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첫사랑』은 베케트가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46년에 쓰인 단편소설 네 편(「첫사랑」 「추방자」 「진정제」 「끝」)을 모은 것이다. 베케트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무지와 무능, 결핍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며 그에 적합한 언어가 바로 프랑스어였다. 베케트의 초기 작품들을 모은 이 책은 이후에 쓰인 다른 작품들보다는 내용적?형식적인 난해함이 덜하나, ‘반-주인공’이라고 불리는 방랑하는 주인공, 주인공이자 화자, 문장부호의 활용, 낯선 글쓰기, 패러디, 구어체 등 그의 전 작품에서 반복되는 독특한 특성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문법에 어긋난 문장들, 뚜렷한 사건이 없는 이야기, 일관성 없는 화자의 서술, 자아의 분열 등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서 벗어난 그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독서를 낯선 행위로 만들어버리며, 독자들은 그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함으로써 독서라기보다는 창작에 가까운 경험을 하게 한다. 따라서 베케트의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예술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고,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목차
첫사랑
추방자
진정제
끝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저자
사뮈엘 베케트
출판사리뷰
“여하튼 사랑, 그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정형화된 예술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예술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당대 문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친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 단편선!
우리에게 『고도를 기다리며』로 잘 알려진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집 『첫사랑』(전승화 옮김)이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후 부조리극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며 베케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베케트는 희곡뿐만 아니라 소설, 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시나리오, 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그중에서도 ‘소설’은 베케트에게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데, 게슈타포에 쫓기면서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 소설이었으며 창작의 고통 때문에 한동안 집필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도 소설이었다.
『첫사랑』은 아일랜드인인 베케트가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46년의 단편들(「첫사랑」 「추방자」 「진정제」 「끝」)을 묶은 책이다. 베케트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무지와 무능, 결핍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 그에 적합한 언어가 바로 프랑스어였다. 이후부터 베케트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갈아 글을 쓰면서 본격적인 이중 언어 작가의 길을 걷게 되고, 영어로 쓴 작품은 프랑스어로, 프랑스어로 쓴 작품은 영어로 직접 번역하여 방대한 서가를 이루기도 했다. 베케트의 초기 단편들을 묶은 이 책은 이후에 쓰인 다른 작품들보다 내용적·형식적인 난해함이 덜하나, ‘반-주인공’이라고 불리는 방랑하는 주인공, 주인공이자 화자, 문장부호의 활용, 영어식 표현, 낯선 글쓰기, 패러디, 구어체 등 그의 전 작품에서 반복되는 독특한 특성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먼저, 표제작인 단편 「첫사랑」은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그 제목을 차용한 것으로 패러디의 암시를 주는 작품이다. 첫사랑, 이 단어가 갖는 울림과 환상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베케트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클리셰를 패러디하여 익숙한 표현과 의미를 낯설게 만들고 관습화된 가치를 추락시키면서 편견을 깨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향수와 이상화된 가치는 가차 없이 파괴되고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사랑을 추방으로 정의하고(“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향에서 때때로 보내오는 그림엽서나 받아보는, 그런 추방이다”), 똥 덩어리 위에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적음으로써 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을 모독하는 행위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모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이 가장 현실에 가까운 사랑의 행위가 아닐까? 「첫사랑」은 이렇듯 우리가 사랑에 대해 갖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리며,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왜곡되고 은폐되어 있던 우리의 견고한 위선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추방자」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가 어느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며 추방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버지가 사준 모자, 관처럼 생긴 마차, 램프의 불, 말의 시선, 주인공의 머리에 난 종기, 마부가 준 성냥 그리고 마부와 마부의 부인 등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나’가 어떤 식으로 어떤 범주에서 추방당하는지 알려주는 단서들이다. 예컨대 아버지가 사준 모자는 평범한 또래 집단의 범주에 ‘나’가 속할 수 없게 만들고, 착취당하는 말과 그 말의 시선은 ‘나’를 인간의 범주와 가축의 범주에서 방황하게 만든다. 램프의 불과 성냥은 문명의 삶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나’를 보여준다. 이렇듯 각각의 소재는 다양한 범주에서 추방당하고 추락하는 주인공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추방과 추락은 베케트 작품의 특성 중 하나인 부조리한 삶의 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진정제」는 “이제는 내가 언제 죽었는지 모르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무너진 지점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 역시 사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무너진 지점에 있다. 중심이 되는 사건 없이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의 여정으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은, 부랑자라는 주인공의 처지와 특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면서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들과 주인공의 대비를 부각시킨다. 또한 데칼코마니 같은 구조를 통해 상대성 원리를 떠올리게 하는 속도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며, 베케트 작품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전통적인 소설 작법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마지막 작품인 「끝」은 1946년에 집필된 단편들 중 가장 먼저 쓰인 작품으로 원래 제목은 「연속」이었다. 다른 단편들처럼 이 작품도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가 쫓겨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지금까지 읽은 단편들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듯한 이 작품은 사실 이상의 모든 단편들의 시작이다. 베케트가 「연속」에서 「끝」이라는 상반된 의미로 제목을 수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문학 세계에서 끝과 시작은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대기적 시간에서 벗어나 있는 「진정제」에서 삶과 죽음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것처럼, 무한 반복을 전제하고 있는 베케트의 문학 세계에서는 어느 시점을 시작으로 하고 어느 시점을 끝으로 정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베케트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글쓰기, 즉 무지를 드러낼 수 있는 글쓰기다. 문법에 어긋난 문장들, 뚜렷한 사건이 없는 이야기, 일관성 없는 화자의 서술, 자아의 분열 등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서 벗어난 그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독서라는 행위를 낯설게 만들어버린다. 베케트의 소설을 접하는 순간 독자와 작가, 작중인물은 서로 뒤엉키며, 독자들은 읽히지 않는 텍스트를 읽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함으로써 독서라기보다는 기실 창작에 가까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베케트의 텍스트를 경험하는 것은 예술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고,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