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중세 이후 ‘악마의 잔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추적하고 16~17세기 민중의 일상과 정신세계에 구체적 형상을 입혀 드러낸 뒤 거시적 차원으로 시야를 확장해 시간과 공간, 신화와 우화, 사료를 넘나드는 방대한 비교 작업을 통해 오랜 세월 지속된 유라시아 공통의 문화적 기원을 찾아 나선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세밀하고 해석적인 긴즈부르그 특유의 논지 전개 방식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마녀와 베난단티, 늑대인간, 오이디푸스 신화, 신데렐라 등의 주제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게 서술되어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목차
감사의 말
서론
제1부
1장 나병환자, 유대인, 무슬림
2장 유대인, 이단자, 마녀
제2부
1장 여신의 뒤를 따라
2장 비정상
3장 탈혼 상태의 전투
4장 동물 가면 쓰기
제3부
1장 유라시아 가설들
2장 뼈와 가죽
결론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저자
카를로 긴즈부르그
출판사리뷰
마녀, 주술사, 샤먼, 늑대인간… 유럽 민속신앙에 대한 미시사적 연구부터
인류 보편의 문화적 기원을 추적하는 거시적 차원의 통찰까지
역사학의 거장 카를로 긴즈부르그 연구 작업의 결정판!
미시사 연구 방법의 개척자로 꼽히는 역사학계의 거장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밤의 역사』가 출간되었다. 긴즈부르그의 걸출한 연구들은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며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는 선구적 업적을 남겼고 국내 역사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긴즈부르그의 관심사는 지배층 문화와 병존했던 민중 문화의 존재를 밝히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는데,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치즈와 구더기』 『밤의 역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도는 긴즈부르그의 연구 작업을 대표하는 작품들로서 흔히 민중 문화 연구 삼부작으로 일컬어진다. 이 삼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 『밤의 역사』는, 긴즈부르그 스스로 “앞선 두 연구를 종합하는 의미에서 펴낸 책”이라고 평했듯, 긴즈부르그 평생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대작이라 하겠다. 『밤의 역사』는 중세 이후 ‘악마의 잔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추적하고 16~17세기 민중의 일상과 정신세계에 구체적 형상을 입혀 드러낸 뒤 거시적 차원으로 시야를 확장해 시간과 공간, 신화와 우화, 사료를 넘나드는 방대한 비교 작업을 통해 오랜 세월 지속된 유라시아 공통의 문화적 기원을 찾아 나선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세밀하고 해석적인 긴즈부르그 특유의 논지 전개 방식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마녀와 베난단티, 늑대인간, 오이디푸스 신화, 신데렐라 등의 주제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게 서술되어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포인트 1. 전염병, 기근 같은 재앙이 닥치면 타자를 희생양 삼는 음모론이 제기된다.
코로나19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2020년 3월 중국인, 나아가 동양인에 대한 인종 혐오가 격화되어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우한 지역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이 바이러스가 유출된 것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이 음모론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시한 여러 사람들의 동조로 큰 파급력을 띠기도 했다. 이러한 양상은 놀랍게도 『밤의 역사』의 출발점인 14세기 나병환자들에 대한 음모 이야기와 매우 닮아 있다.
1321년 나병환자들이 “기독교 세계의 건강한 사람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로 인해 수많은 나병환자들(그리고 이를 사주했다고 의심받은 유대인들)이 화형을 당하거나 격리되는 일이 벌어졌다. 1347년에는 흑사병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번져나가자 공포에 질린 민중들의 유혈 폭력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병과 죽음을 퍼뜨리기 위해 물, 음식, 집, 교회에 독약 가루를 뿌린 원흉으로 거지들과 빈자들이, 얼마 후에는 유대인이 지목되면서 무차별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후 15세기에는 사악한 주술을 사용하며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 남녀 주술사에 대한 종교계의 보고가 이어졌고, 십자가 모독, 식인 행위, 동물로의 변신, 난교 파티, 주술 비행 등으로 특징되는 ‘악마의 잔치sabbath’ 이미지가 정착되면서 그 유명한 마녀사냥의 포문을 열게 된다.
수백 년 전의 사건을 주제로 삼아, 반세기 전에 집필된 이 책 『밤의 역사』는 코로나 시대를 통과 중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며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14세기 초반에 유대인과 나병환자에 대한 음모가 성공을 거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 원인은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위기가 촉발한 불안감뿐만 아니라, 소외된 집단들에 대해 점차 커져가는 적대감, 속죄양에 대한 광적인 탐색 등에 있었다.” 미지의 세계, 해명 불가한 사태가 불러일으킨 공포는 약자나 타자를 대상으로 하는 적대감을 증폭시키기 십상이다.
긴즈부르그는 “악이 무엇인지는 누가 결정하는가?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던 유럽에서 어떤 사람이 ‘마녀’인지 누가 결정했을까?”를 묻는다. 나병환자를 상대로 한 음모는 이후 정신병자, 빈자, 범죄자, 유대인을 거쳐 마녀와 주술사에게 차례차례 투사되었다. 권력층에 의해 조작된 서신들과 고문을 가해 강제로 받아낸 자백, 연대기 기록 등을 들여다보면, 시대에 따라 표적은 바뀌되 혐의 내용은 그대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긴즈부르그는 프랑스에서 알프스 서부 지역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들의 각종 연대기와 문헌들, 이단 재판 기록물들을 토대로 적대적 집단의 이미지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왜 이 시기인가?” “왜 이 지역인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당대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그 속에 내재된 깊고 포괄적인 문화적 층위를 발굴해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포인트 2. 다양한 지역에서 놀랍도록 유사한 민속적 요소가 속속 발견된다: 밤의 여신, 비대칭 보행, 탈혼 상태의 전투, 동물 뼈 수집을 통한 부활 등…
긴즈부르그는 지역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방대한 곳에서 유사한 민간신앙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장 먼저 저자가 천착한 주제는 이교도들의 여신 디아나에 대한 숭배의식이다. 이미 10세기에 악마 추종자들이 따르는 ‘디아나’라는 여신의 존재가 교회 문헌에 등장했는데, 이와 같은 ‘신비의 여신’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디아나, 에로디아데, 홀다, 리켈라, 오리엔테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으나 그 묘사된 특성은 매우 흡사했다. “영혼이 동물의 형태로 또는 동물의 잔등이에 올라타거나 다른 주술 도구를 이용해, 죽은 자들의 세계로 비행한다는 것.” 이처럼 유사한 상징적 형태들이 수 세기에 걸쳐서, 매우 이질적인 공간과 문화를 배경으로 거듭 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긴즈부르그는 10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나온 악마론 연구서, 로맨스 소설, 설교집, 교회 법규집, 재판 기록물 등의 텍스트 연구를 시작으로 각종 예술 작품과 고대의 신화 및 우화, 구전 문학 등을 조사하고 프로프, 레비-스트로스, 그림, 메울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물을 참조하면서 문화적 연관성을 찾아내고 그 기원을 밝히고자 시도한다.
긴즈부르그는 연대기적으로나 지리적, 문화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곳들에서 출현한 유사한 현상들이 형태론적으로는 단순하지만 그간 해독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민속적 요인들의 상징적 맥락을 밝혀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예로, 손상되지 않은 동물 뼈를 수습하여 부활시킨다는 발상은 악마의 잔치로 수렴되는 유럽 민간신앙뿐 아니라 라플란드 지역의 샤먼, 시베리아의 유카기르족, 일본 북쪽 섬에 살던 아이누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이는 여러 문화권의 다양한 층위에 중앙아시아 유목민들로부터 기원하는 고대의 요인들이 잔존하고 있으며 이는 또한 북극 지방의 수렵 문화와 연계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긴즈부르그는 매우 폭넓은 비교 작업을 수행해나간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흡혈귀, 헝가리의 탈토시, 달마티아 지역의 크레스니키, 프리울리의 베난단티, 리보니아의 늑대인간, 오세트족의 부르쿠드자우타 등, 다양한 신화적 존재들로부터 유사한 민간신앙의 특징들을 밝혀낸다. 또한 오이디푸스의 구멍 뚫린 발에서 리보니아 늑대인간 무리를 이끄는 절름발이 소년, 불에 타버린 아킬레우스의 뒤꿈치, 신데렐라의 작은 구두 등을 하나로 묶는 맥락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처럼 시공을 초월한 파편적인 증거들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통해 긴즈부르그는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무엇보다 오래도록 지속된 인류 공통의 문화적 기층 혹은 접촉의 존재를 입증해낸다.
“인간의 역사는 이념의 세계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달이 보이는 이 세계, 즉 사람들이 태어나고 고통을 받거나 견디다 결국은 죽어가는 세계에서 전개된다.” _카를로 긴즈부르그
이 책은 서론과 세 개의 부와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마녀 집단 혹은 악마의 잔치 이미지가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연대기적 순서와 지리적 정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다. 제2부에서는 신화와 의식의 심오한 층위와 이로부터 악마의 잔치에 활력을 불어넣은 민간신앙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기술한다. 제3부에서는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방대한 지역에 걸쳐 있는 신화와 의식, 우화, 민간신앙 등 여러 증거를 통해 그 확산 과정을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결론에서는 지배층 문화와 민속 문화 간의 타협을 통해 악마의 잔치라는 확고한 전형이 성립되었음을 밝힌다. 긴즈부르그는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는 민중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어떠한 상징과 형태를 통해 잔존하고 전파되었는지 탐색한다.
악마의 잔치에 대한 민간 풍속의 층위를 밝히기 위한 이 책의 모든 여정은 한 지점으로 수렴된다. 바로 죽은 자들의 세계로의 여행. 죽음에 대한 인간들의 보편적 관심은 사후 세계로의 여행이라는 믿음을 낳았고 이는 수천 년 동안 인간 사회에 많은 양분을 제공했다. “이 모든 이야기의 공통 주제는 사후 세계로 가는 것과 사후 세계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서사의 핵심은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 존재했다. 사냥, 목축, 농업에 의존하는 수없이 다양한 사회들에 무수히 변화하며 소개되었지만 이야기의 근본적인 구조는 결코 바뀌지 않았다. 그럼 이러한 근본적인 구조는 왜 아무런 변화 없이 지속되었을까?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분석하고자 했던 것은 여러 이야기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이야기들의 모체였다.”
이 책 『밤의 역사』는 기존의 역사학 도식에서 벗어나 있는 저자 특유의 서술 방식으로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동시에, 대중적인 눈높이도 잃지 않고 있다. 이제 긴즈부르그의 민중 문화 삼부작을 완결짓는 이 책의 출간으로 긴즈부르그의 학문적 여정의 큰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