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다시 마주하고 싶은 순간을 향해
마음속 아름다운 겨를을 향해
눈 감고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는 시
깊이 파고들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 시인 황혜경의 세번째 시집 『겨를의 미들』이 출간되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이후 4년 만의 시집으로 3부로 나뉜 62편의 시가 담겼다.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 “나는 언제나 늦되는 아이였다”(신인상 당선 소감)라던 시인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시를 쓰며 시집 3권을 출간해왔다. 이 시집들에는 “소통이 아닌 독백에, 맥락이 아닌 오차에, 단 하나의 언어가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나의 몸들, 그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언어들 위에 위태롭게 서 있”(박혜경)는 독자적인 문법으로 씌어진 시가 페이지 가득 들어차 있다.
첫 시집에서 “고요하고도 부드럽게” 스스로를 격리하길 선택했고 두번째 시집에서 내적 깊이를 더하는 동시에 바깥으로 손을 내밀며 소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시적 진폭을 넓혔던 황혜경은 이번 시집에서도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마음의 궤적을 되새기면서 기억 하나하나를 봄의 새순처럼 현재의 시로 피워 올린다.
목차
I
철거
모르는, 집요하다
겨를의 미들
이혼하는 아침에는
것의 앞면과 뒷면과
낮의 증거
설령
모로
그날의 음정은 허탄虛誕
난
동東
발설의 자세
Open
제비야, 그 위에
선명한 밤
그래,
변명의 자리의 변명의
1
녹색 커버
상실 언니에게
쓴 럭키
II
믿고 싶은 말
아는 어부
실험실
되레
전前
핑, 붉,
동질의 서
정처 없이
파란 방울을 달고 오고 있는 것이 있어
매달기 직전
모국
힘
Tone & manner
극성極盛
알지 모를지
흰 강낭콩이라 부르면
나(너)는 너(나)와
역력歷歷하다
아니다風으로
파랑에서 내려 원래의 깊은 파랑
III
뼈가 있으니 살이 있으니
A day in the life
곤욕의 감정사는 정 氏를 안다
곁
체리의 성장 묘사
Ghost note
보이지 않는 氏
Gloomy september 民 , 國
그랑 유랑流浪
향상向上과 항상恒常과
오뚝이
왕왕
름다운,
See
밑
직면하는 은신隱身
Or
짐
멍
인물의 동작
그러그러하다
발문
아니야 계속 사랑하겠다는 말이야ㆍ성동혁
저자
황혜경 (지은이)
출판사리뷰
“외롭지 않은 날에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마주하고 싶은 순간을 향해
마음속 아름다운 겨를을 향해
눈 감고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는 시
깊이 파고들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는 시인 황혜경의 세번째 시집 『겨를의 미들』(문학과지성사, 2022)이 출간되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문학과지성사, 2018) 이후 4년 만의 시집으로 3부로 나뉜 62편의 시가 담겼다.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 “나는 언제나 늦되는 아이였다”(신인상 당선 소감)라던 시인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시를 쓰며 시집 3권을 출간해왔다. 이 시집들에는 “소통이 아닌 독백에, 맥락이 아닌 오차에, 단 하나의 언어가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나의 몸들, 그 불완전하고 가변적인 언어들 위에 위태롭게 서 있”(박혜경)는 독자적인 문법으로 씌어진 시가 페이지 가득 들어차 있다. 첫 시집에서 “고요하고도 부드럽게” 스스로를 격리하길 선택했고 두번째 시집에서 내적 깊이를 더하는 동시에 바깥으로 손을 내밀며 소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시적 진폭을 넓혔던 황혜경은 이번 시집에서도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마음의 궤적을 되새기면서 기억 하나하나를 봄의 새순처럼 현재의 시로 피워 올린다.
황혜경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에게 시는 결과로써 증명하는 예술이 아니다. 그를 보며 ‘쓰고 있는’ 과정 자체가 시라 느낄 때가 많다. 그에게 시는 세계를 감각하고 이곳을 살아가는 당연한 태도이다. “외롭지 않은 날에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시인 황혜경이 쓸 수 있는 가장 완곡한 고백이다. 성동혁(시인)
“아니야 계속 사랑하겠다는 말이야”
친애하는 흔적들에게
어떤 스무 살은 마흔 속에 가 있고
어떤 마흔은 스무 살 속에 와 있다.
―미수록 시 「핵核」에서
이 시집에 아름다운 발문을 선사한 성동혁 시인의 말처럼, 황혜경은 ‘시인’이라는 수식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시인의 의무는 저무는 풍경을 모른 척하지 않는” 것(성동혁). 더 섬세하고, 더 일찍 울며, 더 오래 기억하는 이, 잊지 못할 순간과 살아가는 마음을 언어로 새기는 이를 사람들은 시인이라 부른다. 시인 황혜경은 자신만의 언어로 “죽은 벌레도 치우지 않고 죽은 개도 치우지 않고 때때로 보듬”(「이혼하는 아침에는」)는 마음을 말한다. 두번째 시집 표지 산문에 적힌 것처럼 그의 시는 “먼저 산 사람을 생각한다./먼저 운 사람을 사랑한다./먼저 간 이름을 불러본다”. 흔적만 남아 사라져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을 그러모아 매일매일 되새기면서 삶의 언어를 시의 언어로 힘겹게 밀어낸다. 시인에게도 “지나친 마음은 오래 무”겁고(「파란 방울을 달고 오는 것이 있어」),“여기 있는데 못 보는 것”(「것의 앞면과 뒷면과」)을 혼자만 보는 일은 쓸쓸할 것이다. 태어나 사라져가는 유한한 생명과 시간과 관계를 오래오래 지켜보면서 시를 쓰는 일에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시로 빚기까지 그 모든 마음을 간직하고 품어낼 용기 말이다. 황혜경에게 시는 ‘결과로 증명하는 예술이 아니며, 세계를 감각하고 이곳을 살아가는 당연한 태도’이다(성동혁). 다시 말해, 가늠할 수 없는 마음으로 기억을 견디며 쓰고 있는 과정 자체다.
“당신의 슬픔이 나에게 들킬 수 있기를 바라요”
돌보는 마음에게
발도 싫고 손도 싫은 잃은 요일
가장 어두운 것을 기념하며 아는 소리를 다 내고 있는 어둠
굴복한 사람이 아니라 극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힘든 대상과 계속 늙어가도 되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東」 부분
지난 시집들에서 엿보였던 황혜경의 시가 독백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겨를의 미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타인의 기척에 민감한 문장들과(“우는 자의 처소를 찾아 더 일찍 가서 울었어야 하는 것”, 「난」), “사람이 싫다는 사람을 소리 없이 좋아해보려는 사람”(「Ghost note」)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바깥으로 손을 내미는 태도를 수록된 시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집 속 부제에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는 시는 두 편뿐이지만, 부제 없는 시들에서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이름을 품고 있는 듯 읽힌다.
저물어가는 것들을 품고서 시인은 끝내 스스로 저물 것 같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이 여자 앞에서는 모조리 죽은 것이어야 모처럼 가능해”(「이혼하는 아침에는」)진다는 고독한 문장을 앞두고 황망해지다가도 이것이 “굴복한 사람이 아니라 극복한 존재”(「東」)가 되기 위해서라면 황혜경의 “집요한 채록”(「멍」)은 마침내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나 있을 빛나는 시절을, 슬픔과 기쁨과 그리움과 아픔과 고통을, 그 저마다의 ‘겨를의 미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시집을 멀어진 누군가의 안부를 묻듯이 문득 꺼내 읽어보기를.
시인의 말
본 것이 다는 아니듯이
귀가 오랫동안 태어나고 있다.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던 순간도 있고
해日가 나무木에 걸렸다고, 동東
나는 오랫동안 태어나고 있다.
떠오르다가
시간 안에 옮겨질 것이다.
2022년 봄
황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