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새로운 세대가 그려내는 가을의 소설적 풍경
독자에게 늘 기대 이상의 가치를 전하는 특별 기획, 『소설 보다: 가을 2022』가 출간되었다.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로 2018년에 시작되었다. 선정된 작품은 문지문학상 후보로 삼는다.
지난 4년간 꾸준히 출간된 〈소설 보다〉 시리즈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물론 선정위원이 직접 참여한 작가와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앞으로도 매 계절 간행되는 〈소설 보다〉는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독자를 가장 신속하고 긴밀하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소설 보다: 가을 2022』에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김기태의 「전조등」, 위수정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 이서수의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총 3편과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선정위원(강동호, 선우은실, 이소, 이희우, 조연정, 조효원, 홍성희)은 문지문학상 심사와 동일한 구성원이며 매번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작품을 선정한다. 심사평은 문학과지성사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도서는 1년 동안 한정 판매될 예정이다.
목차
「전조등」 김기태
인터뷰 김기태×이희우
「오후만 있던 일요일」 위수정
인터뷰 위수정×선우은실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이서수
인터뷰 이서수×이소
저자
김기태, 위수정, 이서수 (지은이)
출판사리뷰
가을, 이 계절의 소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훌륭한 배우이길 자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벗어던지길 갈망하는 이도 있다. 한편으론 이처럼 모순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자체가 삶이라고 여기는 이도 있다. 더위와 추위가 혼재하는 이 계절이 지나고 가만 돌아볼 때, 가을이었음을 알려줄 소설 세 편을 소개한다.
김기태 「전조등」
“검은 바다의 가장자리에 서서, 그는 한쪽 신발을 잃어버리고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김기태는 올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이름을 올린 신예 작가다. 「전조등」은 “근래 보기 드문 강력하고 단단한 작품” “범상치 않은 작가의 출현”이라는 당시의 심사평이 그저 예고에 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소설이다. 2022년에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의 청혼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지닐지 의심해본 이라면, 「전조등」의 막이 내리고 불이 꺼진 무대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그 섬뜩함의 정체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주인공 ‘그’는 사회로부터 주어진 배역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수행하는 인물이다. 착한 아들, 올바른 애인, 성실한 회사원인 그에겐, 다소 판에 박힌 농담이나 자잘한 실수마저 ‘의도된 인간미’로 보인다. 청혼은 유일하게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그에게 일어난다. 프러포즈 여행을 떠나는 길, 불현듯 하늘에서 ‘군청색 털 고무신’이 떨어지며 자동차의 왼쪽 전조등이 나간다. 그가 이 전조를 놓치지 않았다면 다른 삶을 살게 됐을까. 그의 출생이 계획에 없었다는 부모의 고백은 “어떤 것들은 예고될 수 없으며 호명될 뿐이라”는 삶의 근원적 불안을 이미 암시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참되고 고유한 ‘나’를 찾아야 한다는 압력에 지나치게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 그런 개성-신화의 배후에 작용하는 수상한 힘들을 해명하는 게 이 소설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소위 ‘정상성’에 결속되어 있는 인물이 동시에 ‘개성’에 대한 압력을 받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습니다. 저에게 주인공의 선택은 조금 의아하더라도 조롱할 수는 없는 무엇이었고요.”
「인터뷰 김기태×이희우」에서
위수정 「오후만 있던 일요일」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끌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주 어릴 적에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위수정은 지난봄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소설 보다〉에 선정되었다. 전작 「아무도」를 통해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걸까”라고 물었던 작가는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서 육십대에 이른 유자녀 기혼 여성 원희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 단편에 세 세대의 여성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성별이나 세대별로 전형화된 욕망의 포장을 벗겨내고, 한 명의 인간을 오롯이 응시한다.
‘원희’는 친구를 따라 방문한 연주회에서 젊은 피아니스트 고주완에게 매료된다. 그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반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본능에 가까운 끌림이다. “다 늙어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지만, 육십대 여성의 ‘덕질’은 질투의 빌미는커녕 놀림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엄마’ ‘할머니’ ‘육십대’ 등 자신을 명명하는 이름에 묘한 어색함을 느끼는 원희가 고주완의 연주회 이후 불협화음에 빠지는 장면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매혹이란 어쩌면, 오래도록 이곳에서 견디고 있는 불협의 민낯을 다만 목도하는 일”(문학평론가 홍성희)일 테니까.
“저에게 인간의 욕망이란, 물론 남성과 여성의 생애 주기와 생물학적 차이를 전제로 하더라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일종의 ‘짐’ 같은 것이라고 여겨져요. 모두 같은 무게는 아니겠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들이 사회적 환경과 부딪히면서 억압되거나 변형된다는 점에서요. 여성 인물의 그러한 ‘짐’들을 그리는 것이 지금 제게는 흥미로워요.”
「인터뷰 위수정×선우은실」에서
이서수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없는 자리를 만들어 내 자리라고 우기고 있다는 생각.”
이서수의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는 코로나 시대를 배경 삼아 대도시 젊은이들의 생존권을 조명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소설적인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 왔다”(2021년 이효석문학상 수상 소감)는 고백처럼, 세 여성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노동 소외와 주거 불안으로 위협받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영영 하늘 위를 떠도는 ‘발 없는 새’는 지쳐 떨어지기 전에 온전히 내려앉을 수 있을까.
배달 일과 프리랜서 작가를 겸하는 ‘나(가진)’, 코로나로 업무 마비에 시달리는 응급실 간호사 ‘사영’, 마흔이 넘도록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한 수미 언니는 각자 짊어진 불행의 크기를 비교하며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수미 언니는 ‘나’에게 꼭 글을 써야겠는지 묻고, 사영은 코로나 시대에 결혼식 청첩장을 보내는 수미 언니를 질책한다. “저 너머 어딘가와 이곳 어딘가의 사이에” 서 있는 인물들은 아마 영원히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주 만나서 서로를 잘 살펴봐야 해”라는 사영의 당부는, 그들을 지탱하는 것이 군산의 ‘3천만 원짜리 아파트’가 아니라 함께 그곳에 가려는 의지임을 알려준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오늘부터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시오,라고 말하는 대신 상대에게 즉시 물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달라고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이 감각한 세계를 전달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고, 그건 자신의 세계에 동참해주길 바라는 요청과도 같을 거예요. 그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이서수×이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