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굿바이, 마스크!
우리의 삶과 시간을 뒤흔든 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
‘마스크화된 삶’의 양태를 들여다보고
감염병과 함께 진화한 마스크의 역사를 추적해보다
지난 9월 20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을 선언하고 나섰다. 시기상조가 아닌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지만, 최소한 종식이 머지않았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한국의 방역 당국 역시 가을로 접어들면서 실외 마스크 착용을 전면 해제하고, 실내 착용 역시 해제를 검토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제 드디어 마스크에서 해방인가? 마스크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020년 코로나19는 예기치 못하게 찾아와 전 세계인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삶을 기록한다. 팬데믹 후 우리는 마스크 수급난,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격리, 비대면과 재택근무, 백신 물량 확보를 둘러싼 국제 패권 경쟁 등 다종다양한 상황들을 경험하며 새로운 노멀에 빠르게 적응해나가야 했다. 그중 팬데믹의 변화상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마스크 착용이었다. 마스크를 둘러싼 여러 측면들은 유례없는 것이었다. 마스크는 개인과 공동체를 보호하는 수단이면서도 한편에서는 자유를 침해하는 상징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런 마스크의 다면적 의미와 가치는 사회적 상황과 조건에 맞물리며 계속 변화해갔다. 예컨대 기존의 ‘황사 마스크’는 개인의 보호장비였으나 ‘코로나 마스크’가 되면서는 사회적 책임과 연대라는 상징적 의미를 획득했다. 코로나 마스크는 사물이 우리의 행동과 감정은 물론 삶의 방식과 규범까지 추동하고 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목도하게 해준 매우 흥미진진한 사물/사건이었다.
코로나19 이후 보건의료, 사회과학, 인문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팬데믹을 둘러싼 유의미한 논의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이 책 『마스크 파노라마』는 과학기술학자인 현재환(부산대), 홍성욱(서울대) 교수가 뜻을 모아 엮어낸 책으로서, 마스크라는 인공물 자체를 과학기술학(STS)의 관점에서 연구한 11편의 국내외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 질병, 젠더, 인종, 환경정의 등 다양한 차원에서 성찰하며, 마스크를 둘러싼 의학적, 과학적 논쟁들과 정치적, 역사적 논의들을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 보이는 흥미로운 연구 모음집이다.
목차
서론: 마스크, 친숙한 사물의 낯선 이면 ㆍ 현재환
1부 코로나 마스크의 물질문화와 정치
1장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와 물질성 ㆍ 세라 베스 키오
2장 코로나 마스크의 다면성 ㆍ 홍성욱
3장 마스크의 시간: 마스크를 통해 다시 본 코로나 경험 ㆍ 금현아, 섀로나 펄, 스콧 놀스, 트리디베시 데이
4장 일본의 수제 마스크와 젠더 질서의 강화 ㆍ 미즈시마 노조미, 야마사키 아사코
2부 마스크 정치의 지구사: 흑사병부터 스페인 인플루엔자까지
5장 근대 초기 유럽의 흑사병과 역병 의사 마스크 ㆍ 마리온 마리아 루이징어
6장 근대 일본의 마스크 문화 ㆍ 스미다 도모히사
7장 1911년 만주 페스트와 중국에서의 마스크의 역사 ㆍ 장멍
8장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과 반-마스크 시위 ㆍ 브라이언 돌런
3부 한국 사회에서의 마스크의 정치: 스페인 인플루엔자에서 코로나19까지
9장 식민지 조선에서의 마스크: 방역용 마스크에서 가정 위생의 도구로 ㆍ 현재환
10장 황사 마스크에서 코로나 마스크까지: 변화하는 공기 위협에 대응하는 일상적인 사물 ㆍ 김희원, 최형섭
11장 코로나19 시대 한국의 마스크 생태계 ㆍ 장하원
주
에필로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 ㆍ 홍성욱
필자 및 옮긴이 소개
출전
저자
현재환, 홍성욱 (엮은이)
출판사리뷰
‘역병 의사 마스크’와 중국의 ‘우씨 마스크’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마스크당’ 출현까지… 마스크의 사회물질적 역사 탐구
이 책은 마스크가 친숙한 사물이 되기 이전의 낯선 측면들을 인류사 속에서 변화해온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문맥에 놓고 살핀다. 이를 위해 멀게는 18세기 유럽의 페스트 유행 당시 등장한 역병 의사 마스크부터 1911년 만주 페스트와 1918~19년의 스페인 인플루엔자 팬데믹을 거치며 다양한 종류의 방역용 마스크가 등장하는 양상, 코로나 사태 전후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대규모로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는 과정과 그 여파, 마스크 폐기물이 야기한 환경 문제 등을 추적한다. 전 세계인이 동시에 대규모로 마스크를 착용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겠지만, ‘마스크’라는 물건 자체는 매우 오래전부터 사용되며 자체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것은 마스크의 물질성과 이를 둘러싼 물질적 차원이다. 마스크의 형태와 재질, 제작 과정, 마스크 생산 및 수급 체제, 품질 관리 제도, 성능시험 등 마스크의 물질성과 관계된 다양한 실천들이 다루어진다. 예컨대 독일 의학사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품 중 하나인 역병 의사 마스크가 있다. 필자는 중세 페스트의 상징처럼 통하는 소품인 이 마스크를 복원, 조사하는 과정을 소상히 그려내면서, 그 진위 여부를 밝히고 언제 이런 마스크가 어떠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는지 상상해본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 마스크 수급에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산업적, 제도적 인프라의 구축에서 찾으며, 이를 지난 20여 년간 한국이 겪어온 공기 위협의 차원에서 분석한 글도 유의미하다.
마스크의 정치 또한 이 책의 중요한 한 축이다. 1911년 만주 페스트 유행 당시 우롄더가 발명했다고 역사에 기록된 ‘우씨 마스크’를 통해서는 동양식 물건을 서양과 동등한 과학적 성취로 인정하지 않고자 한 서양의 문화 헤게모니를 읽어낼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 마스크 착용에 대한 동서양의 다른 태도들과 그에 따라붙은 인종주의적 혐오 역시 마스크의 정치적 차원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마스크가 도입되어 대유행했는데 당시 가정 위생의 도덕적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한편 마스크는 남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여성스러운 물건이라며 마스크의 젠더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서술한 글은 현시대에도 매우 시사적이다.
마스크의 시간을 생각하다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필요로 한다. 감염 예방이든, 다른 실용적인 이유에서든 상황에 따라 다른 마스크를 필요로 한다. 아마도 우리는 그 둘의 균형에 대해 더 나은 방식을 만들어가야만 할 것이다. 팬데믹의 시간이 아니라 마스크의 시간으로 생각해본다면, 마스크를 단지 (공중보건, 역학 연구와 정보 전달, 집단적 돌봄의) 과정이 아니라 물질적 실체 그 자체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스크는 보호를 위한 수단인 동시에 물질 그 자체이기도 하다. 마스크의 시간은 마스크의 영향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팬데믹의 다음 단계를 고려할 때쯤엔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간에, 마스크에 관한 무언가를 따라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마스크를 손에 쥔 채 상황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84쪽).
이 책은 총 3부 1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코로나 시대 마스크의 물질문화와 정치에 주목한다. 1장에서 세라 베스 키오는 미국 미시간주에서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마스크를 얻고 쓰고 버리는 일과 관련해 새로이 출현한 마스크의 물질문화를 고찰한다. 2장에서 홍성욱은 팬데믹 초기에 마스크의 용도와 의미가 다변화되는 상황에 주목하며 마스크의 다면성에 대해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3장에서 금현아, 섀로나 펄, 스콧 놀스, 트리디베시 데이는 팬데믹 동안 동아시아, 남아시아, 북아메리카 지역의 마스크 착용과 관련된 물질적 차원과 문화적 실행들의 지역적 형성과 변용을 초국적 비교의 관점에서 살핀다. 4장에서 미즈시마 노조미와 야마사키 아사코는 팬데믹 초기 일본에서 수제 면 마스크의 제작, 유통, 확산 과정을 젠더라는 렌즈로 검토함으로써 마스크 제작 및 착용과 관련된 성별화된 역할 분업의 양상을 드러낸다.
2부는 근대 초기 유럽 페스트 유행부터 스페인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이르는 시기 동안 전염병 방역 용도로 특정한 종류의 마스크가 제작, 사용, 장려되고 이런 마스크 착용 활동이 정치적으로 연루되는 양상을 살핀다. 5장에서 마리온 마리아 루이징어는 독일 의학사 박물관이 소장 중인 역병 의사 마스크가 페스트 유행 당시 실제 방호장비로 사용되었는지 여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6장에서 스미다 도모히사는 일본에서 19세기 말 세균학 등장 이후 감염 예방을 위해 코와 입을 막는 마스크가 등장하고, 이것이 일본의 위생 문화로 자리 잡는 과정을 살핀다. 7장에서 장멍은 1911년 만주 페스트 유행 당시 우롄더가 거즈 마스크를 고안했다는 신화에 가려진 중국 내 방역용 마스크 착용의 역사와 그러한 사실들이 잊힌 배경을 검토한다. 8장에서 브라이언 돌런은 1918년 스페인 인플루엔자 팬데믹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스크 착용 반대 시위를 이끈 마스크 반대 연맹의 활동을 검토하며, 이들의 시위가 의학적, 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3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마스크가 출현하고 보건용 마스크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 방역 거버넌스가 확립되는 과정과 그에 수반되는 문제들을 검토한다. 9장에서 현재환은 식민지 조선에서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되는 과정을 검토하고, 이 가운데 마스크 착용에 여성성을 부여하고 이를 관리하는 일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젠더화가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10장에서 김희원과 최형섭은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 착용을 새로운 종류의 공기 위협에 대한 재연으로 보면서, 2000년대 초반 이래 황사와 미세먼지에 대한 대응으로 일회용 보건용 마스크가 대량생산 가능하도록 산업적, 제도적 인프라가 구축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11장에서 장하원은 일회용 보건용 마스크를 중심으로 현재의 방역 체계와 팬데믹 대응 방식이 성립되는 과정, 그리고 그에 따라 특정한 종류의 마스크 쓰기 실천이 야기하거나 간과하게 만드는 문제들을 다룬다.
이 책 『마스크 파노라마』를 통해 독자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마스크와 인류가 과학과 정치를 매개로 펼쳐내는 파노라마적 풍경을 일람하는 가운데 마스크의 낯선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 면면들을 이해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더 잘 살아낼 것인지 고민할 기회로 삼아볼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의 종식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마스크는 코로나19 시대에 대해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될까? 어떤 새로운 스타일, 디자인, 기술이 등장하게 될까? 마스크의 가치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이 책은 궁극적으로 사물과 사회, 인간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