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새로운 계절을 여는 한국 문학의 현재
기존의 경계를 흩뜨리는 젊은 작가의 소설 열한 편!
문학과지성사가 2010년부터 제정 ? 운영해오고 있는 ‘문지문학상(구 웹진문지문학상)’이 올해로 8회를 맞이했다. 『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과지성사, 2018)에는 수상작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를 포함해 총 열한 명(김효나, 임솔아, 김금희, 박민정, 허희정, 박상영, 오한기, 이주란, 손보미, 정영수)의 소설이 실렸다.
[이 달의 소설]이란 이름 아래 매달 작품을 선정하였던 기존의 방식을 개편하여, 2017년부터는 계절마다 한 차례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문지문학상의 후보작으로 하였다. 문지문학상 수상 작가에게는 1천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시상식은 12월 초에 있을 예정이다. 심사위원(우찬제, 이광호, 김형중, 조연정, 금정연, 김신식, 강동호, 황예인)은 예심과 본심 동일한 구성원으로 진행되며,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고 있다.
*해마다 간행된 도서『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지난 8년간의 여정을 마친다. [이 계절의 소설]로 개편된 방식에 따라 문학과지성사에서는 매 계절 선정된 작품들을 바로 그다음 분기 앤솔러지로 묶어 내, 1년간 네 권씩 출간할 예정이다. 계절의 리듬에 맞추어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좀더 빠르게 독자 여러분에게 선사하며, 한국 문학의 현재와 호흡할 것을 약속한다.
목차
심사 경위
심사평
수상 소감
제8회 문지문학상 수상작
2017년 겨울 백수린 여름의 빌라
인터뷰(백수린x황예인)
이 계절의 소설
2017년 봄 김효나 2인용 독백
인터뷰(김효나x이경진)
봄 임솔아 신체 적출물
인터뷰(임솔아x조연정)
여름 김금희 모리와 무라
인터뷰(김금희x황예인)
여름 박민정 바비의 분위기
인터뷰(박민정x조연정)
여름 허희정 Stained
인터뷰(허희정x김신식)
가을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인터뷰(박상영x이경진)
가을 오한기 바게트 소년병
인터뷰(오한기x조연정)
가을 이주란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인터뷰(이주란x금정연)
겨울 손보미 정류장
인터뷰(손보미x조연정)
겨울 정영수 더 인간적인 말
인터뷰(정영수x금정연)
저자
백수린
출판사리뷰
타인을 향한 공감와 이해에 대한 탐구
여덟번째 문지문학상 수상작,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2017년은 무엇을 써야 하는가, 무엇을 쓸 수 있는가,라는 문학의 물음을 두고 한국 소설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엿볼 수 있는 해였다. 백수린은 그간 이국적 이미지를 배경으로 우리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하거나 국경을 넘어 형성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심도 있게 파고들어온 자신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여름의 빌라」로 제8회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삼십대 한국인 시간강사, 독일인 노부부와 그들의 손녀 레오니가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에서 함께 보낸 며칠간의 여름휴가를 다룬다. 아시아 여성인 ‘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독일인 부부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그들 사이의 우정에 어떠한 한계가 있음을 체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이후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우정이 다시 회복될 가능성, 그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해냄으로써 결말지어진다. 작품은 타자가 어떻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물음에 몰두하며, 폭력과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위로와 공감을 증언한다.
작가의 섬세하고 집요한 손끝은 타자를 환대하고 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후에도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기억해야 하는지 탐구하는 일에 집중한다. 한 작가가 꾸준히 추구해온 이러한 문제의식, 그리고 묵직한 떨림을 불러오는 작품에 마침내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_ 문지문학상 심사위원 일동
이 계절의 소설: 봄
김효나의 「2인용 독백」은 「이사」와 「주운 기억」 두 편이 합해진 작품이다. “기억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기억을 버리고, 줍고, 더 멀리 버리고, 다시 모른 척 줍고 하다 보니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2인용 독백」은 기억을 마치 물질처럼 다루면서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문학평론가 강동호는 “시적인 문체를 통해 소설의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개시하고 있는 소설”이라 평하며 작가의 독특한 개성과 앞으로의 소설에 기대를 표했다.
임솔아의 「신체 적출물」은 성격이 매우 다른 자매가 태국 여행 중 사고를 당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사고로 동생 은하는 발가락이 잘리고, 그 발가락을 한국으로 가져오려 하는 은하와 그런 은하를 이해할 수 없는 언니 은지의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진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잘린 발가락 하나를 한국에 가져가지 위해 드는 비용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언니의 말을 통해 그간 존엄하다 여겨온 신체마저 가격을 매기는 일이 가능해진 사회의 섬뜩한 민낯이 드러난다.
이 계절의 소설: 여름
「모리와 무라」는 『너무 한낮의 연애』로 확실한 팬 층을 확보한 김금희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일본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의 축으로, 나와 나의 연인 운주의 이야기가 또 다른 축으로 작동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셈법을 가진 운주와의 이별 후 나는 해경(나의 엄마), 숙부와 함께 유후인을 여행한다.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나는 평생을 알기 어려웠던 자신과 가족들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문제, 혹은 저마다의 삶이 가진 계산법에 대한 문제가 안고 있는 윤리의 층위를”(문학평론가 이광호) 돌아보게 하며 일상적인 가운데 드러나는 개개인의 감정과 기억의 문제를 섬세하게 다룬다.
박민정의 「바비의 분위기」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의 혐오 문제를 다면적으로 엮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몰래 사진을 촬영하는 사촌오빠를 둔 유미는 도서관에서 항상 자신의 옆에 의도적으로 앉으려는 듯한 남학생 때문에 불쾌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작품은 사촌오빠에 대한 기억과 현재 겪고 있는 곤란함이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면서 젠더 문제를 둘러싼 피해와 가해의 지점들을 충실히 기록한다.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허희정이 작품 「Stained」를 통해 처음으로 수상작품집에 이름을 올렸다. 김신식(산문가)은 그의 소설을 “애니메이트된 문학”이라고 칭하며 작품 속에 출몰하는 원형과 삼각형의 이미지들에 주목한다. 서사를 기승전결에 맞춰 완전히 분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유영하는 이미지들이 자아내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 계절의 소설: 가을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비장함을 배제한 퀴어소설”이라는 금정연(서평가)의 평처럼 때론 발랄하게, 때론 유쾌하게 튀어 오르는 문장의 힘을 갖춘 작품이다. 예술가, 눈물, 자이툰, 파스타로 이루어진 제목에서 연상되듯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공통된 세대 정서를 통해 엮어내었다.
무질서의 질서, 무의미의 의미라는 모순된 개념을 전유해온 오한기의 작품 「바게트 소년병」은 심사위원들에게 “오한기가 변하려 하는가”(김신식)라는 의문을 갖게 하며, 후보작에 이름을 올렸다. 그간 오한기의 작품을 따라 읽어온 독자에게는 오한기가 지금 소설가로서 어떠한 지점을 지나가고 있는지 그 변화의 시작, 혹은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첫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로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이주란의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가 [이 계절의 소설: 가을]의 마지막 작품이다. 겉으로 보기에 가난해 보이진 않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가난을 두고 대결을 한다면 절대 지지 않을 만큼) 정말 가난한 청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청년 세대에서 가난이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청년들의 어려운 고난과 갈등을, 그 무거운 현실의 난제를, 매우 가볍게 아주 쉽게 서술”하면서, “그 과정에서 빚어내는 서늘한 아이러니 효과가 독자로 하여금 여러 생각들을 자아내게 한다”(우찬제 문학평론가).
이 계절의 소설: 겨울
손보미의 「정류장」은 학교폭력 피해자가 죽음을 앞둔 가해자로부터 연락을 받는다는 인터넷 게시물을 모티프로 씌어진 작품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마음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과오가 어느 날 수면으로 떠올랐을 때, 자신에게도 낯선 스스로의 과거를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를 중심으로 가해자인 주인공의 내면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촘촘히 써 내려간다.
정영수의 「더 인간적인 말」은 말과 아마도 그의 반대말일 침묵을 교차로 드러낸다. 말이 너무 많아서 친해졌지만, 말이 너무 많아서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와 스위스에 가서 죽겠다는 이모의 선언과도 같은 말이 있다. 또한 위기 앞에서 이혼을 무한정 연기하는 침묵과 이모 앞에서 그의 안락사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침묵이 있다. 말과 침묵 사이에서 작가는 한국 사회에 아직 낯선 안락사의 문제를 끌어들이며 ‘더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수상 소감
한동안 소설을 거의 발표하지 못하고 지냈다. 소설 쓸 시간을 물리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내 예상보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소설 대신 청탁 반려 메일을 써야만 하는 날들이 반복됐다. 메일을 전송할 때마다 이러다가 소설 쓰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나를 어김없이 엄습하곤 했다. 무언가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잃는 데는 아주 짧은 찰나면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의 빌라」는 내가 지난해 쓴 유일한 단편소설이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사정을 헤아려 원고를 기다려준 분들이 없었다면 내가 지난가을,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이 소설을 완성해내려고 애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름의 빌라」는 인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그와 관련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을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몰이해가 어떻게 뜻하지 않게 폭력이 되는지, 무언가를 훼손하고 파괴하는 것은 어째서 많은 경우,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악의가 아니라 나에게만 진실한 선의인지, 소설을 구상하던 단계의 나는 그런 것들이 궁금했던 것 같다. 소설을 거의 완성해놓고 결말을 짓지 못해 여러 날을 보냈다. 처음 내가 품고 있던 이야기 속에서 어린아이들이 만나는 장면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아이를 낯설어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레오니의 에피소드는 결말을 위한 복선처럼만 기능할 뿐이었다. 예정해두었던 결말은 말다툼이 끝난 이후, 숨겨진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된 주아가 폭풍이 휩쓸고 간 빌라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쓰면 쓸수록, 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바람에 쓰러진 파라솔과 선베드가 나뒹구는 풍경처럼 황폐해진 인물들을 그렇게 버려둔 채 이야기를 봉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이야기가 좀처럼 풀리지 않아, 마감을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사과 메일을 작성해 임시로 저장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던 어느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소설에 대해 골몰하다가 레오니가 웃는 장면을 그려보면 어떻게 될지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한 인물이 타인을 향해 그저 웃었을 뿐이었는데 소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가슴이 뛰었다.
그날 새벽, 형광등도 켜지 않고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동이 틀 때까지 글을 다시 고쳐 쓰면서 나는 내가 소설 쓰는 작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매사에 전심을 다해 투신하지 못하고 한 발만 담근 채 다른 발로는 도망칠 궁리만 하며 일생을 살아온 비겁한 나에게 소설 쓰기는 나의 모자람과 나를 압도하는 두려움마저 견디는 법을 알게 해준 거의 유일한 일이다. 등단한 이래, 친숙한 얼굴로 불쑥 찾아오는 자괴감 탓에 모든 것을 두고 달아나고픈 충동을 번번이 느껴왔지만 고비마다 지면을 주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계속 써나갈 용기를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지극한 행운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으니, 기쁘고 감사하다. 부족한 작품에 따뜻한 격려를 해주신 문학과지성사 심사위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날들 동안 쓰면서 자책하고 끊임없이 회의하겠지만 그러면서라도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러는 중에 나의 글이 죽음보다는 생(生)에 가까운 것이 되어갈 수 있기를. 이것이 지금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호사로운 바람이다.
2018년
백수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