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어느 날, 과거가 나를 찾아왔다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정소현의 첫 소설집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원작 소설 수록!
세상의 모순을 정확하고 기민하게 추적하는 작가 정소현의 첫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이 『너를 닮은 사람』으로 재출간되었다.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의 원작 소설을 포함해 총 8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소설집 두 권과 중편소설 한 권을 출간하는 동안 정소현은 현실을 “괴로울 정도로 정확하게”(정세랑) 대면하게 만드는 진중한 태도를 내내 유지해왔다. 상처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해내다 정상과 비정상을 혼동하고 일상과 비일상을 가로지르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 “한 인간 속에 숨어 있는 죄의식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우리 문학에서 흔치 않은” “집중력”(남진우)을 보여주는 작가 정소현의 첫 발걸음을 다시 마주해보길 권한다.
목차
양장 제본서 전기
너를 닮은 사람
폐쇄되는 도시
실수하는 인간
돌아오다
지나간 미래
이곳에서 얼마나 먼
빛나는 상처
해설|실수하는 사회, 실수하지 않는 인간ㆍ김형중
작가의 말
저자
정소현 (지은이)
출판사리뷰
네가 부러웠다. 네가 가진 모든 것들, 네가 가지지 못한 것들,
어느 하나 부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원작 소설 수록!
“소설이 끝나고도 계속 곱씹게 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나는 보았다.”
유보라(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작가)
미묘하고도 불운한 근원을 찾아서
「너를 닮은 사람」의 ‘나’는 가난에 허덕이던 유년기를 거쳐 자신이 절실히 바라던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된다. 남편 집안의 든든한 재력을 기반으로 한 교외의 고즈넉한 전원주택, 물심양면 자신을 지원해주는 무던한 남편,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준 두 아이, 인정받는 유학파 화가라는 직업까지. 그러나 어느 날 잊고 있던 기억이 ‘나’를 찾아온다.
정소현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에 붙들려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근원을 찾아 헤매거나, 지우고 싶은 과거를 무의식중에 외면해버린다. 작가는 그들이 돌이키거나 숨기려 드는 과거를 보여주면서 비틀린 인물들의 심리를 파헤친다.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는 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지나간 미래」 「돌아오다」). 살아 있더라도 가볍게 자식을 방임(양장 제본서 전기」)하는 무책임한 존재다. 부모 역할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어머니는 생존을 위해 ‘나무라고 징벌하는’ 초자아 역할만 강화되어버린다. 아이는 직간접적으로 방임되고 학대되며 유기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내상을 입은 아이는 자라서 ‘실수하는 인간’이 된다.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거나 말을 더듬는 건 예삿일이다. 상처는 영영 남는다. 아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갈기갈기 찢겨 과거들 속에 흩뿌려져”(「너를 닮은 사람」) 있을 뿐이다.
“나는 무능한 것, 칠칠치 못한 것, 나잇값 못하는 것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었다.”
「돌아오다」
“키도 커졌고, 힘도 세졌는데, 그냥 어렸을 때 산에 묶여 있던 아이 그대로인 것 같았어요.
무력감은 내 몸보다 더 커져서, 복수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빛나는 상처」
어떤 아이는 질서를 파괴하는 악마적 인물이 된다. 학대에 익숙해진 아이는 억압하는 대상이 사라진 후에도 자기부정을 내면화한다. 무력감에서 무감각으로 도피한다. 그들은 윤리적으로 백지 상태다. ‘실수’로 화분을 망가뜨리고 아버지를 죽이고 취객을 위협하다 결국 자신을 의심하게 된 조력자를 살해하는 과정을 겪으며 「실수하는 인간」의 ‘석원’은 덜떨어진 사람에서 용의주도한 연쇄 살인마가 되어간다. 흔히 사이코패스라 불릴 만한, 수월하게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석원은 「너를 닮은 사람」의 ‘나’와 가장 닮은 인물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짓들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담담하고 건조한 정소현 문체의 특색이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의 행동 궤적을 따르다가 “무엇이 실수였고 무엇이 고의였는지 알 수 없어”지는 탓이기도 하다. 사람의 감정을 소홀히 대하는 것을 냉혹하다고 평한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냉혹하다. 작가는 인물들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다만 그들의 추악함을 소설 안에 놓아둔다.
“과거의 것들과 결별할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너를 닮은 사람」
“석원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는지 기억해보려 했지만 무엇이 실수였고 무엇이 고의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것은 태어난 것이 실수라는 것이다.”
「실수하는 인간」
무수한 돌아봄 끝에 다음 걸음으로 나아가기에 성공하는 인물들도 있다. 「폐쇄되는 도시」 「돌아오다」 「빛나는 상처」의 인물들은 과거를 찾아 돌아간 시공간에서 내내 붙들어왔던 희망이 기대와 어긋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도피하기보다 그 공간에서 마주친 함께 버려진 이들과 연대한다. 「폐쇄되는 도시」의 ‘삼’이 폐쇄 직전의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구출한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아이인지 노인인지 좀처럼 분간이 되지 않”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할머니는 버려진 존재들을 상징한다. ‘삼’은 무섭고 두려워하면서도 그 존재(들)과 함께 앞으로 걸어간다.
그렇기에 『너를 닮은 사람』은 서스펜스와 따스함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이름조차 안 남기고 완전히 사라지는 사람들도 허다한”(「양장 제본서 전기」) 버려지고 잊혀가는 것들의 세계에서, 정소현은 또다시 “기록을 시작한다.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지고 잊혀질 테지만 기억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지금 이 시간을 기록한다(「빛나는 상처」). 2012년, ‘첫 책을 만들던 그 시절로부터 멀리 온 줄 알았지만 여전한 마음’을 간직한 채로(「작가의 말」).
“울지 마. 모두 지나간 일이잖아.
나는 내가 아니지만 타인도 아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도 쓰다듬어준 적 없는 내 머리를 생각하며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매만져주었다.”
「돌아오다」
작가의 말
나는 무언가에 마음을 잘 싣지 않는 사람, 무엇이 소중한지 잘 모르는 사람,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놓아버리는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 생각했던 순간과 첫 책을 만들던 때의 마음만은 쉽사리 잊지 못한다.
그 시절로부터 멀리 온 줄 알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하고, 세상도 여전하나, 똑같은 자리는 아닌 듯해 다행이다.
다시 함께해준 민희 님과 슬기 님, 새 옷을 기꺼이 입혀준 문학과지성사에 처음과 같은 감사를 보낸다.
2021년 가을의 시작
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