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이자 문학평론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인 조연정의 한국 현대시 연구서 『여성 시학, 1980~1990: ‘여성’을 다시 읽고 쓰는 일』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를 아우르는 여성시 지형을 파악하고, 대표 여성 시인 5인의 창작 활동을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그들의 시가 그간 비평장에서 읽혀온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여성주의 시각’을 바탕으로 문학사를 재인식해야 한다는 시대 요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번 시도를 시작으로 다른 시기에 활동한 여성 시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가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여러 차례 밝혀진바 조연정이 수행해나갈 앞으로의 연구도 기대를 모은다.
『여성 시학, 1980~1990』은 여성 시인 고정희, 김혜순, 최승자, 허수경, 김정란이 해당 시기에 선보인 시 세계와 창작 입장을 분석하는 다섯 편의 논문이 묶였다. 비평장 안에서 남성 보편의 시선에 의해 타자화되어온 여성문학을, 각 시인의 문학적 활동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토대로 ‘여성 자신의 발화’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당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어진 사회적 조건/한계 속에서 그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여성적 현실을 재현해내고자 했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해내는 동시에, 여성이 주체가 된 문학사 복원을 고민하는 조연정이 자신의 분석 틀로 말해내는 연구자로서의 입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목차
책머리에 여성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
‘여성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 1980년대 ‘여성해방문학’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김혜순의 초기 시
1 여성주의 시각에 의한 문학사의 해체와 재구축
2 ‘여성’ 없는 여성시 혹은 ‘방법’으로서의 여성시
3 김혜순 초기 시에 나타난 ‘젠더 폭력’
4 ‘여성’을 다시 읽고 쓰는 일
1980년대 문학에서 여성운동과 민중운동의 접점: 고정희 시를 읽기 위한 시론(試論)
1 ‘대중/민중’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
2 1980년대 민중운동에서 젠더의 문제
3 ‘과소여성화’에서 ‘과잉여성화’로
4 고정희의 시를 읽기 위한 몇 가지 제언
여성해방문학’으로서 고정희 시의 전략
1 ‘고정희’라는 텍스트
2 ‘도식적 전형성’의 수행성
3 ‘여성’‘민중’으로서의 ‘어머니’
4 여성해방문학의 ‘여성’은 누구인가
최승자 시에 나타난 독신자 여성 삶의 재현 양상
1 여성의 글쓰기를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
2 ‘방법론’으로서의 여성성 혹은 여성성의 ‘과잉담론화’
3 ‘낙태’와 ‘공복’-절대 자존(自存)의 공간으로서 여성의 몸
4 여성시와 여성의 삶
1990년대 젠더화된 문단에서 페미니즘하기: 김정란과 허수경을 읽으며
1 ‘그들’의 페미니즘-‘김정란 죽이기’와 ‘김정란 구하기’
2 ‘여성적 글쓰기’와 ‘여성의 현실’
3 여성적 서정시에서 여성주의적 서정시로-허수경의 경우
4 선배 여성 시인을 읽는 일
참고 문헌
저자
조연정
출판사리뷰
“여성문학사를 어떻게 다시 쓸 것인가”
여성주의 시각으로 한국 현대시사를 검토하는 조연정의 첫발
김혜순 고정희 최승자 김정란 허수경 새로 읽기
“래디칼이 아니면 대안이 없다”
- 고정희의 편지글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것이 어떤 다짐을 담은 선언의 문장이 아니라, 나에 대한 어떤 확신에서 나오는 문장이 되려면 아마 더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 필자의 마음을 담은 책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확신을 담아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고 말하기엔 우선 나의 공부가 충분하지 않고, 내 글과 삶이 여전히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중이다._「책머리에: 여성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
‘여성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 김혜순의 초기 시
저자는 1980년대 비평장에서 여성 시인 김혜순이 소개되던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그의 시에서 분명히 재현되고 있는 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여성의 체험은 대부분 삭제된 채로 읽히고, 여성이라는 시인의 성별이 주로 시의 미학적 결함을 지적하기 위해서만 부정적인 방식으로 참조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불어 그간 일반적으로 김혜순 시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만 한정해 읽을 수 없다는 태도가 지배적이었던바 이것이 결국 ‘여성주의적 시각’의 독해를 배제하고 ‘과소여성화’에 이르게 되었음을 짚는다. 김혜순 초기 시에 나타나는 ‘젠더 폭력’에 주목하여, 시인이 재현하는 ‘여성적 체험’을 분석하고 의미망을 폭넓게 확장해간다.
고정희의 민중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 자리 찾기와 해방문학으로서의 시 전략
고정희 시론은 두 글이 함께 묶였다. 먼저 「1980년대 문학에서 여성운동과 민중운동의 접점: 고정희 시를 읽기 위한 시론」에서는 고정희가 당대 주류 ‘대중/민중’운동과 여성운동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시인 고정희가 자신의 문학적 활동을 통해 ‘여성운동’의 공론장을 열어가고자 노력한 점에 주목한다. 이어 「‘여성해방문학’으로서 고정희 시의 전략」에서는 고정희의 시 작업을 분석한다. 그가 반복적으로 호명하는 ‘어머니’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역사의 주체로서 공적 영역에 기입하고자 한 전략이었으며, 다양한 여성 인물을 서로 대화하도록 함으로써 어떤 중심이나 위계도 형성하지 않은 여성주의운동을 실천하고자 했음을 읽어낸다.
최승자 시에 나타난 독신자 여성 삶의 재현 양상
김혜순과 고정희 시를 적극적인 ‘여성해방문학’으로 읽고자 했다면, 최승자는 시인이자 번역가로서 독신의 삶을 살아온 인물로서 제도권에 안착하지 않았던 그의 시는 여성적 실존, 즉 현실적 생존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점을 필자는 지적한다. 자기 삶의 양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젠더 부정의’의 양상을 뚜렷하게 증명하는 정치적 텍스트의 한 사례로 읽힐 수 있음을 밝히며, 기존의 문학 연구가 ‘여성시’와 ‘여성성’을 이해하는 데 보여준 명백한 한계를 짚어낸다.
1990년대 젠더화된 문단에서 페미니즘하기: 김정란과 허수경의 경우
이 글은 1990년대 한국 문단으로 관심을 이어와 김정란과 허수경의 시가 읽히고 평가되어온 방식을 검토한다. 먼저 시인이자 여성주의 비평가 김정란의 경우, ‘김정란의 김언희 비판’을 두고 남진우가 발표한 신랄한 비판과 이에 대한 강준만의 반격으로 이어진 논쟁을 검토한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가장 타락한 형태의 페미니즘” 비평이자, “단순하고 폭력적인 가장 부정적인 형태의 페미니즘 비평”이라는 남진우의 비판은 페미니즘 비평 자체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구호에 불과하며 문학 텍스트를 단순하게 폭력적으로 재단하는 비평이라는 편견과 반감의 소산일 수 있음을 짚는다. 더하여 허수경의 경우, 당대 비평이 허수경 시를 ‘모성성의 위대한 실천’으로 읽어낸 것은 텍스트를 섬세하게 독해하기보다는 모성 이데올로기를 선험적으로 적용하며 정해진 결론으로 나아간 것일 수 있음에 대해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