘을 주어 말했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자기의 얕은 생각으로 잣대 삼아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이때 세계와 개인이 세운 ‘기준’은 모두 무용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세계에서 ‘환대’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자, 장희원이 그린 세상의 편견마저 아름답게 읽히는 이유이다.
잠깐이라도 자기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
그들이 함께 보고자 했던 바로 그 풍경
모두가 떠난 자리에 그대로 남아 깨끗한 마음으로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의 ‘나’는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여정의 아버지로부터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는다. 또 다른 친구 재희와 함께 여정의 아버지가 사는 시골로 간 ‘나’는 “여정의 유치원 시절 사진이나 운동회에서 딴 메달, 여정의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들에서 여정의 흔적을 눈으로 좇는다. 혼자 여행을 떠난 여정이 철원의 야산 아래 매립돼 발견되었을 때, “여정은 앞 좌석을 최대한 뒤로 젖힌 채 잠든 듯이 누워 있”었다고 했다. 사고 이후 “많은 것이 바뀐 듯했지만 변한 게 없기도 했다”는 말처럼 ‘나’와 재희는 평범한 일상을 나름대로 꾸려갔지만 “이따금 아무 이유 없이 잠든 듯 누워 있는 여정”을 떠올리곤 했다. 가끔, 아무거나 태우곤 한다는 여정의 아버지가 “밤도 태우고, 은행도 태우고, 모아놓은 폐지도” 태웠던 것처럼 익숙하게 타들어가는 일상을 ‘나’와 재희도 보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 당시의 마음에 대해 털어놓지 않았다. 여정의 아버지의 배웅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 “재희와 나는 눈을 감은 채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여정을 그리워하게 될 것임을 감각한다.
「남겨진 사람들」의 유진은 함께 사는 재우와 누구보다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중 훌쩍 상주와 함께 갔었던 강원도로 간다. 이제는 상주는 죽고 없는 그곳으로. “오직 이 세상에 너와 나, 단둘이 있는 것” 같았던 조용한 곳으로.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시기를 보내던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상주의 제안에 겨울 바다를 보러 갔다. “우리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는 다짐과 함께. 유진은 그곳에서 “아주아주 눈이 많이 내리는 곳” 그러니까 “니가타나 삿포로나 뭐 그런 곳”에서 눈을 보고 싶다던 상주를 떠올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했다는 걸 실감한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간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음을 “상주와 보고 싶어 했던 것,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함께 보자고 했던 바로 그 풍경”을 보고 싶어 했음을 깨닫는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와 「남겨진 사람들」 모두 사랑하는 이를 잃고, 이내 자신이 상대방을 사무치게 그리워했음을 깨닫는 과정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두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각각 낯선 장소에서 낯선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큰 위로를 받는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에서 ‘나’와 재희는 여정의 아버지와 이웃인 할머니로부터 밤을 받고, 「남겨진 사람들」에서 유진은 사찰에서 만난 할머니로부터 귤과 과자를 받는다. 이들 앞에 기척 없이 나타난 노인들은 모두 삶에서 중요한 것이 오로지 ‘환대’뿐이라는 것을 일찍이 체득한 이들이다. 젊은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을 누구보다 아까워하고 마음을 쓰는 이들은 앞서 나온 기성세대인 부모와 달리 젊은이들을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자신들의 기준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텅 빈 손바닥을 꼭 쥐고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이들의 손에 밤이나 귤을 쥐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긴다. 실상 이들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번번이 배척당했다는 점에서 소외된 슬픔을 소외된 대상에게서 위로받는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물론 낯선 노인의 한 번의 호의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갈등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게 결국에는 소외된 이들이었다는 점은 이 작가를 더욱 미더운 마음으로 보게 만든다.
『우리의 환대』는 자기 자신을 향한 환대의 증표이자
삭막한 시대에 맞서는 희망
앞선 작품이 특정 인물의 부재를 다루었다면, 마지막 수록작 「우리가 떠난 자리에」는 인물들 간의 단절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화자인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선재를 기다리면서, 사귀는 내내 자신이 선재를 기다렸음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같이 살던 집을 함께 정리하면서 간단한 근황을 주고받지만 내밀한 사정에 대해서는 털어놓지 않는다. 그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까시나무들을 구경하며 밤을 새웠”던 것이나 “따뜻한 술을 홀짝홀짝 마셨”던 날들을 가만히 되뇔 뿐이다. 둘이서 구조한 비둘기 새끼가 야생동물에 먹히고 남은 잔해를 치웠던 일들도. 집을 정리하고 나오던 두 사람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순간들을 “계속해서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비로소 자신들의 관계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단 점에서 이 소설은 완벽히 부재에서 환대로 나아간다. 우리의 관계는 깨끗이 허물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지고, 모든 크고 작은 우연들에 빗금이 그어졌을 때, 그 모든 순간이 ‘우리’였음을 깨닫기 때문에. 장희원은 산산이 조각난 채 부유하는 마음들이 허물어지지 않게끔 모아 오랜 시간 빚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타자의 부재를 통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재확인함으로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장희원의 소설은 단 한 번도 ‘우리’가 지켜질 수 있다고 환호하거나 확언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떠난 자리’를 담담히 바라보며, 과장하거나 봉합하지 않고 정직하게 이야기하길 희망한다.” (문학평론가 이소) 장희원의 첫번째 소설집 『우리의 환대』는 이별과 슬픔이야말로 삶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임을 증명하며, 자기 자신을 향한 환대의 증표이자 삭막한 시대에 맞서는 희망처럼 독자에게 다가갈 것이다.
■ 작가의 말
언제나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이 있지만, 생각만큼 그것이 잘 이루어지진 않는다. 아마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목마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쓰고 있고, 쓰고 싶다.
글을 쓸 때마다 나를 미워하고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몸과 마음을 기대면서도, 대체 나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걸까 초조해했다. 그게 뭘까. 내 눈엔 보이지도 않는데.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는데. 하지만 마찬가지로 나도 그런 방식으로 그들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마음껏 그 말에 기대었다.
어쩌면 세상은 그런 알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곳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조차 모르는 너무나 많은 면이 있고, 당신의 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당신이 갖고 있는 그 작은 한 점에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을 두고, 살고 싶어진다는 것.
좋은 글에 대한 답은 매순간 변하지만, 그 글에 누군가가 마음을 두고 싶은 자리가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부디 내 글에도 그런 자리가 조금이나마 있기를 바란다.
근근이 만나 그 계절의 과일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무람없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기쁨을 알려주신 소진 선생님과 문학과지성사 분들, 누군가의 첫 소설을 소개하는 일이 기쁨이라는 이소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모두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2022 겨울 장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