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현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거대담론으로 간단히 결론 내리는 방식을 경계하며, “문학의 진지성을 지키면서도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모색”(문학평론가 이광호)했던 작가, 채영주의 20주기 기념 선집 2종이 2022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채영주는 1962년생으로 서울대 사회과학대 정치학과에서 공부한 뒤 1988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노점 사내」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2년 6월 15일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두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유고집을 포함하여 총 열세 권의 작품을 세상에 남겼다. 이번 선집은 그의 20주기를 맞아 문학평론가 한수영(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과 김형중(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책임편집을 맡아 중단편 선집과 장편소설 복간본을 기획하였다. 중단편 선집은 그의 소설집에서 가려 뽑은 작품 열 편을 묶었고, 장편소설은 미학사에서 1993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작품을 복간하였다. 1980~90년대 경직되고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고민을 깊게 파고들면서도 독자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감각 또한 탁월했던 그의 소설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다.
『새벽 2시 파라다이스 카페』는 그의 데뷔작 「노점 사내」를 포함하여 채영주의 첫 소설집 『가면 지우기』(문학과지성사, 1990)의 여섯 편과, 두번째 소설집 『연인에게 생긴 일』(문학동네, 1997)의 네 편이 모였다. 이 작품들은 약 10년에 걸친 채영주 문학 세계의 변화와 함께 그의 작가 의식의 저류를 흐르는 일관된 상상력의 구조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첫 소설집의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지적했듯 채영주 소설의 특징은 ‘가장 1980년대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정치학도로서의 날카로운 세계 인식을 기반으로 설계된 소설들이기는 하나 당대에 익숙하게 호출되던 민중과 변혁, 혁명을 지향하는 거대담론 대신 집단과 개인의 갈등, 소시민의 이중성, 지식인의 번민 등에 천착한 점이 인상적이다. 책임편집을 맡은 한수영이 해설에서 지적했듯 채영주는 “사람들이 이러한 ‘피안의 설계도’에 혹하는 까닭은, 그만큼 현실 세계가 근본적으로 부당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이란 점을 꿰뚫고 있었”고, “현실의 이면과 어두운 곳, 혹은 사각지대를 응시하며 현실의 공간과 피안의 세계의 간극을 오가며 탐색”해나가는 전개 방식은 바로 그가 견지한 창작자적 입장을 반영해낸다.
목차
노점 사내
새벽 2시 파라다이스 카페
가면 지우기
지난겨울의 불
가출
상처
상자 속으로 사라진 사나이
겨울 소묘
담배와 포도주
족자카르타의 베착
해설 채영주 중단편 전집에 관한 짧은 보고 ㆍ 한수영
채영주 20주기 기념 선집 간행사
저자
채영주
출판사리뷰
현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거대담론으로 간단히 결론 내리는 방식을 경계하며, “문학의 진지성을 지키면서도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모색”(문학평론가 이광호)했던 작가, 채영주의 20주기 기념 선집 2종이 2022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채영주는 1962년생으로 서울대 사회과학대 정치학과에서 공부한 뒤 1988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노점 사내」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2년 6월 15일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두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유고집을 포함하여 총 열세 권의 작품을 세상에 남겼다. 이번 선집은 그의 20주기를 맞아 문학평론가 한수영(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과 김형중(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책임편집을 맡아 중단편 선집과 장편소설 복간본을 기획하였다. 중단편 선집은 그의 소설집에서 가려 뽑은 작품 열 편을 묶었고, 장편소설은 미학사에서 1993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작품을 복간하였다. 1980~90년대 경직되고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고민을 깊게 파고들면서도 독자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감각 또한 탁월했던 그의 소설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다.
채영주(1962~2002)가 마흔 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지 어언 20년이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그해 6월 한일 월드컵이 열렸고, 우리 선수들의 예상 밖 선전으로 연일 승전보가 울려 온 나라가 환희의 열기에 휩싸여 있을 때, 갑자기 날아든 그의 부음 앞에 망연자실하던 날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를 기억하는 몇몇 지인의 발의와 협력으로, 그의 20주기를 맞아 조촐하게나마 이 기념 선집을 꾸립니다. [……] 이 선집을 그를 기억하는 많은 분, 무엇보다도 아직도 그를 작가로 소중히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께 바칩니다. _「채영주 20주기 기념 선집 간행사」에서
소시민의 위선과 무기력한 초상
절망에 지독하게 침잠해
끝내 마주한 성찰의 실마리
『새벽 2시 파라다이스 카페』는 그의 데뷔작 「노점 사내」를 포함하여 채영주의 첫 소설집 『가면 지우기』(문학과지성사, 1990)의 여섯 편과, 두번째 소설집 『연인에게 생긴 일』(문학동네, 1997)의 네 편이 모였다. 이 작품들은 약 10년에 걸친 채영주 문학 세계의 변화와 함께 그의 작가 의식의 저류를 흐르는 일관된 상상력의 구조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첫 소설집의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지적했듯 채영주 소설의 특징은 ‘가장 1980년대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정치학도로서의 날카로운 세계 인식을 기반으로 설계된 소설들이기는 하나 당대에 익숙하게 호출되던 민중과 변혁, 혁명을 지향하는 거대담론 대신 집단과 개인의 갈등, 소시민의 이중성, 지식인의 번민 등에 천착한 점이 인상적이다. 책임편집을 맡은 한수영이 해설에서 지적했듯 채영주는 “사람들이 이러한 ‘피안의 설계도’에 혹하는 까닭은, 그만큼 현실 세계가 근본적으로 부당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이란 점을 꿰뚫고 있었”고, “현실의 이면과 어두운 곳, 혹은 사각지대를 응시하며 현실의 공간과 피안의 세계의 간극을 오가며 탐색”해나가는 전개 방식은 바로 그가 견지한 창작자적 입장을 반영해낸다.
내게 있어 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었다. 너를 지켜보자면 나는 언제나 어수룩하고 무기력한 자신을 대하는 느낌이었고 네가 하는 말들은 마치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처럼 나를 당혹스레 만드는 것들이었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러한 기억들은 똑같이 생생한 빛깔로 남아 있다. (「노점 사내」, pp. 50~51)
데뷔작에서부터 꾸준히 나타나는 ‘자기 살해’의 욕망은 이후 채영주의 여러 소설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채영주는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자기 일부를 직시하고 이를 제3의 인물로 형상화해 살해하는 방식을 자주 차용하지만, 실은 그마저도 허구인 듯 마무리하며 실제적 행동 자체가 실패함을 암시한다. 팔리지도 않을 물건을 하루 종일 내려놓고 거두기를 반복하는 사내(「노점 사내」), 한겨울 추위 속에 오징어를 팔면서 털코트를 입은 귀부인에게 분노할 줄 모르는 행상 아낙(「가면 지우기」)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중심 화자의 서술 속에서 죽였다고 믿어지지만 이후에 진위를 알 수 없도록 처리하는 식이다. 고아원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가출」의 “우리 등에는 단단한 쇠파이프가 하나씩 박혀 있대. [……] 언제나 제자리를 맴돌 뿐이야. [……]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는 목마라는 거야”(pp. 240~41)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절망은 주어진 운명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그를 지배한다.
우리가 채영주 문학을 다시 소환하고 그 현재성의 의미를 물어야 하는 이유도 그 절망과 환멸에 있다. 그것은, 마치 자기 살해의 욕망이 자기애의 전도된 발현이듯, 그의 절망과 환멸은 구원과 희망에의 의지의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망을 통해 우리는 당장의 구원의 가능성을 얻는 대신, 깊은 성찰의 기회를 얻는다. 이 성찰은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 ‘나’의 확장으로서의 우리 사회, 집단, 조직 나아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론적 반성으로까지 연장된다. _한수영(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명쾌한 논리와 적극적 실천이 미덕이던 1980년대를 지나, 이념을 잃고 허무와 방황의 1990년대로 진입했던 한국 현대문학. 그 흐름 속에서 채영주는 한발 앞서 자신을 통렬히 들여다보며 답 없는 절망을 지독하게 밀어붙여보는 작업을 진행한 창작자로서, 문제적 개인으로서 여전히 유의미한 문학사적 자리에 위치해 있다. 그의 중단편 선집을 통해 시대적·사회적 고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냈던 그의 작업을 따라가며 우리도 오늘의 초상을 다시 상상해볼 기회를 얻게 되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