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미시사회학의 신기원을 이룬,
정신병원에서의 사회적 삶에 대한
고프먼의 기념비적 연구
고프먼은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접촉,
즉 ‘일상의 삶’에 초점을 맞춘 미니멀리스트였다.
_조엘 베스트Joel Best(델라웨어 대학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어빙 고프먼의 대표작 『수용소』(1961)가 사회학자이자 시인인 심보선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고프먼은, 구조에 초점을 맞춘 거시사회학에 대한 각성이 일기 시작한 20세기 중반, 미시적 행위와 상호작용에 주목한 일련의 연구서들을 발표하며 현대 사회학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프먼은 이 책에서 정신병원, 교도소, 군대, 기숙학교 등 훈육과 통제가 일상화, 집단화, 전면화된 폐쇄적 공간을 “총체적 기관”이라고 칭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밀하게 기술한다. 그는 특히 현장 연구를 수행했던 정신병원의 사례에 주목하여 병원에 수용된 이들의 자아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통치의 대상으로 재구성되는지, 구성원들은 강압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분석한다.
추상으로서의 사회가 아니라 미시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상황을 분석의 초점으로 삼는 그의 현장 연구 방식과 인터뷰에서 신문, 일기, 문학작품까지 다양한 자료를 풍부하게 활용하는 에세이적인 글쓰기 스타일은 오늘날까지 사회학에서 하나의 전범으로 이야기된다. 『자아 연출의 사회학』(1959), 『스티그마』(1963) 등과 함께 고프먼 사회학의 출발을 알린 이 책은, 연구자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까지 매혹시키며 사회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문학과지성사 ‘우리 시대의 고전’ 23번.)
목차
책머리에
서문
1 총체적 기관의 특징들에 관하여
2 정신병 환자의 도덕적 이력
3 공공 기관의 지하 생활
-정신병원 내 생존법에 대한 연구
4 의료 모델과 정신병원 입원
-교정 업무의 변천에 대한 소고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어빙 고프먼
출판사리뷰
총체적 시설에서 재소자들의 자아는
어떻게 파괴되고 통치의 대상으로 재구성되는가?
재소자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수용소』는 정신병원에서 교도소, 군대, 기숙학교까지 고프먼이 “총체적 기관total institution”이라고 부르는 폐쇄적 기관에 수용된 재소자들의 사회적 세계를 분석한 결과물을 담고 있다. 고프먼에 따르면 총체적 기관이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수의 개인이 상당 기간 동안 바깥 사회와 단절된 채 거주하고 일을 하는 장소”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때 “총체적 기관에 수용된 개인들은 외부와 단절된 공통의 일과를 보내며, 이는 공식적 행정의 관리 대상이 된다.” 고프먼은 특히 1년간 현장 연구를 수행했던 워싱턴 D.C.의 성 엘리자베스 병원의 참여 관찰을 바탕으로, 총체적 기관에서 재소자들의 자아가 어떻게 파괴되고 재구성되는지 그 미시적 맥락과 상호작용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재소자들의 자아는 총체적 기관의 구조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총체적 기관은 재소자들에게 헌신과 복종을 강요하지만 재소자들은 비밀스럽게, 혹은 영악하게 그러한 강요에 저항하며 자아를 구축한다.
여기서 고프먼이 제시하는 “총체적 기관” 개념과 자아의 훈육과 통제 기제를 규명한 푸코의 “파놉티콘Panopticon” 개념과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고프먼의 총체적 기관 개념은 푸코의 파놉티콘 개념이 갖는 구조 결정주의의 한계를 극복한다. 푸코가 권력의 자아 규정적 측면을 강조한다면 고프먼은 권력의 규정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 감각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사회적 지위는 세계의 견고한 건축물에 의해 지탱된다. 그러나 우리의 사적 정체성은 종종 그 건축물의 틈새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고프먼은 구조의 힘과 구조 속에 존재하는 틈, 규정되는 자아와 저항하는 자아 사이의 변증법을 두텁게 묘사한다.
옮긴이 심보선은 “전문성과 인권, 효율적 통치와 효과적 개선, 구조와 자아 사이의 회색 지대,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인격 파괴에 대한 고프먼의 문제의식은 총체적 기관을 넘어 사회 전체로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때로는 총체적 기관 바깥의 사회가 유사-총체적 기관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권위와 위계의 영향력과 구속력이 막강한 한국 사회의 경우 고프먼이 『수용소』를 통해 보여주었던 고민과 성찰이 더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재소자의 인격을 말살해가는 총체적 기관의 다양한 장치와 절차 들을 보면서, 거꾸로 우리는 한 사회에서 구성원이 인격을 갖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총체적 기관을 넘어서,
“자유로운 바깥 세계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 아닐까?”
고프먼의 『수용소』는 출간 즉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병원의 삶에 대한 충실한 묘사는 오늘날 읽어도 생생하고 충격적이다. 고프먼이 『수용소』를 저술하던 시기, 이미 서구에서는 정신병 환자들의 인권과 정신병원의 전문성이 쟁점화되고 그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이 고안되고 있었다. 그러나 고프먼은 정신병원의 이중적 목표, 훈육과 통제라는 규범적 목표와 질병 치료라는 기능적 목표 사이의 근본적 모순이 깔끔히 해소될 수 없는 것임을 사회학적으로 규명한다. 정신병원 역시 “시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할 때 “수요자”는 환자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환자를 포괄하지 못하는 사회, 경찰, 환자의 가족, 주변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신병원이 겉으로는 환자의 치료를 목표로 내세우면서, 한편으로는 또 다른 수요자들의 필요에 맞추어 격리, 통제, 훈육 기관으로 기능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호자 동의와 의사의 진단만으로 정신병 환자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한 정신보건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 불과 2년 전인 2016년으로, 여전히 환자의 처우나 병원의 환경 등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때 고프먼의 통찰력은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
『수용소』는 「총체적 기관의 특징들에 관하여」 「정신병 환자의 도덕적 이력」 「공공 기관의 지하 생활」 「의료 모델과 정신병원 입원」까지 네 편의 에세이를 수록하고 있다. 고프먼은 이 글들을 통해 정신병원뿐 아니라 총체적 기관 전반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한다. 「총체적 기관의 특징들에 관하여」는 총체적 기관의 대표적 두 사례인 정신병원과 교도소를 “재소자 세계”와 “직원 세계”로 구별하고, 그 두 세계 내, 혹은 두 세계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한다. 「정신병 환자의 도덕적 이력」은 총체적 기관의 기능이 정신병 환자의 인격에 미치는 도덕적 영향력을 “전前환자 단계”와 “환자 단계”라는 이력을 통해 분석한다. 「공공 기관의 지하 생활」은 정신병 환자들의 2차 적응 전략, 즉 총체적 기관의 구속적 환경에서 자아를 지키고 회복하는 전략들을 소개한다. 「의료 모델과 정신병원 입원」은 현대의 전문적 서비스라는 이상이 훈육과 통제라는 목표를 품고 있는 정신병원의 의료 모델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근본적인 난점을 해명한다. 고프먼은 정신병원의 독특한 서비스 모델이 의사, 직원, 환자 모두에게 박탈과 왜곡과 상처를 야기한다고 말한다.