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동인문학상 ·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최수철이 정교하게 진단하는 이 시대의 사랑
감각적이고 집요한 언어 실험으로 한국 문학사에 그 존재감을 깊게 각인시켜온 작가 최수철의 테마 연작소설집 『사랑의 다섯 가지 알레고리』가 출간되었다. 최수철은 2019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뒤 처음 선보이는 이 책에서 다음 여정을 위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인간 본질과 시대에 대한 면밀한 탐문의 여정을 ‘사랑’이라는 테마로 꿰어 담아낸다. 신화와 고전, 심리학적 이론 등이 풍부하게 녹아 있고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소설들은 각각 의자, 가면, 모래시계, 욕조, 매미라는 사랑의 다섯 개의 알레고리로서 개별적으로 읽히는 동시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깊은 문학적 고민의 결과로 탄생된 『사랑의 다섯 가지 알레고리』는 올해 데뷔 40년을 맞이한 작가의 방대한 사유를 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내다보게 한다.
목차
고해하는 의자-사랑의 알레고리 1
변신-사랑의 알레고리 2
모래시계 속의 남자-사랑의 알레고리 3
감각의 순례-사랑의 알레고리 4
과도하게 친밀한 고독-사랑의 알레고리 5
저자
최수철
출판사리뷰
상징을 통해 심화되는 사랑의 증상들
“말하자면 누구를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의 병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은 마음의 병의 결과일 뿐이야.”
―「감각의 순례」
작가의 말에 나타나 있듯이 알레고리의 사전적 정의는 ‘추상적인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이를 구체화할 만한 적합한 대상이나 상황을 대신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소설에서 알레고리는 오늘날 사랑의 여러 형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가면이 지닌 의미를 활용한 작품인 「변신」은 “사랑을 얻기 위해 우선 나 자신이 변하는 데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인물의 이야기다.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람 곁에 머물기 위해 육체적 변신, 새로운 인격을 부여하는 정신적 변신, 영적인 변신을 시도하는 과정을 그리는 환몽 같은 이 소설에서 우리는 사랑이 개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 변화의 끝은 어디인가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주어진 알레고리에 끝없이 몰두하는 최수철 소설 속 인물들은 마치 심리치료를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각의 순례」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영원불멸한 궁극적 감각을 체험하는 것만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오두수의 일생을 연대기처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두수에게 사랑이란 감각의 스펙트럼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안에 영원히 남아 있을 ‘감각’을 찾기 위해 “트라우마를 이기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의 일환으로 성애를 선택한 오두수처럼, 『사랑의 다섯 가지 알레고리』 속 인물들은 순례의 과정과 흡사한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한계 없이 밀어붙여 일종의 파괴적 치유에 다다르게 된다. 마지막 수록작 「과도하게 친밀한 고독」에는 이러한 면모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대학원생 준오는 사촌형이자 심리치료사인 일곤의 부탁으로 내담자 부부가 권태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입주해 지켜보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해소되는 것 없이 주어진 시간이 지나가고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시점에 이르러 준오는 자신을 포함해 한 자리에 모인 여섯 인물이 사실 더 밀접한 관계로 엉켜 있으며 모두 일곤에 의해 배치된 장기말이었음을 깨닫는다.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은 감독 역할을 하는 일종의 신적인 존재가 “치유자이자 파괴자로서” “특별히 선별된 사람들을 치료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온갖 드라마가 이곳에 집중되도록 하여” 충격적인 방법으로 고독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전작에서 선보였던 “상징소설·환상소설·추리소설·연애소설이 뒤섞인 ‘총체 소설’”적 형식을 한층 더 능숙한 솜씨로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최수철 문학의 집대성이자 또 다른 여정의 서막
“이제야 소설 쓰기가 무엇인지 알 듯하다.”
―2019년 동인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이번 소설집에는 오늘날의 병증을 드러내는 사랑의 양상과 더불어 최수철이 오래 고민해온 주제에 대한 더욱 심도 깊은 고찰이 녹아 있다. 「모래시계 속의 남자」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지속적으로 탐구할 수밖에 없는 시간 개념과 불가피하게 맞이해야 하는 숙명인 죽음을 모래시계라는 상징을 통해 드러낸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시점이 “마치 모래시계를 뒤집어놓듯이” 뒤섞여 있는 이 소설은 모든 인간이 각기 하나의 작은 모래알로서 거대한 모래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시간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될 뿐이라는 진리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페스트』 등을 통해 선보였던 최수철 특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지적 사유와 치밀한 통찰이 가득한 작품이다.
한편 ‘의자’는 최수철이 줄곧 주목해온 상징이다. 해설을 맡은 김대산이 명민하게 지적했듯 작가의 지난 작품들에서 『사랑의 다섯 가지 알레고리』로 시작될 〈알레고리〉 연작과, 그 서막을 여는 「고해하는 의자」에 대한 예고를 발견할 수 있다. 의자는 “가득 차 있으면서 동시에 텅 비어 있는 우주만상의 완벽한 표상”이며 “기꺼이 남을 섬기는 우리 본성과도 닮아 있”(『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 2014)다. 목수, 상인, 노숙자, 사기꾼, 정치가, 사이비 심령술사…… 여러 인간을 겪어낸 의자는 한때 그것을 소유했던 한 청년의 반장난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의 고해실에 놓인다. 인간들이 느끼는 모든 정념과 감정을 받아내고 때로 공감하던 의자는 자신이 의자인지 인간인지 모를 지경에 이른다. 마침내 자신을 불태워 “죽음의 순간에 체념과 수긍의 미소를 짓는 순교자의 모습”으로 헌신을 완성하는 의자의 모습이야말로 “초월적 창조성을 가능하게 하는 희생적 수용성”(김대산)을 의미하는 고도의 사랑의 형태라고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최수철에게 『사랑의 다섯 가지 알레고리』는 새로운 시도인 동시에 그동안 겪어온 소설적 모험을 마침내 완성시키는 작업이다. ‘사랑’에 이어 ‘죽음’ ‘예술’의 알레고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작가의 새로운 탐구의 서막을 함께 지켜보길 권한다.
"‘알레고리’의 사전적 정의는 ‘추상적인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이를 구체화할 만한 적합한 대상이나 상황을 대신 제시하는 것’이다. 이번에 ‘사랑’이라는 테마를 중심에 두고서, 의자(헌신 혹은 희생), 가면(페르소나), 모래시계(기다림 혹은 운명), 욕조(트라우마), 매미(고독 혹은 헛된 열정)라는 다섯 개의 알레고리로 다섯 편의 소설을 구성해보았다. 앞으로 ‘죽음의 알레고리’와 ‘예술의 알레고리’에 대해서도 써볼 계획이다. 넓은 의미에서 알레고리는 곧 ‘상징’이다. 늘 우리 시대의 중요한 상징들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들은 이 시대 우리 삶의 맥을 짚어주는 실로 계시적인 것들이 아닐까 한다."
2021년
최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