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청춘의 페이지에 담긴 폐허의 눈빛
권태의 고고학으로 희망을 말하다
깊이가 증발한 이 세계의 증인, 시인 기혁의 두번째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기이하고 아름다운 시적 무대를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연출하며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첫 시집 이후 4년 만이다. 이번 시집 『소피아 로렌의 시간』에서 기혁은 메마른 풍경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진실을 ‘기억’을 통해 선연히 드러낸다. 황량한 세상에 켜켜이 누적된 희미한 삶과 슬픔의 내력은, 65편의 시들에 화석처럼 단단히 남아 있다. 시인은 이 ‘상처의 일기’로, 돌아가야 할 풍요로운 말과 진정한 삶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역설적으로 희망의 증거를 내비치고 있다.
이 시집에서 세계는 똬리를 틀고 있다. 현재는 까마득한 태고와 연결되고, 일상의 집은 황량한 인도 어느 사막으로 이어지며, 사물 세계는 유물들의 전시관이 된다. 전 지구적으로 뻗은 문명론적 촉수는 또 다른 장소와 시간과 사물을 지시하며 연관을 맺고 있다. 타버린 도시의 폐허에 남은 그을음처럼, 세계는 지금 여기가 유일한 시간이 아님을 다만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여기는 지나간 시간의 잔해다. 우리 시대의 진실은 이 지극히 말라붙은 풍경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심연이 증발한 세계에서 기혁은 그 증발의 풍경을 궁핍한 언어로 드러내면서, 희망을 희망하지 않는 방식으로 희망의 근거를 내보인다. 사막의 어둠 한복판에서 그는 ‘기억’을 통해 새로운 탄생을 감지하고 있다._함돈균(문학평론가)
목차
1부 소피아 로렌의 시간
소피아 로렌의 시간
대이동
물의 오파츠
남반구
루프트한자Lufthansa
창문극장
라디오 데이즈
네번째 사과
무연탄
몽타주
독재자
봄의 그라피티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들리는 가로수길에서
내간內簡
눈 내리는 마을
직립보행
2부 봄은 한쪽 눈을 감고 온다
아지랑이
직립보행
심장
바리데기를 새기다
금환일식
여독旅毒
인클로저enclosure
생일
두더지
신촌에서
외올실
봄은 한쪽 눈을 감고 온다
우로보로스
전신목
지하철 3호선
3부 버드배스birdbath
랜드마크
붉은 물병
바바리맨
옐로카드
DSLR
천사의 몫
헬보이Hellboy
엘리자베스 시대
동해안
릴리퍼트 플레이 홈스
파르티잔 리뷰
테이블
은유 돼지 삼형제
주사위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버드배스birdbath
신호등 아래서
육교 위에서
4부 태양의 풍속
포스트post
태양의 풍속
자살한 인공위성이 우리의 두 눈을 꽃잎으로 문지르고
미세먼지
블라디보스토크
오비디우스
말풍선
미셔너리 포지션missionary position
마블링
턱선
숲길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우각雨脚
지구
입속의 검은 잎
고급 독자
해설
권태의 고고학ㆍ함돈균
저자
기혁
출판사리뷰
권태의 시대, 사라진 진실을 찾아서
한 번도 타인의 일생을 감전하지 못한 기억들이 살아 있는 나무처럼 낙엽을 흩뿌렸다
―「전신목」 부분
한 시절을 풍미했던 배우의 이름이 담긴 제목과 세피아톤을 띠는 시집 빛깔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정서가 있을 것이다. 기혁은 무성영화의 스크린처럼 황량한 오늘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써 우리 시대의 진실을 상연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 시집 속 ‘소피아 로렌’은 배우가 아니라 ‘미라’다. 시인이 표제시에 덧붙여둔 말을 옮겨보면 소피아 로렌은 1934년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된, 머리카락과 눈썹이 그대로 보존돼 있던 백인 미라의 별칭이다. 같은 해 가을 태어난 배우 소피아 로렌의 이름을 따 후대의 연구자들이 그런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은 미라와 닮았다. “매 순간의 삶을 이미지가 선점하도록 내버려”(「입속의 검은 잎」)둔 채, “나는 점점 더 관광지가 되어간다”(「루프트한자」). “어떤 비밀도 없다는 듯” “무언가/뻑뻑해지지 않도록” 서로에게 무해한 ‘스몰토크’를 주고받지만 그것은 대화가 아니다. “속뜻은 어딘가에 감춰져” 있고(「생일」) 진심은 “입술을 통과하지 못한 말들”로 남아 머릿속을 맴돌며 영영 전해지지 않는다. 겉은 멀쩡하지만 껍데기뿐인, 살지도 죽지도 않은 존재. “자신의 머리카락에 휘감긴” “TV 속 미라”와 “방바닥” 위에서 “백 년 뒤 자랄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는 나는 그러므로 다르지 않다(「소피아 로렌의 시간」). 말들이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 채 헛돌 때 세상은 표면적으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고 지리멸렬하게 흘러간다. 내일도 변함없이 권태로울 것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더더욱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다만 매일같이 다짐할 뿐이다. “오늘 하루, 심장은 잊기로 하자”(「봄의 그라피티」).
기억, 희망을 희망하지 않는 방식으로 희망의 근거를 내보이다
세계의 아침은 언제나 아플 뿐,
코피를 쏟아가며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를 묻지는 말자.
―「옐로카드」 부분
『소피아 로렌의 시간』은 “피복이 갈라진 고압의 삶을 지탱할수록 소음과 광증”을 더해가는 세계를 마주해 적어 내려간 “일기장”(「전신목」)이다. 그러나 이는 권태의 일기일지언정 절망의 기록은 아니다.
시인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곳은 우리보다 앞서 살아갔고 죽어갔을 누군가가 스며 있는 곳이다. 기혁에게 시를 쓰는 일은 이 세계의 역사를 쓸어보고 만져보는 일이며, 그래서 “아프다.” 세계의 역사는 곧 “상처의 역사”와 마찬가지다. 상처의 역사는 풍화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화석처럼 단단히 남아 영원히 죽지 않고 오히려 새롭고도 “강건하게 태어난다”(시인의 말). 수백만 년 전 인류(‘아르디’, 「직립보행」), 고대의 상징(「우로보로스」)이나 유물들(「물의 오파츠」), 백석, 김수영, 김기림, 서정주, 최승자, 기형도처럼 “침묵에서 형식을 상연할 수 있었던” 선배 시인들에 대한 편지 혹은 오마주…… “내력”이나 “자취”, 또는 “흔적”이나 “얼룩”이라고 일컬어볼 수 있을 이 풍부한 기억들은 일상과 까마득한 태고를 하나로 이으며, “56억 7천만 년이 지났지만/여전히 길이 들지 않는 햇살 속에서/조물주가 만든 이상한/규칙들을 뒤바꿔보면서” 무언가를 할 수 없을까 궁리해온 시인의 깊은 고민의 궤적이다. 기혁은 심연이 증발한 시대의 권태나 상처를 드러내 보이는 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검푸른 멍들을 저녁이라 부르지 말자.” 아직 해가 저물기까지는 긴 시간이 남아 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를 쓰러뜨리는 것들(“파도” “바람”)에게는 “어떤 입도/허락하지 말자”(「옐로카드」). ‘없음’을 통해 ‘있음’을 드러내면서, 세계의 구멍들을 쓸어보는 것으로 새로운 탄생을 말한다. 기혁에게는 여전히 할 말이 남아 있다.
처음 詩를 쓰던 날, 누군가 먼저 불러주기를 나는 얼마나 고대했던가. 있지도 않는 약도를 진실과 진리의 별자리 옆으로 슬며시 내려놓으며, 얼마나 구차하게 두근거렸던가.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어렵사리 구한 중고 엘피판을 틀지 못하고 만지작거린다. 사막의 기록이 몇 개의 미라와 함께 부스럭거렸다. 모래폭풍을 헤집고 다녀간 여급의 발자국이 보인다면, 아직 이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문 닫힌 바그다드 카페, 낡은 테이블에 흐트러진 몇 권의 시집을 떠올린다. 죽거나 죽어가는 시인들은 어떻게 침묵에서 형식을 상연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형식에서 의미를 떠올린다는 건 얼마나 고요한 일일까. 무대 밖 현실은 늘 습작 같았지만, 요란스러운 감상도 이유 없는 비판도 내게는 초연이었다. 마시다 만 커피가 말라 찻잔의 우주가 되듯이, 쓰다만 詩가 마침내 詩가 되는 문학적 아이러니. 누군가 말 못할 낭만이라 비웃는다 해도 그것의 근원은 아슬아슬하게 사랑스럽다.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라스베이거스의 찢어진 습작 속에 두고 왔던 건 외로움이 아니라 음악을 대신할 당신의 육성이었다.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