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가을에 가장 눈부신 은행잎처럼
절정에 매일 다가서는 삶과 노래
거듭나고 성장하는 시인 황동규 열일곱번째 시집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
[……]
내 삶의 마지막을 미리 알 수 없듯이
내 시의 운명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자.
- 「시인의 말」에서
시인 황동규의 신작 『오늘 하루만이라도』(문학과지성사, 2020)가 올가을 당신을 찾아간다. 『사는 기쁨』 『겨울밤 0시 5분』 등의 근작을 통해 노년의 깨달음을 솔직한 시로 전해오며, “한 개인의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고, 현실과의 진정한 접촉을 통해 어떻게 아름답게 성숙해가는가를 보여주는 예”(문학평론가 이광호)라 불렸던 그가 4년 만에 새로 묶어낸 시집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는 78편의 시와 더불어 황동규 시 세계의 이해를 돕는 시인 본인의 산문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볼륨감만으로도 시 쓰기를 향한 황동규의 여전한 열정과 근면이 엿보인다.
1956년 19세의 나이로 「즐거운 편지」를 쓴 이래 64년간 시의 집을 짓고 부수길 반복하며 지내온 생이었다.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마지막”이라 쓰려다 마는 시인의 마음은, 시를 놓지 못하는 집착이 아니라 삶과 시의 운명을 순리에 맡기겠다는 수용의 다짐에 가깝다. 여전히 청청한 정의감과 이상향을 꿈꾸는 시적 자아와 현실에 발붙인 냉철한 현실의 자아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황동규의 시. 날카로운 송곳 위에 반듯이 선 듯한 균형감 있는 그의 서정은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오늘도 읽는 이를 매혹한다.
황동규 시에서 ‘거듭남’의 시간은 미묘할수록 아름다웠고, 리듬은 중력을 잊은 것처럼 분방해졌다. 이 연극성과 음악성이 시 쓰기의 ‘수행성’이었다. “은행잎 하나 날아 들어”와 “손바닥에 올려놓는” 장면은 “떨어지기 직전 필사적으로 아름”다운 시간이다. 오래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무거운 발걸음의 위층 남자의 미소를 만난 우연한 순간, 「볼레로」처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라고 다짐한다. 이 선언은 발화 자체가 행위가 되는 수행문이다. 이 수행문이 삶의 순간을 극적으로 바꾸며, 작은 현재를 홀연히 ‘무한’으로 옮겨놓는다. 시는 발걸음의 변속을 통해 삶의 감각을 재연주한다. “한 층은 활기차게 한 층은 살금살금, 한 층은 숨죽이고 한 층은 흥얼흥얼”. 그리하여 “노을의 절창”은 끝없이 변주된다. (이광호)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불빛 한 점/서촌西村보다 더 서쪽/마주르카/오늘 하루만이라도/진한 노을/초겨울 밤에/첫눈 내리는 저녁/있는 그대로/죽음의 자리와 삶의 자리/초봄 개울에서/서달산의 마지막 꿩/산 것의 노래/봄 저녁에/우리의 백 년 한 세기가/발라드의 끝/자작나무, 이 어린 것이/두물머리 드라이브/밟을 뻔했다/나팔꽃에게
제2부
화끈한 냄새/바가텔Bagatelle 2/바가텔 3/바가텔 4/또다시 겨울 문턱에서/날 테면 날아보게/너는 지금 피어 있다/은퇴/오이도烏耳島/가파른 가을날/맨땅/죽음아 너 어딨어?/한여름 밤 달빛/안개/매화꽃 흩날릴 때/눈이 내린다/침묵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솔방울은 기억할까?/베토벤 마지막 소나타의 트릴
제3부
허리 꺾이고도/손 놓기 1/손 놓기 2/손 놓기 3/화양계곡의 아침/네가 갔다/너는 두고 갔다/체감 온도 영하 20도/대낮에 밤길 가듯/안구주사를 맞고/종이컵들/봄 진눈깨비/강원도의 높은 산들/강원도 정선/날개 비벼 펴고/쇠기러기 소리/자귀 씨 날다/수평선이 담긴 눈동자/시가 사람을 홀리네/조그만 포구
제4부
나의 마지막 가을/홍천 구룡령九龍嶺길/오늘은 날이 갰다/차와 헤어지고 열흘/새로 만난 오솔길/선운사 동백/이 겨울 한밤/사람에게서 사람을 지우면/이런 봄날/지우다 말고 쓴다/무엇이건 고여 있는 곳이면/한밤중에 깨어/아직 저물 때가 아니다/어디로?/차 마시는 동안/늦겨울 밤 편지/여기가 어디지?/일곱 개의 단편斷片/시간의 손길/삶의 앞쪽
산문
나의 문학 25년×2.5/나의 베토벤
저자
황동규
출판사리뷰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집 8층까지 오르는 층계 일곱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 층은 활기차게 한 층은 살금살금, 한 층은 숨죽이고 한 층은 흥얼흥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
-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분
앞서 인용된 이광호의 해석처럼 표제작 「오늘 하루만이라도」는 황동규 시의 힘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하는 어느 날, 올라가는 계단참마다 한층 무거워진 육신을 실감하던 화자는 창밖에서 날아든 은행잎을 보며 절정에 대해 생각한다. 고단하게 오르던 화자의 발걸음을 즐거운 춤으로 변화시키는 극적 동력. 뒤의 산문 「나의 문학 25년 × 2.5」에서 시인이 “연극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 시적 자아를 변모시키는” “거듭나게 하는, 시를 쓰려 했”(p. 154)다고 밝힌 극(劇)서정시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듭남’으로 살아나는 시의 활력은 “진하디 진한” “노을의 절창”(「진한 노을」)으로, 생생한 아름다움으로 오늘을 충만하게 채워간다.
“철새도 날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는 겨울밤도
별들이 빛나면 견딜 만합니다.”
달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오리온의 붉은 별이 이미 폭파되어 빛만 남아
지구의 현재로 오고 있는 과거의 별이라 해도 좋습니다.
우주가 변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변하는 꿈은 어떻게 꿉니까?
- 「늦겨울 밤 편지」 부분
그동안 황동규는 바싹 마른 나무, 겨울밤, 적막, 추위 등에 주목하곤 했다. 잘려나가 하얗게 말라버린 자작나무(「자작나무, 이 어린 것이」)에서, 혹은 곧 사라져버릴 별빛(「늦겨울 밤 편지」)에서, 시인은 더 빛나는 생명력을 발견해낸다. 언젠가 끝이 있음을 받아들일지언정 오늘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절실한 생의 자세가 갖는 아름다움이 여기 있다. 이는 “해 진 줄 모르고/독서 안경 끼고도 잘 안 뵈는 잔글씨를/죽음아 너 어딨어? 하듯/읽을 수 있는 마지막 글자까지 읽어내는 인간이 있다”(「죽음아 너 어딨어?」)라고 말하는 황동규 시인의 건강함과도 연결된다. 동전의 양면처럼 끝에서 시작을, 죽음에서 생을 길어 올리는 시들이 모여 있기에 ‘마지막’이 암시되는 수많은 장면이 슬픔 대신 희망과 기대로 차오른다.
“시인과 독자들의 짐을 별빛 무게만큼씩이라도 덜어”주려 했던 극서정의 탄생기
이번 시집의 마지막은 해설이나 발문 대신 시인 본인의 산문 두 편으로 채워졌다. 「나의 문학 25년 × 2.5」에서는 1950년대 우리 문학이 처했던 상황과 연동하여 황동규 시인이 시작한 ‘극서정시’가 무엇이었는지, 그 본뜻과 지향이 해설되어 있다. 김소월과 한용운, 김영랑, 서정주 등을 극복하고 시 안에서 변화하는 자아를 구사하고자 노력하며 이러한 “극서정시가 마련해주는 조그만 ‘거듭남’들을 통해 시인과 독자 들이 짊어지고 가는 삶의 짐을 별빛 무게만큼씩이라도 덜어주”고자 했던 의지의 시력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나의 베토벤」에서는 황동규 시가 줄곧 보여주었던 음악적 성격의 뿌리를 알려준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서 음악실을 오가며 한국의 베토벤을 꿈꾸었던 고등학생 황동규를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절묘한 소나타의 트릴도 “끝남이 있어서/천국의 한 토막”(「베토벤 마지막 소나타의 트릴」)과도 겹쳐 읽게 되어 음악과 예술을 탐독해온 시인의 깊이감을 함께 느낄 수 있다.
황혼의 잔잔한 일상에서 발견한 소중한 생의 기미들을 활력 넘치는 변주곡으로 연주해내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쩌면 시인의 말처럼 생전의 마지막 시집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 황동규의 펜이 움직이고 있음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인간과 사회, 산천의 풀포기 하나에까지 책임감을 느끼며, 끝내 “못 가지고 가는 시”(뒤표지 글)를 세계에 남겨주고자 골몰하는 시인. 일신우일신의 표본처럼 매번 거듭나고 변화하여 성장에 이르는 황동규 시의 아름다움이 오늘 하루도 빛난다.
뒤표지 글
살면서 힘들었던 일들, 특히 이즈음 몸이 속을 바꾸며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일들을 시로 변형시켜 가지고 가고 싶다. 가지고 가다니, 어디로? 그런 생각은 지난날의 욕심이 아닌가? 그래? 그렇다면 못 가지고 가는 시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