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가라, 가라, 가라, 새가 말했네, 인간이란 종이
버텨낼 만한 진실은 그리 많지 않으니
20세기 영미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종교적 고찰을 통해 개인 정신과 서구 문명의 구원을 갈망한
완숙기 엘리엇을 만나다!
194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20세기 영미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T. S. 엘리엇의 작품집 『사중주 네 편-T. S. 엘리엇의 장시와 한 편의 희곡』이 대산세계문학총서 154권으로 출간되었다. 엘리엇은 초기작 「황무지」(1922)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극도의 우울과 공황에 빠진 엘리엇은 신앙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사색과 성찰, 비전의 시학으로 넘어가 자신의 문학 세계를 완성한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엘리엇의 심적 변화 이후에 창작된 작품들이다.
「휑한 자들」은 엘리엇의 심적 위기를 극명히 보여주며, 개종 후 처음 발표한 시 「성회 수요일」은 단테의 『신곡』 중 「연옥」에 깊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연극 「반석」중 코러스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를 다루며 근대문명을 비판하고, 엘리엇이 창작한 마지막 시 「사중주 네 편」은 영어로 쓴 최고의 철학적 시로 손꼽힌다. 중세의 대주교 살인사건을 무대로 옮긴 역사극 「대성당 살인」은 당시 창궐하던 파시즘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대한 문학적 · 신학적 대답이었다. 섬세한 음악성과 깊이 있는 철학적, 종교적 사색이 어우러진 엘리엇 완숙기의 작품들을 유려한 번역으로 담아내 원작의 음악성을 충실히 음미할 수 있다.
목차
휑한 자들
성회 수요일
「반석」중 코러스
사중주 네 편
번트 노튼
이스트 코커
드라이 샐베이지스
리틀 기딩
대성당 살인
1막
간주곡
2막
옮긴이 해설 _ 「사중주 네 편」 외-T. S. 엘리엇의 장시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저자
T. S. 엘리엇
출판사리뷰
구원과 회생의 시인 T. S. 엘리엇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량한 20세기 서구의 정신적 풍경을 담아낸 초기작 「황무지」(1922)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1920년대 중반, 극도의 우울과 공황 상태에 빠진 엘리엇은 종교에 귀의해 사색과 성찰, 구원과 비전의 시학으로 넘어가 자신의 문학 세계를 발전시킨다. 이 책의 작품들은 이 시기 이후에 창작된 것들로 종교적 시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기존의 권위와 전통을 부정하고,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 역시 비기독교적인 허무주의, 염세주의를 바탕으로 각광받았기에,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인 엘리엇의 기독교적 성향은 독자들에게 낯설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기독교 시학’을 통해 개인의 정신과 서구 문명의 구원을 갈망하고, 탁월한 모더니즘적인 어법과 운율을 구사하여 종교적 성향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경지에 도달한다.
이 책의 첫번째 작품 「휑한 자들」은 엘리엇 문학의 이러한 방향성을 명백히 보여준다. 엘리엇은 고전에 대한 이해와 활용을 창작의 원리로 채택했는데, 「휑한 자들」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신곡Divina Commedia』이 작품 창작의 바탕이 된다. 특히 「성회 수요일」은 단테의 「연옥」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엘리엇의 시들은 연옥의 영혼들처럼 아직껏 끝나지 않은 회생의 가능성 속에 사는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작품들이기에, 엘리엇은 단테의 「연옥」을 작품 세계 전반, 특히 개종 후 창작의 서사적 틀이자 모형으로 삼았다.
시의 음악성 구축 - ‘음악’의 대가 T. S. 엘리엇
엘리엇은 흔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시인으로 인식되지만 엘리엇의 시는 음악성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엘리엇은 근본적으로 ‘소리’와 ‘음악’의 시인이다. 초기부터 일관되게 음악적 기법을 구사해온 엘리엇의 작품에서 운율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전통적인 영시의 화성과 리듬을 깬 새로운 시의 음악성을 구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 엘리엇의 시를 정확히 음미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운율의 변형 및 변이를 기묘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요소들로 읽어야 하고 ‘들어야’ 한다. 그만큼 엘리엇의 시는 언어 체계가 다른 한국어로 옮기는 데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번역자 윤혜준은 엘리엇의 음악성을 충실히 전달하는 데에 번역의 초점을 맞춰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 힘썼다. 엘리엇은 ‘음악’의 시인으로서 지극히 새로운 시의 음악성을 구축해내었다는 점에서도 ‘모더니즘’의 대가이다.
수록 작품 소개
「휑한 자들」
1920년대 중반에 우울증과 공황 상태에 빠진 엘리엇은 종교에서 ‘출구’와 ‘처방’을 찾는다. 이 작품은 종교로 귀의하기 직전 정신적 혼란을 겪던 엘리엇의 상태를 극명히 보여준다. 이 작품의 원제 ‘The Hollow Men’는 보통 ‘텅 빈 사람들’로 번역됐으나, 엘리엇의 음악성을 충실히 전달하고자 한 이 책에서는 원문의 의미뿐 아니라 음성적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 ‘휑한 자들’로 옮겼다.
「성회 수요일」
엘리엇이 1927년에 성공회로 개종한 후 발표한 첫번째 장시이다. ‘성회 수요일(Ash Wednesday)’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40일간의 사순절을 시작하는 날이다. 엘리엇은 1619년 ‘성회 수요일’ 예배에서 국왕을 포함해 회중들의 진정한 참회를 촉구했던 영국의 성직자 겸 교회 지도자 랜슬럿 앤드루스(Lancelot Andrewes, 1555~1626)에게 경의를 표하며, 개종 후 처음 발표한 장시에 ‘성회 수요일’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성회 수요일」은 새로운 화성과 조성으로 나아가며, 이전의 장시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음악성을 구현했다.
「반석」 중 코러스
엘리엇은 본격적으로 기독교 지식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30년대에 런던 교회 재건축 기금 마련을 위한 가장극(pageant play) 「반석The Rock」에 (그리스 비극의 합창단 대사들에 해당하는) ‘코러스chorus’를 써주었다. 엘리엇의 코러스에서는 대공황이라는 사회 상황을 반영해 경제 문제들, 특히 ‘실업’이 주요 주제 중 하나로 다뤄졌다. 이 작품은 시어는 비교적 쉬운 편이나 「사중주 네 편Four Quartets」에서 만개하는 철학적 사색의 시적 어법을 예견하고 있고, 엘리엇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드러내는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사중주 네 편」
엘리엇이 쓴 가장 긴 시이고 또한 시로서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의 문학 세계의 정점이자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이 연작시를 ‘사중주’라고 부른 취지는 거창한 ‘교향곡’에 대비되는 사색적 실내악곡이며, 서너 개의 다른 목소리들이 각기 현악 사중주의 악기들처럼 분배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하려는 것이었다. 복잡하고 섬세한 음악성과 깊이 있는 철학적 · 종교적 사색이 어우러진 이 시들은, 형식의 측면에서나 사유를 전개하는 내용에서나 시행과 단어의 배치가 매우 중요하기에, 옮긴이는 가급적 원문의 시적 효과들을 재구성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 연작시의 두번째 작품인 「이스트 코커」는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군의 공습으로 연일 런던이 파괴되던 그해, 런던에서 집필한 작품이다. 단행본으로 출간되자 전쟁과 파괴로 낙담에 빠진 독자들은 열렬히 반응했고 그해에만 1만 2천 부가 팔렸다.
「대성당 살인」
이 역사극은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Thomas Becket, 1119~1170)이 영국 왕 헨리 2세의 사주 또는 묵인 아래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기사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다룬다.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교회의 수장이 교회의 독립을 위해 세속 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 목숨 바친 순교로 인정했고, 토머스 베켓은 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승격되었다. 엘리엇은 이 중세 이야기를 20세기에 다시 무대에 올림으로써, 1930년대에 날로 창궐하던 파시즘의 폭력에 대한 깊은 우려와 현실 정치의 야만성에 대한 문학적 · 신학적 ‘대답’을 제시했다.
작가는 2막의 일부를 제외하면 모든 대사들을 운문으로 구성했는데, 이 작품에서 다양한 시 형식을 배합해 시적 기교를 맘껏 구사하고 있다. 이 희곡은 1935년 작품의 배경인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초연되었는데, 이후 런던에서 7개월간 계속 공연될 정도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