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새로운 세대가 그려내는 겨울의 소설적 풍경
독자에게 늘 기대 이상의 가치를 전하는 특별 기획, 『소설 보다: 겨울 2020』이 출간되었다.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로 2018년에 시작되었다. 선정된 작품은 문지문학상 후보로 삼는다.
지난 2년간 꾸준히 출간된 [소설 보다] 시리즈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물론 선정위원이 직접 참여한 작가와의 인터뷰를 수록하여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앞으로도 매 계절 간행되는 [소설 보다]는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독자를 가장 신속하고 긴밀하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소설 보다: 겨울 2020』에는 2020년 가을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이미상의 「여자가 지하철 할 때」, 임현의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총 3편과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선정위원(강동호, 김형중, 우찬제, 이광호, 이수형, 조연정, 조효원)은 문지문학상 심사와 동일한 구성원이며 매번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작품을 선정한다. 심사평은 문학과지성사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도서는 1년 동안 한정 판매될 예정이다.
목차
「여자가 지하철 할 때」 이미상
인터뷰 이미상 × 조연정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임현
인터뷰 임현 × 조효원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하영
인터뷰 전하영 × 강동호
저자
이미상, 임현, 전하영 (지은이)
출판사리뷰
겨울, 이 계절의 소설
“사무실은 언제나 아득히 멀다.”
2018년 웹진 [비유]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고 이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이미상이 「여자가 지하철 할 때」로 이전과 조금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선보인다. 한 여성이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20분 동안 머릿속에서 쏟아지는 생각들을 분열적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발표 지면인 웹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씌어졌다. 처음 읽을 때는 혼란한 방식이 낯설더라도, 다시 한번 읽을 때는 또렷한 고찰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가 지하철 할 때」에서 한국 여성들의 일상적 긴장 상황은 생존 게임처럼 풀이된다. 지하철 안, 오감을 동원해 “승객 위험도”를 분석하고 위험한 사람에게서 가능한 한 자연스럽고 “티 나지 않게” 멀어지기. 이때 위험한 사람이란? “네가 옆에 안 앉으려고 하는 사람”(옆에 앉기 싫은 사람). 이렇듯 ‘눈치’를 보는지 여부는 현실 사회의 권력 문제와 직결된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2016년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여파가 거세던 시기다. “환대와 적대 사이에서, 평등과 안전 사이에서”(김형중)의 윤리적 고민이 여전한 난제로 남아 있는 지금, 이미상은 “약자를 적대하는 폭력도, 그들을 환대하는 윤리도, 덧붙여 그러한 환대의 위선을 반성하는 윤리마저도 모두 언제나 ‘가진 자’의 ‘권리’가 될 뿐이라는 사실”(조연정)을 절감하게 한다.
“초기에는 분명 ‘여자는 공감하고, 남자는 경험하게 하겠다!’는 포부가 있었고 그 과잉을 죽였다가 살렸다가 하느라 시간을 오래 보냈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을 담은 부분도 거칠고 미해결된 채로 괜히 글을 산만하게만 만들며 조금 들어가 있어요. 그런 다른 구간, 오돌토돌함, 시간차는 아마 저에게만 중요할 것 같고요. 읽으시는 분들은 지금 와닿는 부분을 그저 조금씩 찢어가주시면 감사하죠.”
「인터뷰 이미상 × 조연정」에서
“사람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고, 아주 다르게 사는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로부터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고,”
임현의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는 윤리와 논리를 둘러싼 딜레마를 다루는 이야기다. 차별적인 표현으로?학생의 인권을 침해한 교수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나 법적 분쟁이 벌어진다. 국문과 시간강사인 ‘나’는 매사 ‘나였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해당 분쟁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나름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생활 속 작은 분쟁에서의 가해자는 사실 지독한 악인이기보다 딱히 나쁜 의도 없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보통 사람인 경우가 많다. 여러 입장을 가늠할 때 대화의 가능성이 생기는 반면, 논리적 기준이 없는 윤리는 비약과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누군가를 부정하지 않고 나를 긍정하는 논리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임현은 특유의 세심함으로 이 애매하고도 복잡한 질문을 소설에 녹여낸다. “이미 일반화되거나 확정적인 개념을 되짚어보고 재구성해봄으로써 기존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작업 그대로가 곧 윤리적인 사고인 동시에 소설 쓰기”라고 말하는 짧지만 깊이 있는 인터뷰도 눈여겨볼 만하다.
“소설은 대화적입니다. 대화를 할 때 나는 내가 하는 말의 맥락과 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지만, 상대방은 그 사람 입장에서의 맥락이나 목적을 가지고 같은 말도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해가 생기고, 또 그 오해를 정정하면서 말이 길어지고 하는 것이 꼭 소설 쓰기와 같습니다. 무엇보다 피곤하거든요.”
「인터뷰 임현 × 조효원」에서
“우리는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야. 우리가 겪은 것이 무엇이든.”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예술에 대한 비판적인 자의식이 돋보인다. 삼십대 중반 여성인 ‘나’는 회사에서 공감대를 형성해온 ‘그’가 실은 세대만 같을 뿐 사회적 지위가 서로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식한다. 문득 그를 닮은 과거의 인물 ‘장피에르’를 떠올린 나는, “모든 걸 다 소유하고서도 불행을 찾아낼 수 있는” 예술가적 인물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에 열정적으로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대학 시절을 되짚는다.
이 소설을 사랑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의 대상은 누군가가 아니라 ‘나’가 거쳐온 과거의 한 시절일 것이다. 애증으로 남은 그 시절을, “우리가 사랑했던 변질되고 고갈되어버린 것들. 잔해들. 더 이상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걸작들의 끝없는 리스트”를 그냥 지워버리지 않고 놓쳤던 진짜 의미를 깨닫는 일은 삶에서 ‘다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잘 장전된 리볼버를 건네듯 응원의 말을 보탠다. 절대 초원에서 죽지 마시기를.” 등단작 [영향]에 대하여 강지희 평론가가 쓴 심사평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울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자기보다 약한 존재라 여겨졌을 땐 얕잡아 보며 제멋대로 굴다가 그녀가 가진 힘을 깨닫고 금세 꼬리를 내립니다. 여성들의 글쓰기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각자의 허리춤에 숨겨져 있는 잘 장전된 리볼버. 그것으로 어느 누구도 쏠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말이죠.“
「인터뷰 전하영 × 강동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