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신분석은 여전히 해방적 힘이 될 수 있는가?
20세기 정신분석적 사유와 실천의
변화무쌍한 운명에 대한 탁월한 조감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문화에 접맥시키는 지적이고도 철두철미하게 박학한 작업.
정신분석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역사적 안목을 갖추고 있다._피터 게이
정신분석에 있어 20세기란 그것이 흘러온 시간이면서 또한 그것이 영토화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20세기를 점철한 숱한 사건 및 현상들과 조우하면서 인간이 자기 자신과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을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켰다. 그런데 프로이트 및 정신분석에 관한 수없이 많은 전기적, 이론적 연구와 논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간, 사회, 정치,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관점에서 맥락화하는 작업은 미진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이 책 『프로이트와 20세기(Secrets of the Soul)』는 뉴스쿨의 저명한 역사학자 엘리 자레츠키의 폭과 깊이를 아우르는 관심과 박학에 힘입어, 20세기라는 시공간을 관류한 정신분석적 사유와 실천의 변화무쌍한 운명에 대한 탁월한 조감도를 그려낸다.
이 책은 정신분석만이 아닌, 20세기 자체에 대한 뛰어난 사회문화사 작업이라 부를 만하다. 자레츠키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시작하여 산업화, 전쟁, 여성해방운동, 문화적 저항과 예술적 혁신 등과 같은 20세기를 수놓은 문제적 주제들을 개인의 자율성, 여성해방, 민주주의라는 ‘모더니티의 세 가지 약속’이라는 명제에 수렴시켜 일목요연하게 맥락화한다. 특히 저자 자신이 뉴레프트운동에 깊이 투신했었고 그에 관련한 연구로 학자로서의 이력을 시작한 만큼, 정신분석이 뉴레프트 및 여성해방운동과 만나 복잡하게 상호 변이하는 과정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그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줄리엣 미첼, 주디스 버틀러, 피터 게이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 상찬을 받았다.
목차
감사의 말
서론: 정신분석의 모호한 유산
1부: 카리스마의 기원: 빅토리아식 가족 시스템의 붕괴
제1장 개인무의식
제2장 젠더, 섹슈얼리티, 개인적 삶
제3장 함몰과 주변성
제4장 에고의 탄생
2부: 포드주의, 프로이트주의, 모더니티의 세 가지 약속
제5장 세계대전과 볼셰비키 혁명
제6장 포드주의, 프로이트주의, 그리고 모더니티
제7장 자율성과 저항
제8장 어머니로의 전환
제9장 파시즘과 유럽의 고전적 정신분석의 붕괴
3부: 권위의 심리학에서 정체성의 정치로
제10장 어머니-아이의 관계와 전후의 복지국가
제11장 카리스마인가 합리화인가?: 냉전 시기의 미국의 정신분석
제12장 1960년대, 포스트포드주의와 나르시시즘의 문화
에필로그: 오늘날의 정신분석
참고문헌 약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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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저자
엘리 자레츠키 (지은이), 권오룡 (옮긴이)
출판사리뷰
해방적 힘인가 억압적 힘인가?
정신분석의 양가적 유산에 관하여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899년)이 발표되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정신분석은 우리에게 한 가지 역설을 제시한다. 정신분석은 인간 해방의 강력한 힘으로 인식되자마자 1920년대의 모더니즘, 1940년대와 195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복지국가, 1960년대의 급진적 대변혁, 그리고 1970년대의 페미니즘 및 게이해방운동에 이르기까지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동시에 반정치, 반페미니즘, 동성애 혐오 등과 같은 편견의 원천이 되었고, 지금은 과연 살아남을지가 의문시되는 몰락한 직업이자 ‘사이비 과학’ 취급을 받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역설의 탐구를 목표로 삼는다. 자레츠키는 정신분석적 사유의 억압적 측면이나 그에 대한 비판의 유효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지닌 해방적 차원을 다시 판별해내고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칼뱅주의가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인간적 변화를 점화시켰다면 정신분석은 2차 산업혁명에서 그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 차원에서 2차 산업혁명은 모더니티의 해방의 약속을 착종시키고 급진화한 ‘개인적 삶’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부화시켰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심리주의, 공허한 소비주의, 그리고 재가족화를 조장하기도 했다. 정신분석은 이러한 양가성의 중심에 있었다.
이 책은 이 양가적 궤적을 추적한다. 정신분석의 역사를 2차 산업혁명의 맥락에 위치시켜 이른바 정신분석의 황금 시대라 부를 수 있는 고전적 시대를, 그리고 1960년대에 시작된 정신분석의 급작스러운 몰락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그 종말을 다룬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대량 생산 경제에서 서비스와 정보에 기반을 둔 세계화된 경제로의 이행이 목격되는데, 계몽주의와 절연하려는 노력에 수반되는 이 3차 산업혁명은 개인적 삶에 대한 이해 방식을 다시 한번 뒤바꾼다. 정신분석의 카리스마는 정체성의 정치, 라캉식의 문화비평, 페미니즘의 두번째 물결과 같은 새로운 문화적 대열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정신분석이 전성기에 천명했던 세 가지 기획, 즉 의학적 치료, 문화해석학 이론, 개인의 분석적 윤리를 아우르려는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후 정신분석은 정신적 혼란을 치료하는 준의학적 치료술과 문화이론이라는 별개의 기획으로 분리되면서 과거의 카리스마를 잃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시대가 사실상 끝난 것이다.
정신분석의 유산을 다시 생각한다
오늘날의 뒤바뀐 정치, 경제, 문화적 지형 속에서, 정신분석이 20세기에 수행했던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기는 힘들 것처럼 보인다. 인종, 국적,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인식은 고유한 개인성을 이해할 필요성을 제거하는가? ‘차이’에 더 예민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은 인간됨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의 이해, 또는 그 문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인가? 공사 구분의 붕괴, 의미의 심리학을 정보의 이동으로 바꿔놓는 디지털화 등은 정신 내면의 체험에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가?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계속 정신분석에 의존할 수 있을지, 20세기에 이미 수없이 많은 굴곡을 겪어온 정신분석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되든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을 형성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던 정신분석의 유산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 정신분석을 역사화하여 그것이 밟아온 길을 되짚어보아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