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빛의 호위』 『단순한 진심』의 저자 조해진 신작 소설집
너에게로 나의 숨결이 흘러들 때 되살아나는 온기 어린 이야기들
소외된 이들의 자리를 따뜻한 언어로 위로하는 조해진의 소설집.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 문단 내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며 저력을 다져온 작가가 지난 2019년 『단순한 진심』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후 선보이는 첫 책이다.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으로 대산문학상 수상한 이후 첫 책으로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조해진의 작품들은 하나의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고유성을 발견해내는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이 경험을 두고 김미정 평론가는 “이것은 단순한 ‘연결’이라기보다, 어떤 세계·사건에 서로 깊숙이 ‘연루’되는 사건들에 가깝”다고 말한다. 즉, “이곳과 저곳, 이 존재와 저 존재, 과거와 현재”라는 현저하게 다른 위치에 놓인 이들이 각자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서로에게 스민다는 것이다. 집단 안으로 단순하게 환원되고 정렬될 수 없는 주체들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을지라도 서로의 마음에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지, 어디서부터 이들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이 어려운 질문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권하는 조해진의 소설들 앞에서 세계는 가늠할 수 없이 깊고 넓어진다”(김미정).
목차
환한 나무 꼭대기
흩어지는 구름
하나의 숨
경계선 사이로
파종하는 밤
눈 속의 사람
높고 느린 용서
숨결보다 뜨거운
문래
해설/연루와 비밀 ㆍ 김미정
작가의 말
저자
조해진
출판사리뷰
『빛의 호위』 『단순한 진심』의 저자 조해진 신작 소설집
이 책에는 자전소설인 「문래」와 2019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환한 나무 꼭대기」를 포함한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 특히, 「환한 나무 꼭대기」는 “어둠 속에서 빛을 더듬어나가는 듯한 섬세한 문장으로 쓰인 소설”이라는 심사평처럼, 인생의 굴곡을 어루만지며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감정들에 환한 숨을 불어넣는 작가의 특장점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간 조해진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주민, 입양인, 노동자 빈민 등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도 가장 어두운 자리에 머무는 이들의 삶에 색채를 더하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이번 책에서도 가려지고 외면된 자리에 놓인 이들, 이를테면 기댈 곳 하나 없이 암 투병 중인 중년 여성이나 수은중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해야 했던 미성년 노동자들, 이렇다 할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청춘을 허비하다 지쳐버린 남녀의 삶 등에 렌즈를 가져다댄다. 작가는 이들의 삶이 결코 여기서 끝난 것만은 아니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감각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개개인의 이야기에 온기를 더한다.
"조해진 소설을 읽는 일은 맨손으로 찬 눈을 움켜쥐고 한동안 응시하는 시간 같다. 외면할 수 없는 딜레마 앞에서 우리는 ‘회전목마에 혼자 오른 어린아이’처럼 여러 번 어지럽고 불현듯 고독해지겠지만 그러한 고립이 끝은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온기로 녹여 그것이 더 높은 차원에서 구원되기를 바라는 조해진의 아름답고 섬세한 기도의 언어가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 김금희(소설가) 추천사
‘그러나’ 뒤에 오는 가려진 진심들
끝난 자리에서 다시 떠오르는 삶의 시작점
호재와 함께할 미래는 방금 전에 취소됐다. 이제 내 삶은 이 커피숍의 반복적인 연쇄와 같을 거라고 뒤이어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꾸부정히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는, 기차 칸처럼 연결된 수많은 밤의 커피숍들이 고독한 링을 벗어난 내 삶의 새로운 무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인지도 몰랐다.
_「흩어지는 구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절정의 순간들을 파티라고 말할 수 있다면, 모든 파티는 결국 끝난다. “순도 높은 열정”을 지닌 일상도, 삶의 환희로 가득 찬 순간도, 때로는 너무나 힘들어서 “비관적인 허무”에서 벗어날 수 없던 시절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작가 조해진은 이것이 진짜 끝은 아니라는 듯 절정이 지나간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낸 호재와 나는 이별을 결심하고, 오랜 연애 끝에 “내 삶의 새로운 무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 별도로 소설은 “그러나” 뒤에 오는 나의 진심에 주목한다. 그 진심은 호재가 있었던 삶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가 조연출로 참여했던 다큐멘터리 속에서 호재가 했던 말들이 어떻게 나를 살게 했는지에 관한 진실된 고백이다.
연애의 종료와 같은 사건은 때로는 동창의 죽음(「환한 나무 꼭대기」), 불행한 공장 사고로 의식을 잃은 미성년자(「하나의 숨」),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라진 아버지와 남겨진 자매(「높고 느린 용서」) 등으로 변주되면서, 작가는 끝에 가까워진 이야기의 꼬리를 잡고, ‘그러나’ 뒤에 웅크리고 있는 개개인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우리의 관계가 때로는 죽음으로, 이별로, 혹은 크나큰 시공간의 격차로 어긋나지만 사실 나에게는 아직 너에게 하지 않은 그러나, 너를 향한 이야기가 있다는 삶의 진실이 계속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흩어지고 상처받은 개인의 이야기 속에 남은 각자의 진실된 마음에 주목하며 참혹한 결말이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믿음으로부터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하기를”(김미정 문학평론가) 제안한다.
진실된 마음이 빚어내는 찬란한 순간들
서로를 발견할 때 연루되는 ‘나-너’
“얼마 전에 무슨 시민 단체에서 일한다는 분이 병원에 찾아와서 그러데요, 이 사회가 하나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요. 그런가요, 선생님?”
“……”
“근데요, 그거 잘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내가 못나서 하나가 저렇게 된 거예요. 고등학교 중퇴에 미혼모에, 나 좀 못난 거 맞잖아요.”
_「하나의 숨」
앞서 이야기한 이 ‘그러나’라는 접속사는 역사와 사회의 폭력에 휩쓸리는 개인들의 삶에 주목해온 조해진의 주요 서사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특성화고의 비정규직 교사로 일하는 나는 계약 해지를 앞둔 어느 날 제자 ‘하나’가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큰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나의 사고는 물론이고 이 책에 수록된 또 다른 소설 「파종하는 밤」에서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소년들의 이야기나, 「경계선 사이로」에서 부당하게 해직된 기자들을 대신해 그 자리를 꿰찼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신입 기자의 내적 갈등 등은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사건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사회가 하나를 그렇게 만든 거”라는 짧은 요약 뒤에는 진짜 행복이 있다고 믿고 싶은 ‘하나’가, 그리고 그런 ‘하나’가 무의식 속에서도 행복한 꿈을 꾸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사회의 단면 뒤에 자리한 개개별의 세계와 꿈, 공평하게 간직한 환한 마음들이 반짝 떠오를 때 만들어지는 내면의 의지들은 결코 시스템으로 환원될 수 없는 지점들을 만들어내며 조해진 소설의 빛나는 장면을 조각해낸다.
예컨대 「눈 속의 사람」에서 ‘나’와 여진은 과거 출판사의 구술사 기획에 참여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북한군 학살에 동참했던 정찰병 최길남을 만나게 된다. 오로지 자신의 목숨을 위해 많은 이를 죽였다는 수치심에 빠져 사는 최길남은 딱 한 번 자신의 마음을 진실되게 만든 순간을 비밀스럽게 털어놓는다. 총소리가 쏟아지는 와중에 공포에 떨면서도 “팔다리가 짧고 몸통이 가는 연약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던지게 만든 그 한 줌의 찬란한 순간은 최길남을 향해 쉽게 쏟을 수 있는 비난의 말 아래 감춰졌던 또 다른 면을 끄집어 올린다.
이같이 조해진의 작품들은 하나의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고유성을 발견해내는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이 경험을 두고 김미정 평론가는 “이것은 단순한 ‘연결’이라기보다, 어떤 세계?사건에 서로 깊숙이 ‘연루’되는 사건들에 가깝”다고 말한다. 즉, “이곳과 저곳, 이 존재와 저 존재, 과거와 현재”라는 현저하게 다른 위치에 놓인 이들이 각자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서로에게 스민다는 것이다. 집단 안으로 단순하게 환원되고 정렬될 수 없는 주체들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을지라도 서로의 마음에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지, 어디서부터 이들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이 어려운 질문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권하는 조해진의 소설들 앞에서 세계는 가늠할 수 없이 깊고 넓어진다”(김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