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어떤 이야기에도 끝은 없어요.
분명히 다른 곳으로 이어진 길이 있죠”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미로 속
아름답게 펼쳐지는 영원의 순간들
세련된 문체와 신비로운 형식으로 주목받아온 우다영의 두번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문학과지성사, 2020)이 출간되었다. 2014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첫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을 출간한 이후 2년 만의 신작이다. 2019년 여름 이 계절의 소설로 선정되었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과 2020년 현대문학상 후보작이었던 「창모」 등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이 세계를 논리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무수한 우연의 집합으로 묘사해온 우다영은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시공간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미로처럼 엮어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형상화한다. 이곳과 저 너머의 “세계가 이어져 있고” 그 경계가 “눈꺼풀 한 겹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혹적인 이미지와 몽환적인 전개 방식으로 그려낸다(「해변 미로」). 그러므로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을 읽는 일은 눈을 감아야만 들여다볼 수 있는 세계의 이면을 작가의 섬세하고 지적인 문장을 따라 경이롭게 감각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곳의 현재뿐 아니라 다른 곳의 과거와 미래까지 두루 조망하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획득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초대된다. 우리는 기쁘게 입장한다. 그리고 밤으로, 밤 너머의 밤으로 진입한다. 끝나지 않은 밤이다. 책을 덮어도 끝나지 않을 밤이다. _한유주(소설가)
우다영의 소설이 매혹적인 이유는 우리가 지각할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을 아름답고 충실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무한한 가능성에 일순간 아득함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것들이 연결되어 탄생한 하나의 세계는 우리에게 놀라운 경이감을 선사한다. _조대한(문학평론가)
목차
당신이 있던 풍경의 신과 잠들지 않는 거인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해변 미로
밤의 잠영
창모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죠
밤은 빛나는 하나의 돌
메조와 근사
해설 | 아름다운 이야기의 미로_조대한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저자
우다영
출판사리뷰
현실 너머의 세계에서 발견한 의미들
우다영의 소설 속 인물들은 마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자신이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러한 과정에서 겪는 행복과 불행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거듭하여 질문하기 때문이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의 ‘나’는 바다를 향해 가던 중 마부에게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친구의 딸이 말에게 머리를 밟혀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하필이면 그때 아이가 승마용 안전모 대신 자신이 선물한 페도라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유부남과 사귀고 있었던 나는 그 사고가 자신이 “그동안 저지른 잘못”(p. 69)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자책한다. 인사불성이 된 아이와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유부남과의 관계를 청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자 긴 잠에 빠져 있던 아이가 기적처럼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삶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술회한다.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일투성이죠.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은 누군가가 계속 죽고 누군가가 계속 태어나는 일이에요. 그것이 태초부터 반복되어온 섭리라는 것이요. (p. 70)
「해변 미로」는 이러한 삶의 불가해성을 쌍둥이인 ‘아라’와 ‘아성’의 이야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아라의 이야기에서 아성은 열 살이 되던 해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고, 아성의 이야기에서 아라는 같은 해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다. 분신과도 같았던 존재를 잃고 난 후에 두 인물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삶을 영위해나간다. 이 작품에서 두 개의 시공간이 번갈아 묘사되는 이유는 단일 서사에서는 인지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세계와의 관계성을 포착하기 위함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들의 얽힘을 통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의 인과로부터 모종의 질서와 패턴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다영에게 또 다른 세계를 관측하는 일은 생의 의미를, 이 세계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네가 스스로에 대해 더 알았으면 좋겠어. 네 안에 있는 다른 마음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어. 너의 일부를 잃지 말고, 어쩌면 그 차이가 만들어줄 수도 있는 입체나 종의 공명을 모르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p. 129)
삶을 지속시키는 신비로운 가능성들
「메조와 근사」는 사촌 동생을 잃은 ‘나’의 이야기이다. 남미의 한 여행지에서 소매치기 현장을 목격하고 소리를 지른 사촌 동생은 “그 애의 인생을 모르고, 그 애가 가진 생각과 특별함도 모르”(p. 272)는 외국인에게 총을 맞아 무참히 살해당한다. 이 사건으로 내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사촌 동생의 죽음이 슬퍼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역학관계도 설명할 수 없는 이 세계에 대한 공포와 허망함을 느낀 탓이다. 그러던 중 나는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남태평양의 바닷속을 보게 된다. 그곳에는 “수만 년 동안 진화해 완전히 독성이 사라”진 해파리들이 “아름다운 나선형을 그리며” 평화로이 떠다니고 있다(p. 277).
이 장면이 묘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모든 폭력과 갈등이 무화된 듯한 이미지 덕도 있지만 우리가 간접적으로 체험하거나 상상할 수 있을 뿐, 실제로는 마주할 가능성이 없는 어느 시공간이 이 세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함을 인지하게끔 돕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확장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수렴값”(p. 266)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할 수 있을 때, 기적 같은 풍경이 어딘가에 실재하리라 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은 생의 여러 가능성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해석하고 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삶에 대한 경외감을 되돌려주며, 미로처럼 불가해한 세계에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준다.
작가의 말
예전에 꿈에 관해 쓴 「암시」라는 글을 여기에 적는다. 네 개의 주석을 달고 싶어서.
읽고 싶은 글을 쓴다. 걷는 사람을 쓴다. 길에 대해 말하자면 한편에는 사랑스러운 네가 있고 반대편에는 사랑스러운 죽음이 있다. 떠도는 모든 사람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여행하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이방인은 아니다. 나를 먹은 너는 내 일부가 된다. 실수일까 덫일까. 길에는 나란히 수로가 있는 것으로 하자. 물속에서 우는 물고기를 보았으니까. 누구도 물속에 사는 물고기의 눈물을 볼 수 없지만 수백만 년 후에 생긴 근사한 호랑 무늬는 눈물 자국이다. 기도는 기적의 일부. 나무 한 그루를 심자. 잼이 되기 위해 화가 난 호랑이가 서로의 꼬리를 물도록.** 서로를 먹기 전에 하나가 되도록. 선택을 위해 차이를 만들어. 달과 파도의 약속처럼. 아주 천천히 보면 바뀌는 풍경. 영화 속을 산책하는 침략자.*** 영화에 빠진 너의 얼굴은 아무 표정 없는 얼굴 무방비한 얼굴 관찰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얼굴 그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떠올랐으면.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불의 가장자리가 되기보다 가여운 소문이 되길 원한다. 망설임을 망각한다. 피로와 근육만이 남은 산책자가 이 정교한 꿈을 눈치채면 나는 내가 쓴 글을 지우고 더 이상 읽고 싶은 글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 잼 한 통만이 그립고도 징그러운 암시로 남아 마침내 잼을 좋아하는 너를 떠올리지만 그건 선택과는 무관한 일이다.
또 언젠가 어쩌다 적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메모를 가져온다.
네 사람은 같은 시간을 다르게 지나왔다.
다르게 기억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다른 세계였을까.
또 항상 마음에 맴돌던 목소리를 옮긴다.
세상의 모든 해변이 얼마나 닮았는지,
또 우리가 간직한 이야기는 얼마나 겹쳐져 있는지.
이런 글들을 나열하며 이것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 말한다.
살짝 꼬인 채 연결된 당신을 만나려고.
꿈은 밤보다 길고, 어떤 하루는 영원과 같다.
2020년 겨울에
우다영
*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J. R. R. 톨킨의 말을 번역.
** 핼렌 배너맨, 『꼬마 삼보 이야기』, 더트랜스 옮김, 바로이북, 2017. 사실 호랑이들은 버터가 된다. 잼은 나의 착각.
***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산책하는 침략자」, 2017. ‘영화’ 산책하는 침략자와 영화 속을 산책하는 ‘침략자’ 중 무엇이 먼저일까?
****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이재영 옮김, 창비, 2011. 소설 속의 그림 속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