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차가운 암흑계 속에서 지구가 회전을 멈추는 날
우리는 만날 것이다.”
하재연 7년 만의 새 시집
무한히 증식하는 세계로의 초대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하재연의 세번째 시집 『우주적인 안녕』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두번째 시집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2012)을 출간한 이래 7년 만의 신작이자, “출판까지 할 때는 어떤 당위가 필요하다”라는 말로 새 시집에 대한 망설임을 표해왔던 시인이 오랜 시간 다듬고, 벼려낸 결과물이다.
처음 만났을 때도 마지막에 헤어질 때도 쓸 수 있는 단어 “안녕”. 시인이 건네는 것은 시작의 인사일까, 끝맺음의 인사일까. 끝과 시작을 일렬로 배열해내는 시라면 이 물음에 적절한 답을 구하기는 쉬워 보인다. 하지만 하재연의 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선형적 시공간 개념을 뚝뚝 끊어내고, 그 사이에 벌어진 틈 속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흡수하고 뒤섞는다. 이 세계에서 “안녕”을 우리가 본래 알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재연이 건네는 “안녕”은 전혀 다른 의미들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한 단어로 작용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확장성의 세계, ㅇ으로 시작해 다시 ㅇ으로 끝나는 하재연의 인사, ‘우주적인 안녕’을 당신에게 건넨다.
목차
1부 기계류
양양 /기계류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양양 /한 사람 /해변의 아인슈타인 /평균율 /27글자 /원소들 /적기 /화성의 공전 /빛에 관한 연구 /그것 /0도의 밤
2부 메트로놈 프로그램
양양 /폭우 /수화 /후천적인 삶 /분산 /천상의 피조물들 /너의 라디오 /하나의 사람 /드로잉 /회전문 /스노드롭 /마이너스 /메트로놈 프로그램 /양피지의 밤 /고고학자 /유죄 /스노우맨
3부 좋은 것
좋은 것 /밀크 캬라멜 /합주곡 /파쇄 /하우스 /아는 것들 /라플라스의 악마 /일면 /분산 /단지 한 장면들 /우주 바깥에서 /유리의 창 /의자 찾기 /어떤 화학작용 /미아의 긴 비행 /생일 축하 /최소한의 숲 /이생
4부 다음 삶들의 천장
터치 /잘못된 음계 /네 눈 안의 지구본 /스노우맨 /폴라리스 /묵음 /시티 오브 솔트 /이해 /또 다른 해 /물의 바닥 /머물러 있다 /노동하는 인간 /검은 도미노 /유리의 빛 /거지의 일몰 /크롬 /애드벌룬 /행성의 고리
저자
하재연
출판사리뷰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세계
뒤섞여버린 시공간에서 작동하기
여기, 다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계가 있다. 열 마리의 모래무지를 바다로 돌려보냈는데 알고 보니 모래무지는 민물고기였고, 생일을 맞아 열 개의 축포를 터뜨렸지만 일곱 발만 터졌으며(「양양」), 펼쳐져서는 안 되는 순간에 펼쳐지는 인공위성의 날개가 있다(「스피릿과 오퍼튜니티」). 왜 이렇게 끝나는 걸까 싶은 서사의 끝 같지 않은 끝 앞에서 하재연의 시 세계가 시작된다.
남아 있는 시간의 등 뒤를
잃어버린 시간의 머리가 바짝 쫓아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월당하고 나면
사용할 수 있는 꿈의 연료가 바닥나버릴 텐데
더 이상
[……]
나의 바깥으로 흘러내리는 시간들을 열심히 증류하였습니다.
나의 2인칭과 3인칭도 연기처럼 빠져나왔습니다.
―「원소들」 부분
시인의 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 우린 그의 시집을 관통한 ‘시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 시간, 1분이든 1초든 동일한 간격으로 흐르는 시간, 그래서 1초, 2초…… 살다 보면 어느새 하루하루가 쌓이는 그런 선형성의 시간이다.
그런데 하재연의 시간은 어쩐지 수상하다. 이 책에서 시간은 직선형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벌어진 틈으로 흘러내리는 모양새이다. 흘러내리는 시간의 흐름은 직선의 형태가 아니라 마치 프랙털, 트라이앵글, 삼각형을 그리는 아이의 손가락처럼 돌고 돌고 도는, 비선형적인 도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이 세계에선 “오래전의 미래”(「화성의 공전」)라는 단어도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은 어느새 미래의 꼬리를 잡고, 시간의 고리를 따라 돌다 보면 미래 역시 오래전에 지나쳤던 시간의 한 지점에 불과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게만 증식할 수 있는 공간에서
불가능성의 실현 가능성을 시험하는 시
떨어지는 눈송이의 모양은 완전하지 않다고 한다.
프랙탈, 당신,
당신, 나, 프랙탈,
너와 나는 불완전하게 다만 서로를 증식시킨다.
북극의 프랑켄슈타인과 같이, 빙하에 걸린 구름과 같이
쪼개지는 얼음과, 흩어지는 얼굴과
―「적기」 부분
“떨어지는 눈송이의 모양은 완전하지” 않으므로, 완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쌓이고 쌓인 모양새 또한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정삼각형을 계속해서 쌓으면 더 커다란 정삼각형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불완전하게 증식된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쌓인 것처럼 완전히 어긋난 형태로 존재한다. “투명한 우산 하나를 나누어 쓰고/너랑 나는 다른 비를 피하고 있었지”(「폭우」)라는 언술처럼 투명한 하나의 우산을 쓰고 있음에도 우리 위로 쏟아지는 서로 다른 빗방울들이 있다. 아무리 끝없이 내리는 폭우 속에서도 결코 만날 수 없는 빗방울처럼 너와 나도 온전히 다른 시공간 속에 외따로 존재할 뿐이다.
원래,는 언제부터,와 이어지는가
삶 이전에 죽음이 죽음 이후에도 죽음이 있었다는 말은
이상한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녹아드는 시간 속에서
―「시티 오브 솔트」 부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을 그려나가는 너와 나의 시공간은 일정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은 틈들이 있지 않을까. 그 틈들로 “모든 것이 녹아드는 시간”, 하재연이 그리는 비선형성의 시공간에는 “삶 이전에 죽음이 죽음 이후에도 죽음”이 존재하는 곳이자 삶과 죽음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한 확장성의 세계가 가능할 수 있다는 시적 상상력이 작동한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하재연의 세계에선 죽음 이후의 죽음, 타인 사이의 온전한 만남 등, 우리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실현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